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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2000년 7월  3일 월요일 오전 01시 45분 15초
제 목(Title): Re: 진중권/ 한국의 보수여 분발하라 



>>영국의 묘지에 가면 묘비에 죄다 “Sir”라고 써 있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 귀족
>>자제들이 남보다 앞장서 싸웠다는 얘기다.


진 중권 씨의 글을 매우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이 부분은 진 중권 씨가 영국의
귀족제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생긴 오류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대로 영국의 귀족제도를 말씀 드리면, 영국의 귀족 내지 작위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세습귀족으로서 옜날옜날 
조상이 귀족이어서 그 자손도 귀족이 된 사람들입니다. 흔히 말하는 공작이나 
남작들이 이 사람들이죠. 한가지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영국의 세습귀족 작위는 
그 자식들 모두에게 상속되는 것이 아니고 맏아들에게만 상속된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말보로 공작이라고 영국에서 알아주는 뼈대있는(?) 가문이 
있는데 제 11대 말보로 공작이 죽으면 그 아들들이 모두 공작이 되는것이 아니고
맏아들만 제 12대 말보로 공작이 되며 둘째 세째는 (고귀한 집안 출신이고
신분이 높긴 하지만) 귀족이 아닙니다. 아들이 없으면 보통 다른 귀족집안의 
둘째 세째를 양자로 삼아서 대를 잇습니다. 이런식으로 영국의 귀족은 대를 
넘어도 수자가 팽창하지 않고 늘 일정하게 8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요.

따라서 오늘날 영국에서 `세습귀족'이란 것은 조선시대 양반이나 프랑스 
혁명직전의 프랑스 귀족과 같은 특정계층이라기 보다는, 지금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종가집 종손'정도라고 보는 것이 더 비슷할 겁니다. 우리나라도 
종손이 문중의 막대한 재산을 관리하고 씨앗을 보존(?)하고 평생 제사지내는
일만 하듯이 이런 세습귀족들도 선조의 재산을 관리하고 이름을 이어가는 
역할 들 뿐입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보면 주인공 로렌스가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나눈 장면이 있습니다.

로렌스 " 내 아버지는 귀족이었어요"
친구 "당신에게 형님이 있엇나 보군요" <-- 둘째라서 귀족이 아니냔 질문 
로렌스 "내 어머니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소"

흔히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예로 영국귀족을 곧잘 들먹이는데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꼭 맞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영국의 세습귀족은 맏이가 귀족칭호와 재산의 거의 대부분을 물려받기 때문에 
둘째 세째 아들들은 집안이야 좋지만 빈털터리들이기 쉽거든요.
이런 아들들이 (신분제 사회에서 장사를 하겠습니까 공돌이가 되겠습니까)
명예로운 직업으로 여겨지던 군대에 입대해서 (귀족자제라서 장교이기도하고)
식민지 전쟁에 참가해서 `한탕'하러 가는 겁니다. 
귀족층의 사망율이 높을 수 밖에 없죠.

한국에서는 지난 수백년 동안 방어전 뿐이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는 것이 
잘해야 `국방의 의무를 다한 명예' 이상의 반대급부를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제국주의의 원조 영국인에게는 군대란 곳이 식민지 전쟁에 참가해서 
한탕하는 데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따라서 둘째 세째란 이유로 찬밥 대접을 
받던 귀족 아들들이 한건을 바라고 꾸준히 군대에 들어간 것입니다.

영국에는 이런 세습귀족과는 달리 평민이 스스로 귀족이 될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흔히 `기사'작위라고 번역되는 Sir 제도가 그것입니다. 영국인의 
이름을 번역할 때 보면 `--- 경' 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바로 
Sir 입니다. (이런 의미가 발전해서 영어에서 Sir 가 일종의 존칭이 되었습니다.)

Sir 는 누구든지 자기분야에서 국가에 중요한 공헌을 한 사람이면 구각가 
심사를 해서 영국왕이 직접 작위를 내려 줍니다. 일례로 뮤지컬 작곡자로 
유명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도 뮤지컬에 대한 공로로 기사작위를 받아서 
지금은 Sir Andrew Lloyd Weber 로 `귀족'입니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Dame이란 
작위를 주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는 아가다 크리스티도 생전에 추리소설 
잘썼다(!)고 Dame 작위를 받아서 `귀족'이 되셨습니다. 그니까 영국에서 
`기사'작위는 한국으로 치면 무슨 무슨 훈장이니 포장이니 하는거랑 
비슷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시겠죠?

Sir 와 세습귀족의 차이는 Sir 작위는 세습되지 않고 당대의 명예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Sir 의 자식들은 그냥 도로 평민입니다.

이 두가지 제도가 절묘하게 배합된 사람이 유명한 윈스턴 처칠 수상인데 
이 사람은 원래 앞서 예로 들었던 말보로 공작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처칠
본인은 귀족이나 공작이 아니었습니다. 처칠의 아버지인 랜돌프 처칠이 
형제중의 세째였기 때문에 공작지위는 종손이 물려받고 아버지 랜돌프 처칠이나 
윈스턴 처칠은 (빠방한 집안 자식이기는 해도) 그냥 평민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처칠은 2차대전때 수상으로 승전을 이끌었고 
그 공로로해서 Sir 작위를 수여받았습니다. 도로 귀족이 된 거죠. -,.-
그래서 처칠의 공식호칭은 `윈스턴 처칠 경'입니다.

따라서 영국의 묘지에 `Sir' 수두룩 하다고 해서 그게 귀족자식들이 
전장에서 줄줄이 목숨을 바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증거라고 말한다면 
그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Sir는 귀족 아닌 사람들이 훈장처럼 
받는 칭호이지 귀족자식들에게 붙는 칭호가 아닙니다.

솔직히 영국묘지에 `Sir' 칭호가 줄줄이 있다는 것도 금시초문입니다만
그렇더라도 그건 전장에서 죽은 평민들에게 훈장처럼 추서된 것일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우리나라도 군인이 명예롭게 전사하면 일계급
특진시키고 무슨무슨 훈장 추서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land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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