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5년10월07일(토) 05시17분43초 KDT 제 목(Title): [퍼온글] 원균과 이순신 논쟁에 관해 Posted By: hgnoh (바람불어 좋은날) on 'History' Title: Re: 원균과 이순신 논쟁에 관해 Date: Thu Oct 5 07:10:10 1995 > 하지만 원균은 다만 전쟁에서 패한 잘못밖에 없다합니다. > 그것도 질 것이 뻔한데도 막무가내로 (안되면 되게하라, X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 까는거지 말이 많다 라는 논리) 다그치는 상관에게 불복하다가 곤장까지 > 얻어맞고는 억지로 할 수 없이 출전했다가 조선 수군의 대부분을 말아먹었다 > 합니다. 기록으로 보면 청렴결백하기로 조선역사상 10번째 안으로 들 > 정도이다라고 > 하고... > > 임진왜란 논공행상을 보면 > > 1. 이순신 > 2. 권 율 > 3. 원 균 > > 이렇게 나온다고 하더군요. (저도 줏어들은거라 확실치 않음) > > 어쨌던 원균이 공을 세운 기록도 상당수 남아있는 모양이고, > 원균이 나쁜놈으로 알려진 것은 당쟁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 > 10년전 정도부터 원균과 이순신에 관한 논쟁이 벌어져서 신문지상도 장식을 > 했었던 기억이 있고.. > > 원균에 관한 논문과 책이 몇권 나온 모양입니다. > 전 읽어보지 않아서 하나도 모르겠지만, 어떤 책은 원균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 이순신 장군을 상당히 깎아 내리는 식으로 썼다고 하고 (이건 이순신 돋보이게 > 하려고 원균을 마구 나쁘게 묘사한 것과 같은 논리) 그래서 별로일거라고 > 지레짐작만 할 뿐입니다. 음 저도 자세히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이순신과 원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순신 장군이 명장인건 사실이나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점입니다. 우선 초기 임진란때 해전에는 비록 수는 적다하나 경험이 많은 경상도 수군과 화력이 우수한 전라수군의 합동 작전임에도 불구 하고 경상수군의 업적이 크게 부각되어 있지 않다는데 문제가 기인하는데 원균은 상감에게 전황을 보고하는데 있어서 대전을 이룬후에 하겠다는 입장이고 이순신은 각종 전투의 결과를 세세히 알렸다고 합니다 흠 쓰다가 급한 볼일이 있어서리.... 각설하고.. 우선 앞글 에서 말한바와 마찬가지로 이순신은 전투결과를 신속히 왕에게 알렸고 원균은 큰승리를 거둘때까지 사소한 전투는 상소를 올리지 않았으며 또한 상소를 올리는 일에도 전라 경상 양수군의 합동작전이므로 같이 상소를 올릴려고 했다고 그럽니다. 여기서 견해차이가 생긴것이지요... 임진란이 발발한 직후 경상수군의 작전수행능력은 거진 파괴된 형편이였고 반면에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았던 전라수군은 모든 전선들을 소유하고 잇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주요 대전들은 주로 경상도 수군의 관할지역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아무리전선들을 다 소유 하였다고 한들 전라수군 병사들이 경상도지역의 남해안의 물길을 잘 파악하고 전쟁을 수행할수 있겠느냐 하는점입니다. 전쟁 초기 양도 수군은 서로 협력체제를 잘유지했다는 증거들이지요.. 물론 각종 승리소식을 일찍 전한 이순신장군이 정부로 부터 인정을 받는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원균또한 같이 인정을 받은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사견이지만 원균은 전현적인 무관이였다는 생각이 드는반면 이순신 장군은 지략가일뿐아니라 정치성향도 강하다고 생각됩니다. 들리는 소문에 그가 마지막 해전에서정치적인 이유로 자결했다는 논문을 들은적도 있거든요...(믿거나 말거나=)) 이런 협력체제에 가장 골치가 아픈건 당연히 왜군이였지요... 전라도지방을 공격해서 군량미를 해결하려던 원래 계획이ㅣ 어긋났고 또한 바다에서의 패권을 이미 상실한 왜군은 결국 스파이를 사용하여 함을 만들어 놓게 됩니다. 무리한 작전 요청에 이순신 장군은 명령 불복종에 까지 이르고 백의종군을 하게됩니다. 반면에 바로 앞에서 같이 일을 하던 상관(이순신장군)이 불복종에 강제 강등을 당하는것을 본 원균은 어쩔도리가 없었던것이지요. 갖은 이유로 작전을 거부하던 원균은 결국 눈앞의 결과를 알면서도 함정속으로 조선 함대를 끌고 갑니다. 결과는 조선수군의 처절한 패배로 끝이나지요. 그제서야 상황의 긴박성을 깨달은 우리 현명하시던 문관들은 이순신장군을 다시 기용하게되죠. 원균장군의 매도는 흑백논리처럼 이순신장군을 올리기 위해 깍아 내리기 시작한일이 군사정권에서 더욱 활용하고 난 결과라 하겠습니다. 사실 원균장군은 이순신 장군을 무척 아끼고 쫀경했다고 하던군요..=) 두서없는글을 올렸습니다....역사는 역시 잼있어..후후후.. ####### | * * | \ 0 / _______________o0oo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oo0o_____________________ 길과 진리는 하나이다......"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노 형균 ************** 덧붙이자면요.. 선조실록에서는 원균이 좋게 묘사되어있고 그 이후에 나온 수정실록에서는 당쟁의 영향으로 인하여 아주 나쁘게 묘사되어 있다고 합니다. 참 위에 원균에게 곤장을 치도록 한 고위층은 권율 장군입니다. --,--`-<@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잠이 들고파.. Till the rivers flow up stream | Love is real \|||/ @@@ Till lovers cease to dream | Love is touch @|~j~|@ @^j^@ Till then, I'm yours, be mine | Love is free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