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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hobbes (Calvin)
날 짜 (Date): 2000년 2월  1일 화요일 오전 12시 42분 46초
제 목(Title): 근현대9]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아주 멋있는 글보다 더 쓰고 싶은 것 ?

아주 마음에 남는 글.

이걸 쓸려고 하지만 역시 재주가 없으니 그냥 쓰죠.

오늘은 전쟁중의 전쟁 (대전쟁)이었던 1차 세계대전.....

사실 이 명칭은 프랑스가 붙인것이었지 다른 나라들은 아니었습니다.

자국을 넘보는 독일을 완전히 뭉개서 전원국가로 만든 후 영원히 프랑스의 

영광을  구가 하려고 했던 프랑스측이 이 전쟁의 명분을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이라고 했던데서 유래합니다.

그러나 프랑스측 100만, 영국측 90만, 독일측 150만, 러시아측 200만,

미국측 15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00만, 이탈리아 80만, 등등등...

주요 전쟁참가국들중 미국만 제외하고는 모두 싱싱한 젊은 남성(18~30세)

100만 단위를 먹어치운 이 전쟁으로 유럽은 다시는 국제 정치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맙니다.

이 전쟁을 정의하면 1870년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제국이

유럽의 마지막 불씨를 잠재우고 세계로 뻗어나가려고 했으며 그당시 최강의

해군과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영국이 이것을 되려 잠재우려고 했고

이때 국민적 자존심과 대 프랑스의 영광을 꿈꾸던 몽상가들이 러시아에 

빌려준 막대한 차관과 러시아의 서방에의 동경, 현실적인 전쟁의 필요성

(러시아 국내의 혁명기운을 잠재우기 위한 전쟁)등을 미끼로 러시아와 

영국을 끌어들여 완전히 독일을 잠재우려 합니다.   그 옆에 세르비아의 

이해당사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유럽내의 입지를 넓히려고 애쓰던 

오스만 제국이 가세하죠.

1900년대 초부터 유럽에는 전쟁의 기운이 싹틉니다.  이제 먹을 만한 

식민지는 다 먹었겠다.   개척할 땅도 없고 되려 신흥국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니 이거 땅을 늘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은땅을 

다시 뱉을 수도 없는 법.

정치적으로 보면 메테르니히나 비스마르크 같은 국제정세에 탁월하고 

발이 넓으며 존경받고 유연한 정치가(statesman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필요없는 politician(정치인)들 말고 ^.^)는 이제 눈 씻고 

찾아봐야 찾을 수도 없고......

북아프리카에서의 충돌등 대전쟁으로 가는 서막은 이미 여려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바로 보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박람회 개최, 

교통통신의 발달등 장미빛 미래만을 상상합니다.

오히려 전쟁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위대한 전쟁의 영광만을 떠올리는 

(승리후의 개선행진, 열렬한 환영등등) 낭만을 떠올리는 것이었죠.

한편 19세기에 등장한 기관총은 공격측을 거의 파멸로 몰아갈수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공격무기로 착각합니다.   아직도 예전의 

전쟁 방식, 즉 일렬 횡대로 서서 진격하며 앞의 적들을 소탕한다.는 방식을

못버리는 전략 입안가들(장군들... 나이살들이 먹어서 노망하기 직전의)은

몇개 사단을 모아서 한곳으로 몰아 넣고 진격 시켜 방어선을 뚫고 적을 

괴멸시킨다.는 황당한 생각으로 전략을 입안합니다.

독일 제국 총 참모총장 슐리펜(Schlieffen)은 19세기에 앞으로 다가올 

대전쟁을 대비해 작전을 구상하는데 슐리펜계획으로 알려진 작전을 

입안합니다.   외선인 적들(프랑스와 러시아)이 군대의 배치를 마치기 전인

몇주만에 (여기서는 6주) 프랑스를 먼저 쓸고 군대를 돌려 러시아를 쓸면

다 독식 할 수 있다는 계획입니다.   (전격전의 선구자???)

벨기에를 통과해서 파리 북부쪽으로 파리를 감싸안고 알사스-로렌에 집중 

배치된 프랑스군을 포위 하고(오른쪽 훅) 전면과 합세 적을 격파한다(모루)

는 작전은 역사상 양익 포위를 가장 잘 성공시킨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를

재연하고자 하는 고전적 군인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고 하면 러시아가 그 6주동안 가만히 있어야 하고 벨기에군, 

프랑스군, 영국군등 오른쪽 훅 전면에 포진하고 있는 모든 군대가 단 

한번씩의 전투에서 모두 박살나야 하고, 독일군의 빠른 진격을 뒷받침할 

보급이 재빨리 따라야 하는데 이것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거의 장미빛 

상상만으로 모든싸움에 이긴다!!는 생각만을 가진 계획이었죠.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당긴 불은 역시나 유럽을 휘감았고 역시나 독일은 

자신의 작전대로 나아갔고 역시나 프랑스는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까지만 역시나 입니다.   그런데가 들어올 시점이 여기죠.    그런데,

러시아는 프랑스의 급박한 요청으로 미처 군대가 동원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십만을 급거 출동시킵니다.   이때문에 서부전선에서 병력을 빼돌려야 

했던 독일은 오른쪽 훅이 약해졌고 만만찮은 프랑스군의 반격과 시간의 지연,

보급이 못따라오는 힘겨운 진격등으로 파리를 감싸안지 못하고 훅을 알사스

로렌지방으로 구부리게 되고 이때를 놓치지 않은 프랑스의 조프르 원수는 

반격을 하게 되고 전쟁은 독일이 전혀 원하지 않는 장기전으로 돌입해서

참호를 알프스에서 북해연안까지 파게 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만 했으면 문제가 없는데 쓸데없는 돌격을 시켰으니

무수한 사람만 죽어나가죠.(영화 '가을의 전설'을 보면 영국군이 돌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건 다 거짓말입니다.  기관총앞에서 달리기 시합하던 

사람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프랑스군의 반란등으로 

연합군은 기진맥진하고 러시아가 전열에서 탈락해서 동부전선의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가세한 후 독일이 더욱 더 기세를 올리게 되자, 미군의 

참전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는데 이때까지 박쥐처럼 중립을 지키던

미국은 명분상으로는 루시타니아호의 침몰, 실제적으로는 주 멕시코 

독일대사관에서 도청한 독일의 비밀전문(멕시코가 미국을 쳐서 전쟁에 

참가할 수 없도록 해주면 독일이 승리한 후 짭짤하게 해주겠다!!)을 기화로 

전쟁에 참가합니다.   동부의 영국 계통, 중부의 독일-오스트리아 계통이

첨예하게 대립해서 참전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때에 행해진

이 독일측의 멍청한 외교의 단면은 사람이 얼마나 멍청해 질 수 있나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고 싶으면 뭔 짓을 못합니까 ?

연합군의 붕괴직전에 미군이 참전하고 그 뒤 1918년 8월 8일 결정적인 

돌파를 당한 이후 독일은 패배를 실감하게 되고 킬항의 반란을 선두로 

제국 황제가 폐위되고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대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자 어차피 일어난 전쟁, 잘 봉합해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겠는데...   프랑스는 가장 큰 이해 당사자(사실은 당한 걸로 봐서는 러시아

겠지만 정전하고 떨어져 나갔으니 할말이 없음)로서 독일을 거의 해체시킬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어차피 독일에 대해 별 불만이 없게 된(왜냐고 ?? 

독일 해군이 이제 파편이 됐으니까..) 영국은 소극적으로 변하고...

결국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격론을 벌인 것은 이상주의자이자 박애주의자이고

장로교 목사인 미국의 윌슨과 프랑스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클레망소가

갑론을박을 벌이게 되고 여기서 식민지 박탈, 육군의 대대적 감축, 

공군-해군의 해체, 천문학적인 배상금, 알사스-로렌의 영구적 프랑스 할양

등이 결정됩니다.   독일을 한적한 전원의 나라로 만들어 프랑스의 적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계획이 성공했다고 봐야죠.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의 포슈(Foch)는 이건 강화가 아니라 20년정도의 휴전에 불과하다.고

예언합니다.   패전국 독일인의 자존심을 뭉개도 보통 뭉갠것이 아닌 이 

조약은 1919년 11월 11일 울며 겨자먹기로 나온 독일대표들에 의해 서명되고

(이 사람들은 나중에 다 암살됩니다.   어쩔수 없이 서명한 건데..) 마침내 

공식적인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패전국에 대한 이해와 아량, 공존

공생의 마음이 없었던 승전국들에 의해(또한 시대가 그랬었죠.) 산산조각난

독일의 자존심은 파멸적인 몸부림으로 20년후 다시 나타납니다.

국제 연맹(The league of Nations)은 시작부터 절름발이였고, 물리적인 힘을

행사할 수도 없었고 마침 불어닥친 공황의 여파로 각자 자기살기 바쁜 

세상이 된 후에는 누구도 독일을 제어할 여력이 없었고 착착 베르사유

체제를 무시하는 독일의 행동이 나타납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16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정치적, 군사적 

우위는 이 전쟁으로 한 세대가 사라졌다고 해도 존속은 합니다.   그러나 

20년후 다시 한방 맞은 유럽은 거의 미국과 러시아(구 소련)의 입김에 

편입되고 마는 결과를 낳게 되고 그것을 무시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다시

한 방을 맞고는 바톤을 완전히 미국에 넘기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 지도를 확정한 제 1차대전.   비록 승자라

해도 패자를 함부로 하면 안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기운을 무시한 이 

전쟁후의 처리 방식때문에 다시한번 전세계가 피를 흘립니다.   

저는 1차 세계대전은 2차 유럽전쟁으로 부르고 싶은데 (1차 유럽전쟁은

독일에서 벌어진 30년 전쟁) 거의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세계전쟁은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 뱀다리 : U.N. is the ashes of the past ideology. -> 제가 코넬 대학교 

 팀과 논쟁한 주제 였습니다.  논리로는 이기고 영어로는 졌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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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편 끝!!!!



"Any chance of getting transferred, D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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