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kdycap (도영 ) 날 짜 (Date): 1999년 11월 23일 화요일 오후 01시 06분 10초 제 목(Title): 명량해전3 이순신이 부임하고 보니 배는 겨우 칠천량에서 탈출한 12척과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는 배 한척 해서 13척의 전함뿐이었고 병사들도 겨우 1200여명.. 예전에 휘하 용감무쌍한 제장들은 칠천량에서 모두 전몰하고 살아남은 이와 병사들은 모두가 전쟁공포증에 시달리는 영락없는 패잔병의 모습이었습니다. 바다의 제해권은 예전에는 경상도 거제도 견내량을 사이에 두고 왜수군과 대치한 상태로 거의 견내량 이서는 모두 조선수군의 것이었는 데 이제는 남해는 적의 수중에 넘어가고 수군진은 진도 근해를 전전하고 있 는 상황이었습니다. 진도라면 전라남도 서쪽 끝쪽에 해당하는 곳이니 왜군의 입장에서는 이제 조선수군의 잔당만 몰살하면 곧장 서해를 돌아 바로 한양 을 요격할수 있는 상황에 이르러 전쟁은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습니다. 해서 그들은 승세를 몰아 수백척의 전함을 몰고 유유 히 진도쪽으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난중일기에는 이때의 처참한 상황이 담담하게 잘 기술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전 쟁 공포증에 시달리는 부하들에 대한 안타까움, 곽란이라는 일종의 위장병 땜에 몹시도 아팠다라는 내용들.. 그리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등 심금을 울리는 내 용들이 적혀 있습니다. 흑흑흑... 이순신은 왜병력 333척이 진격해온다는 사실을 척후를 통해 듣습니다. 하지만 장군의 작전은 이미 그 체계가 잡혀있었던 모양입니다. 장군은 수군진을 여러차 례 옮기면서 왜수군을 자신이 싸움하고 싶어했던 명량의 거센 물살속으로 유도 할려고 했습니다. 왜수군역시 명량의 거센물살을 모를리가 없었을겁니다. 왜장 들이 바보는 아니었을테니.. 알고보니 일본 수군이 있었던 일본내의 수군지기 역시 명량보다 더 거세면 거세었지 더 약하지는 않은 조류의 흐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왜 수군은 오히려 명량의 물살속에서 전투하기를 바랬을지도 모릅 니다. 이순신장군은 자신이 철책을 이용해 좁을 물길사이에 일종의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