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YMH (마린보이) 날 짜 (Date): 1999년 11월 16일 화요일 오후 03시 43분 22초 제 목(Title): Re: 조조의 8명장에 대한 해명... 우선 사실 여부를 가리기 전에 연의에 적힌 대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정사라고 해서 다 맞는 얘기는 아니겠지요. 우리나라 삼국사기가 다 맞지 안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의 님의 정사의 기준은 님의 의견으로 듣겠습니다. 여포 vs. 유비, 관우, 장비 연의에 의하면 장비가(어느 전투더라??) 여포와 먼저 맞닥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30여합이 지나자 그 힘좋은 장비도 여포에게 힘겨워 하게 됩니다. 그러자 관우가 달려듭니다. 그 둘이 또 한참을 싸워도 둘이 밀리는 것처럼 상황이 바뀝니ㅏㄷ. 그러자 우리의 쌍칼 유비가 덤벼듭니다....남자대 남자로서의 일대일 대결은 유비형제에 의해서 비겁한 패싸움이 되어벼렸고, 그 셋과 여포는 어우러져서 싸우지만 잠시 후에 여포가 도망치게 됩니다.. 그건 그 셋과의 쌈이 힘겨워서라기 보다 멋진 일기토의 기회에 저 뒤에서 적군이 밀려오는 걸 보고 여포가 후퇴했기 때문이랍니다. 우선 여기서 여포에게는 동정 점수를 좀 줘야죠. 실력은 있었지만 개떼같이 오는 군사들에겐 좀 힘들죠. 조조의 6명이든 8명이든 (전 8명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때도 여포가 쫓기는 상황에서 그들과 맞닥드리게 됩니다. 역시 상황이 받쳐주지 안은지라 그들과 여러합을 싸우고 자진 후퇴를 하죠. 그러나 연의에서는 그 잠시 동안의 일기토에서도 여포는 밀리지 안았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박쥐같이만 안살았어도 좀 더 명예로운 업적이 있었을텐데 그래도 여포의 힘과 무예는 너무 존경스럽지 안습니까? 참 옛날 중국의 전투를 보면 대장끼리 나와서 대결도 하고 낙만적(?)이었습니다. 대장끼리 나와서 그런 결투를 할 정도면 보통 깡이 아닌데...... 인생이 한편의 영화라면 난 여지껏 몇장의 필름을 사용했을까? 그리고 대본은 어떤가? 과연 언제쯤 편집이 가능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