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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illes ()
날 짜 (Date): 1999년 11월 11일 목요일 오후 06시 30분 20초
제 목(Title): Re: [re] Re: [re] Re: [re] 출사표



 곁다리(^^;;) 입니다.

 1, 촉의 생산력.

 촉땅은 지금의 쓰촨성입니다.(사천성이죠.)
 중국 요리 중에 '사천**'식의 이름 붙은 것이 많죠? 음식 문화는 물산이 풍부한 
곳에서 발달하기 마련.- 호남 음식이 맛깔스럽기로 유명한 이유도 이것.-
 사천성은 예로부터 곡창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생산효율은 괜찮은 곳이란 
이야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나라 정벌 내내 경제력을 유지한 제갈 량의 
수완이 폄하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영토의 절대적 규모차, 인구의 규모차에 
있는 것이지, 촉의 토양이 척박한 때문은 아니란거죠.

 
 2. 관우의 고립.

 관우의 고립은 일부분 자기 자신이 초래한 것이라고 많은 처세술가(^^;;)들이 
 이야기하더군요. 관우는 윗 사람에게는 거만하고, 아랫 사람은 따뜻하게 
 보살피기로 유명했습니다. 즉 같은 부하 중에서도 비슷한 급의 장교들은 엄청 
 구박을 한 반면,  사병들은 따뜻하게 보살폈다는 것이죠. 유비의 맏아우인데다가, 
 헌제에게 하사받은 [미염공]이란 칭호, 전설처럼 따르는 무용담, 그리고 생애를 
 통틀어 일관되게  유지하는 [협자의 풍모], 한 편에는 칼, 한 편에는 춘추...
 엄청난 자부심의 사나이였죠.

 그탓에 자기의 수하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관급들과 마찰을 빚었죠. 그리고 자기 
 위에는 [유비]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손권도 눈에 안 들어오는데, 제갈 량이 눈에 들어왔을까요?^^)

 관우가 지키던 형주 근방의 제장수들도 관우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죠.
 유봉은 엄밀히 따지면, 유비의 양자로서 대우를 좀 받을법한데도, 관우한테 제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미방등의 다른 장수들도 관우한테는 좋은 
 감정보다는 두려움과 경원게 가까운 감정을 가졌을겁니다.

 결과는 관우의 고립때, 모두들 구경만 하고 있었죠.... 

 장비는 관우와 반대 케이스입니다.
 장비는 윗사람에게는 공손하고, 아랫사람에게는 혹독했습니다.
 결과는 밤중에 부하손에 목이 달아나 버렸죠.

 제갈 량의 입장에서는 관우가 죽은 것도 아까웠지만, 장비가 죽은 것이 더  
 애통했을겁니다.^^;;


 p.s 대인관계에서는 중용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군요. ^^;;



 3. 관우의 청혼 거절.

 관우 입장에서는 자기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인질을 잡히는 것일 수도 있죠.
 위, 촉, 오가 경계를 마주한 요충지 형주를 지키는 자신이 오나라에 딸을 
 시집보내서 인질을 잡힌 셈이 되어 버리면, 운신의 폭이 좁아집니다. 
 거절한 것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거절의 답신이 넘 과격한 탓도 있었지만, 정말 과격했는지 아니면 오나라 
 여몽의 농간이었는지 모르죠. 보불 전쟁 당시의 엠스 전보 사건을 기억해보세요.
 전혀 문제거리가 안되는 프랑스 대사의 편지가 비스마르크의 조작을 거치자, 선전 
 포고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열받은 빌헬름과 나폴레옹 3세가 
 비스마르크의 농간대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관우도 오나라의 반[유 비]진영의 정보 조작으로 누명을 썼는지도 ^^;;


 이상 곁다리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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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must scream, But I have no m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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