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cduck (벽안묵자) 날 짜 (Date): 1999년 11월 10일 수요일 오후 07시 06분 51초 제 목(Title): Re: 마리산행기 마리산 전기대학에 떨어지고 나서였다. 후기를 앞두고 도무지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여행을 하자고 하셨다. 난 대학 떨어진 것이 송구스러워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당신께서는 막무가내로 호텔 예약하시고 나를 차에 태우셨다. 새벽안개를 헤치며 출발한 마리산 가는 길. 난 운전하시는 아버지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졸 수도 없고 당신께서는 운전하시면서 꼭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라고 조르시므로 조잘재잘 재미난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런데 이 때 주의할 것이 있으니 절대 귀신이야기는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정말로 우리 아버지께선 운전 에 귀신이야기를 듣다가 차를 세우신 적이 있다. (너무 사실적으로 이야기한 내탓이던지, 아버지께서 겁이 많으신 거던지. 아버지 눈매로 보아선 귀신도 오다가 도망갈 것 같은데........) 난 아버지의 졸음을 쫓기 위해서 재미난 이야기도 하면서 휴게소에서 맛난 음식 얻어 먹는 재미에 대학 떨어진 심각함을 좀 잊고 있었다. 점심 때 쯤 강화도에 도착했다. 여장은 **패밀리 호텔에서 풀었다. 침대가 없는 온돌방이어서 너무 좋았다. 거실도 있고 방도 있고 냉장고랑 싱크대랑 조리기구들이 꼭 가정집 같아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지하엔 대형슈퍼가 있어서 쌀이며 부식을 살 수가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준비해서 먹고는 강화도의 초지진을 구경하고 바다도 구경했다. 내일은 1월 1일,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니 마리산에 올라야 한다는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억지로, 억지로 일어나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대학 떨어지고 나서 등산하고픈 마음이 나겠는가? 어디 가서 콱 죽어버리든지, 지금 같으면 술이나 왕창 퍼 마실테지만 그때는 술도 마실 줄 몰랐기 때문에 속만 답답할 뿐이었다. 꾸벅꾸벅 졸면서 마리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다 보면 하얗고 조그만 물방울-습기 같은 것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건 안개거나 구름이다. 나도 역시 그것을 넘어서 정상에 올랐다. 마리산은 결코 오르기 힘든 산이 아니었건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힘이 들었다. 하지만 오르고 났을 때의 그 기쁨이란. 그리고 오른다기 보다는 순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리산은. 정상에 올라 소원을 빌었다. 대학에 꼭 붙게 해달라고. (이걸 기도라고 말하고 싶은데 지금까지 이렇게 간절한 기도를 드려서 이루어지지 않은 소원은 없다.) 마리산의 정상에선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이 산은 산이라기 보다는 성지이므로 절로 숭배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백두와 한라의 가운데에 마리가 있다. 마리는 머리의 뜻이요, 우두머리의 뜻이다. 우두머리는 곧 으뜸이니 마리산은 우리나라의 으뜸산이며 우두머리산이다. 마리산에 오르니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듯 내 몸과 마음이 맑아 지는 걸 느꼈다. 가족 각자 소원을 빌고 전등사에 올라가 부처님을 뵈었다. 대웅전에서 10배를 올리고 시주를 했다. 당시 돈 만원은 내게 큰 돈이었는데 부모님 돈 안 쓰고 내 돈을 낸 이유는 그래야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전등사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 온다. 박공에 얽힌 이야긴데 "국물이 끝내줘요!"의 김모양과 "끊지 못혀?" 의 아자씨가 주연한 베스트극장의 소재로도 쓰였으니 전등사에 가시걸랑 꼭 한 번 살펴보시압. *****에구구 친구 왔네요. 겜방에서 친구 기달리며 두서없이 하연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