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hobbes (Calvin) 날 짜 (Date): 1999년 10월 30일 토요일 오후 08시 23분 15초 제 목(Title): 역사발전 ? 지금 역사발전을 주제로한 토론이 열기를 더해가는 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영국이나 일본이 계속적인 발전을 해서 지금 이렇게 성장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 그들에게 유리했고 또한 그 순간의 대처가 약간 유리했다고 봅니다. 따지고 보면 영국은 계속적인 유럽국가의 멸시를 받으며 그 한이 응어리졌고 또한 15세기 16세기를 보면 그들의 해군력은 매우 취약했습니다. 프랑스에게 빼앗은 전함을 몰기 위해 선장들이 아귀다툼을 벌렸으니까요. 그러나 16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새로운 기운.. 즉, 신대륙의 금은을 침탈하기 위한 경쟁에 참여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개념을 생각해 냈습니다. 단순히 금을 빼앗아 오기 보다 거기를 점령하여 [식민지로]삼는것 말입니다. 이제 유럽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바깥으로 더 잘 뻗어나갈수 있다는 장점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문화의 세련도를 다듬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 이어 1588년 네덜란드와 연합하여 스페인을 거꾸러 뜨렸고 독재자 였으나 국력 신장에는 공로가 많은 크롬웰의 치하에서 네덜란드를 쓰러뜨립니다. (이때부터 통일전선전술이 생겼다는 믿지마통신의 전언이 있습니다.. ^.^) 또한 많은 노력을 거쳐 (이때도 결국은 유럽내의 암투입니다만..) 스페인 계승전쟁,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을 거쳐 식민지의 우세를 확정하게 됩니다. 이때의 전투 상황이나 그밖의 상황을 보면 영국의 가장 큰 적 프랑스가 결코 그들에게 실력이 딸리거나 그래서 진건 아닙니다. 국내 정치의 혼란과 신구교도의 갈등이 중요 기로마다 폭발했고 그들이 기를쓴건 나폴레옹이 그러한 싸움을 청산했을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해군력의 우세는 다른 유럽국가들의 무시속에 크롬웰의 선견지명덕분에 주욱 유지됐던 거구요. 이렇게 볼때 역사의 큰 소용돌이속에서 기로에 서 있을때 순간의 안정이 그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는 견해는 그렇습니다. 예전에 한참 학생운동이 활발할때 친구와 다툼을 한 적이 있었죠. 대중이 (그때는 민중이라고 했습니다. ^.^) 역사의 큰 줄기이며 이 줄기에 의해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전 말했죠. 아니라고. 물론 그러한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순간 중요한 장소에 있는 한 사람의 힘이 다른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을 다 합한것 보다 더 클 수 있다고. 때로는 그 한 사람때문에 역사가 바뀐다고. (예를 들면. 캐시미르의 마하라자가 그지역을 선거대로 파키스탄에 넘기지 않고 인도에 넘겨 지금 두 나라가 그 문제로 인해 국지 핵전쟁의 상황까지도 상정할 만큼 나빠진것.등등등) 이상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 [역사보드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 화이팅!!!] :-) "Any chance of getting transferred, Da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