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 횡 수) 날 짜 (Date): 1999년 10월 14일 목요일 오후 02시 06분 30초 제 목(Title): [캡처] 최영의 요동정벌 /방학연대 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다음][이전]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날 짜 (Date): 1999년 10월 14일 목요일 오후 12시 25분 55초 제 목(Title): 최영의 요동정벌 /방학연대 7. 최영의 요동 정벌 ㅇ 스캔들에 얽힌 에피소드 최영과 이성계를 보고 있노라면 한 가지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스캔들'이라는 말이 그것 이다. 유명 정치인이나 연애인의 스캔들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스캔들 이란 원래 그보다는 다른 의미로 사용됐던 말이다. 흔히 문화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인식 발달 단계를 어린아이의 인식 발달 단계와 동일시한 다. 이는 흥미롭게도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 한다"는 진화론의 대전제와 매우 유사하 다. 그들은 최초의 인간 사유 패턴은 주술적 사고의 인간(Homo Magicus)에서 출발한다고 한 다. 그리고 주술적 인간은 모든 것을 자신의 기(氣)의 응축 속에서 해결을 시도하려 하여, 에테르 를 통해 동종 주술(同宗呪術)이나 감염 주술(感染呪術)의 방법으로 대상에게 마술을 걸어 자신 의 의사를 관철시킨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알타미아 동굴 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에게 나 있는 창자국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마술적 사고의 인간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주술에도 불구하고 자 신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는 어떤 그 무엇을 접하고서는 매우 커다란 충격(scandal)를 받아 비로 소 대상(object)을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대상을 뜻하는 영어 'object'는 바로 이처럼 내 앞에(ob) 갑자기 던져진(ject) '그 무엇'을 의미한다. 그래서 결국 주술적 인간은 이제 자기보다 힘센 주술적 존재(god)의 힘을 빌어 자신의 의 사를 관철시키게 된다. 그 결과 주술적 사고의 인간은 신화적(미신적) 사고의 인간(Homo Mythicus)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적 사고의 인간은 스캔들을 통해 획득한 대상 (Objectus)에 대한 분석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주관적 의사가 아닌 대상의 객관적 뜻에 따르는 종교적(Homo-religious) 또는 이성적 사고의 인간으로 성숙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주술적(동물적) 인간에서 이성적 인간으로 진화한 우리 인류에게는 그 진화 의 대가로 주어진 원죄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대상과 인식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혼돈이 그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주술적 인간에게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기의 응축 속에서 해결하기에 굳이 세계와 나 자신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 인간은 언제나 나와 다른 대상을 인식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그런 까닭에 이성적 인간은 언제나 내가 바라보는 대상과 실제의 대상, 즉 세계가 일치하는가 하는 인식의 문제에서 한 순간도 자유 로울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문제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 생활에서 그다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친구들과 어떤 사안이나 어떤 인물에 대한 평을 하면서 나와 다른 관점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을 접하며 혼돈을 느낄 때가 있다. 여기 에서 바로 이성의 가장 큰 결함 가운데 하나인 '중심성'이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중심성의 횡포가 가장 폭력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역 사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특히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마도 이러한 케이스 로 '김대중'만큼이나 우리의 뇌리에 가장 잘 포맷되어 각인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최영과 이성계 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한 번 테스트해보자. 여러분은 '이성계'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 '위화도 회군'을 떠올릴 것이다. 그 렇다면 '최영'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아마도 대개는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다가 조금 지나 희 미하게나마 최영의 붉은 무덤, 즉 그의 유언대로 풀이나지 않았다는 붉은 무덤 정도를 떠올리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런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최영의 요동 정벌이 감행되지 않았다면 결단 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어떻게 최영의 요동 정벌은 기억하지 못하고 이성계의 위화 도 회군만 기억하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 엄청난 폭력이 내재해 있다. 우리는 이성계를 성공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물로, 그리고 최영은 정몽주와 더불어 고 려에 충성을 다한 인물로 기억한다. 하지만 "최영의 요동 정벌이 당시의 상황에서 실현 가능한 것 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나면 대부분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렇다면 최영이 요동 정벌을 감 행한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어오면 대부분 이성계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라느니, 아니면 어쩔 수 없어서라는 식으로 끝을 흐리며 우물쭈물거린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 음 더 나아가 여말.선초의 왜구가 얼마전 홍콩 반환을 앞두고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하던 화교들 처럼, 당시 명태조의 해민 탄압을 피해 한반도로 탈출한 보트 피플 행렬이었고, 최영은 바로 이 왜구를 동원해 요동 정벌을 추진했었다고 한다면 마침내 미친놈 취급을 받고 만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호 문제에 있어서는 몰라도, 역사 문제에 있어서는 마음이 열 려 있다고 하면서도 이미 어떠한 선입관을 갖고서 그 선을 넘는 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데 대개 이러한 선입관은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론 그들이 성인이 되 어 사회에 진출하고 나서는 매스컴이 이러한 학교 교육을 대신한다. 특히나 21세기를 앞두고 치뤄진 97 대선 과정에서 <인물과 사상>이란 책을 분기별로 발간 하며 꾸준히 언론 비판을 하고 있던 강준만 교수와 <거꾸로 읽는 세계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시민 씨의 '김대중 논쟁'은 여론에 의해 조작된 김대중이란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극복/회피 할 것인가를 놓고 두 사람이 흥미로운 해결책을 제시한 바 있다. ㅇ 최영의 요동 정벌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최영이란 이미지를 제거하고 있 는 그대로의 최영, 그리고 그가 품었던 요동 정벌을 살펴보기로 하자. 물론 이 여행에 나를 따라 동참한 분들께서는 어느 정도의 충격(스캔들)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약간 의 현기증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서서히 떴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600년을 넘게 조용히 역 사의 올바른 심판을 기다려왔던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이 아닌 노장 '최영 장군'을 만나게 될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언과 함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최영은 명 태조가 점차 무리한 세공 요구를 해오자 1386년 2월, 정몽주 를 명나라에 파견하여 탕감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만일 사신을 보내어도 무리한 세공 요구가 계 속될 경우에 자신에게 다른 생각이 있음을 조정 대신들에게 내비쳤다. 이러한 정황은 <고려사> 최영전에 잘 드러나 있다. 명나라가 해마다 금·은과 마필, 그리고 포를 바치라고 독촉해오자 당시 조정에서는 재상에서 평 민에 이르기까지 베를 차등있게 바치기로 논의하였다. 그러자 이를 보고 묵묵히 있던 최영이 입 을 열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백성들이 어려움이 많아 생업에 종사하기도 힘든데 거기다 베를 바치라 하면 그 폐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징수한다 하더라도 지지 부진하여 거두는데 끝 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세공액에 대한 탕감을 요청하라. 만일 명태 조가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뒤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이러한 고려 측의 탕감 요구에도 불구하고 명태조는 세공액을 탕감 하기는 커녕 오히려 해민들의 씨를 말리기로 작정한 것 같은 일련의 해민 탄압 정책을 추진했다. 명태조는 1386년, 주산 군도 주민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버리더니만, 이듬해 6월에는 주 산 군도를 아예 폐쇄시켜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1387년, 요동에서 돌아온 장방평은 주원장이 머 지않아 처녀, 수재, 내시를 각각 1천명씩, 그리고 소와 말을 각각 1천필씩 요구해올 것이라는 소 식을 전해왔다. 이 소식을 접한 최영은 마침내 '그렇다면 군사를 일으켜 명을 치는 것이 가하 다'며 결심을 굳혔다. 최영은 그 해 11월부터 조세의 절반을 군량으로 비축하며 일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고려는 안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공민왕이 서거하자 우왕을 등에 업 고 권세를 휘두르던 이인임은 어떠한 비젼이나 정책 제시도 없이 날이 갈수록 자신의 세력 확장 에만 힘쓰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공민왕 서거 직후 발생한 명나라 사신 암살 사건에서 보듯이, 지나치게 북원 정권에 편향됨으로써 명태조의 신경을 거스리고 있었다. 게다가 공민왕 서거 직후 발생한 명나라 사신 암살과 등경광 암살 미수 사건을 계기로 명태 조와 왜구로부터 엄청난 댓가를 치르며 치를 떨던 조정 대신들도 이인임의 비젼 없는 일과성 대 응과 강경 일변도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조정에는 이인임 일파에 대한 상 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최영과 이성계는 이인임, 임견미, 염흥방 등을 제거해버렸다. 그리고 정치적 실권은 최영이, 그리고 군사적 실권은 이성계가 거머쥐었다. 1388년 1월의 일이 다. 그런데 명태조의 고려에 대한 압박은 해를 넘길수록 더욱 강화되어만갔다. 이인임 일파가 제거된지 불과 한 달도 못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명나라는 철령이 원나라 시대에 쌍성 총관부 관할 하에 있던 영토임을 내세워 철령 이북을 자국의 영토로 선포하고,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고려 조정에 통보해왔다. 1388년 2월의 일이다. 철령은 강원도 회양과 함경도 사이에 있는 큰 고개로 원래는 고려의 영토였다. 그런데 1258 년, 동북면 주민이던 조휘와 탁청이 고려 조정의 혼란을 틈타 반란을 일으켜 당시 동북면 병마사 인 신집평을 살해하고 원에 투항함으로써 원나라 영토로 편입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1356년 7월, 원나라가 장사성과 주원장의 반란으로 어지러운 틈을 이용해 공민왕 이 쌍성 총관부를 공략함으로써 철령은 다시 고려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명 태조는 이것 을 다시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것이다. 외교 관례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말만 바꾸 어 표현했지 고려에 대한 선전 포고나 다름 없었다. 아직 이인임 일파 제거에 대한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선전 포고나 다름없는 명태조의 일방적인 철령위 설치 소식을 통보받은 고려 조정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계속되었 다. 당시 조정의 의견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먼저 최영을 위시한 반명 세력은 강경하게 명나라 에 대한 무력 투쟁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성계와 정몽주 등 신진 사대부들은 강경 투쟁보다는 외 교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 의견이 이처럼 팽팽하게 대립하자 최영은 일단 신진 사대부의 견해 를 수렴하여 외교적 해결을 모색했다. 그는 먼저 명나라 요동 지역 담당관 정요위에게 조림을 파 견하여 다음과 같은 서신 내용을 전달하려 하였다. "철령은 물론, 공험령(함경도 마천령)도 원래 고려의 영토이니 당장 철령 이북에서 철수하라." 하지만 명나라에서는 고려에서 파견한 조림의 요동 입국을 아예 거부해버렸다. 외교적 수 모를 당한 고려 조정으로서는 이제 더 이상의 여지가 없었다. 최영이 다시 조정 대신들을 모아 철 령 이북을 명나라에게 넘겨주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동안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던 신진 사 대부조차 모두 할양에 반대하였다. 모처럼 조정의 단합에 고무된 최영은 마침내 그 자리에서 명 나라에 대한 군사적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요동 정벌을 감행할 것을 결심한다. 마침내 3월, 명나라가 철령위, 즉 요양에서부터 철령에 이르는 사이의 70여 곳에 물자를 보 급하는 기지를 설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소식을 접한 최영은 4월, 자신이 팔도 도통 사가 되어 총지휘를 담당하고, 좌군 도통사에는 조민수, 우군 도통사에 이성계를 임명하여 출정 준비를 하였다. 당시 총병력은 좌.우군 38,830명, 그리고 사역인 11,634명 도합 5만여 병력이었 다. 하지만 당시의 정황을 고려할 때 고려로서는 도저히 5만 병력을 동원할 형편이 못됐다. 출정 이 단행된 3월 <고려사> 일지가 그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왜구의 소굴이 되었고, 동북면인 함경도와 서북면 평안도는 바야흐로 명나라 의 영토가 될까 걱정이다. 그리고 경기(개성 일대), 강원, 양광(경기.충청) 3도는 성을 지키기조 차 힘들고, 서해에 위치한 황해도와 평안 2도는 왕의 사냥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징 병까지 일삼으니 팔도가 어지러워 백성은 농사조차 지을 수 없어 그 원망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게다가 마산-송도 사이를 운행하던 조운 항로마저 왜구로 인해 폐쇄된지 오래였다. 그리 고 설사 다시 운항한다 하더라도 당시 서남해안을 장악하고 있는 왜구들이 가만 놔둘리 없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명장 최영이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을리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내 정세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명태조가 세공의 탕감을 허락하지 않을 경우에 그 뒤의 일은 알아서 책임지겠다는 최영이 요동 정벌을 감행할 수 있었던 비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동원된 5만의 병력이 어떻게 차출되었는가를 자세 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고려사>를 보면 최영은 병사를 일으켜 요동 정벌을 결심한 1387 년 11월, 호별로 군사 1명씩 차출하게 하고 시산관은 품서에 따라 각기 군량을, 그리고 중외 양반 들의 농지를 감하여 군수품을 보충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 2월에는 전국의 양반.백성.향 역리를 병적에 올려 평상시엔 농사를 짓게 하고, 유사시엔 징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은 공민 왕 때 일시 운영되었다가 소멸된 향병제(鄕兵制)의 복고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2월에야 비로소 정비된 체제로 불과 한달도 안되는 3월에 즉각적으 로 5만의 병력을 동원할 수는 없는 일. 갑작스럽게 5만이란 대병력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뭔가 다 른 방법이 강구돼야만 했다. 그런데 요동 정벌군의 가장 구체적인 출정 경위를 기록한 <고려사> 를 보면 그 단서가 나타난다. "우왕 14년 3월 1일... 8도의 정병을 징집토록 영을 내렸다. 3월 26일에 전국에 사면령을 발하 여... 5부의 정부를 징발하여 군사로 삼았다. 4월 1일에 우왕은 황해도 봉산에 이르러 최영과 더 불어 요동 공격을 결정하였다. 4월 3일에 우왕이 평양에 이르고 제도의 병사를 독려하여 압록강 부교를 가설하였다." 여기에서 3월 26일자 기록을 보면 "전국에 사면령을 발하여... 5부의 정부(丁夫)를 징발하 여 군사로 삼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대개 사면령이란 국가의 일치 단결을 도모하기 위 해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발표하는 것이 통상적인 예다. 그런데 요동 정벌이라는 국가 의 중대 위기 상황을 며칠 앞두고 이처럼 사면령을 공표했다는 것은 그것이 일반 사면령의 경우 와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게다가 당시 요동 정벌에 동원된 병력은 정규 병 력이 아니라 '5부의 정부'였다. 그런데 고려에서는 공민왕 3년, 즉 1354년 7월부터 왜구들을 '각 사에 분속'시켜왔다. 그런 까닭에 5부 관할 하에 상당수의 정부들이 있던 터였다. 이렇게 볼 때 출정에 앞서 단행한 사면령이란 지방 각사에 분속되어 왔던 왜구를 고려인으 로 공인하기 위한 조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해민들은 고려인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되 었을 뿐만 아니라, 군인이 됨으로써 생계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민에게 있 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들을 주산 군도에서 내쫓고 자신들의 삶을 강탈해간 명태조에 대해 개인 감정 차원의 보복이 아닌 정규전을 통한 대결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들은 최영의 요동 정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신명나게 출정에 임했다. 어차 피 이래저래 죽을 팔자라면 왜구의 누명을 쓰고 명분 없이 죽기보단 요동 벌판에서 영예롭게 싸 우다 죽기를 바랬던 것이다. 출정 당시 이들이 품었던 감정은 일제 시대 상해 임시정부의 광복군 들이 미군의 OSS대원으로 우리 나라에 파견되었을 때 느꼈을 감회를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영이 이들 해민을 군사로 징집함으로써 얻는 이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들이 요동 정벌에 참여함으로써 고려 조정에서는 아직 고려 군에 편입되지 않고 있던 왜구, 즉 잔류 해민들 과도 협력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왜구들에 의해 중단되었던 조운 항로도 예전처 럼 다시 개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40여년 동안 줄곧 계속되어온 왜구 문제도 이 것으로 저절로 해결된다.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전투를 밥먹듯이 하던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그 런 까닭에 별도의 훈련없이 곧장 전장에 투입할 수 있었다. 이처럼 최영은 요동 정벌이 단행되기에 앞서 각사에 분속되어 있던 왜구를 출정 병력에 동 원함으로써 국내의 왜구 문제를 해결함과 아울러 부족한 전투 인력을 막강한 실전 경험을 갖춘 이들 해민을 통해 보충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해민들과의 협조 하에 해민들의 근거지였던 명 나라 해안 지방에 대한 공략에 나설 수 있었다. 명태조의 통상무역 재개가 하나의 외교적 발언에 지나지 않았음을 인식한 1387년에조차 왜구가 소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손자가 병법에 말하길, 가장 좋은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요, 만일 부득이하게 싸워 야 할 경우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불패라 했다. 그런데 최영의 요동 정벌 과정을 보면 이 러한 손자 병법의 실전 교범을 보는 것 같다. 최영은 전쟁을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가 능하면 대화로써 외교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즉 상대 방이 명태조처럼 일방적이고 강경 일변도로만 치닫는 까닭에 부득이하게 싸워야 할 경우,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서도 놀라우리만치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 그것을 활용할 줄 아 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최영의 행동 패턴은 왜구 문제에 대한 공민왕의 정책과 비교해보면 한결 명확해진 다. 공민왕이 영민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경륜이 부족해 자국의 처지만 생각했다면, 어느덧 고 희를 넘어 백발을 자랑하던 최영 장군은 수많은 전투 경험 속에서 고려의 상황뿐만 아니라 명태 조의 약점에 대해서도 주도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공민왕은 해민들의 보트 피플 행렬의 원인이 명태조의 해금 정책에서 비롯 되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그는 당시 고려의 처지만 생각하고 소극적으로 기다리 는 정책을 취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명태조를 은밀히 암살할 것을 생각하였지 정면으로 명태조 와 맞붙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영은 달랐다. 그는 왜구 문제의 발생 원인에 대한 인식 은 공민왕과 같았지만, 해결책에서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왜구 문제를 공민왕보다 더 본질적 인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즉 최영은 명태조의 대외 전략을 분석했던 것이다. 먼저 명태조의 해민 전략. 최영은 명태조의 해민 탄압이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중국의 농민은 언제나 고을 수령의 압제와 가혹한 세금으로 찌든 삶을 살고 있 었다. 그에 반해 해민들은 통상 교역을 통해 언제나 풍부한 경제 생활을 영위했다. 그래서 대부 분 풍족하지 못한 생활을 하던 농민들은 고향을 버려두고 해민들에 의해 형성된 시장으로 들어 와 뜨네기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농민 출신인 명태조는 이러한 폐해를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 래서 명태조는 즉위하자마자 이들 해민을 탄압함으로써 안으로는 농본주의로의 복귀를 가속화시 킴과 아울러, 밖으로는 해민의 탈출을 유도함으로써 태조 왕건 때부터 선린 관계를 유지하던 해 민과 고려 사이를 이간질시키려 했던 것이다. 다음은 명태조의 북원 전략. 명태조는 1368년, 원나라를 북으로 몰아내고 중원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안으로는 새로이 개편한 권력 구조가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고, 밖으로는 북 원이 복수의 칼을 갈며 고토 회복을 노리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에 패기 만만한 고려의 공민왕이 안으로는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며, 밖으로는 자국과 북원의 대치 관계를 이용해 고려의 영토 를 차츰차츰 회복해가며 국력을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공민왕이 죽고나자 고려는 북원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명태조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러자 명태조는 철령 이북의 땅을 억지로라도 장악함으로써 고려와 북원의 외교 라인을 단절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명태조의 의도를 훤히 꿰뚫고 있던 최영은 명태조의 약점을 거꾸로 이용하고자 했 다. 그는 당시 한반도 전역을 소요 상태로 몰고간 왜구 문제가 명태조의 해민 탄압 정책에서 기인 한 것이라면, 역으로 이들 해민들의 불만을 이용해 명나라를 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영은 비 록 현재 고려의 상황이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포로로 묶여 있던 해민들을 고려 군으 로 편입시켜 병력을 증강하고 북원과 여진족의 도움을 받아 요동을 협공한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 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요동을 정벌 후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아직 고려 군에 편입되지 않 은 주산 해민들과 협력하여 명나라 해안을 공략하는 한편, 내륙으로는 북원과 협력하여 명나라 로 쳐내려가는 전략을 수립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전략은 명태조로서는 꿈에도 생각하기 싫 은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최영이 이처럼 명을 치는 웅대한 전략을 수립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354년, 해상 반란의 주모자인 장사성의 군대를 토벌하기 위한 산동 반도 입성 사건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머물며 당시 토벌군 사령관이던 토크토의 갑작스런 해임과 관직 박탈 을 보고 원나라 조정의 내부 암투와 해민 세력과 농민 세력 사이의 패권 싸움에 대한 상당한 정보 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토크토의 해임으로 다시 고려로 돌아간 뒤에도 꾸준히 중원의 패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며 농민 출신인 주원장의 강점과 약점을 낱낱히 파헤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원장 이 중원의 패자가 되기까지 그의 주적이 몽골인이 아닌 해민들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까닭 에 역으로 이들 해민들만 적절히 활용한다면 한인 위주의 명나라 군대를 충분히 섬멸할 수 있다 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원로학자 이병도 씨는 당시의 이러한 정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과 최 영이 명과의 일전을 각오하고 전쟁 준비에 광분했다"며 최영을 마치 미친놈 취급하고 있다. 만일 최영이 미친놈이라면, 한낱 시골 변방의 촌뜨기 청년으로서 홍건적의 한 지류인 곽자흥의 군대 에 들어가 중원과 동아시아 패권을 꿈꾸었던 주원장에 대해서 이병도 씨는 어떤 평가를 내릴 것 인가? 우스개 소리 가운데 "인물이 인물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당시의 정황에 대한 정확한 정 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무장으로 추앙받아 마땅할 최영 장군을 마 치 미친놈처럼 몰아붙이는 이병도 씨의 사시어린 시각은 어쩌면 우리들의 한심한 자화상을 반영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상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의 계기가 된 최영의 요동 정벌이다. 그렇다면 이제 위화도 회 군으로 넘어가 한낱 시골 변방의 촌뜨기 청년 이성계가 어떻게 600년의 역사를 이어갈 조선이라 는 나라의 주인으로 등극하게 되었나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조선 창업의 직접적 계기가 된 위 화도 회군에 대해 왜구 내지 해민들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으며, 이에 대해 이성계는 어떻게 대 응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글 : 8. 이성계의 위화도회군과 조준의 토지개혁 [키 즈]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다음][이전]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