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5년08월08일(화) 17시35분19초 KDT 제 목(Title): 충무공의 전술분석 과수원 BBS의 제가 관리하는 보드에 올렸던 글인데 한번 퍼왔습니다. 제 목: [논단] 충무공의 전술 분석 (to Dirac) Dirac님이 말하기를: > > -> 흠.. 그리고, 육전에 쓰던 전술이 해전에서 어떻게 변형되어 사용되어야 > -> 하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는 야그인가요?? 여기에 그것도 포함되어 있는 > -> 것인지.. 아님 무대뽀로 육전때의 공부했던 전술을 부린 것인지.. 그것도 > -> 설명해주심.. >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고찰해보죠. 오랜만에 2차대전을 벗어난 주제를 다루니 조금 신선하죠? 제가 충무공이 벌인 해전의 전황을 나름대로 분석해 본 결과, 강하게 받았던 인상은 통상 여러 다른 나라의 해전 전사에서 볼 수 없었던 전술이 많이 쓰였다는 것을 알아채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현재로서 쉽게 많이 분석해 볼만한 해전 전사들로서는 18세기 이후 전열함의 등장으로 시작된 강력한 화력의 군함들이 본격적으로 출현한 후의 것들이 있습니다.(물론 유럽의 해전사이지요) 전열함은 18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으로서 이제까지의 배들이 노젓는 것을 상당한 동력으로 삼던 것을, 아예 커다란 돛을 3~5개 달아서 전 동력을 풍력으로 하는 대형 범선화 한 것이었죠. 이런 전열함 들은 무게가 약 2000톤이 넘었으며 대포도 100여문이나 갖추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나중엔 증기기관 출현으로 범선-증기선 혼합형을 거쳐 완전 증기선이 건조 되고 디젤기관 출현은 현재까지 함대 동력을 디젤화 시키지요. 이런 거함들의 공통점은 대 원양항해가 가능하며 화력이 막강하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해전은 모두 다 드넓은 망망대해, 대서양과 지중해, 흑해 등에서 거칠것 없는 곳에서 이뤄졌지요. 육지로 말하면 사막전이나 대초원의 전투라고 보면 되겠군요. 그러다보니 위의 양상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대서양을 가로지르고 멀리 추적해야하고, 거칠것 없는 지형에서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정거리가 긴 화력 입니다. 일단 적이 접근하기 전에 먼저 사격하여 제압해야 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해군 전술은 일단 평행대형 & 화력교환이 기본대형이 되었습니다. 즉, 두 적대함대가 조우하면 양 함대는 상호 평행하게 침로를 잡고 서로 측면의 포화를 총동원해서 적함을 격파하는 것 말입니다. 18~19세기 전열함을 보면 배 측현에 각 수십문씩의 대포가 거치되어 있잖아요? 그게 다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함대 A ---------------------------------------------------> ^ ^ ^ ^ ^ | | | | | | | (화력교환)| | | | | | | v v v v v 함대 B ---------------------------------------------------> 여기에 변형을 준 역시 고전적 대형이 T자 대형입니다. T자 대형은 이미 자세히 설명드렸지만, 간략히 설명하면 전함은 측면화력이 가장 강력하므로 적의 침로를 수직으로 가로막은 상태에서 적이 아군에 대해 정면을 보게 만들어 먼저 강력한 화력을 먼저 퍼붓도록 한 대형입니다. 함대 A (우세) | | | <--(화력교환)--> <------------------- 함대 B (열세) | v 그러나 결국 상대편이 정신차리면 평행대형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경우 해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함대의 긴급 기동능력입니다. 함대가 단순히 평행침로로만 나아가면 결국 배가 많고 화력이 우수한 쪽이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자꾸 기동변침을 가해서 적의 대형을 흐트리고, 아군에 유리한 대형으로 자꾸자꾸 변형을 가해야지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기동 중에 함대의 진열이 흐트러지면 반드시 이 흐트러진 지점에 적의 집중공격이 가해지고 진열은 순식간에 붕괴됩니다. 그러므로 기동 중에도 전 전열은 기본형(주로 단종진)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죠. 결국 싸움이 되려면 양측 충분한 기동력!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고 그 다음이 화력, 방어력의 순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해전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충무공이 벌인 해전은 이런 것으로 전혀! 설명이 안됩니다. 충무공이 해전중 벌인 전술은 사실상 해전의 기본으로 치면 금기되는 것도 많이 있지요. 일단 최대의 승리라는 한산해전을 보지요. _ | | | | | | | _ 날 _ |일 본 수 군| _ 날 _ | | | | | | | _ 개 _ | | | | | | | _ 개 / | | | \ / \ | | | | | | | | | | | 조 선 수 군 | | | | | | 이것이 그 유명한 학익진 대형이었습니다. 일본수군은 중압돌격대형으로 집속되어 쐐기형으로 전진했고 조선수군은 그걸 반원형으로 에워싸는 대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형이 유럽의 해전처럼 대양의 전장에서 짜여졌다면 승패는 완벽히 일본수군에게 돌아갔을겁니다. 그 이유는 이경우 학익진의 날개 부분에서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습니다. 한산 해전 당시 날개진형은 단 1겹의 함대 포진이었고 보통 경우라면 전진하는 일본수군 측면의 포화에 그대로 노출되게 됩니다. 이때 강력한 전진대형의 일본수군이 양 날개에 화력을 집중하고 양 사이드가 변침하면 날개는 학익진 중앙 본체로부터 절단되기 딱 좋은 위치이죠. 이렇게 되면 학익진은 날개가 잘리고 학익진 중앙대형은 쐐기대형의 중압을 그대로 받게 되면서 전 대열이 일시에 붕괴되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수군의 측면의 위협은 제거되기 때문에 수적으로 우세한 만큼 넓은 전장의 이점을 한껏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그러나 당시 상황은 대양이 아니라 일개 좁은 만이었습니다. 물론 아주 좁은 섬과 섬 사이의 수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봤자 섬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고 실지 전장을 분석하면 특히 일본수군이 반전침로를 취할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뒤가 꽉막혀 있기 때문에) 전투가 기동전으로 흘러갔다면 조선수군이 패했겠지만, 일본 수군은 좁은 전장에서 기동변침이 불가능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 수군의 측면화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 바람에 학익진 날개를 제압할 수 없이 그대로 전방 쐐기만 박으니까 양측 날개가 일시에 중앙으로 압력을 가하면서 전장을 더더욱 좁게 만들었지요. 이렇게 되면 원래는 일본수군 양 사이드가 튀어나가 날개를 뚫고 탈출 하는데 전력해야 하는데 대형이 단종진이 아니라 집속대형이라 전열 변경이 더욱 힘들게 되었지요. (함진이 단종진이면 차례로 변침하면 되지만 집속대형에서는 자칫 배끼리 충돌할 위험이 대단히 컸습니다) 그 결과 쐐기 머리 부분은 조선 수군의 가장 강력한 학익진 몸체에 계속 부딪히며 격파당했고 차례차례 붕괴했지요. 이것은 분명히 육전의 전투방법입니다. 적을 유인하여 포켓에 집어넣고 일시에 포켓을 닫으며 사방으로부터 압력을 가하는, 유인협격섬멸의 대표적 전술이지요. 가장 유명한 것이 역시 초한전의 해하의 전투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다른 전사에도 이런 예가 많이 있지만. 어쨌든 이것은 우리나라 남해같이 복잡한 지형에서 출구가 천연적으로 봉쇄되지 (출구가 터져있으면 전력비가 1:3 이상이 아니고는 기동전에서 포위가 불가능합니다) 않았다면 전개할 수 없는 전열이었죠. 어차피 조선의 배들은 일본의 배보다 속력이 느려서 대양에서 기동전을 취하면 거의 패할 것은 분명했으니깐 이런 의도로 충무공 께서 함진을 짜셨다고 보여지지만 충무공이 본디 육군 장수이고 육전의 병법을 배웠다는 것에 크게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당시 해군 전법에 대한 레퍼런스 는 유명한게 없었지요) 그러나 독자 여러분들이 한가지 명심하셔야 할 사항은 이것은 단순한 육전의 방법 대 해전의 방법으로 생각하실 것이 아니라 기동전투와 비 기동전투의 방법 차이라고 파악하시는 것이 옳을듯 싶습니다. 이당시 육전에서는 기동전투가 불가능했습니다. 소수의 기병 이외에는 거의 전 부대가 보병이었고, 포병도 견인 수단이 마땅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전반적인 전술은 싸움 전에 갖추는 지형을 십분 활용한 부대배치 대형에 크게 좌우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의 전장은 매우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고요. 그런데 2차대전 무렵이 되면서 이른바 기갑부대, 자동화부대가 육상에도 본격적으로 등장하자 새로운 양상이 보여집니다. 러시아의 대평원과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벌어진 대 기동전투에서는 전과는 딴판으로 해전의 양상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즉 드넓은 전장은 망망대해로 생각하면 되고, 해전의 전함은 전차가 되었습니다. 사상 최대의 전차전이 벌어졌던 쿠르스크 전투 중의 또 최대 전차전이던 프로호로프카 전투에서는 양군 총계 1500대의 전차가 투입되었는데 이때의 전황도를 분석하면 해전과 너무도 유사하게 독일 전차대가 소련 전차대 편진 측면으로 기습, 평행진로를 잡으며 기동중 측면포화를 교환하며 소련 전차대를 격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밖에도 소규모 접전에서도 비슷한 전열이 이뤄지게 되지요. 결과적으로 충무공은 조선 남해 수역의 전장이 모두 좁아 기동전은 불가능하고 오히려 육전의 병법이 훨씬 잘 적용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점을 자~알 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충무공의 전투는 사실 다 육전의 아이디어가 적용된 거지요. 또 재미있는 추측을 해보면, 과연 충무공이 그럼 기동전에 대한 인식은 있었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넓은 바다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형국에 놓이셨다면 그만큼 잘 싸우실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지요. 함부로 추측할수는 없습니다만 제 견해로는 No!입니다. (단순한 제 견해에요)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충무공이 영웅이다 못해 거의 군신(?)으로까지 추앙받는다고는 하지만 충무공이 수군에 배치되신 것은 아주 말년의 일이고, 수군을 경시하던 조선의 풍조에서 수군 전술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되었다는 말도 못들어봤기 때문에 기동전의 체계적 인식은 힘드셨을걸로 짐작됩니다. (물론 사실 조선수군의 전력은 기동전에는 적합하지 않기도 하였거니와) 어쨌든 세계 해전사에서 정~말 깊이 연구해볼만한 대단한 전투들이었습니다. 지루하지 않으시다면 명량해전, 노량해전도 육전, 아니 비 기동전과 연계시켜 설명드릴 의향도 있는데...... 넘 재미 없으시죠? (글이 길어지면 다 재미없어 하더군요) 그럼 이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제대로 성의있게 읽어주시는 분은 조회수의 30%쯤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