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5년08월04일(금) 19시13분09초 KDT 제 목(Title): 조선 수군의 강점은 무엇이었나? 음... 임진왜란의 전사도 나름대로 이래저래 알아보고 고찰도 해보니까 이것저것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더군요. 위에 Hobbes님이 여러가지 제기하신 문제들은 참 모두 흥미롭고, 앞으로 어떻게 후속 글들을 써내려가실지 참 궁금합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제 나름대로 각종 임진왜란의 해전사를 보노라면, 당시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여러 면에서, 조선 수군은 참 유리한 점이 많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일단,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우리의 수군 장수들은 정말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십분 살리셨던 것 같습니다. 명량해전이 그토록 각종 해군교범과 전사에서 각광을 받는 것도 이순신 장군의 전술적 감각뿐 아니라 실로 육전에서만 쓰이는 걸로 생각 하기 쉬운 지형지물 등 자연을 절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이지요. 스페인의 아르마다 (무적함대)는 스스로 항로를 잘못잡아 폭풍에 난파되었다지만 명량해전처럼 의도적 으로 격렬한 조류를 적극 이용하여 열세를 딛은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요. 이런 여러 자연환경을 교묘하게 이용한 선조들의 전술, 전략에는 실로 감탄뿐. 그러나 조선 수군이 압도적으로 편제와 장비가 현실적이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수군의 결정적 이점 중의 하나는 바로 우수한 함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거죠. 어찌보면 약간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조선 수군은 철저히! 연안방어 해군이었다는 점을 여기서 주지할 필요가 있겠군요. 한마디로, 조선 수군은 편성과 장비에 있어 침략을 위한, 그러니까 원양항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단지 왜구처럼 본토를 내침하는 적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형 체제로 편성했다는 겁니다. 방어형 체제는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일단 뭐든지 전투장비의 3박자는 화력, 방어력, 기동력입니다. 여기서 조선 수군은 연안방어를 위해 기동력을 희생하고 화력, 방어력을 중시합니다. 우리나라 남해안은 아주 복잡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고 섬도 매우 많지요. 이런 좁은 지협이 얼키고 설킨 곳에서는 `기동방어'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기동력은 과감히 포기한 겁니다. 그래서 선체는 바닥이 넓고 단단한 소나무 재목을 아귀로 짜맞추어 조립했죠. 바닥이 넓으면 다 아시다시피 안정성이 좋아지지만 저항이 커서 속력이 나지 않습니다. 또 목재는 통재를 그대로 써서 대단히 튼튼했지요. 그 대신에 무게가 많이 나가 역시 기동력을 깎아먹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사나운 왜구들을 상대하던 것이기에 포를 많이 씁니다. 왜 그런지는 짐작이 가시죠. 일본애들은 맨날 칼차고 다니면서 칼을 무지 잘 쓰잖아요. 일본의 전통적 해전법은 일단 기동성 좋은 배를 적선의 옆구리에 대고 적선에 넘어가서 칼싸움으로 제압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일본 함선이 접근하기 전에 박살내려고 각종 총통들을 많이 씁니다. 특히 화력의 강점은 조선 수군의 최대 중포인 천자총통이 1000보 이상의 사정거리를 가졌는데 반해 일본 수군의 소형 포들은 그 절반 정도의 사정이었고, 그것도 모두 화력이 약했습니다. 결국 화력에서 압도적이었죠. 이것이 결국 조선 수군이 작전을 펴는데 결정적 공헌을 합니다.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함정은 이른바 `판옥선'이었죠. (여기에 밀폐 전투실을 만들고 상갑판을 덮고 용두를 단 것이 거북선입니다) 조선 수군의 전성기 한산도 대첩과 마지막 노량해전 에서는 이 `판옥선'의 막강전력을 십분 활용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조선 수군의 함정은 방어력이 우수하여 일본 함정을 그냥 받아버리면 일본 배가 박살나니까요. 일본 배들은 조선 배와 거꾸로 기동성을 중시해서 선체가 가볍고, 기민하며, 바닥이 좁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지휘형 대형전선 니혼마루와 층각선이 꽤 크고 무거웠지만(소수의 이 배들은 무겁고 느렸죠), 결정적으로 조선 공법에서 일본 전선들은 통나무 짜맞춤이 아니라 널빤지를 못으로 조립한거라 외부 충격에 몹시 약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술 상으로는 판옥선이 장거리 중포로 적이 접근하기 전에 적선을 상당수 격파하고, 거북선같은 밀폐형 돌격선이 돌진해 충돌전법으로 적선을 깨면서, 결국 벌어지는 근접전에서는 일본 수군이 조선 수군 배에 상륙하기 전에 근거리화력으로 (활 또는 경포) 격파했지요. 한산도 해전의 경우는 학익진으로 십자포화를 퍼부어 중장거리 화력으로 주로 결단내었으며, 노량해전의 경우는 막판승부여서 과감히 돌파작전으로 일본 선단 중앙을 뚫으며 밀고 나갔지요(이때는 백병전도 불사하고 총력전을 폈답니다). 실로 지형, 장비, 전술 등이 일체가 된 뛰어난 전투들이었죠. 한편으로 조선 수군의 이런 연안방어형 편제는 칠천량의 대패의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칠천량 해전의 대패는 기동성이 좋은 일본 수군의 유인작전에 말려 조선 수군이 엄청난 거리를 쫓아가서 노젓는 수병들이 모두 지쳐 뻗은 사이에 특유의 일본전법, 그러니까 기동접근 -> 근접전투(칼들고 적선에 올라타는 것)를 벌여서 일어난 것이지요. 결국 조선수군은 기동전투에서 다소의 약점을 보였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런 근거로 조선 수군의 승리가 일본 배 자체가 원래 나쁘니까... 우연으로 된 것이다...라고 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인 것이 전쟁이라는 것은 일국의 총력이 동원되어 벌이는 것으로 장비 문제도 결국 다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제 견해로는 조선 수군은 부족한 군사 예산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연안방어의 목적에 아주! 충실하게 수군을 건설했으며 견실한 전투를 치뤄냈습니다. (2차대전 때 독일전차가 좋고 프랑스전차가 후질구레해서... 독일애들은 우연히 프랑스를 이겼다...라고 한답니까?) 조선 수군은 어쨌든 방어!라는 목적에서는 대단히 성공한 부대이고 우수했던 수군 이었지만 아쉬운 것은 끝내 우리나라 해군은 장보고 이래로 공격형이 되어 보지못한 것이 걸리네요. (지금도 연안방어형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두들겨줬던 일본 수군이지만, 일본은 분명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세계 제 3위의 대 해군을 보유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잘 알고 조상에대해 긍지를 가지며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실로 중요한 일이지만, 과거는 과거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점도 이런거를 보면서 누누히 생각하게 됩니다...... 그게 정책입안자들의 잘못이었는지 뭔지는 판단하기 그렇지만 어쨌든 선조들은 참 주어진 현실 내에서는 참 잘 싸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