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Konzert (#$%&~_^\{}) 날 짜 (Date): 1999년 9월 13일 월요일 오전 07시 26분 49초 제 목(Title): [펌] 이진명 교수 인터뷰 시사저널 1999/09/08 [국제] 이진명 교수 인터뷰/“반환 협상 돕고자 목록 발표했다” “학자의 양심에 따라 작업… 불순한 의도 없어” 외규장각 도서 43권의 목록을 확인한 경위 는? 국립도서관의 도서 목록, 한국과 프랑스의 학술 논문 그리고 모리스 쿠랑의 <조선서지 >등을 비교 검토해서 작성한 것이다. 물론 전문가들이 서고에 들어가 정밀하게 조사해 야 한다. 우리는 일반 열람자여서 서고에 들 어갈 수 없다. 9월 하순의 2차 협상을 앞둔 예민한 시기여 서 한국 사회 일각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지난 번에 있었던 한·일 어업협상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협상을 잘못하면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되고, 당사자들도 결국 물러나 지 않았는가. 반환 대상을 투명하게 해 놓아 야 협상에서 성과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해 회담을 앞두고 발표했다. (협상 분위기를 프 랑스측이 주도하려는) 다른 의도가 있지 않 은가 의심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학자 의 양심에 따라서 작업했고 발표했다. 프랑스측 협상단의 일원으로 선임되었으므로 ‘객관적인’ 신분이 아니라는 것이 의심의 근거가 된 듯한데? 자크 살루아 대표가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 모임을 마련해서 만났다. 자료 조사에 관해 협조해 달라는 부탁을 들었지만, 그때의 모 임은 형식을 갖춘 것이 아니었고 임의 참여 같은 것이었다. 이 자리에는 고문서 담당자 들과 함께 이 옥 교수(파리7대학 명예교수), 마르크 오랑쥬 교수(콜레쥬 드 프랑스 한국 학연구소장), 프랑시스 마쿠엥 씨(기메 박물 관 도서실장) 등과 내가 참석했다. 이 옥 교 수는 56년 프랑스에 왔고 나는 71년에 프랑 스에 유학한 이래 프랑스 생활 28년째다. 살 루아 대표가 한국인 두 사람에게 한·불 양 국의 가교 역할 또는 분위기 조성을 기대해 자료조사팀에 참가하도록 부른 것으로 본다. ‘협상단’에 선임되었다는 말은 들은 바 없 다. 앞으로 한·불 공동역사연구팀이 구성되 어 참여하더라도 사실 확인 같은 것만 도울 생각이다. 프랑스에 오래 거주한 한국학 학자로서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이 한국에 있는 학자들과는 다를 것 같은데? 지금 협상 테이블을 만들기까지 노력해온 이 태진 교수나 백충현 교수의 용기 있는 문제 제기를 생각하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분들은 왜 그런 문제를 제기해 한·불 간에 외교 문제를 일으키느냐는 압력도 많이 받았 을 것이다.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할 용기이다. 이 분들의 문제 제기가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높였지 않은가. 나는 반 환을 반대하는 처지가 아니다. 협상이 잘되 어서 반환이 된다면 좋은 일 아닌가. 그리고 반환 협상이 제2의 병인양요처럼 되어서도 안된다. 다만 세계 제일의 규모를 갖추고 있 고 문화적 전파력도 엄청난 프랑스 국립도서 관에 우리의 보물이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말도 해야겠다. Lingua Franca [It. = 'Frankish tongue']: a mixed language or jargon used in the Levant, consisting largely of Italian words without their inflexions. Also, transf., any mixed jargon used for intercourse between people speaking different languag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