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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8월  5일 목요일 오전 01시 06분 02초
제 목(Title): 한21/고시촌과 벤처타운의 동거 


 

고시촌과 벤처타운의 동거 
신림동의 밤을 밝히는 두 고(高)지망생들의 야망과 도전 

 (사진/서울 신림동 주변의 고시촌과 고시원 내부풍경. 신림9동에만 250여개의 
고시원이 들어서 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유서깊은 고(高)지망생은 누구일까. 958년 고려 광종은 
과거제도를 시행했다. 역사가들은 이를 “소수이나마 상위 지배층으로 신분상승의 
통로가 됐던 한편 귀족들이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평한다. 그러나 
고려 전기간을 통해 최종선발시험인 예부시(禮部試)에 합격한 사람은 6700여명에 
그쳤다. 조선시대 들어 과거의 문호가 더욱 넓혀졌으나, 합격자들의 평균나이는 
무려 35살이었다. 과거의 꿈을 쫓은 서생들의 땀과 고통을 짐작할 만하다. 이런 
시험을 통한 신분상승의 욕망은 1천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사법시험 올해 응시생 ‘사상 최대’ 


서울대를 끼고 흘러내리는 서울 관악구 도림천변의 신림동. 인생을 걸고 법전에 
파묻혀 사는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들의 이름은 고시생. 자타가 
공인하는 현대판 과거응시생들이다. 고위공직과 고소득,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합격의 꿈을 키운다. 구제금융사태는 고시열풍을 더욱 부채질했다. 올해 
사법·행정·외무고시 1차 응시생은 모두 3만8827명. 특히 1차에서 1800명을 뽑는 
사법시험에는 지난해보다 2200여명이 늘어난 2만2964명이 응시해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사진/올해 초 오성벤처타워빌딩 5층에 입주한 ‘월드포스팅’. “인터넷을 통해 
편지를 보내는 사업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강아무개(24·서울대 사범대4)씨도 그중 한명이다. 96년 대학 3학년 때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군 입대를 늦추려 학기마다 6∼9학점을 신청하면서 졸업을 미뤘다. 
하지만 올해까지 세 차례나 잇따라 1차시험에서 실패했다. 내년 4차시도까지 
실패하면 4년 동안 시험볼 자격이 없어진다. 그래서 초긴장상태다. “어렸을 
때부터 장관, 판·검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도박과 
같지만 자신이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드러내놓고 말은 
않겠지만, 출세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강씨는 아침 8시께 일어나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스포츠샌들을 신으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전형적인 고시생 차림이다. 9시30분 독서실에 도착하면 
200여석의 자리는 벌써 꽉 차 있다. 너비 1m도 안 되는 칸막이 책상에서 2시간 
동안 법전과 씨름한다. 책상 앞 메모지에는 쉽게 잊어버리곤 하는 민법 조항이 
쓰여 있다. 11시30분께 과 선·후배 4명과 함께 고시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잠시 쉬고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앉는다. 오후 3시께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은 뒤 
다시 법전을 편다. 5시께 저녁식사를 마친 뒤, 컴퓨터 오락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단골 PC방을 찾는다. 2천원에 2시간을 보내며 머리를 식힌 뒤 다시 법전과 
씨름하다 보면 밤 11시가 넘는다. 그렇게 매일매일 하루가 간다. 강씨의 하루 
행동반경은 채 500m를 넘지 않는다. 

“35살이 넘으면 ‘노장’으로 불립니다. 노름과 바둑, 술에 빠져 폐인이 되는 
사람을 보면 두렵기도 합니다.” 그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인생을 걸고 승부를 벌이는 만큼 결코 패배할 수 없다는 의지도 불태운다. 
최종합격까지는 3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쳐야 한다. 강씨와 같은 고시생이 신림동 
고시촌에만 줄잡아 2만∼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림9동에만 250여개의 
고시원이 들어서 있다. 올해만 20여개가 늘었다. 동사무소 직원은 “몇해 전부터 
이런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문과생은 고시, 이공계생은 창업” 


이런 고시의 메카에 올해 ‘벤처’라는 신흥세력이 진출했다. 이들은 법전 대신 
컴퓨터를 앞세우고 고시촌에 들이닥쳤다. 고시촌 한복판인 신림2동에 지난해 12월 
9층짜리 오성벤처타워가 들어서 고시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방인’들은 
사회변화의 첨단에 선 고(高)지망생들이었다. 중소기업청의 최근 조사결과 올 
상반기에만 105개의 창업동아리가 대학가에 생겨났다. 97년 93개에 그쳤던 
창업동아리는 올해 264개로 늘었다. 서울대 대학원생 이아무개(27·경제학)씨는 
“요즈음 문과계열 학생은 고시를 준비하고, 이공계 학생은 창업을 생각한다”면서 
“최근에는 특히 상경계를 중심으로 벤처창업 바람이 일고 있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일고 있는 벤처열풍이 고시촌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월드포스팅’도 올해 초 오성벤처타워빌딩 5층에 입주했다. 벌써 총망받는 
벤처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세대 동아리 벤처창업연구회 출신 3명이 창업의 
주역이다. “인터넷을 통해 편지를 보내는 사업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겠다”는 
포부가 야무지다. 고객이 인터넷에서 편지지를 골라 편지를 쓰면 이 업체는 
인터넷을 통해 편지를 받는 사람한테 가장 가까운 우체국 등지로 보낸다. 이곳에서 
편지가 봉함된 채 가정까지 배달된다. 이미 특허 출원까지 냈다. 대기업을 포함한 
4곳에서 투자의향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지분은 55 대 45로 논의하고 있다. 
권은정(24·여)씨는 “몇일 안에 자본금 5천만원의 법인을 설립하고, 내년에는 
미국에 현지법인을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대학가에서는 장외주식시장인 코스닥에 상장된 인터넷 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돈방석에 앉은 벤처기업 이야기가 주요한 얘깃거리다. 코스닥에서는 인터넷 
벤처라면 ‘묻지마 투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다. 졸업 뒤 일자리를 
걱정하는 대학생들에게 벤처창업은 귀를 솔깃하게 만들 만하다. 월드포스팅도 내년 
상반기에 코스닥에 상장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기업을 키우고 싶습니다. 부와 
명예는 부수적인 문제죠.” 권씨가 편하게 발 뻗고 자는 날은 일주일에 이틀에 
불과하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밤을 새기 일쑤다. 사무실의 조그마한 
냉장고엔 집에서 가져온 밑반찬이 가득하다. 

새우잠을 자면서 성공의 꿈을 키우는 기업이 올해 신림2동 오성빌딩에 10개 업체, 
신림본동 동서리치빌딩에 8개 업체가 들어섰다. 서울대 후문쪽인 봉천7동 
오너벤처빌딩에도 30개 벤처기업이 자리를 잡았다. 서울대 공대 안의 창업네트워크 
건물에 들어선 벤처기업과 관악구의 소프트웨어업체를 연결하면 벌써 거대한 
벤처타운이 들어선 셈이다. 전통의 고(高)지망생들 마을에 불쑥 뛰어들었지만 
‘고시촌’이란 말을 무색케 할 정도의 형국이다. 

관악구청 이병운(54) 산업과장은 “고시촌에 꼭 벤처를 넣자고 고집했다”면서 
“유능한 인력이 썩고 있다는 고시촌의 이미지를 개선하자는 뜻도 있었지만, 밤을 
새며 노력하는 열정은 고시생이나 벤처기업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고시생과 
벤처창업을 한 젊은이들은 서로 만날 기회가 없다. 책상과 사무실에 둥지를 틀고, 
법전이나 컴퓨터와 씨름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 없고 백 없는 이들의 모험 


권씨는 이런 ‘어색한 동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시는 좋은 두뇌를 개인을 
위해서 쓰는 측면이 강하다. 벤처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만 
고시는 창의력이 없다. 또 벤처는 기업을 직원 6명에서 60명, 600명으로 키우는 
일이다.” 그는 또 둘의 공통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생을 걸고 승부하고, 
성공할 확률은 적다는 데서 서로 처지는 비슷하다.” 

고시생들 역시 고시와 벤처창업이 하나의 ‘모험’이라는 데 동의한다. 4년 동안 
외무고시를 준비한 김아무개(29)씨는 “고시가 기존 권력에 편입돼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라면 벤처는 스스로 부와 명예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비교했다. 
그러면서도 “돈 없고, 배경 없는 사람들이 ‘머리’ 하나를 믿고 도전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아무리 급격하게 사회가 바뀌어도 고관대작이나 재벌의 
자식이 아닌 이상 평범한 인간이 고(高)자를 달 가능성은 모험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오늘도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도전과 야망의 꿈을 불태우고 있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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