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23일 금요일 오후 11시 54분 44초 제 목(Title): 이진경/근대적 진보개념을 넘어서 문화과학에서 퍼왔습니다. 진보 개념의 경계 : 근대적 진보 개념을 넘어서 이진경, 성공회대 강사, 사회학 1. 진보 사상의 죽음? '진보'라는 단어는 다른 몇몇 단어들과 함께 한 시대의 우리의 삶을, 그런 삶 속의 신체를 강력하게 관통하던 말들 가운데 하나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이래 '역사의 진보'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방향을 부여하고 그들이 행하는 바에 확신을 주었으며, 이로 인해 매우 뚜렷한 흔적을 지표면에 새길 수 있게 해준 좌표였다. 그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으며, 그토록 확고해 보였던 이 진보라는 말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것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니체(Nietzsche)의 예언적인 비판이 그랬고,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한가지 방식으로 캐내도록 '닦아세우는' 근대의 기술문명에 대한 하이데거(Heidegger)의 무거운 비판이1) 그랬으며, 거대한 파괴를 야기했던 세계전쟁의 밑바닥에서 계몽적인 합리성과 진보 개념을 찾아냈던 호르크하이머(Horkheimer)와 아도르노(Adorno)의 어두운 비판2)이 그랬다. 생태주의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은 이런 의문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연 진보는 좋은 것인가?" 이 질문은 약간 변형된 형태로 지금 우리에게 다시 던져지고 있다: "진보는 아직도 가능한가?" 다시 말해 좋은 것, 좋아지는 것으로서 진보라는 개념은 아직도 가능한가, 진보에 대한 꿈은 아직도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역사적 진보에서 존재이유를 찾았고, 그로 인해 크나큰 희생조차 정당화할 수 있었던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를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이다. 아니 질문 이전에 이미 대답이다. '역사의 진보'니 '진보된 사회'니 하는 것은 환상이요 꿈이었다는 대답. 따라서 혁명이나 해방을 꿈꾸는 것은 명백한 시대착오며, '진보적'이라는 모호한 수식어로 묶이던 모든 변혁의 시도들은 끝났다는 대답. 이것이 지금 그 질문을 통해 작용하는 정치적 벡터다. 또한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직도 그것을 고수하게 하고 그 질문을 반박하려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진보 개념의 역사는 약간의 역설을 보여준다.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역사를 파악하고, 그것을 인간의 지성이나 이성의 진보과정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는 볼테르(Voltaire)나 튀르고(Turgot) 등의 계몽주의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특히 콩도르세(Condorcet)는 이러한 시도를 역사적 단계구분으로까지 밀고 나갔다. 하지만 진보라는 말을 사유와 판단, 실천의 중심적인 잣대가 되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던 것은, 또한 그것을 사회적 변화에 관한 실천적인 총괄적인 '개념'으로 발전시켜 사용했던 것은 그들과 달리 보수주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콩트(Comte)와 헤겔(Hegel)은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들은 진보라는 개념을 통해 "당시 상승일로에 있던 산업부르주아지의 열망에 맞추어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영속화하려고" 했으며, 이를 통해 '혁명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랬다. 그들에게 공통된 슬로건은 르쿠르(Lecourt)가 말하듯이 정확하게 "기초는 질서, 목표는 진보"였다.3) 이는 생시몽의 역사관을 콩트가 법칙적인 개념으로 변용시켜 이용한 방식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헤겔은 이러한 역사적 발전과 진보의 개념을 역사 자체는 물론 인식과 윤리, 미학적 세계에 이르기까지 중심적인 원리와 법칙으로 개념화했다. 1950년대를 전후해 미국의 보수적 사회학을 이끌었던 파슨즈(Parsons)가 되살려냈던 스펜서(Spencer)의 '사회진화론'은 헤겔 철학과 더불어 19세기의 진보 개념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반면 "아직도 진보 사상은 가능한가"라는, 진보적 사상이나 태도의 종말이라는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기묘하게도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비판과 공격이다. 그것은 사회주의로 총괄되던 진보의 방향성에 대한 반론이다.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제안된 개념을 이제는 보수주의자들이 비판하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전에 보수주의자들이 질서와 안정을 위해 제안한 개념을 지금은 정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이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19세기와 우리를 잇는 역사적 시간 사이에 개념을 둘러싼 또 한번의 전도顚倒가 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 전도는 알다시피 맑스주의자들에 의해서 주도된 것이고,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결정적인 선을 그었던 것이다. 즉 진보는 낡은 사회의 변혁을 기도하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시도에 개념과 합법칙성을 제공함으로써 역사적 확신을 제공했다. 그 결과 적어도 진보 개념의 '역사(철학)적' 용법은 '진보적'이라는 말을 '보수적'이라는 말에 대립되는 것이 되게 했고, '진보파'는 '좌파'와 동일한 외연을 갖는 것으로 되게 만들었다. 이는 '진보'라는 개념을, 현존 질서의 옹호와 발전이라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맥락이 아니라, 반대로 좀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혁이라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없었던 적이 없었던, 그리고 없앨 수 없었던 '희망의 원리'를 통해 적극적으로 작동시켰던 사람들의 노력에 기인하는 것이다. 개념의 역사는 그러한 노력과 투쟁이라는 물질적 역사를 '진보' 개념 자체에 새겨놓은 것이다. '진보'라는 개념이 역설적이게도 보수와 반하게 되었던 것은 그러한 노력과 투쟁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변혁의 꿈, 변화가능성에 대한 희망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진보라는 개념을, 숱한 비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진보 개념 자체는 그 개념을 영유하고 이용하는 '주체'의 변환과 '전도'에 따라 어떻게 변환되고 전도되었던가? 지금 우리가 지키려는 '진보'의 개념은 보수주의자들이 구성했던 19세기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 이에 대해 우리는 불행하게도 근본적인 차이보다는 차라리 동일성과 유사성에 근접해 있는 건 아닐까? 진보나 발전의 귀착점에 붉은 색을 칠한 것 이외에 근본적인 어떤 차이를 현재의 진보 개념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진보에 관한 질문에 대해 중요한 것은 진보 개념을 지키느냐 버리느냐에 관한 대답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갖고 있던 진보 개념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검토하고 그것의 변용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이를 위해 진보 개념을 구성하는 개념적 성분들을 다시 검토하고 그 밑에 깔린 전제들을 확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2. 진보 개념의 성분들 진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진보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그러한 진보를 야기하는 힘은 무엇인가? 지식이나 경제, 기술과 관련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으로, 진보에 관한 가장 간단한 개념은 양적인 성장을 통해 정의하는 것이다. 이는 맑스주의자나 그 비판자나 대개는 공유하고 있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적 의미에서 진보란 경제적인 성장이요 그에 따른 가용한 재화의 증가며, 포괄적인 의미에서 생산력의 발전이다. 이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재화나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경제적 및 기술적 요소의 증가를 뜻한다. 알다시피 경제적 근대화를 위한 이륙을 제안했던 로스토우(Rostow)는 한 나라의 경제적 성장을 통해 진보를 정의한다. 거기서 경제적 성장이란 간명하게도 가용한 재화의 증가로서, GNP 내지 GDP나 일인당 국민소득 등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지표들이 그 성장의 정도를 표시한다. 유신 체제나 80년대의 독재 체제들이 자신을 정당화하던 존재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수치들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시절을 못 잊어 위대한 영도자를 되살리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복皐復을 정당화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도 바로 이 수치였다. 맑스주의의 경우 생산력 발전을 통해서 진보를 정의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 요소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생산력이란 개념이 단지 양적 성장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처럼 단순화될 수는 없다. "인류의 역사는 그 모순이나 일시적 침체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상승이자 운동이다.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더욱 강력한 생산력, 더욱 효율적인 경제, 더욱 완벽한 정치적 통치 형태를 창조하며 그럼으로써 인간의 가능성과 자유의 범위를 확장한다."4) 하지만 이러한 발전의 가장 근저적인 기초에서 생산력의 진화적 발전을 둔다는 점에서 유사한 면모가 있다. "생산력 발전에서의 진보가 궁극적으로 생산관계와 사회제도의 영역에서의, 사회와 정신적 발전에서의 진보를 조건짓는다."5)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양적인 증가가 진보와 동일시되는 요소들이란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재화나 요소의 집합이란 것이다. 예컨대 맑스주의에서 생산력이란 '자연과 인간간의 관계'라고 할 때, 생산력의 발전이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능력, 자연의 이용능력의 확장이요 증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근대경제학의 대상 역시 인간의 손을 거쳐 생산된 것이고, 자연의 가공물이며, 인간의 손으로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재화고, 그것을 통해 자연의 희소성을 극복할 수 있는 요소다. 요컨대 경제적인 성장이나 생산력 발전이나 결국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능력의 증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것이다. 진보란 이러한 지배능력의 증대, 통제능력의 증대인 셈이다. 이는 과학·기술에 의해 자연을 연구하고 계산하며,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했던 근대적 사유 자체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근대를 특징짓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도르노는 '진보적 사유라는 포괄적 의미에서 계몽'을, 18세기라는 역사적 경계를 넘어서 근대 전체로 확장하여 정의한다. 그것은 계산가능성을 추구하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세계에 대한 통제능력을 향상시키고 이로써 자연을 탈마술화하는 한편 그것을 지배하고 이용하려는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6) 이 경우 진보란 자연과 세계에 대한 계산가능성의 증대와, 그것을 통한 통제가능성의 증가를 뜻한다. 또한 자연의 통제와 이용을 실제로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적 영향력의 증가며, 결국은 자연과 세계에 대한 통제가능성의 증가다. 역사적인 발전을 통해 정의되는 진보는 진보 개념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성분이다. 이는 '진보'라는 말이 개념으로 발전해온 과정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지적되듯이 역사를 진보 내지 발전으로 보려는 시도는 볼테르나 튀르고, 비코(Vico)나 헤르더(Herder)와 같은 계몽사상가들에서 직접적인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콩도르세는 튀르고 영향 아래서 10개의 역사적 단계를 나누기도 했다.7) 그러나 예컨대 볼테르는 역사적 현상의 다양성을 지적하지만, 그것은 풍속과 관습에 따른 것인 반면 인간의 본성은 항상 동일하며 변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역사적 현상에서도 통일성을 야기할 뿐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역사적 변화에 대한 새로운 생각은 아직 그 본성이 아니라 파생적이고 관습적인 것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에서,8) 발전과 진보를 통해 역사를 개념화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돌바하(d'Holbach)나 디드로(Diderot), 달랑베르(d'Alembert)는 인간의 본성은 백지와 같은 것이어서 교육과 여론, 정치, 관습 등의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았지만, 진보가 내적인 원리는 결코 아니었고, 반대로 미신이나 나쁜 관습에 의해 악한 것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했고,9) 진보 내지 계몽이라는 말은 이를 위한 규범적 명제에 가까웠다. 또한 그들의 방법적이고 사상적인 집약체인 『백과전서』(Encyclopedie)에서는 역사적 변화로서 진보보다는 이상적인 상태의 역사적 불변성이 더욱 중요했다. 그들로서는 "'무시간'의 근본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믿음"이10) 더욱 근본적인 것이었고, 그들이 백과전서적 지식은 시간을 뛰어넘어 전세계의 모든 사람을 위한 법칙과 질서를 제공해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당시 최고의 지식을 명확한 명칭들의 체계에 따라 배열한 『백과전서』는 정확한 언어, 정확한 지식을 통해 농부들도 철학자 이상으로 사물의 진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해주리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여기서 진보는 항목화된 단어들의 배열에 의해, 그리하여 지식의 법칙적인 전개와 변위가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경로를 표시하는 것이었고, 이런 한에서 시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공간적인 것이었다.11) 한편 진보를 개념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콩도르세에게 진보란 '인간 지성의 무한한 자기완성능력'으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었다. 앞서 튀르고는 어떤 사회의 특징이 그 사회의 과거가 빚어낸 불가피한 결과라고 주장함으로써 사회적 변화를 과거의 누적된 변화 속에서 정의하는 관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의 영향 아래서 콩도르세는 이러한 변화의 누적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과학과 기술의 힘이라고 하면서, 이로 인해 인간의 진보가 필연적일 것이라고 보았다. 역사를 몇 개의 단계로 나누어 구분하고는 현재를 그 중 어디에 위치짓는 서술방식을 처음 제시한 것도 그였다. 그는 역사를 열 개의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는 전 단계에 마련된 여러 조건의 결과라고 보았으며, 원시적 상태에서 시작된 인류는 당시 프랑스에서 데카르트 철학과 공화정의 수립으로 아홉 번째 단계에 이르렀고, 과학자가 통치하는 마지막 10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았다.12) 콩도르세의 경우에서 19세기 이후 반복되는 '역사철학'의 양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조차 역사적 진보는 어떤 법칙이나 근거를 통해서 개념화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의적 구분과 서술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뒤를 이었던 생시몽이 비판하듯이, 이성의 역사에서 종교가 갖는 위상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중세라는 '암흑기'를 역사적으로 적절하게 위치짓지 못한다는 점은 이러한 한계와 결부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방식의 '역사철학'은 앞서 콩트나 헤겔에게서 훨씬 더 체계화되고 개념적인 이론에 도달한다. 반복되는 혁명으로 인해 사회적 무질서와 무정부상태가 야기된다고 보았던 콩트는 프랑스 혁명을 고취했던 철학자들을 형이상학자라고 비난하는 한편, 사회가 신학적 단계와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실증적·과학적 단계로 발전한다는 도식을 제시한다. 머지 않아 도래할 역사의 이 마지막 단계는 과학이 인식을 포괄하고 과학자가 사회를 통치하는 사회일 것이다.13) 이는 그의 스승이었던 생시몽(Saint-Simon)의 이론을 개념적으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생시몽은 역사를, 질서를 조직하고 구축하는 유기적 시기와 그것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비판적 시기가 서로 대체되어 가는 과정으로 본다. 그는 혁명기였던 당시를 중세의 유기적 시기를 대체했던 비판적 시기라고 보며, 이제 그 해체된 자리에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조직하는 유기적 시기가 도래하리라고, 혹은 도래해야 한다고 본다.14) 새로운 질서의 이러한 조직과 구축을 위해 생시몽은 '공산주의'를 구상하는 데 힘을 쏟았지만, 콩트는 새로운 질서를 혁명과 반대되는 의미에서 '실증적 과학'의 시대로 바꾸어 버렸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외화(Entaußerung)와 자기-내-복귀라는 거대한 도식을 통해 역사 전체를 합목적적 발전과정으로 개념화하고, 그 발전의 방향에 따른 진전을 '진보'로 정의한다. 한편으로 그것은 외화(外化)된 절대정신이 나름의 단계를 거치면서 자기-전개해 가는 과정이란 점에서 정신의 현상학적 도정이요 목적론적 편력이며, 다른 한편 그것은 이전의 단계를 기초로 하되 새로운 단계로 그것을 지양(止揚)해 가는 발전과정이다. 이로써 발전과 진보는 역사에 내재적인 법칙과 원리가 될 뿐만 아니라, 인식론과 논리학, 자연학과 미학에 대해서도 내재적인 법칙이자 원리가 된다. 헤겔의 『백과전서』(Enzyklopaedie)는 이전의 계몽주의자들과 달리 모든 항들이 이러한 역사적 발전의 원리에 따라 배열되고 각각의 항들은 그러한 원리를 통해 서로 연관된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역사적 발전 내지 진보라는 개념이 사유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는 양상을 매우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그것은 모든 사유, 모든 판단, 모든 실천이 그에 따라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행해지는(행해져야 하는) 바탕이며, 그것에 따라 사유나 판단, 실천을 평가하는 척도다. 나아가 그것은 어떤 사회나 상태 사이에 발전단계의 비교.판단을 수행하는 기준이며, 그 발전의 목적인 '종착점'은 어떤 대상이 진보적인가 여부를 평가하는 척도다. 어떤 사회가 얼마나 '발전'된 사회인지,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에 비해 진보된 사회인지 아닌지는 그 종착점에 얼마나 더 가까운가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그것은 어떤 사상이나 실천, 정책 등이 진보적인지 반대로 반동적인지를 판단하게 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즉 어떤 사상이나 실천, 정책이 현재의 상태를 그 종착점을 향해 더 밀고 나아가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진보적'이며, 반대로 그러한 종착점을 향한 '발전'을 가로막거나 거꾸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면 그것은 '반동적'이다. 도래할 미래로서 목적이 현재에 관여하고 현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마치 과거의 누적이 현재를 구성하듯이, 현재는 언제나 미래 속에서,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 포착된다는 점에서 미래의 일부다.15) 이러한 진보 개념이 19세기 생물학의 진화론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찍이 라마르크(Lamarck)는 당시 자연사(natural history) 연구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설계로부터의 논증'(argument from design)을 반박하면서 자연주의적인 진화의 개념을 제시했으며, 그 진화의 동인을 생명에 내재된 능력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체임버스(R. Chambers)의 책 『창조의 자연사적 흔적들』(1844)이 잘 보여주듯이 이러한 진화 개념은 신의 설계와 계획에 따른 진보적 과정이라는 개념과 뒤섞였다.16) 이는 생물의 변화를 신의 계획으로 대체된 목적 개념과 합목적적 발전이라는 개념에 종속시킴으로써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이는 헤겔적인 목적론과 뚜렷한 동형성을 보여준다. 이것이 19세기 전반까지도 대중적인 차원에서 지배적이던 '진화론'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다윈(C. Darwin)에 의해 제시된 생물학적 진화론은 진화와 발전 개념에서 신이라는 비생물학적 요인을 제거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그가 제시한 '적응'과 '자연선택' 개념은 신의 의도는 물론 목적 개념이 없이도 생물의 역사적 변이를 다룰 수 있는 것이었다. 한편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주장했던 월리스(A. R. Wallace)는 모든 기관을 적응상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서, 그러한 필요에 의한 변이가 자연선택을 통해 누적됨에 따라 생물의 항구적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했고, 이는 이후 "계통발생은 개체발생을 반복한다"는 헥켈(E. Heckel)의 발생반복설과 결합하여 진화론의 대중적인, 동시에 '과학적인' 표상을 형성했다.17) 이로써 다윈의 무작위적인 자연선택 개념은 진화의 중심줄기를 구성하는 합목적적 선택으로 변형되고,18) 진화론은 합목적적 발전 개념의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게 된다. 이제 발전은 사회 내부적인 동인을 얻은 것이고, 진보는 초월적이지 않은 준거를 마련한 셈이며, 진보에 관한 관념을 과학의 이름으로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지반이 마련된 것이다. 19세기 전반의 지배적인 진화론이나, 후반의 '길들여진 다윈'은 보통 '사회진화론' 내지 '사회다위니즘'(Social-Darwinism)이라고 불리는 스펜서식의 입론에 과학적 근거와 모델을 제공해주었다. 즉 사회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동질적인 것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진보한다는 것, 그리고 각각의 사회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 이질적이고 복잡한 것을 하나의 단일한 전체로 유기적으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진화론은 진보를 공시적이고 체계적인 통합체, 유기체로서 사회와 연관된 개념적 성분을 추가했다. 즉 역사적 차원과 구별되는 사회적 차원에서 진보 개념이 작동하게 된다. 사회를 전체를 위해 적응, 목적달성, 통합, 잠재성 유지라는 기능적 요건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기능하는 부분들로 나누고, 각 부분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계속 분할해 가는 파슨즈의 사회체계 이론은 진화론이 역사적인 내용 없이도 충분히 이론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진화의 역사적 과정은 통합적 변동의 공시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으로 변환된다.19) 이와 연관해서 이미 콩도르세나 콩트, 헤겔 이래 공통되는 것이지만, 좀더 진보된 사회는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자연으로부터, 자연적 형상과 자연적 지배로부터 좀더 멀리 벗어난 사회고, 인간이 자연을 물론 자신들의 질서에 대해 과학과 이성의 이름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회라는 점을 추가해야 한다. 여기서 콩트가 명확히 개념화했듯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조직되고 통제되는 사회의 꿈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합리적으로 계획되고 국가적으로 통제되는 사회의 꿈, 생산을 비롯한 경제활동 전반과 대중들의 생활 전반을 유기적으로 조직하고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사회의 꿈을 떠올리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공상적 사회주의, 공상적 공간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로 대체하려는 이론적 노력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3. 진보 개념의 전제들 진보라는 개념이나 '진보적 사상'이라는 통칭을 이상에서 언급한 성분들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이후의 복합적인 역사 속에서 그 개념이 그려온 궤적의 다양성을 어떤 기원적인 지점으로 환원하는 것이고 단순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분들이 우리가 지금 사용하던 진보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가지 복합성과 다양한 가지들이 자라나 뒤섞이고 있지만, 그 가지들은 이 세 가지 성분에서, 아니 사실은 하나의 중심적 축에서 자라나 온 것이다. 근대의 사상, 근대의 역사 전체를 기초짓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것을 통해 자연이나 세계를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그것을 통해 자연과 대립되는 의미에서 문명의 진보 내지 발전이 가능하리라는 확신, 그리고 그것이 곧 역사적 필연의 기초, 자연적 내지 경제적 필연에 기초해 자유를 획득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신념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기존의 진보 개념은, 그것을 이용하는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중요한 공통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그것은 직선적이고 누적적인 시간 개념, 기원과 목적 개념의 변증법을 통해 구성되는 발전 개념, 인간학 내지 인간중심주의적 전제, 부분을 통합하고 동질화하면서 확장되는 전체론적 관점을 갖고 있다. 첫째, 직선적이고 누적적인 시간 개념. 앞서 보았듯이 진보에 대한 기존의 일반적 관념은 어떠한 변화나 성과가 축적되고 누적되어 이전보다 나은 상태로 나아간다는 생각과 일차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예를 들면 자연에 대한 지식의 축적으로 자연에 대한 통제와 지배능력이 점점 향상되리라는 생각, 이전의 기술에 비해 좀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기술이 개발되고 이용되리라는 생각, 생산력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상승하리라는 생각 등이 그러하다. 경제적인 성장을 통해 진보를 정의하는 것은 이러한 생각에 직접적으로 잇닿아 있다. 또한 과학과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목적지를 향해 역사가 상승운동을 하리라는 역사철학적 가정 역시 이러한 생각의 다른 표현이다. 이는 근대에 이르러 그 혁명적 발전을 시작했고, 19세기에 이르러 극적인 지배력을 획득한 과학, 기술, 공업이 진보 개념의 모태였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것을 양적인 것으로 환원시키고, 그 양적인 것들의 관계를 '법칙'으로 추상하는 근대과학의 사고방식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후설(Husserl)이 지적하고,20) 코이레(Koyre)가 역사적으로 입증했듯이,21) 근대 과학혁명의 요체는 '자연의 수학화'였다. 갈릴레이(Galilei)는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인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연 현상을 계산가능한 것으로 변형시켰다. 기하학을 대수학으로 환원했던 데카르트(Descartes)와 페르마(Fermat)의 분석기하학은 이같은 계산가능성의 일반적 기초를 확립한 것이었고, 뉴턴(Newton)은 이러한 기초 위에서 케플러(Kepler)가 발견한 천상의 운동법칙과 갈릴레이가 발견한 지상의 운동법칙을 통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자연을 계산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과학의 노력에서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그러한 운동이 모두 시간의 함수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운동이나 변화는 이제 시간이라는 독립변수를 통해 분석·계산되고 설명될 수 있는 것이 된다. 여기서 시간이란 알다시피 시계를 통해 측정되고 시계를 통해 계산되는 시계적 시간이다. 그것은 대지와 자연의 어떤 순환하는 운동도 아니며, 과거와 미래가 만나고 갈라지는 어떤 현재적 순간도 아니다. 그것은 숫자로 환원되고 숫자와 마찬가지로 더해지고 빼질 수 있는 어떤 양이며, 어떤 단위를 척도로 하여 비교될 수 있는 양이다. 그것은 무한히 먼 과거에서 무한히 먼 미래로 이어지는 어떤 직선의 일부분이며, 명확한 단위에 의해 분할된 선분적인 거리다. 따라서 그것은 더함으로써 누적될 수 있다. 그런데 변화와 운동이 이러한 시간의 함수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독립변수인 시간이 더해지고 누적될 수 있으며 비교가능한 것처럼, 그에 대응하는 변화와 운동 역시도 더해지고 누적될 수 있으며, 비교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22) 이러한 시간 개념은 진화 개념의 근저에 마찬가지로 자리잡고 있다. 선택과 도태, 적응에 의한 변화의 누적을 통해 종 자체의 연속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것은 이러한 시간 개념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세기에 진화론과 관련해서 지구의 나이??시간(!)??를 계산하는 문제가 지질학의 영역을 넘어서 일반적으로 토론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23) 하지만 누적적인 시간 개념은 생물학의 경우 차라리 19세기에 고유한 것이다. 18세기의 자연사는 푸코나 쟈콥(F. Jacob)이24) 말하듯이 구조와 특징이라는 축을 통해 자연적 대상 전체를 동일성과 차이의 선을 따라 하나의 표에 분류하여 담았다. 이 경우 생물 종들의 변이 내지 진화란, '존재의 연속성'을 원리로 하는 분류공간상의 모든 점들에 시간적인 지표를 대응시키는 것이거나, 시간에 따라 생물계의 가변요소들이 가능한 모든 값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요인이었다.25) 이는 분류된 생물간의 시계열적 관계를 형성하게 하며, 완전성의 개념을 통해 그 계열을 '진화'로 정의하게 해준다. 그러나 여기서 시간은 생물의 내부조직의 내적인 전개(developpement) 원리가 아니며, 생물의 기능과 생존조건 사이의 통시적 연관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생물이 살고 있는 외부공간의 대변동이라는 관점에서만 지각되고 있을 뿐이었다."26) 이 경우 시간은 직선적이지만 결코 누적적이지 않으며, 단지 존재의 연속적 점들을 매개하는 축일 뿐이다. 반면 19세기의 진화 개념은 명확하게 누적적인 시간 개념에 기초해 있다. 어떤 개체나 개체의 어떤 기관은 어떤 기능적인 목적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데, 적응에 실패한 것은 도태됨으로써 전체적으로 좀더 적응력이 좋은 것으로 변이되며, 그러한 변이의 누적은 종의 전체적인 진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종들 사이의 관계는 직접적인 연속성을 갖지 않는다. 독립성을 갖는 종들 간에 기능과 구조의 친족관계가 있으며, 그러한 연관 속에서 진화의 가지들이 분기할 뿐이다. 분류표의 시간적 지표들은 이러한 적응과 도태의 능력에 따라 흩어지고 교란되며, 대신 기능적 분화의 통시적 계열을 따라, 다시 말해 분화와 복잡화로 표시되는 적응능력의 축적에 따라 재배열된다. 여기서 시간은 종種 간에, 혹은 동일한 종의 개체 안에서 기관들이 적응을 위해 분화되고 복잡화되는 내적 원리다. 이런 점에서 19세기의 진화론에서 시간은 종의 특성이나 위치간의 연속적 연결선이기를 그치고 누적적인 것이 되었다. 진화라는 개념이 내적인 발전의 원리로 자리잡게 된 것은 이러한 시간 개념의 이용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거꾸로 진화론이 시간의 흐름에 진화 내지 진보라는 불가역적 방향성을 부여했다면, 이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19세기에 형성된 진보의 관념 역시 이를 기초로 성립된 것이다. 즉 기술이든 지식이든, 혹은 자연의 변화든 누적 내지 축적될 수 있다는 관념에는 그러한 변화의 요소들이 양적인 것으로 동질화되고 환원될 수 있다는 것, 그것들이 양으로 환원된 다른 모든 것들처럼 더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더해지고 누적된 것들 사이에 더 많은 것과 더 적은 것으로 비교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더 많은 것이 더 적은 것보다 좋은 것이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둘째, 기원과 목적의 변증법. 진보 내지 진화로서 정의되는 역사의 개념은 '합목적적 발전'을 통해 정의된다. 노동의 합목적성이나 교환의 합목적성, 혹은 기술의 합목적성이 '미시적인' 차원에서 역사의 합목적성을 기초한다면, 생물들의 기능적인 합목적성이나, 그에 기초한 사회 발전의 합목적성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역사의 합목적성을 기초한다. 여기서 합목적성은 단지 역사의 종착지일 뿐만 아니라 역사 과정 자체에 내재하며 작동하는 요인이고, 그런 만큼 역사의 끝에 오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처음에 오는 것이다. 그것은 목적인 만큼 기원인 것이다. 흔히 나선형의 구도를 떠올리는 진보의 순환적 궤적은 이러한 기원과 목적의 변증법적 개념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여기에서 '기원'은 단순히 출발점을 이루는 어떤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확실히 홉스(T. Hobbes)는 물론 루소(J. Rousseau)에게서도 기원이란 현존하는 사회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하는 상상된 출발점이다. 그들이 '자연상태'라고 부른 것은 어떤 사회적 통제나 관계가 도입되기 이전의 상태요, 사회적인 관계가 발생하게 되는 출발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것을 끔찍한 디스토피아로 그리든, 아니면 아름다운 유토피아로 그리든 간에, 자연상태는 현재와 다른 어떤 시초의 상태요 기원을 이루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역사는 이 출발점을 이루는 이상적인 어떤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그것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중지시키기 위해 군주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는 방식으로든, 아니면 시민적인 계약을 통해서 선출된 대표에게 자기의 권리를 위임하는 방식으로든 간에. 여기서 기원과 현재는 대비되고 대립된다. 기원은 현재에 관여하지 않으며, 오히려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대립항이다. 계몽주의의 중심을 통과한 루소의 경우에도 사회적 상태의 변환은 물론 자연상태에서 시민상태로의 변환조차 '발전'이라는27) 역사적 개념을 취하지 않는 것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진보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는 19세기 사상에서 기원은 훨씬 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개념이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목적이 단지 과정의 끝에 머무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과정 속에, 과정의 출발점에 자리잡기 때문이다. 헤겔은 이러한 사고를, 역사적 차원을 떠나 논리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명확하게 보여준다. 『대논리학』 1권의 모두(冒頭)는 논리적인 '시작'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의 문제. 물론 그는 가장 단순한 범주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사실은 이미 종착점에 위치할 목적으로서 절대정신이라는 점이 오히려 가장 중요한 논지다. 인식의 문제 역시 목적이자 종말인 '절대정신의 현상학'이며, 역사는 절대정신이 외화되어 전개되며 종국에는 스스로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이는 사회진화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기능적인 합목적성이 사회 내부를 다양한 부분들로 분화시키며, 그에 따라 사회는 전체적으로 복잡화되고 유기화/조직화된다. 여기서 목적 개념은 그것이 궁극에 가서 어떤 상태에 이르는가를 설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어떻게 하여 현재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야기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헥켈의 명제는 가장 진화된 생물의 발생과정을 목적인으로서 진화과정의 출발점에 위치시킨다. 이러한 변위(deplacement)는 합목적적 발전 개념의 필수적 구성요소다. 여기서 기원의 개념은 시간적 출발점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끌어들인 '이전' 내지 과거의 어떤 이상적 상태도 아니며, 시간적인 계열의 첫 번째 항도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상태를 가능하게 한, 혹은 진화 내지 발전적인 과정을 야기한 이유와 동력에 대한 질문에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과거지만 현재와 대립하지 않으며, 반대로 현재를 만들어낸 힘이며 현재 속에 내재한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목적으로서 미래를 향해 현재를 밀고가는 힘이며, 미래 속에 내재한다. 그것은 시간적 진행을 통해 완성될 미래요,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혹은 그것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재며, 그러한 방향으로 현재를 만들어온 과거다. 따라서 기원은 목적과 다르지 않으며, 처음부터 목적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현존한다. 역사는 이러한 기원-목적의 후퇴나 소외 등으로 시작하며, 후퇴와 소외, 퇴행이 가속화되는 과정이며, 그것을 통해 기원-목적이 다시 회복되고 실현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역사에서 발전(Entwicklung)이란 항상-이미 처음부터 존재하는 이 목적의 자기-전개(Selbst-Entwicklung, 자기-발전)이다. 발전은 그것이 후퇴와 소외의 향상을 취하는 경우에조차 항상-이미 처음부터(im Anfang) 내재하는 목적인(目的因)의 자기전개고, 내적인 모순에 의해 추동되는 '내적 발전'이다. 진보는 그러한 목적인의 자기-발전 법칙에 의해 역사 안에서 위치를 부여받으며, 그 목적 개념에 의해 측정되고 평가되는 가치판단의 언표가 된다. 셋째, 인간학적 전제 혹은 인간중심주의(Humanism). 자연 내지 비인간 전체를 정복과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위한 힘으로서 지식 내지 인식의 발전을 꿈꾸어왔던 것은 베이컨이나 데카르트 이래 서구 문명 전체의 특징이었다. 자연에 대한 지식의 확장, 자연을 지배 내지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의 확장이 이른바 야만과 대비되는 문명의 힘이었고, 그런 만큼 그러한 지식과 기술의 증가는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진보를 정의하는 또하나의 기준이었음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전은 진보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였고,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개발은 '인간을 위한' 것으로서 정당화되었다. 이는 진보에 관한 19세기적인 관념이 형성되기 이전에, 근대 과학을 성립시킨 사고방식으로서 이미 현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도르노(Adorno)와 호르크하이머는 이를 좀더 일반적인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들이 함께 저술한 유명한 책 『계몽의 변증법』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진보적 사유라는 포괄적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해왔다."28) 여기서 인간이 오랫동안 시달려온 '공포'란 인간이라는 주체가 상대해야 하는 자연의 공포였고, 그것을 인간 자신이 정확하게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데서 연원하는 공포였다.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지극히 익숙하고 지극히 당연스런 문구는 이러한 자연을 자신의 의지와 지식 아래 두고 예측하고 통제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그 책 전체에 걸쳐 자연에 대한 지배능력의 확장을 진보로 간주했던 계몽의 변증법적 운명을 서술하고 있다. 반면 푸코는 이러한 인간중심주의를 19세기 이후 서구의 인식론적 배치를 특징짓는 고유한 역사적 현상으로 제한하여 서술한다. 그에 따르면 19세기의 인식론적 배치??에피스테메??는 그 이전과 달리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객체의 형식을 취한다. 그 이전인 17-18세기의 경우에는 존재나 사물은 표상으로 환원된다. 예컨대 데카르트의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나의 존재는 사유, 생각(표상)으로 환원되고 있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는 버클리의 명제에서도 존재는 지각이라는 표상으로 환원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자연사나 부의 분석, 언어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19세기의 사유는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객체적 실체를 도입한다. 부의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객관적이고 실체적인 척도로서 노동, 생물의 분류학적 특징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명, 굴절과 같이 언어적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언어의 '구조'가 그것이다. 칸트의 '물 자체'(Ding an sich)는 사유나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무엇이며, 선험적 판단 형식 역시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반대로 표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이 노동, 생명, 언어를 통해, 인간은 표상이나 경험, 지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초험적인 객체로 정의된다. 동시에 인간은 지각과 표상, 경험을 통해 존재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이 19세기의 인간은 초험적인 동시에 경험적인 이중체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기 마련이듯이, 이러한 정의는 반대로 노동, 생명, 언어를 인간의 속성, 적어도 인간에게서 그 최고의 발전을 이룬 어떤 속성으로 변환된다. 이러한 속성의 집약체로서 인간은 다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권적인 존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즉 "인간은 적당한 시기에 태어나 틀림없이 사멸되고 마는 모든 사물들 한가운데 모든 기원과 단절된 채 이미 그곳에 있는 것이다."29) 인간은 이제 단지 자연과 세계를 대상으로 지배하고 통제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연적 진화의 종착지며, 상품과 가치의 기원이고 목적이며, 언어를 사용하는 '주인'인 것이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것인가?"라는 칸트의 질문은 그 자신의 말처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인간학적 질문. 이제 모든 것이 인간의 주위를 공전하는 인간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사물들이 자신들의 단초를 발견하는 것은 어떤 지속이나 어떤 순간에 주어진 단절 속에서가 아니라 바로 인간 속에서다."30)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모든 사물의 기원, 세계의 기원, 자연의 기원이라는 19세기적 사유의 중심점에 자리잡게 되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자연적 진화의 종착점이요 역사적 세계의 목적이었던 인간이, 그러한 것의 기원으로서, 그것들이 존재하고 발전하게 하는 기원의 자리에 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것인지도 모른다. 앞서 본 것과 동일한 양상으로 기원은 목적이 된다. 19세기라는 최근의 역사로 제한을 하든, 혹은 서구에서 역사적 영역 전체로 일반화하든, 진보나 발전, 문명, 세계, 기술, 인식이라는 현재의 관념은 물론 심지어 자연에 대한 현재의 관념은 이러한 인간학 내지 인간중심주의의 기반 위에 서있다. 과학적 인식의 진보, 기술의 개발이나 자연의 개발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전쟁무기와 같은 파괴능력의 개발 또한 인간의 이름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인간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되어 왔음을 굳이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 앞서 언급한 진보의 개념이 이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굳이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 진보 개념의 지반을 제공한 진화론이 인간이 기원과 목적을 이루는 인간학적 역사라는 점을 굳이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 넷째, 통합하고 동질화하는 전체론적 관점. 어떠한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 새로운 것의 인식이나 창조도 정의상 국지적이다. 혁명과 같은 대규모의 전면적인 진보의 계기도 있지만, 진보를 자극하는 대부분의 변화는 어떤 국지적인 영역에서, 국지적인 변환을 통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국지적이고 제한적인 어떤 변화가 발전 내지 진보의 개념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국지성을 벗어나 확장되고 확산되어야 한다. 생물학적 변이 역시 진화의 개념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국지성을 벗어나 통계적 다수가 되어야 한다. 확장과 확산, 통계적 다수화와 평균화는 진보 내지 진화의 또다른 조건이다. 뒤집어 말하면 진보나 발전이 삶과 행동, 사고를 방향짓는 힘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부분으로 확장되고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통계적으로 다수화되어야 한다는 것, 그 결과 전체적으로 상승된 어떤 동질성 내지 통일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진보의 개념에는 또 하나의 기준을 갖고 있다는 셈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앞서 나가는 진보적 부분의 힘과 문명을 그렇지 않은 다른 부분으로 확장하여, 그 이질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새로운 진보적 힘, 진보적 문명에 동질화하려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마치 생물학적 진화가 적응성이 약하고 열등한 종자를 도태시키고 우등한 새 종자가 개체군 전체로 확산되어야 하는 것처럼. 동질화 내지 동일화하려는 의지. 다른 한편 그것은 각각의 부분을 하나의 전체로 통합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제고(提高)하려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마치 생물학적 진화가 분화와 복잡화만이 아니라 그러한 부분들의 새로운 유기적 통일화를 전제하는 것처럼. 통합화 내지 유기적 전체화하려는 의지. 이러한 의지는 발전과 진보를 위한 윤리학을 작동시킨다.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 문명과 야만, 효율성과 비효율성 등의 이분법적 범주들이 세계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둘로 가르고, 그에 따라 앞선 자와 뒤 처진 자, 깨우친 자와 몽매한 자, 문명인과 미개인이 만들어진다. 그 중 하나가 다른 것을 일깨우고 가르치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배우고 따라가는 것이 발전과 진보의 윤리학이다. 진보가 '좋은 것'이고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국지적으로 발생한 그 변화를 다른 모든 부분들에서 받아들이고 그것에 따라 동질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31) 진보는 인간이라면, 문명과 개화를 꿈꾼다면,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꿈꾼다면 누구나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앞선 문명인이 처진 미개인을 일깨우고 새로운 문명을 전파하는 것은 충분히 정당하며 근거 있는 것이란 발상이 이러한 진보의 개념과 과연 무관한 것일까? 서구의 진보된 문명으로 다른 대륙을 '개척'하고 계몽했던, 그리하여 전 지구상에 계몽된 문명을 확장해 간 역사에 비하면, 그러한 선한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여 저항했던 야만인들을 '약간'의 피를 보면서 진보된 포탄으로 엄혹하게 다스린 일은 다소 "유감스런" 사소한 불행일 뿐이다. 더욱이 이제는 그들 역시 진보된 문명을 스스로 배우고 쫓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통합하고 동질화하는 전체론적 관점 역시 지금까지의 진보 개념을 기초짓고 있던 또하나의 전제였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침략 아래 처참하게 문명화되었던 우리로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가 그런 문명을 스스로 갖고자 한다거나(근대화주의), 그러한 문명이 우리에게도 이미 맹아적으로 있었음을 보여주려는 시도 속에서 다시 발견된다. 이는 누가 어떻게 추진했든 간에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최근의, 또한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국가적 변화의 과정에서 반복되었던 것일 뿐 아니라, 국가적 폭력이나 제도의 폭력을 통해 강제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강제는 발전을 촉진하고 확산하며 다그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진보는 그것이 힘을 뻗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일종의 동질화하는 힘이요 전체화하는 힘이다. 4. 탈주선 위의 진보 개념 진보 개념의 밑에서 작동하고 있는 이러한 몇가지 전제는, 그 작용의 강도와 효과에 나름의 편차가 있지만, 진보 개념에 발단을 제공했던 계몽주의자들이든, 혁명과 '무질서'에 대해 과학과 이성에 의한 질서를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보수적 역사철학자들이든, 반대로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여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꿈꾸던 '진보적' 사상가들이든, 진보와 발전을 역사적 윤리학으로 설정했던 입장들에 공통된 것이다. 이러한 전제들이 근대적 시간 개념, 근대적 문제설정 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진보의 개념은, 그것의 용법이 갖는 다양한 편차와 그것이 포함하는 지향성의 상반됨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근대성의 지반 위에 있었던 것이다. 질서와 안정을 꿈꾸던 보수주의자들이 개념화했던 진보의 개념을, 변혁을 꿈꾸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데 어떤 근본적 장애가 없었던 것은, 이러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자는 각각이 설정한 발전의 목적, 진보를 정의하게 해주는 종착점이 달랐고, 그에 따라 진보적 가치가 그리는 궤적이 상반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달랐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파악하는 데서 직선적이고 누적적인 시간 개념이나 목적론적 발전 개념, 인간중심주의적 가치 개념, 동질화하고 전체화하려는 의지라는 동일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진보 개념의 용법이 역사적으로 변환되고 전도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19세기의 무의식적인 전제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정확하게 내포하고 있다. 이는 개념의 표면적인 특성이나 성분을 공유한다는 점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다. 개념의 영유를 가능하게 했던, 그리하여 그것을 영유할 수 있게 한 전제는 현재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그 개념의 존속을 위협하는 제약과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진보 사상 자체에 어떤 위협이 가해지고 있으며 그것이 가능한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자각은 그러한 제약과 한계가 그저 방치한 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상태를 지났음을 뜻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진보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서'도 그것을 근본에서 다시 생각하고, 새로이 정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차라리 그 개념의 위기를 근본적 질문을 통해 단지 목적과 방향만이 아니라 그 개념적 내용을 조직하는 형식 자체를 다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로 변환시켜야 하는 것을 아닐까? 그것은 진보라는 개념 자체의 변용을 시도해야 함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진보 개념의 전제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하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진보는 정말로 변화의 양화와 그것의 누적을 통해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 생물들의 진화는 환경에 대한 적응능력의 연속적 누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반대로 불연속적 변이가 없다면 대체 '종의 진화'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비록 잊혀졌던 것이기는 했지만, 다윈이 이미 보여준 것처럼, 그리고 이후 '신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난 것처럼, 환경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개체군의 변이야말로 '진화'의 조건이다. 개체군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적응을 위해 자신의 질료적 힘을 새로이 분배하며, 자신의 새로운 형식을 생성한다. 그에 따라 특정한 종류의 개체군은 자신의 새로운 가지를 만들며 진화적인 계통발생을 이룬다. 이런 의미에서 "개체발생과 계통발생의 관계는 역전된다."32) 생산기술의 발전 역시 누적이라는 연속적 변화보다는 새로운 창안과 발명이라는 불연속적 변환을 통해 이루어졌다. 생산기술이나 생산력의 발전은 새로운 기술의 확산과 확장 이전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확산과 확장과정을 진보 개념에 포섭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든, 새로운 기술의 창조와 창안 없이 진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심지어 동일한 도구나 기계조차 새로운 발전에 이용되는 것은 기존의 용법, 기존의 배치에서 벗어나 다른 용법, 다른 배치를 이루게 되었을 때다. 따라서 새로운 것의 창조가, 즉 탈주선이 진보의 조건이라고 말해야 한다. 과학적 지식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진보 역시 이전에 지배적이던 지식을 깨는 불연속이 격렬하면 할수록 강렬하고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그에 비하면 그것을 확산하고 확장하는 과정??대개는 제도와 교육이 담당하는 재생산의 과정??은 지극히 부차적인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 공업이라는 진보 개념의 탄생지에서조차 직선적이고 연속적인 누적을 통해 진보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 진보와 발전에 관한 두 가지 관념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하나는 합목적적 발전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내적 발전 개념이다. 우선 합목적적 발전 개념. 방금 말했듯이 진화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개체군이 새로이 생성하는 계통발생의 가지라고 할 때, 이러한 가지가 어떤 진화의 종착점과 완전성을 향한 합목적적 발전과정으로 정의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예컨대 날개가 불완전한 개체군이 바람이 많이 부는 특정한 환경 속에서 오히려 다수를 이루며 '자연선택'된 경우처럼 완전성과 반대되는 선택이 적응과 진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완전성이나 그것을 통해 정의되는 합목적성은 진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진화는 어떤 목적을 갖지 않으며, 하나의 동일한 기원을 갖지도 않는다. 그것은 외부인 환경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변이선의 집합일 뿐이다. 따라서 진화의 어떤 중심 가지도 존재하지 않는다.33) 둘째로 내적 발전 개념. 진보가 환경이나 외적인 조건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변이의 선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면, 혹은 탈주선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면, 진보를 정의하게 하는 발전을 내적 발전으로 정의하는 것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차라리 진보는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그 외부를 내재화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 항상-이미 존재하는 탈주선이라는 그 '내재하는 외부'를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국지적인 영역을 넘어서 포괄적이고 전체론적인 차원에서 정의되는 발전 개념, 그리하여 대개는 지배적인 관점과 결부되어 있는 발전 개념조차, 사실은 그러한 외부를, 변이의 선, 탈주선에 대해 대응하고, 그것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진보는 내적 발전이 아니라 외부에 의한, 외부를 통한 발전을 통해 정의된다. 좀더 과감하게 말하면, 내적 발전은 없다. '외적 발전'이 있을 뿐이다. 요컨대 진보는 무엇보다도 탈주선 위에 있으며, 그것을 통해 정의되어야 한다. 따라서 목적론적 종착점을 기준으로 진보와 반동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의 창안과 창조, 지배적인 것에 대해 외부적인 새로운 힘의 생산이다. 하지만 이 경우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있다. 즉 이처럼 탈주선 위에서, 외부를 통한 발전으로서 진보를 정의한다면, 진보라는 개념이 불가피하게 요구하는 가치평가는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다시 말해 어느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나은 것이고 진보적인 것이라는 판단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우리가 보기에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능력의 확장'이라는 기준이다. 그러나 이 경우 능력이 무엇인가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단서가 필요하다. '능력'에 대한 근대적 개념은 주체와 대상의 분리 위에서 '대상 세계에 대한 통제가능성'에 의해 정의되었다. 그러나 능력이 크다는 것은 이질적인 것을 담아내고 수용하며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환경에 대한 적응능력이 크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 안에 담아내고 그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가혹함의 정도, 이질성의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어떤 생물의 적응능력이 크다는 것은 그것이 적응할 수 있는 외부환경의 가혹함이나 이질성의 폭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어떤 이론의 능력이 크다는 것 역시 그것이 담아낼 수 있는 다른 이론들의 이질성의 폭과 강도가 크다는 것을 통해 정의된다. 흔히 예를 들 듯이 뉴턴의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설명하는 것을 담을 수 없지만,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뉴턴의 이론이 설명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담을 수 있다. 어떤 이론이 진보된 것인가 아닌가는, 그것이 이전에 있던, 자신이 반박하고 넘어서야 했던 이론이 설명하던 것을, 자기 안에서 담아내며 새로운 이론적 일관성 아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체제의 능력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독재적인 체제는 강력한 통제력을 갖고 행사한다는 점에서 쉽사리 '강한' 것으로 보이지만, 알다시피 그것은 조그마한 이질성과 반대, 차이조차 소화하고 흡수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결코 강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매우 협소한 범위의 사상과 행동, 삶의 방식만을 허용하고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취약하고 적은 능력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어떤 체제의 능력 역시 대상에 대한 통제능력이 아니라, 그것이 소화할 수 있는 이질성의 폭과 강도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질성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이 크다는 것이고, 그런 만큼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삶, 새로운 행동이 숨쉬며 생성될 수 있는 폭과 강도기도 하다. 따라서 진보를 정의해주는 '능력'이란 이제 새로운 창조와 창안, 변이들이 생성될 수 있는 탈주의 공간, 그 여백을 통해 정의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이질적인 것이 새로운 일관성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제3의 것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공간이다. 탈주선과 능력의 확장을 통해 정의되는 진보란 그러한 생성능력의 확장이며, 다양한 이질적인 것들이 숨쉬면서 새로운 일관성을 생성할 수 있는 여백의 확장을 뜻하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을 위한 진보'가 아니라, 이질적이고 비-인간인 것들이 인간과 최대한 공존하고 공생하며 새로운 관계의 생성이 가능해지는 여백의 확장으로서 진보를 사고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1) M. Heidegger, Die Thechnik und die Kehre, 1962, 『기술과 전향』, 이기상 역, 서광사, 1993. 2) M. Horkheimer und Th. Adorno, Dialektik der Aufklarung, 1947, 『계몽의 변증법』, 김유동 외 역, 문예출판사, 1995. 3) D. Lecourt, 「근대적 개념의 쇠퇴」, M. Gallo 외,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 홍세화 역, 당대, 1997, 100쪽. 이는 또 많은 경우 진화론의 영향 아래서 맑스주의자들에 의해서도 마찬가지로 반복되었던 것이기도 했다. 이에 관해서는 G. Haupt, 「맑스와 맑스주의」, 서관모 편, 『역사적 맑스주의』, 새길, 1993, 271-272쪽 참조. 4) F. Konstantinov 외, Fundamentals of Marxism-Leninism,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기초: 역사적 유물론』, 김창선 역, 새길, 1991, 283쪽. 5) 같은 책, 283-284쪽. 6) M. Horkheimer und T. Adorno, 앞의 책, 23-29쪽. 7) E. Cassirer, Die Philosophie der Aufklarung, 1932, 『계몽의 철학』, 박완규 역, 민음사, 1995, 263쪽 이하; J.B. Bury, The Idea of Progress: An Inquiry into Its Origin and Growth,(1932) Dover Pub. 1955, 144ff; G. J. Whitrow, Time in History, 『시간의 문화사』, 이종인 역, 영림카디널, 1998, 239쪽 이하 등. 8) E. Cassirer, 앞의 책, 291-292쪽. 9) J. B. Bury, op. cit., pp. 163-176. 10) G. J. Whitrow, 앞의 책, 246쪽.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백과전서』에서 진보에 관한 항목은 단 열 줄도 할애받지 못했다(D. Lecourt, 앞의 책, 100쪽). 11) M.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 『말과 사물』, 이광래 역, 민음사, 1986, 249쪽. 12) J. B. Bury, op. cit., pp. 206-210; G. Whitrow, 앞의 책, 239-240쪽. 13) J. B. Bury, op. cit., pp. 290-299. 14) ibid., pp. 284-285. 15) 이러한 개념적 성분이 헤겔 철학에 중심적인 것만큼이나 맑스주의의 역사유물론에 중심적인 것이라는 점을 굳이 세론(細論)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Konstantinov 외, 앞의 책 참조). 16) P. Bowler, The Invention of Progress, Basil Bleckwell, 1989, pp. 139-140. 17) P. Bowler, 앞의 책, 154-157쪽; 홍은영, 「19세기의 진보적 시간과 진화적 시간: 다윈을 둘러싼 시간관의 충돌」, 제1회 비판사회학대회 발표논문, 1998. 18) 다윈의 진화론은 이러한 19세기적 판본과 근본적으로 다른 진화 개념을 갖고 있었지만, 이러한 판본들을 통해 변형, 변조되어 받아들여졌다. 이로써 다윈의 목적도 방향도 없는 적응적 분기(分岐)로서 변이로서 진화 개념은 직선적이고 합목적적인 진화 개념으로 변형된다. 이것이 19세기 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다윈의 진화론'을 이루게 된다. 19세기의 생물학, 아니 19세기의 사유방식은 이런 식으로 다윈을 '길들이기'에 성공했다(홍은영, 앞의 글). 19) 이에 대해서는 J. H. Turner, The Structure of Sociological Theory, 김진균 외 역, 『사회학 이론의 구조』, 한길사, 1982, 61-95쪽 참조. 20) E. Husserl,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이종훈 역, 이론과 실천, 1993. 21) A. Koyre, 『ガリレオ硏究』, 菅谷 曉 역, 法政大學出版局, 1988. 22) 이에 대해서는 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푸른숲, 1997 참조. 23) P. Covney and R. Highfield, The Arrow of Time, 1990, 『시간의 화살』, 이남철 역, 범양사, 1994; R. Morris, Time's Arrow, 1987, 『시간의 화살』, 정윤근 외 역, 소학사, 1990; G. Whitrow, 앞의 책 참조. 24) F. Jacob, La logique du vivants,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 이정우 역, 민음사, 1994. 25) M. Foucault, 『말과 사물』, 192-195쪽. 26) 같은 책, 192쪽. 27) 타락이나 퇴보와 같은 개념 역시 발전이나 진보와 대칭적인 만큼 동형적인 것임을 굳이 상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는 기원이 후퇴하고 퇴행하며, 그것을 또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 설명되는 역사적 도식의 부분이며 짝이다. 한편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시민상태로의 변환을 때로는 타락이라고 비판하지만, 때로는 더 나은 진전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어느 경우에도 일관성은 없다. 즉 그에게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의미의 '발전'이나 '퇴보'의 개념이 없는 것이다. 28) M. Horkheimer und T. Adorno, 앞의 책, 23쪽. 29) M. Foucault, 『말과 사물』, 379쪽. 30) 같은 책, 379쪽. 31) 여기서 이성과 정염情炎, 빛과 어둠, 과학과 미신, 문명과 자연의 계몽적 이분법을 다시 발견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 밑에서 주체와 대상, 인간과 자연이 대립되면서 작동하는 근대적 이분법을 발견하는 것 역시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경우 진보와 계몽이 동일시될 수 있는가 여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진보'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했고, 그것을 기초짓고 있는 지반이기 때문이다. 32) G. Deleuze et F. Guattari, Mille Plateaux, Minuit, 1980, p. 64. 33) P. Bowler, 앞의 책, 149-151쪽.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