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kdycap (도영 ) 날 짜 (Date): 1999년 7월 18일 일요일 오후 02시 40분 37초 제 목(Title): 2500여년전의 세력간의 전쟁. 어제 역사 스폐셜을 보니 2500여년 전에 한반도는 늘 전쟁중에 있었다는 군요. 고구려 지역이나 부여지역은 재쳐두고 한반도 남부 지역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마을 유적에서 목책유적과 환호유적이 발견되었다는군요. 2500여년전으로 추정되는 그 시대의 마을에는 그러한 방어시설이 있었 나봅니다. 어제 TV에서는 남강마을 유적에서 발견된 환호 유적과 목책 유적이 나오더군요. 환호는 단면이 역삼각형 구조에 가장 밑바닥은 발 이 끼면 운신하기 힘들정도로 좁은 사각형의 통로의 되어 있더군요. 환 호의 폭은 2-3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방어호 바로 뒤 마을 안쪽에 목책자리가 역시 수미터 간격으로 촘촘히 놓여 있더군요. 마을 사람 들은 목책을 두르고 그 밖에 일종의 방어호를 판 것이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외곽 목책 안으로 들어가면 마을 안에서도 이중의 환호와 목책자리가 있더군요. 완전히 철통같은 태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티비 해설에서는 영토확장보다는 식량전쟁이라는 견해에 무게가 기울어지더군요. 이 남강마을은 인근에서 가지지 못한 기름진 밭에서 나는 조와 수수 보리같은 작물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아마 주위의 부족에서는 그것을 탐했고 이 마을 사람 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봐야겠답니다. 그외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부러진 돌화살촉을 근거로 피장자가 화살에 맞아 죽었을 가능성을 점치면서 그 당시 의 상황을 추측하더군요. 돌화살촉을 직접 제작해보는데 정말 무시무시하게 생겼더군요. 맞으면 즉사를 면치 못할 정도로 날카롭고 묵직한 화살촉은 그당시의 치 열했던 생존전쟁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더군요. 티비에서는 후반부에 다시 남강유적이 아닌 부여 송국리 유적을 보여주더군요. 그 속에서는 특기할 만한 고고학적 발굴결과가 있었는데 원래 그 언덕에 원형 집자리 사 람들이 살았었는데 원형 집자리는 거의 대부분이 불에 타서 아예 집이 내려앉은 상태 로 발견되었다는군요. 그리고 목책자리도 있었는데 이 목책또한 불에 탄 흔적이 역 력하다는군요. 이 불에탄 흔적 바로 뒤에 나타는 것은 바로 이웃한 구릉에서 발견 되는 네모형 집자리들이라더군요. 원형 집자리가 있던 곳에 네모형 집자리가 발견 되었다면 아마 이웃구릉의 네모형 집자리 사람들이 이 원형 집자리 사람들과의 생존 투쟁에서 이겨 이곳을 차지하지 않았나 추측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구 이 네모 집자리 사람들은 역시 목책을 다시 세운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그당시에 구릉 하나 강하나 산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존경쟁을 하는 여러 집단들이 한반도 남부 곳곳 에 널려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 볼수 있는 한 근거겠죠. 수백명 단위 크면 쳔여명 단 위의 각 마을에서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훌륭한 일꾼이요 전사이기도 했을 겁니다. 2500여년부터 기원전 100여년 전까지 한반도 남부는 각 부족의 각축장이었을 겁니다. 그러던 것이 한사군 설치와 더불어 남으로 밀려난 고조선계 유민들의 선진 문물이 남부로 전해지면서 또다른 사회통합현상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