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8일 일요일 오전 02시 58분 40초 제 목(Title): 박순성/ 분단체제의 미래와 동북아질서 분단체제의 미래와 동북아 질서 박순성 드러난 미래 일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혼란은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극심하다. 통일 이전에 경제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버림받은 주민들은 사회질서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도 포기하였다. 혼란이 이토록 심각하게 된 데에는 남한사회의 책임도 크다. 남한정부의 안이한 현실대응과 편협한 대북정책은 통일을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남한사회의 폐쇄성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여전히 사회통합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다. 남한사회는 1997년 경제위기 과정에서 이미 한계를 보여주었지만, 지금도 새로운 사회경제질서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한반도 통일은 동북아 질서의 재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질서변화의 방향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한반도의 혼란을 동북아 전체의 파국으로 몰아가지 않으려는 주변국들의 태도가 한반도 통일을 가능하게 하였지만, 통일한국의 혼란은 동북아 국가 모두에 과중한 부담으로 남아 있다. 지역패권을 둘러싼 갈등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추진되어오던 동북아협력체 구상도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한반도가 동북아에서 다시 문제지역으로 된 상황에서, 한반도의 내부 혼란을 안정시키는 일은 관련국가 모두의 일차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동북아지역 전체의 미래가 한반도문제의 해결방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혼란은 변화를 가져오고, 변화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하나의 국가를 이룬 한민족이 지금의 혼란을 현명하게 극복한다면, 한반도는 동북아에서 새로운 협력질서를 만드는 '협력의 균형추'가 될 수 있다. 통일한국이 내부의 거부와 외부의 압력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동북아협력의 견인차가 되기를 기대한다. 1. 전선과 주변부 세계사는 2차대전 이후 자유자본주의와 현실사회주의 세계의 대립이라는 하나의 '축'에 이끌려왔다. 여기에서는 전선이 존재한다. 체제대립이 지구 차원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반도는 영토의 절단과 뒤이은 민족 내부의 전쟁을 경험하였다. 휴전선으로 압축되는 분단된 남북한은 본질상 상호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적대관계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전선 중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분명 하나의 축이 지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세계사의 근저에는 자본주의라는 좀더 오래된 '원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삶의 모든 영역을 잠식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활동무대를 하나의 세계로 만드는 힘을 가진 자본주의 원리는 불균등발전을 통해 지구공간을 중심과 주변부로 끊임없이 재편성한다. 식민지시대의 한반도, 한국전쟁 이후의 남한은 세계자본주의에서 '주변부의 주변부'였다. 세계자본주의의 작동논리가 근본원리를 이루는 상황에서, 체제대립은 반체제운동이 자본주의 지배체제의 질서에 도전함으로써 발생한 결과였지만, '원리'를 벗어나 세계를 움직이는 '축'이었다. 반체제운동의 산물이자 동시에 지배체제에 대한 대립물인 사회주의체제는 자체로 하나의 지배질서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소련을 최상층으로 한 위계질서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으며, 현실사회주의체제는 이제 반체제의 원리가 아니라 체제지배의 원리가 작동하는 폭력과 억압의 세계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회주의 지배체제에서 북한은 종속국이자 경계국가로서 '유사 주변부'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한편 세계자본주의도 세계 차원의 체제대립에서 하나의 대립물, 미국을 최상층으로 한 자본주의 지배체제로 자리잡았다. 결국 체제대립은 단순히 세계자본주의체제 하위구성물의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체제대립은 세계를 양분함으로써 사람들이 세계질서를 분절된 두 체제의 적대관계에 기초하여 이해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한반도에서 만난 20세기 후반 지구공간정치의 두 동인인 축과 원리는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된 한반도를 '전선이자 주변부'이면서 또한 '분단된 민족국가'라는 착종된 모순상황으로 몰아넣었다. 모순상황의 내용은 우선 두 동인이 결합하는 양상에 따라 결정되었다. 강대국 중심의 두 지배체제 사이에 형성된 냉전체제가 '열강체제' 성격을 띠면서 세계질서의 기본축으로 작동함에 따라, 한반도에 놓여 있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세계 각각의 주변부는 '주변부이지만 전선'인 전략지역이 되었다. 전략지역에서는 당연히 전선의 논리가 주변부의 논리보다 강화되고, 전선/주변부는 방어의 벽이자 필요한 경우 다른 세계를 향한 진출의 교두보가 된다. 이에 따라 두 지배체제의 패권국가는 한반도라는 전략지역에서 모두 자기 체제의 작동원리가 자신의 체제를 정당화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전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의 남북은 국가역량이라는 차원에서는 강화되면서도, 세계체제 차원에서는 자신이 속한 지배체제의 논리에 더욱더 예속되어갔다. 한편 하나였지만 분단되어 두 개가 된 한반도의 민족국가는 '주변부이지만 전선'인 지위를 활용하면서, 민족국가의 통일을 주도하기 위한 체제경쟁 관계에 돌입한다. 특히 두 국가간에 벌어지는, 상대방의 소멸(승공통일ㆍ조선혁명)을 최고가치로 삼은 체제경쟁은 복잡한 성격을 지닌 대리전쟁에 가깝다. 따라서 남북한 관계는 '내부의 기능연계성은 거의 없으나 외부의 상호규정성은 매우 강한' 하나의 분단된 구조, 분단체제로 발전한다. 한반도에 형성된 분단체제는 냉전체제라는 지구 차원의 '분단체제'와 직접 맞물려 작동하면서, 한반도 내의 특수한 지배질서로 재생산되어왔다. 한반도에서 진행된 체제경쟁은 두 지배체제의 최강국이 요구하는 전선강화 논리와 결합하면서, 남북한 양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이성의 우위를 낳았다. 남한에서는 시민사회의 발전을 억압하는 독재정권이 때로는 권위주의의 형태로 때로는 군사정권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북한에서는 수령-당-국가 일치에 기초하여 시민사회를 부정하고 주민들을 철저하게 노예화하는 유일체제가 형성되었다. 체제경쟁 상태에서 이처럼 국가(지배)를 절대화한 남북한의 양 국가는 통일된 근대국민국가의 완성을 국가의 최고가치로, 민족주의를 동원과 지배를 위한 이념으로, 근대화를 가장 확실한 경쟁수단이자 체제정당화의 근거로 내세우게 된다. 남북한에 민족주의 강화와 민족경제 발전은 동일한 과제로 등장하였지만, 체제의 원리에 따라 실현형태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남한에서는 반공주의와 자본주의경제가, 북한에서는 주체사상과 명령형 계획경제가 근대국민국가 형성을 위한 기본전략이 되었다. 이처럼 대응하지만 동일하지 않은 전략의 선택이 '주변부이지만 전선'인 한반도 분단체제에서 남북한 사회경제체제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경영전략은 당연히 산업화라는 근대화의 한 측면만을 강조하고, 근대화의 다른 한 측면인 민주화를 무시한다. 체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지구공간정치의 논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낳는다. 냉전체제는 두 개별 지배체제 내부의 변화와 함께 대립체제간 관계의 변화도 경험한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동북아지역 세력균형의 재편성이다. 중국과 소련의 갈등, 일본의 경제성장에 뒤이은 미국과 중국의 화해는 단순하게 배치되어 있던 동북아 세력지형을 뒤흔들면서, 미국과 소련의 양극 대립구조를 네 국가간의 균형조절 또는 이익조정 양상으로 바꾸어나갔다. 동북아 질서의 변화와 함께 한반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이 체제경쟁과정에서 이루어낸 사회경제체제의 변화는 남북한의 세력균형을 바꾸어놓았다. 북한지역의 초기 발전에 이은 정체와 남한지역의 초기 혼란을 극복한 성장은 70년대초 세력관계에서 남북한을 동등하게, 아니 오히려 남한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분단체제 내부의 변화된 세력지형은 동북아 질서 변화라는 외부 환경과 어우러져, 남북한을 서로 끌어당겼다. 국가권력 차원에서 이루어진 남북한의 만남은 행위주체의 인식변화에 근거하고 있었지만, 오랜 단절 뒤의 짧은 접촉이 관성의 법칙을 쉽게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남북한은 70년대 중반 다시 체제경쟁이라는 자신의 좁은 진지로 돌아갔다. 70년대 중반 분단체제는 그 정형(定形)에, 대립과 의존의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남북한 당국자들이 언뜻 바라본 동북아 질서 차원의 변화는 세계사의 근저에서 일어나고 있던 변동의 반영이었다. 냉전체제라는 축은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고, 세계자본주의의 작동원리가 다시 세계질서를 근본부터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있었다. 체제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났던 반체제운동의 도전을 극복함으로써 자본주의 지배체제는 자신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세계자본주의는 확장시기에 들어갔다. 반면, 냉전체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면서 체제 내부의 진화(進化)요인을 말살하는 데 온힘을 쏟았던 현실사회주의체제는 자기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결국 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동구사회주의권 내부의 변화는 개별 국가들에서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키고, 지구공간 차원에서 사회주의 지배체제를 소멸시키고 말았다. 이와 함께 세계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단계라 규정할 만한 세계화의 논리가 지구공간정치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남북한의 사회경제체제도 대립하는 두 지배체제에 변화를 가져온 내부작동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한반도에서는 분단체제의 논리와 동북아지역의 특수성이 작동하고 있었다. 발전과 침체라는 남북한 사회경제체제의 상반된 움직임과 냉전체제의 전선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를 구성하는 행위자로서 남북한은 여전히 전선의 논리에 집착하였다. 특히 세력관계에서 불리해진 북한은 강요된 때로는 계산된 폐쇄정책을 바탕으로 체제를 단속하는 동시에 동북아지역 강대국들간에 잠재되어 있는 갈등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분단체제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계질서의 변화에 적응하지 않는 행위의 관성은 남북한 모두를, 분단체제 자체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남북한은 발전과 침체의 동학(動學)에 내포된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였으며,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였다. 유일체제의 경직성과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상승작용을 일으킴으로써 북한에서는 80년대말부터 경제침체와 체제이완 현상이 나타나고, 발전국가 사회경제제도의 유산과 조절되지 않은 자유화ㆍ개방화가 결합됨으로써 남한에서는 97년말 경제위기가 닥친다. 이처럼 이미 남북한이 봉착한 위기와 아직도 분단체제에 잠재해 있는 위험요소는 동북아 질서의 불안요소와 맞물리면서, 장차 동북아 전체를 불안정한 변동과정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2. 변형 또는 '흔들리는 분단체제'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는 냉전체제의 역설이 그대로 작용하였다. 남북한은 군비경쟁과 소규모 도발 속에서도 휴전이라는 긴장상태를 깨뜨리지 않음으로써, 분단체제하의 체제경쟁이 남북한 모두에게 일정한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적대관계에 기초한 안정이 요구한 엄청난 댓가, 바로 분단체제가 남북한 민중에게 강제한 고통은 역사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현재 북한지역을 뒤덮고 있는 민족의 비극은 상상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하지만 역사에 가정법을 도입하더라도, 분단비용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문제는 오히려 '현재 이후'에 달려 있다. 현재 이후에 대한 전망은 남북한이 분단체제의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조변화에 적응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사실, 세계사의 흐름을 다시 좌우하기 시작한 세계자본주의의 작동원리가 남북한 개별 체제 내부의 한계와 결합하여 몰고 온 변화는 남북한 모두에 체제개혁과 대외행위조정을 요구한다. 분단체제의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위기하에서 구조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남한, 심화된 체제위기에 따라 자본주의 세계경제로 다시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된 북한, 이 두 개의 국가로 이루어진 하나의 구성체는 더이상 자체의 체제재생산 원리를 갖지 못하게 될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제 '흔들리는 분단체제'는 사회주의 지배체제의 소멸 이후 유일한 세계체제로 남은 세계자본주의 속으로 녹아들어가기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분단체제 동요의 근본 원인은 냉전체제의 붕괴와 맞물려 나타나기 시작한 남북한간 세력균형의 파괴에서 우선 찾을 수 있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냉전체제 붕괴 이후 새로이 태동하는 동북아 질서를 대상으로 한 관련국들의 정책갈등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반도 질서를 직접 담당하려는 남북한과 냉전체제 소멸 이후 유일한 세계강국으로서 세계 전지역의 질서변화를 주도하려는 미국 사이에는 중장기전략에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분단체제 내부와 세계질서의 변화가 서로 결합함으로써 분단체제의 작동논리를 바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세계질서 변화와 남북한 세력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해 8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형태의 접촉을 시도하던 남북한은 80년대말에 이르러 고위당국자 수준의 접촉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추측하건대, 이 시기 남북한 지도부는 70년대 초반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적대관계를 하나의 체제로 확실히 인식하고, 분단체제의 변화를 민족논리에 기초하여 직접 이끌어내려고 하였다. 91년말에 채택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ㆍ협력에 관한 합의서'(1991.12.13)는 분단체제가 민족 내부의 노력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1991.9.17)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는 남북한의 고위급이 서명한 문서 속에서 명목상으로나마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변모하게 되었다. 남북한이 합의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먼저 민족화해, 평화보장, 교류ㆍ협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더 중요한 점은 남북한간의 관계가 '국가간 관계'가 아닌 '특수한 잠정상태'로 분명하게 규정되었다는 사실이다. 합의된 문서의 자구(字句)에 충실하게 따른다면, 통일은 지향점이다. 더욱이 평화통일을 위한 남한이나 북한의 정책과 행위는, 심지어 쌍방의 노력에 따르지 않더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 통일지상주의는 아닐지라도, 통일은 화해, 불가침, 교류ㆍ협력 너머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통일은 분단체제의 운명(殞命)을 기다리는 복병처럼 남북한의 합의서 속에 숨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남북한간 합의는 분단체제를 핵으로 하는 기존 동북아 질서를 근본에서 흔들 수 있는 변화요인이었다. 남북한은 분단체제를 아주 특수한 관계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를 종식시키는 것에 합의하였다. 바로 이 과도기상태, 분단체제의 원인이 되었던 냉전체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분단체제가 당사자들로부터 확인됨과 동시에 부정되는 상태는 분단체제가 더이상 '분단되었으나 하나인 체제'로 남아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분단체제는 이미 심하게 변형되었다. 한반도 질서의 변화는 확실하지만 그 방향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직접 개입이었다. 직접 개입의 필요성은 남북한 관계의 발전에 의해서만 야기되지는 않았다. 남한의 북방정책은 중국과 러시아를 한반도 전체로 불러들였으며,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회담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예상하도록 하였다. 필요성이 증대된 시기에 개입의 계기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북한의 핵무기개발 의혹은 미국의 한반도 직접 개입을 정당화해줄 요인이었다. 사실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북한의 개발(가능성)과 수출(가능성)은 동북아의 군사력 균형뿐만 아니라 중동지역을 포함한 지구 전역의 불안정한 평화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았다. 미국은 핵문제를 통해 북한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북한이 자신과 직접 마주 앉도록 유도하였다. 북한의 처지에서도 남한과 자신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경제력 격차가 확인된 이상, 남북관계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미국과 직접 관계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었다. 처음부터 완전히 의도된 무언가가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핵문제는 이처럼 한반도의 정세를 바꾸어나가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남한ㆍ북한ㆍ미국의 지루하면서도 때로는 위험에 가득 찬 협상과정에서 분단체제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이등변삼각형의 세력관계로 바뀌어나간다. 두 개의 적대관계와 하나의 우호관계라는 세 개의 양국관계를 기초로 형성된 세력균형에서 세 국가의 지위는 균등하지 않다. 우선, 미국은 힘과 위협을 통해 절충과 균형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다. 반면 북한은 세력관계에서는 약자이지만, 자신의 위협을 협상수단으로 동원하면서 현재의 세력균형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한다. 끝으로 남한은 자신이 후진자본주의경제(세계자본주의의 주변부)를 벗어난 상태에서 한반도의 세력균형이 결국에는 자신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하에, 한반도문제를 민족문제의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한반도의 세력균형은 이런 의미에서 정립(鼎立)관계, 팽팽하게 균형이 잡혔지만 언제라도 하나의 다리가 끊어져나갈 수 있는 상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형성된 균형은 분단체제의 성격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한반도문제는 국제문제이지만, 근본에서 민족 차원의 해결을 필요로 한다. 되돌아보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북미협상에서 남한은 회의장 밖의 협상주체이었다. 미국의 권유와 압력이 남한정부의 의사결정에서 핵심 변수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하더라도, 민족문제의 차원에서 경수로 건설비를 부담하는 동시에 한국형 경수로 건설을 받아들이도록 한 사실은 남한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주요 행위자임을 보여준다. 북한 핵문제 이후, 남한정부가 제안한 '4자회담'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회담 참여국가들의 이해갈등에도 불구하고, 4자회담은 남북한간의 협상에 바탕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승인하는 형태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또한 현재 남북한간의 경제교류·협력은 북한의 장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변수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결국 한반도의 삼각구도는 하부에 위치한 남북한의 관계, 대립하고 있지만 역사의 동일한 지평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남북한의 '특수관계'에 운명을 맡기고 있다. 남북한의 특수관계가 분단체제의 성격을 지니면서도 이제는 엄격하게 정의된 분단체제의 개념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상황에서, 특수관계의 앞날을 결정할 요인은 무엇인가? 과연 현재의 세력균형은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는가? 균형을 파괴할 위험요인과 이에 대응하여 위험을 억제할 상쇄요인 사이의 역학관계가 문제의 핵심에 놓여 있다. 변형된 분단체제의 위험은 무엇보다도 북한으로부터 나온다. 북한의 지배집단이 유지하고 있는 유일체제가 강요된 농성체제의 성격을 일정 정도 지닌다고 하더라도, 강성대국과 선군정치(先軍政治)의 구호로 나타나는 체제유지 전략은 지배체제 내부의 모순을 의도된 외부압력을 통해 억누르려는 모험에 불과하다. 모험주의는 경직되고 구태의연한, 따라서 변화된 질서에 맞지 않는 대외정책을 낳으며, 종종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들 중 파국의 형세를 띤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더구나 인민경제의 완전 마비, 통치엘리뜨를 포함한 관료조직의 무능과 부패, 다수 주민의 절대기아와 유랑으로 요약되는 절망상태에서, 허구의 압력상태를 조장하면서 주체노선에 자신을 묶어놓는 북한 지도부의 자기기만은 주민의 자포자기와 결합할 뿐이다. 최근 북한이 대외경제관계에서 보여주는 변화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비치는 북한은 진정 내일이 없는 농성체제, 세력균형에 들어 있으면서도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어제의 섬'이다. 하지만, 단절된 섬의 위기는 체제 내부의 문제일 뿐 아니라, 북한이 세력균형의 한 축을 이루는 한에서 한반도 질서 나아가 동북아 질서의 문제이다. 체제위기와 모험주의로 표현되는 북한문제를 제외하고, 한반도 질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요인들은 실제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남한과 미국은 자신의 내부에서 강한 목소리를 내는 냉전사고와 실력행사주의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남한정부가 추구하는 '햇볕정책'은 대북정책에서 방향조정의 유혹을 받는 미국이 포용정책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억제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남한의 대북정책은 일본과 중국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위험요인을 억제하는 상쇄요인이 존재함으로써 유지되는 한반도의 균형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위기의 북한이 보여주는 체제의 관성은 분단체제의 해체가 개연성의 영역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의 하나이다. 체제의 관성은 지배집단의 결속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체제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하위구성원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 체제유지를 위한 구심력과 체제붕괴를 향한 원심력이 아슬아슬한 균형상태를 벗어날 때, 북한체제가 떨어질 곳은 오직 하나 혼란의 도가니이다. 그리고 그 순간 동북아 질서의 약한 고리는 끊어지고, 강대국들의 국가이익을 향한 '힘의 정치'는 한반도 전체를 위험한 칼날 위로 몰아간다. 분단체제 극복은 한민족의 통일국가 형성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분단체제 극복은 분단체제의 '해체'이자 특수관계의 '해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와 위기 이후의 전망은 불확실하다. 불안정한 균형의 파괴가 한민족 역사발전에서 역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통일된 한반도의 근대국민국가가 분단 반세기 동안 남북한이 경험한 역사의 질곡을 뛰어넘어 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은 협소해 보인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지금이 아니라 지금 이후에 놓여 있을 '파국으로 가는 길'을 미리 보아두어야 한다. 3. 탈패권의 딜레머와 한반도 통일의 정치산술 한 지역의 국가들간에 협력체가 이루어져 있을 때, 지역 내 국가들은 자신들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이익과 희생을 커다란 갈등 없이 구성원들간에 분배하기 위한 원칙을 결정해둘 수 있다. 당연히 정의의 원칙이 작동하는 국가간의 이상사회도 구상해볼 만하다. 반면 어떤 지역이 하나의 패권 아래에 놓여 있다면, 지역질서는 패권국가의 이익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패권국가는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으로 다양한 종류의 이익과 희생을 배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단일패권이 아닌 경우, 패권에 기초한 지역질서가 형성되고 변화하는 원리는 다소 복잡하다. 냉전체제라는 패권국가를 최상위에 둔 지배질서간의 대립에서는 이익과 희생의 배분이 패권의 확장이라는 요소와 직접 연결되어 이루어졌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경제성(효율성)의 논리와 지배(패권)의 논리가 상호작용하면서 냉전질서를 유지해나갔다. 물론 경제성의 논리가 경제영역의 작동원리를, 지배의 논리가 정치군사영역의 작동원리를 곧바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근대세계에서는 패권질서 밑에서 경제영역의 작동원리,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원리가 작동하면서 패권질서를 근본에서 흔들기조차 한다. 냉전체제가 오랜 기간의 변화를 겪으면서 세계 질서에서 또한 동북아 질서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 동북아에는 그리고 세계에는 미국을 단일패권국가로 하는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패권은 유일할 뿐만 아니라, 전영역에 걸쳐 있다. 미국이 전영역에 걸쳐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미국의 패권질서에서 패권의 논리와 경제성의 논리가 결합하여 작동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당연히 동북아 질서는 미국의 패권 아래에서 미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여간다. 그러나 단일패권이라도 완전한 지배를 의미할 수는 없다. 특히 20세기말의 지구공간정치에서 단일패권은 두 측면에서 일정한 제약을 받는다. 첫째, 패권과 패권정치는 언제나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인권의 시대이자 민주주의의 시대인 현재, 패권국가는 국내여론과 국제규범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행동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제관계에서 흔히 인정되는 칸트식 자유주의 명제는 국내의 민주주의가 패권국가의 정책에 제한을 가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패권국가는 자신의 국제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비록 종종 형식상의 절차로만 존재하는 경우일지라도 국제기구에서 국가간 합의를 얻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패권국가는 국제기구를 장악하여 패권확장을 위한 정치공간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둘째, 인간생활의 기본 영역인 공간이라는 차원에서 '지역의 제약'은 여전히 남아 있다. 광속화시대의 군사력과 경제제도는 패권국가의 영향력이 공간의 거리에 더이상 반비례하지 않도록 만들었지만, 지역의 벽은 문화와 제도의 차원에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세계화는 지역주의의 견제를 받고 있다. 이러한 지역주의를 이념과 현실의 양 차원에서 봉쇄하려는 노력이 바로 세계화의 논리, 시장근본주의에 기초한 신자유주의의 확산이다.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이 누리는 단일패권은 현재 무엇보다 지역의 제약에 노출되어 있다. 지역의 제약은 곧 미국의 단일패권에 대한 지역의 거부이다. 그런데 다가올 21세기 지구공간정치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동북아지역에서, 단일패권과 지역거부 사이의 긴장은 '패권에 대한 도전과 방어'라는 단순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탈패권의 딜레머'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중국 중심의 질서와 일본 중심의 질서라는 두 개의 방향으로 요약되는 탈패권의 길은 모두 현재의 패권질서에 대한 도전으로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동북아지역의 발전과 안정을 보장할 바람직한 질서로는 평가받을 수 없다. 결국 동북아는 패권을 거부하지만 탈패권의 대안들이 모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상태, 탈패권의 딜레머에 빠져 있다. 논의의 간결성과 이해의 명료성을 위해 타이완과 러시아를 제외한 동북아지역의 질서를 검토해보면, 만주를 포함한 중국ㆍ한국ㆍ일본 세 국가 단위로 형성되어 있는 동북아지역은 지구공간정치라는 관점에서 수세기 전부터, 아니 그 이상의 기간 문화ㆍ정치ㆍ군사ㆍ경제 전영역에서 느슨하지만 경계선을 가진 하나의 단위로 발달하였다. 이러한 역사는 당연히 갈등과 적대를 내포할 수밖에 없으며, 가까이는 일본제국주의의 유산이 남아 있다. 그러나 하나의 지역단위로서 동북아지역이 갖는 탄성(彈性)이나 점성(粘性)은 냉전체제와 세계자본주의의 압력을 이겨냈다. 체제와 경제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목받고 있는 한국ㆍ중국ㆍ일본의 유사성이나 친화력은 흔히 가치니 전통이니 하는 개념으로 모아지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다른 데 있다. 하나의 경계선을 가진 지역단위로서 동북아지역은 한국ㆍ중국ㆍ일본 세 국가가 21세기 지구공간정치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출발점'이자 '세력기반'으로 삼아야 할 '꽉차 있는 장(場)'이다. 중국 중심의 길은 미국의 패권지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중국이 탈패권의 핵심세력이 되는 경로이다. 중국은 내부에서 증대하는 불안요소에도 불구하고 현대화의 기치 아래 군사와 경제 양 부문에서 거대한 힘을 축적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는 성장속도ㆍ경쟁력ㆍ규모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수십년 내에 세계에서 두번째 경제강국이 되리라는 예측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중국이 동북아 질서에서 갖는 영향력은 강대한 군사력으로부터 나온다. 미래의 중국이 갖게 될 경제력은 경제발전이 군사력을 확대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판단된다. 사실 중국이 주축이 되는 탈패권질서는 중국의 패권질서로 갈 가능성조차 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 특히 동아시아경제권에서 교역ㆍ경쟁력ㆍ원조ㆍ해외투자 모든 면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일본경제는 동북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단일패권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일본 중심의 길을 생각하도록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이 가진 첨단의 기술은 잠재된 군사력으로 평가되면서, 패권국가 일본의 가능성이 논의된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의 역사가 동북아시아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화의 가능성을 지닌 경제력에 바탕을 둔 일본 중심의 길 역시 탈패권의 바람직한 대안으로 인정되지 못한다. 미국이 지배하는 동북아 질서와 중국 또는 일본 중심의 동북아 질서는 간단히 '태평양시대의 동북아시아'와 '아시아인의 동북아시아'라는 용어로 대비해볼 수 있다. 문제는 어느 경우이든 이미 포화상태에 가까운 그러면서도 끝없이 확장되고 있는 이 지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어떻게 질서상태로 조정해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단일패권국가 미국이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질서와 중국과 일본이 각각 나름대로 내세우는 '아시아인의 협력'이 대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이든 아시아인의 협력이든, 동북아지역의 세 강대국간에 형성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국가간체제는 한반도의 민족구성원에게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불안정한 상황이다. 더욱이 패권과 탈패권의 논리에 기초를 둔 탈패권의 딜레머는 20세기말과 21세기초 지구공간정치의 하부원리인 세계자본주의의 작동원리와 결합하면서, 이미 경제영역에서 위기를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발현되지 않은 불안요소를 지닌 동북아지역을 더욱 불안한 상황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분단체제의 미래는 어떠한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분단체제의 위기는 동북아 내부에서 질서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대한 위험요소이다. 동시에 동북아 질서의 변화는 분단체제의 미래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해 분단체제의 모든 변동이 동북아 질서에서 작동하는 패권-탈패권의 논리와 세계자본주의의 작동논리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는 분단체제와 동북아 질서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해 살펴보기보다는, 논지의 중심을 살리기 위해 분단체제 현실과 한반도 통일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정치산술을 세 개의 상황으로 나누어 검토한다. 한반도에서 자리잡고 있는 미국 중심의 삼각구도는 변형된 형태이지만 여전히 분단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국가이익에 직접 위협을 가하고 있지 않다. 북한의 체제유지를 일정하게 받쳐주면서 남한과 경제관계를 확대하고 있는 중국은 한반도가 자국의 경제발전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에 빠지지 않는 데 만족하고 있다. 남북한의 경제위기가 한반도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리라고 판단하면서도 북한의 군사력 확장에 불안을 느끼는 일본은 남한에 대해서는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관계발전을, 북한에 대해서는 국교정상화와 경제지원을 중심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모험이 군사와 경제 양 영역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동북아 질서 특히 일본의 군사력 확장에 직접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압박책과 유화책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결국 한반도의 삼각구도는 동북아 전체에서 유지되고 있는 미국ㆍ중국ㆍ일본의 삼각구도와 대칭형을 이루면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위기가 심화되어 한반도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진다면, 중국과 일본의 남북한 균형접근정책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현재 수만에 이르는 탈북 식량난민에 대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중국, 북한의 위기가 야기할 수도 있는 한반도 내 혼란과 대량난민사태의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일본, 두 국가는 북한의 내부 변동을 예의 주시하면서 남한이 북한의 위기에 직접 대처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극도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미국은 자국의 북한지역에 대한 직접 개입이 중국과 일본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엔이나 남한을 통한 북한지역 통제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혼란이 발생한다면, 실제로 한반도에 개입할 가능성을 가진 국가는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의 경우, 한반도를 활동지역으로 할 유엔군의 형성이 쉽지 않으며 또한 유엔군에 중국과 일본의 참여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동원방안을 찾으리라 예측된다. 중국은 우선 북한이 자국의 개입을 요청하도록 유도하겠지만, 요청이 없어도 국경지대를 통해 북한지역에 군대를 진입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은 즉시 한반도 북부지역을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들 수 있다. 북한의 위기 심화와 함께 전개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 3대강국의 정책결정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은 남한의 정책과 국가역량, 그리고 남북관계의 진전 정도이다. 북한의 위기가 남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혼란보다는 남한 주도의 통일이 주변강대국들의 국가이익에 유리하여야 한다. 만일 현재의 한반도 삼각구도보다 남한 주도의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균형질서에 도움이 된다면, 이는 주변 강대국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결국 한반도의 미래는 남한이 한반도의 안정을 얼마나 잘 지키고 동북아지역 내 패권-탈패권의 긴장을 얼마나 잘 조절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4. 통일로 가는 길, 신자유주의의 위협 하나의 유령이 동북아를 떠돌고 있다. 한반도 통일이라는 유령이다. 세계화의 거대한 파도가 동북아를 덮치고 있지만, 동북아는 여전히 하나의 지역이요, 하나의 질서이다. 이 지역을, 이 질서를 패권-탈패권의 논리가, 분단체제의 위기가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갈등ㆍ긴장ㆍ불안으로 표현되는 압박의 근저에 놓여 있는 실체는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동북아 질서의 거대한 전환이다. 북한의 위기상황으로부터 충분히 예상되는 한반도의 통일은 한반도 자체의 혼란이 지역국가들에게 곧바로 가져다줄 여파 때문만이 아니라 동북아지역의 중장기 세력판도에 끼칠 영향 때문에 동북아지역 국가 모두에게 심각한 도전이 된다. '드러난 미래'는 지금 여기에서 역사과정으로, 두려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현재의 준비를 위해서만 가치가 있다. 한반도 통일의 객체이자 주체인 남한은 결정되어 있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만들어가야 한다. 여기에서 한반도 혼란의 예방, 동북아 불균형의 조정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남한이 한반도의 안정을 보장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평화통일을 가능하게 할 때, 그리고 위험한 분단체제보다는 한반도의 통일이 동북아의 안정과 중장기 균형에 유리할 때, 한반도의 통일과 통일된 한반도를 균형추로 한 동북아 질서는 현실질서의 유일한 대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안정과 균형이 동북아의 지구공간정치에서 현실주의가 강조하는 개념이라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남한이 실제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남북한 사회의 통합과 동북아지역의 협력이다. 안정과 균형보다는 통합과 협력이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짓는 참된 주춧돌이다. 아니, 통합과 협력은 안정과 균형이 도달해야 할 지점이다. 남북한 사회의 통합은 동일한 형태의 사회경제체제 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느슨한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 남북한 지역의 사회구성원들은 물론 해외동포까지도 각기 다른 생활양식을 따르면서도 귀속감을 가질 수 있는 사회통합체를 형성함으로써, 남북한은 개인의 가치와 공동체의 가치가 동시에 보장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귀속감의 형성을 위해 남한은 북한주민에게 최소한의 생활조건을 보장할 수 있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북지원과 관련하여, 정부는 지원의 실질효과를 높이기 위해 양의 확보와 범위의 확대에 주력하고, 시민사회는 사회운동의 형식을 활용함으로써 민족화해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한이 생명의 원천이 되는 식량을 나눌 때, 신뢰를 잃은 북한주민은 신뢰를, 개인과 집단의 좁은 이익에만 갇혀 있는 남한주민은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순조로운 통합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이다. 대북지원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 북한에 대한 지원이 북한주민에게 도움이 되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과거 독재하에서 고통받던 남한주민들에게 국제사회의 도움이 어떠한 기여를 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둘째, 대북지원과 함께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이 필요하지 않은가? 여기서도 한 사회의 민주화와 국제사회의 압력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이 문제로 등장한다. 더 주목할 점은 의도된 내정간섭보다는 지원과 상호이해에 기초한 남북협력이 북한체제의 안정과 개방ㆍ개혁, 남북관계의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셋째, 과연 남한은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북한을 도울 여력이 있는가? 이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 군사비에서 시작하여 예상되는 통일비용이라는 개념까지 동원하여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대북지원이 결국에는 민족간의 나눔이라는 사실이다. 나눔은 평화를 위한 행위이다. 만일 나눔의 운동이 한반도의 평화운동으로까지 발전한다면, 비용편익분석의 관점에서나 민족공동체 발전의 관점에서나 남북한간의 나눔은 분명 남는 일이다. 더구나 나눔은 현재의 여유로부터 가능해지는 행동이 아니라, 풍요해지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다. 동북아의 협력은 경제와 군사 양 부문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경제부문에서 동북아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현재는 살얼음판을 걷는 상태이다.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하에서 한국ㆍ중국ㆍ일본 모두 경제운용에서 조금이라도 위험이 닥치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군사부문에서 동북아는 한반도의 분단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상호견제 때문에 이미 군사력이 과도하게 집중되어가는 지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 3국은 모두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때로는 역사의 무게 때문에, 때로는 낡은 정치문화 때문에 정부 수준의 서툰 협력 모색만이 있을 뿐이다. 한국ㆍ중국ㆍ일본 세 나라의 시민사회 차원의 협력 모색과 평화운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동북아의 지역협력과 관련해서도 중요하게 대두되는 문제가 있다. 첫째, 과연 패권과 탈패권의 논리를 극복하는 동북아 지역협력이 한중일 삼국의 관계만으로 가능한가? 미국이 빠진 협력이 과연 가능하며, 또한 한국에 바람직한가? 둘째, 동북아의 다른 국가들, 러시아ㆍ타이완ㆍ몽골은 어떠한 방법으로 지역협력에 참여시켜야 하는가? 이 두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구공간정치 차원의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패권의 위험 못지않게 탈패권의 딜레머 또한 심각하기 때문이다. 셋째, 과연 한국은 지역협력의 균형추, 나아가 견인차가 될 수 있는가? 이 점에서는 한반도가 동북아의 지리ㆍ경제ㆍ군사ㆍ문화 모든 면에서 모호하지만 '중간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과 함께 한반도가 겪은 근대사의 비극, 바로 식민지배와 저항, 분단과 통일이라는 경험이 오히려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지적되어야 한다. 현재 남북관계에서는 김대중정부의 포용정책이, 시민사회의 대북지원을 기초로 한 통일운동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다. 더욱이 '남북한 수구세력의 공생관계'라는 분단체제의 제약을 딛고 성립된 현정권이 일정하게 지닌다고 판단되는 현실타파 경향이 현정부의 포용정책에는 분명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는 97년 경제위기 이후 남한사회에서 새로운 제도가, 새로운 사회경제질서가 형성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경제위기 극복 이후의 남한사회는 결코 경제위기 이전의 사회와 같을 수 없다. 고용형태와 노사관계에서, 소득분배에서, 대외경제 관계에서,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에서,교육과 문화의 영역에서, 사회이념과 가치관에서 남한사회는 신자유주의 사회경제질서로 나아가고 있다. 시장근본주의와 세계주의가 기본원리가 되는 신자유주의 사회질서가 세계 차원의 신자유주의 질서와 결합할 때, 한반도의 통일은, 동북아지역의 협력은 가능할까? 국민경제와 민족보다는 세계시장과 자본이 우위를 차지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분단체제는 '해체-극복'되지 않고'단순 분열'하지 않을까?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의 논리만이 보편가치를 획득하면서 동북아경제를 지배한다면, 동북아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세계질서 속으로 각각 편입되지 않을까? 지금은 현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포용정책과 동북아 지역협력정책이 과연 신자유주의 사회경제정책과 조화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할 때이다. 신자유주의의 위협 앞에서 우리는 통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