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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4일 수요일 오전 02시 40분 27초
제 목(Title): 박준성/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역사강좌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박 준 성
  
1. 역사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왜 역사를 배우려고 합니까?" 하고 질문을 한다면 무어라고 대답을 할까.
나오는 대답은 여러 가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어떤 학생은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고 과거 사실을 달달 외웁니다." 하고 대답한다. "왜 역사에 관심을 
갖읍니까?" 하는 질문에 대해  회사에 다니는 어떤 사람은 "옛 이야기에 묻혀 이 
골치아픈 세상일을 잠시 잊어 보려고 역사에 호기심과 흥미를 갖지요"하고 
시큰둥하게 말하거나, 다른 사람은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 전통과 선조의 얼을 
살펴 긍지와 자부심을 갖으려고 역사를 배웁니다."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 복잡하고 혼란스러룬 현실도 제대로 알기 힘든데 흘러간 
과거 역사까지 관심가지고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하며 반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처럼 사람에 따라 왜 역사에 관심을 가지며, 역사를 왜 배우려고 하는지 
이유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역사에 대한 관심과 배우려고 하는 까닭이 시험 
점수를 잘 받고 호기심과 흥미 또는 긍지와 자부심을 충족시키는데 머물러도 
좋을까? '역사'가 현실과는 관계없는 '옛날 이야기' 또는 '과거 사실'만 연구한 
글이나 책에 지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교통 사고를 당하여 기억을 모두 잃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도무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하며 살아왔으며 현재 자신이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옳을지 
모른다.
  어느 한 민족이 역사를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민족 성원 모두가 
집단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이리 저리 헤매게 되지 않을까. 민족이 
역사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면, 민족의 현실은 지금 어떠하며, 올바로 나아갈 
방향은 어느 곳이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따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현재도 
과거가 되고 미래도 현재가 된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에 있는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의 역사이다. 미래 또한 현재의 연장선 위에 있는 현재의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를 배우려는 까닭은 '과거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를 
통하여 현실의 모순과 과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모순과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하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배워야 할까?
  첫째, 현실의 모순과 해결해야할 과제의 원인을   역사에서 찾아냄으로써 그 
과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는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므로 역사 속에는 현실의 
모순과 과제를 낳게  된 원인이 담겨져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민족사의 과제인 통일 문제를 보자. 
통일이라는 과제는 민족이 분단되었기 때문에 우리 앞에 놓이게 되었다. 왜 민족이 
분단되었을까? 우리는 분단의 원인을 가까이는 해방 후 통일된 자주 민주 국가 
건설 시기의 역사를 살핌으로써 찾을 수 있고, 아울러 통일의 방향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역사에서 경험과 교훈을 얻는다. 우리는 현실에서 모든 일을 직접 겪지는 
못하지만 과거의 비슷한 사건을 통하여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현재의 역사 과제는 과거 역사의 산물이다. 그 과제는 앞 시대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떠밀려 우리 앞에 놓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앞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과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 근현대 
변혁 운동사는 바로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변혁 운동이 어떠한 
조건에서 일어났는가, 방법과 방향은 옳았는가, 실패의 원인과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의는 무엇인가, 당시 반대 세력은 변혁운동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등을 
살핌으로써 현실에서 비슷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올바로 보고 대처할 힘을 기를 수 
있다.
  근현대사만을 보더라도 19세기 세도 정권도, 민씨 보수정권도,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도, 미군정도, 이승만 독재정권도, 박정희 유신체제도, 4.13호헌체제도 
마냥 계속되지 못하고 끝장이 났다. 언제까지나 탄탄할 것 같던  3당합당 민 
자당도 내부 권력다툼에 삐꺼덕 댈 수 밖에 없다.
  사회 모순이 심화되고, 그 모순을 해결해야 할 역사의 과제로 인식한 민중들이 
적극 노력하고 실천한 것이  모순된 체제를 끝장내는 중요한 힘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민중은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배세력이 결과물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몇가지 예를 가지고 보도록 
하자.
  1862년 전국에서 농민항쟁의 불길이 치솟을 때 안동김씨 세도정권은 삼정문란을 
해결할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였다. 농민들의 
일정한 승리였다. 농민들은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으나 항쟁의 불길이 누그러 들자 
지배세력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며 옛날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치솟는 불길을 
잠시 벗어나 시간을 벌려는 지배세력의 기만책에 농민들이 속은 것이다. 농민들은 
직접 세도 정권과 봉건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였다.
  1894년 농민전쟁은 반봉건 근대화와 반침략 자주화라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민중의 변혁운동이었다. 농민군은 탐학한 봉건통치배와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치열하게 투쟁을 벌여 1차 농민전쟁에서는  싸움마다 승리하였다. 
민씨보수정권은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고 '전주화약'을 제안하였다. 이 또한 
농민군의 일정한 승리였으나 다른 한편 이는 지배세력이  시간을 벌면서  외세를 
끌여들려는 속임수였다.
  1919년의 '3.1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한 일제는 1910년대의 '무단정치'에서 
통치방식을 '문화정치'로 바꾸었다. 이 문화정치는 3.1운동을 통하여 쟁취한 
산물이었다. 그렇지만 문화정치는 식민지 지배체제를 계속하려는 일제의 교묘한 
식민지 분할정책이었다. 당근을 앞에 내밀고 뒤에는 채찍을 감춘 문화정치에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개량과 타협, 친일의 길로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몇가지 역사의 경험 연장선에서 우리가 가까이서  겪었던 1987년의 
'6.29선언'과 만나게 된다. 나아가  이제까지 겪었던 역사의 경험과 비슷한 경험을 
앞으로 겪게 될 때 어떻게 판단하고 실천해야 하겠는가. 이들 역사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민중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여 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때 민중이 사회와 역사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는 '민중세상'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역사는 과거 또는 현실의 사건이나 삶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 준다. 사건이나 사람을 어느 한 때의 단면만을 가지고 전체인 듯 보는 
평가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올바른 역사의 평가는 시간의 흐름과 앞뒤 사정, 그 
시대의 모순과 해결해야할 과제 등을 고려하여 여러 측면에서 검토하고 종합하여 
전체상을 재구성할 때 가능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1986년 이후 떠들석했던 '금강산 댐','평화의 댐'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때 정부에서는 북한에서 금강산 댐을 만들어 물침략을 
기도하고 있다고 발표하여 공포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에 대응하여 평화의 댐을 만들어야 한다고 법석을 떨기도 하였다.  그런데 
1988년 여름이후 우리는 그때 정부의 발표가 허위 선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금강산댐, 평화의 댐 사건을 1986년 11월이라는 시점에서 정부에서 평가했던 
내용만을 가지고 평가했다면 그것은 단면만을 가지고 전체인듯 평가한 꼴이 된다. 
사건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발표 앞과 뒤에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과 1988년 
여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많은 새로운 정보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발표하기 훨씬 전인 봄부터 정부에서는 이미 금강산 댐의 실상을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왜 10월 말에야 그런 발표를 하게 되었을까 하는 점도 아울러 고려해 
보아야 하겠다. 앞뒤 흐름과 이런 저런 사정을 검토하여 보면, 금강산 댐 사건은 
당시 활발하에 전개되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발표하기 전전날인  10월 28일 
건국 대학교에서 열린 '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 학생 투쟁 연합' 발족식을 
강제로 해산한 일과 밀전하게 관련되어 있다.  더 나아가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분단된 뒤 끊임없이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민주화와 민족통일 운동을 탄압해 
왔던 다양한 사건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역사에서 현실의 모순과 과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역사적 경험과 
교훈을 얻으며 과거 또는 현실의 사건이나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얻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무엇보다 중요한 내용은 역사가 움직여 
나가는 원리와 법칙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 어떻게 움직여 나가는가 
하는 원리와 법칙은 곧 역사의 결과인 현실이 움직여 나가는 원리와 법칙이기도 
하다. 때문에 역사의 원리와 법칙을 제대로 깨달음으로써 현실을 
역사적.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깊이 깨달으면서 
자연을 인간의 삶에 적극 이용하여 왔듯이 역사가 움직여 나가는 원리와 법칙을 
인식하여 역사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역사를 배움으로써 인식의 
폭을 넓히고, 비판의식을 기르며, 역사의 원리와 법칙을 올바로 인식하여 세상을 
바로 보고 올바로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가 배워오고 알아온 역사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로 보고 
올바로 살 수 있는 힘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 그렇지 않은가? 
  
2. 역사를 보는 두가지 관점 
  사람들은 사회에서 현재 어떤 처지에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이 다름에 따라 같은 현실도 다르게 본다. 그 
사람이 현실에서 차지하는 이익과 이해 관계가 다른 이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빼았고 식민지 지배를 하던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자들은 발전이 
정체되었던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하여 근대화시켜주었다거나, 조선사람들은 
독립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민족성을 지녀왔다고 선전하였다.
식민지 지아래서 좌절하고 타협하다 친일 매국의 길을 걸으면서 자기 한몸의 
안일을 추구하던 '친일파'들은 식민지도 '살만한 세상'으로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메밀꽃 필무렵'으로 널리 알려진 이효석이 쓴 '낙엽을 태우면서'를 모범적인 
수필이라고 배우고 읽어왔다. 그 수필의 일부를 보자. 
   난로는 새빨갛게 타야 하고, 화로의 숯불은 이글이글 피어야 하고, 주전자의 
물은 펄펄 끓어야 된다. 백화점 아해층에서 코오피의 알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내 모양을 어린애 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써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제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 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색전등으로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오면 스키이를 시작해 볼까 하고 계획도 해보곤 한다. 
  이효석이 죽은 해가 1942년이니까 이 수필은 그 전에 쓰여진 것이다. 1940년을 
전후한 시기 식민지 조선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식민지 조선 민중 가운데 코오피 
향내를 맡으며 다가오는 겨울에는 크리스 마스 트리를 세우고 눈이오면 스키이를 
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이효석은 그럴 수 있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식민지 현실에 눈감았을 뿐 아니라 현실을 
숨기고, 나아가 친일 문학활동으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식민지 민중의 삶은 어떠했던가. 식민지에서도 농업과 공업 생산은 
늘어났다. 그러나 생산의 담당자인 민중은 그 결과물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없었다. 
시간이 갈 수록 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농사짓는 농민은 풀뿌리 나무뿌리, 
심지어는 거름준 깨묵을 몰래 파먹기도 했지만 목숨부지하기도 어려웠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했지만 쥐꼬리만한 임금마져 줄어갔고 
노동강도는 높아만갔다. 민중은 주위를 돌아보며 차차 내 삶의 이런 꼬락서니가 
내가 못배우고 게을러서가 아니라 식민지 지배계급인 일본인.조선인 대자본가와 
지주들이 빼았아가고, 식민지 권력기구가 억누르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통스런 식민지 노예같은 삶에서 벗어나려면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세우는 길밖에 없음을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식민지 지배자들과 
민족의 반역자들에 대항하여 민족해방동의 전선으로 힘차게 나서게 되었다.
  이로서 볼 때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생각도 다는데, 그렇다면 생각에 
따라 현실을 이렇게 보아
도 옳고 저렇게 보아도 옳다는 말인가?
식민지 지배자들과 그들의 동반자인 '친일파'들은 식민지에서 자신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계속 키켜 나가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식민지 지배체제가 
마냥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식민지 사회의 현실, 식민지의 모순과 민족의 
과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생각이 옳은 생각 일 수 
없다.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 또한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똑같은 
역사의 사실이나 사건을 놓고도 어떤 처지에서 살고 있으며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어떠한가에 따라 해석이나 평가가 같지 않다.
   1961년 '5.16'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지만 누구나 똑같이 5.16을 평가하지 
않는다. 지난번 국정 고교 국사 교과서에서처럼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국민을 
부정부패와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 민주 국가를 건설'하려고 한 5월 혁명'이라고 
평가하거나,  1990년에 바뀐 고교 국사 교과서처럼 '군사 정부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천명하고, 경제 재건과 행정 능률 및 정치안정을 강조하면서 정치 활동 
정화법을 제정하여 구 정치인의 정치 활동을 금지' 시킨 '5.16 군사 혁명'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이는 5.16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이익을 누려온 세력이나 그 
이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지배세력으로 자리잡은 층들이 지녀온 생각을 드러내는 
평가이다.  이에 비해 5.16을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짓밟은 사건이라고 하는  
평가가 있다. 이 경우에는 5.16을 '군사 쿠테타'라고 부른다.
  같은 역사의 사건이지만 생각이 다름에 따라 한 사건을 서로 다르게 평가하므로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는 역사관의 문제가 중요하다. 어떠한 역사관을 
가져야  '역사의 진실'을 바로 볼 수 있을까?  사회의 지배계급이 보는 역사는 왜 
허구일까? 이제까지 우리가 배우고  알아 온 역사 책, 역사의 평가는 역사를  
어떻게 보고 쓴 것일까? 
  
3. 지배 계급이 보는 거꾸로 된 역사 
  아마 우리가 배우고 알아 온 역사는 주로 사회에서 중요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정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지배 계급, 또는 그 하수인들이 지배계급의 생각을 
가지고 지배 계급을 중심으로 쓴 역사일 것이다. 그렇게 쓰여진 대표적인 역사책이 
중고등학교에서 우리 역사를 배우는 길잡이라고 하는 '국정' 국사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1)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국정 국사 교과서는 각각 한 가지 뿐이다. 
악법의 하나라고 하는 교육법에서 정부에서 만든 '국사'만 쓰고 다른 우리역사는 
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국사 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검인정이던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한때가 1974년부터이다. 그러면 왜 검인정이던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고쳤을까?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꾼 이유는  1972년 
유신 독재 정권 수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독재 정권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수행하려고 '10월 유신'을 단행했다고 선전하였다. 그들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정당화하려고 '국적 있는 교육'과 민족 주체성의 함양을 강조하였다. 그 수단으로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든 것이다.
  1973년과 1974년에 유신 독재 정권이 내세운 문교부 장학 목표를 보면, 국사 
교과서를 단 하나의 '국정'으로 통일한 뒤 국사교육을 강화하려고 한 의도가 
어디에 있었던가를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그 의도는 장학 목표대로 '유신 과업 
수행에 앞장서는 참다운 새 한국인', '유신 과업 수행에  앞장서는 성실하고 
능력있는 한국인' 육성에 있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나? 유신 시대 70년대 
중반부터 중고등학교에서 무엇하려고 국사를 달달 외워야 했던가? 돌이켜 보면, 
유신 시대에 학교에서 애를 써서 배운 국사는 결국유신 과업에 앞장서는 참답고 
성실하고 능력있는 새 한국인, 유신 독재 체제에 순응하는 '양순한 백성'이 
되도록하는 도구였던 것이다.
  유신 독재는 무너진지 오래됐지만 유신의 산물인 국사 교과서의 '국정'체제는 
아직까지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그 뒤의 독재 정권도 마찬가지로 국사 교과서를 
틀어쥐고 자기들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국사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부터 1989년까지 고등학교에서 가르친 국사 교과서 끝 부분은 이렇게 끝났다.
  "더욱이 제5 공화국은 정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모든 비능률, 모순, 비리를 
척결하는 동시에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민주 복지 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만큼 우리 나라의 장래는 빛날 것이다."
  올해 바뀐 고등학교 국사(하) 마지막장 '경제 성장과 사회 변화'의 끝 부분 
서술을 보자.
  "1987년 이후, 정치적 민주화가 추진되면서 노동 운동도 활성화되었다. 즉, 
임금의 인상, 노동조건의 개선, 기업가의 경영 합리화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노동 운동과 노사 관계의 합리적 조정을 
위하여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과연 제5 공화국이 정의와 민주와 복지에 충실한 정권이었던가? 6.29선언이후 
약속대로 민주화 조치가 수행됐었나? 누가 자본가의 편을 들어 노동 운동을  집중 
탄압해왔나?
   결국 '국정' 국사 교과서는 정치 권력을 독차지한 지배 세력이 자신들의 지배 
질서를 정당하다고 선전하
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교과서가 개편되면서 내용이 조금 바뀐다해도 
'국정'이라는 형식안에서 부분만 바뀔 뿐이다. '국정'제가 폐지되고 
'자유발행제'로 바뀌어야 한다.
  (2) 지배 계급의 역사는 교과서와 역사책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매일 
보게되는  언론매체에서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몇몇 단편의 예를 들어 보자. 
"우리 현실을 볼 때 아직은 분배보다는 지속적인 경제 발전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나라 사람은 반도 기질이 있어서 무엇이든 급히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고 일제 때 
식민사관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노동자를 비난하면서 자본가를 옹호하거나, 
"역대 국방 장관이나 군 참모 총장 중에 일본 육사 출신들이 있기는 하나 이들은 
독립 운동을 지원하거나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목소리 높여 친일 행위를 비호하는 
고위 정치가들의 발언이 그렇다. '당파 싸움 속에 온 백성이 굶주렸던 이조 
말기'와 '가난했기 때문에 나라를 잃었던' 과거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부모 같은 
고용주'와 '자식 같은 근로자' 사이에 불평 불만과 마찰이 있어서는 안 되고 
'화해'와 '화합'이 필요하다는 자본가의 선전도 있다. 왕과 왕비와 후궁 사이의  
사랑과 증오, 갈등에  역사를 움직여 가는 힘이 있고, 조선 시대 역사는 후궁의 
치마폭에서 놀아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TV연속극도 그렇다. 이러한 
내용들은 객관 사실이나 역사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거짓과 기만의 역사일 뿐이다. 
거꾸로된 역사가 다양한 매체를 타고 사실과 진실인양 끊임없이 선전되면서 우리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로막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지배 계급 역사의 내용과 특징, 본질은 무엇이며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자.
  첫째, 지배 계급의 역사는 '정신'이나 '이념' 또는 '절대 정신' '절대 의지' 
'신의 의지' 같은 관념적 요소들에 의해 사회와 역사가 움직여 나간다고 설명한다. 
이 '고상하고' '어려운' 그래서 '헛갈리는' 정신과 이념은 사회에서 정신노동을 
담당하는 지배층이 창조하는 것이지 '일밖에 모르는 무식한 민중'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한다. 절대 의지나 신의 의지도 지배층만이  받아서 사회에 관철시킬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한 국가나 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전쟁의 승부, 
역사의 발전, 인류의 운명이 그 시대의 왕, 귀족, 장군, 승려, 정치 지배자, 소수 
지식인 등 지배층의 생각이나 의지, 행동에 따라 이렇게도 바뀌고 저렇게도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역사를 이렇게 보니까, 지배 계급의 역사는 사회를 지탱하고 움직여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먹고, 입고, 자고, 할동하는 데 필요한  물질 생산의 중요성과 그 
담당자인 민중의 역할을 거의 무시한다. 대신 왕의 힘이 센가 약한가, 마음이 
좋은가 나쁜가, 성격이 온화한가 포악한가, 그밖의 지배자들의 신체 특성과 성격은 
또 어떠한가 등을 더 중요하게 본다.
  조선 왕조를 세웠던 힘은 이성계의 활쏘는 '솜씨'에서 나왔고, 훈민정음은 
세종이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대통령 될 자격이 귀의 위치가 눈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운명으로 타고 났다거나, 귀가 커서 민주정치를 잘 할 수 있다는 
허황한 생각도 지배 계급의 역사관에서 나온 논리이다.
  둘째, 지배 계급의 역사는 역사의 진보와 발전을 부정하며, 현재의 체재나 사회 
구조는 변하지 않고 마냥 계속되는 고정 불변의 완결체라고 본다. 그 이유는 
현실의 변화가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지배 계급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배 계급은 역사를 변화 발전 시키려는 노력과 실천을 '사회 혼란'이나 '무질서 
행위'로  몰아붙이고, 변화 발전의 과정을 '역사의 후퇴' '말세'라고 선전하며, 
'안정, 질서, 화합'을 강조하는 것이다.
  왕권이 강화되고 지배층이 안정되었을 때는 사회 질서가 유지되어 국가와 민족이 
융성했고, 반대로 지배력이 약화되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국력이 쇠퇴하여 역사가 
퇴보하거나 외세의 침입을 받아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식의 역사 
서술도 바로 지배 계급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셋째, 지배 계급의 역사는 사물의 연관성을 부정함으로써 사건과 사건 또는 
사회의 인간관계를 서로 얽혀 있는 인과 관계, 사회 관계로 설명하지 않고 '따로 
따로' 떼어 놓고 본다. 개별 분산화 시켜 파악한다. 마치 사람몸에서 팔 다리 머리 
떼어 놓고, 머리에서 다시 눈 코 입 귀를  분리하여 한 부분 부분을 독자의 전체인 
듯 봄으로써 황달이 걸려 눈알이 노래도 간과 관련된 사실을 보지 못하는 식이다.
  역사에서 고대 노예 소유주가 노예를 '말하는 도구'로서 어떻게 취급하였고, 
중세 사회에서 지주가 작인(전호 농민)에게서 지대를 어떻게 빼앗아 갔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낮은 임금과 농민의 싼곡식값 그리고  수많은 
실업자들은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고, 그 위에서 자본가와 독재권력, 제국주의 
외세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연관지어 설명하지 않고 따로 지배 계급의 업적만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이 그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 계급의 역사에서는 한 사회에서 다음 사회로 변화 발전하는 
윈리나,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관성, 다양한 현상에 스며있는 본질은 무시되기 
마련이다.
 넷째, 제국주의 침략의 본질과 민족 반역 세력의 행위를 가능하면 크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제국주의는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할 때 늘 동반자 
세력을 구하여 하수인으로 부린다.  이 때 제국주의 동반자 세력이 되어 
식민지에서도 특권을 누리며 안락하게 살던  민족 반역자들은  대개가 그 사회의 
지배 계급 출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이 되고 나서도 완전한 해방을 이루지 
못하고 그들 또는 그들의 후예들이  그대로 권력을 잡을 경우 역사까지 장악하여 
지배 계급의 반민족 행위를 감추려고 한다.
  물론 지배 계급의 역사에서도 '민족'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는 민족 내부의 
모순 대립이나 계급 사이의 갈등을 숨기면서, 민족 성원 모두는 안정 질서를 
지키고 화합을 이루며 살아야지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된다고 선전할 필요에서 
나온 강조일 뿐이다.
  이제까지 몇 가지 면에서 지배 계급 역사의 내용과 특징, 본질을 살펴 보았다. 
그러면 이러한 지배 계급 역사의 전체 의도는 무었일까?
  지배계급에게 뺏기고 눌리키는 대부분의 민중이 지배 계급의 역사에 물들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민중은 역사와 현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배자들의 재능이나 
수완은 언제나 뛰어나고, 세상은 지배자들이 움직여 나가기 때문에 그들의 지배는 
당연하며,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지배자의 억압과 수탈은  별 변화없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고, 한 사회에서 살아가도  다른 사람들은  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민중은 애써 힘을 모아 잘못된 사회를 고쳐나가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운명이나 팔자 탓으로 돌리거나, '원래부터 능력이 없으니 
할 수 없지' 하는 체념에 젖어 '열등감'과 '패배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또는, 
이러한 지배 질서가 변하지 않고 마냥 계속된다면,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나도 악착같이 동료들을 짓밟고 올라서서라도 지배자가 되어야지' 하는 '경쟁심' 
'이기주의'에 빠지게 된다. 잘못된 역사 인식에 따른 '열등감''패배주의'와 
'경쟁심''이기주의'는 민중이 역사와 사회를 올바로 보고 굳세게 단결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앞길을 가로막는 커다란 가로막이가 된다.
  지배 계급의 역사는 민중이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여 변화 
발전보다는 '안정.질서'속에서 노예처럼 살도록 길들이는 수단이다. 이러한 수단을 
써서 소수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지배 체제와 가지고 있는 이익과  특권을 계속 
지키려 한다. 지배 계급 역사의 본질과 의도가 이렇다면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4. 역사를 올바로 이해 하려면
  - 민중의 바로 보는 역사 - 
  역사를 바로 보려면 먼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겠다.  이는 역사의 변화 
발전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은  역사의 주체가  노동과 투쟁을 
통하여  역사를 변화 발전시켜 온 민중이라는 사실을 제대로이해 하는 것이다. 
1) 역사 변화 발전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 
  세상의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자연도 사회도 사회를 이루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이나 생각도 변한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만이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현실도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고정불변체가 아니라 
변화 발전해 나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지배 계급은  "세상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자, 불평등은 어느 때나 있어오지 않았나?." 하면서 변화 
발전을 부정하고 현재의 모순을 당연하게 본다.  정말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금새 많은 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변화하고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대강 훑어 보자.  까마득한 옛날 원시 
공동체 사회는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사람 따로 있던 
사회가 아니었다.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는 능력이 아직 낮았기 때문에, 
누가 일하지 않고  남이 일한 것을 가로채  혼자만 배불리 먹는다면 사회 성원 
모두가 살아 나갈 수 없었다. 모두가 일하고 서로 나누어 써야만 했다. 그러면  
빼앗고 누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원시 공동체 사회는 사람살기 바람직한 '이상 
사회'였을까. 그렇지는 않다. 먹고 살기가 넉넉하지 못하였으며, 자연의 법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자연의 지배를 크게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도 낮았다.
  고조선이나 삼국시대와  같은 고대 사회에서는 생산 능력은 높아졌으나 사람들이 
일하는 노예와 그 노예를 소유한 노예 주인으로 나뉘었다. 노예 주인은 노예를 
짐승처럼 부리거나, 물건 처럼 사고 팔거나, 죽일 수도 있는 '말하는 도구'로 
취급하였다. 고대 사회에는 노예 주인이 죽으면 산 노예를 죽여서 죽은 노예 
주인과 함께 묻는 '순장'이라는 제도가 있다. 노예 주인은 죽어서도 편히 모셔져야 
한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노예의 처지가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 주는 
예라고 하겠다.  이처럼 고대사회에서 주된 생산을 담당하던 노예는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며 살아갔다.
  중세 사회로 들어와, 지주의 땅을 얻어 부치고 수확물의 반을 소작료로 빼앗겼던 
조선 시대 농민들의 생활을 보자. 농민들은 대부분 상놈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양반에게 절절 매며 살아야 했다. 상놈인 농민은 나이가 제아무리 많아도 나이 
어린 양반 자식에게 '예,예'하며 굽신거려야 했다. 조선시대는 양반 상놈, 
위아래가 엄격하게 나누어진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이다.
  양반 가문의 자손이 아닌  대부분 사람들의 조상은 조선시대 '아래것' 상놈으로 
신분차별을 당하며 살아야 했다.  자신의 조상이 그랬다해서 지금에 와서 부끄러워 
할 것도 없다. 반대로 자신이 양반의 핏줄을 이어받았다고 내세우며 크게 자랑할 
일도 못된다. 그런 사람의 조상인 양반은,  양반이랍시고 말 갓 배운 아이놈조차도 
어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크고, 평생을 고된 땀방울 흘려본적 없이 일하는 
상놈 등쳐먹고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노동자는 어떻게 살고 있나? 자본가인 공장의 사장이 죽었다고 목숨을 
앗겨  같이 묻히는 경우는 없다. 부모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르게 크기는 
하지만 날때부터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는 신분으로 나뉜 채 태어나지는 않는다. 
고대사회의 노예나 중세사회의 농민보다 나아진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지금이 
노동자가 자신의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고, 사회에서 주인 노릇을 하며 인간답게 
살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여기까지 흘러온 이런 세상이  
앞으로 변하지 않고 마냥  계속될 것인가?
  역사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 왔다. 숱한 사람들이 역사 변화 발전의 
흐름을 가로막거나 뒤바꾸려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파멸당하고 말았다. 
고대사회의 노예소유자들, 중세사회의 봉건지배자들,  독일의 히틀러나 일본의 
군국주의자들, 우리 현대사에서  독재자의 마지막 간 길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어떤 '시대'나 '조치'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역사에 
오점을 남긴채 막을 내리는 경우 또한  수없이 많았다. 유신 독재 시대와 4.13 
호헌 조치가 가까운 예다. '시대'와 '조치'가 막을 내림에 따라 그 주인공들 역시 
총 맞거나 떠밀려 '독재자'라는 이름을 남긴채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져 갔다.
  역사를 보면 과거의 결과인 현재가 과거와 다르듯이 현재의 결과인 미래도 
현재와는 분명히 다르리라고  예견할 수 있다. 현재와 과거가 다른 까닭은 그 
사이에  변화와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가 현재와 다를 수 있는 까닭은  
현재가 고정불변한 채 마냥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가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하여 역사 변화 발전의 가능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올바른 역사 인식의 출발점이다. 
 2) 역사 변화 발전의 법칙성과 실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역사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변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면, 
역사는 과연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할까? 역사는 우연의 반복으로 혼란스럽게 
갈팡질팡 '지랄탄' 튀듯이 마구 움직여 왔을까?
  역사의  변화 발전에도, 자연의 법칙과 꼭 같지는 않지만 일정한 법칙과 원리가 
있다. 그 법칙이 역사가 변화 발전하는 과정에 관철되는 것이 역사의 
(합)법칙성이다. 역사의 법칙과 법칙성은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하건 안 하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개개인이나 집단의 의사와는 독립하여 작용한다.
  몇몇  사람들이 중세 사회 귀족 양반들의 풍류 생활을 부러워하여 중세 사회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역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시 중세 봉건 사회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반동의 시기가 있기도 하고, 발전이 
더딘 곳도 있으나 역사의 법칙에 따라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왔기 
때문이고, 그 반대로 가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연 과학에나 법칙이 있지 사람 살아가는  역사에  
무슨 법칙이 있느냐." 면서 역사 변화 발전의 법칙을 무시하거나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는 것같다. 이는 역사의 변화 발전 법칙을 부정하는 지배 계급의 역사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연과 관계를 맺고 살아오는 과정에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서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연의 법칙을 발견해왔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역사가 발전해 온 과정을 돌이켜 살펴보고  사회가 움직여 
나가는 원리를 탐구해 가는 과정에서 역사도 일정한 원리와 법칙에 따라 움직여 
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 변화 발전의 법칙을 따로 
좀더  연구하고 학습하여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역사 변화 발전의 원리와 
법칙에 대한 인식은 오래 살고, 경험이 많고,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안다고 하여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부족한 대로, 역사의 법칙이 작용하여 역사가 변화 발전해가는 원리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사회와 역사는 인간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먹고, 입고, 자고, 
활동하는데 필요한 물자를 생산해야 한다. 물자는 인간이 노동을 하여 생산한다.  
노동하는 사람이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사회 역사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에 의한 생산은 인류사회가 존재하고 역사가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조건이며 기본동력이다.
  인간은 자연의 제약을 받지만, 역으로 자연의 법칙을 이용하여 자연을 인간이 
살기에 편하게 적극적으로 지배  개조 이용해왔다. 인간은 노동으로 자연을 지배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 자신까지도 변화시켰다. 인류가 동물과 달리 두 발로 서서 
다니고, 손을 자유롭게 쓰고, 도구를 사용하고, 말을 자유롭게 하고, 두뇌를 
발달시켜 의식할 수 있데 된 것은 노동을 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간은 노동을 
함으로써 인간이 된 것이다. 
인간이 노동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인간답지 않고 짐슴같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짐승같은 놈들!"이라고 할 때 그 대상이 어떤 존재들인가를 생각해 보면 
이 뜻을 이해기 쉬울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변화시켜 물질을 생산하려면 노동을 할 수 있는 인간과 생산에 
필요한 수단이 있어야 한다. 이 인간의 노동력과, 인간이 노동하여 이룬  생산 
수단을 합하여 생산력이라 한다. 그래서 생산력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하는 것은 
생산활동에서 얻은 경험과 노동의 숙련도, 생산 지식이 포함된 노동력 수준이 어느 
정도이며 생산 수단이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말한다.
  생산 수단은 노동 도구와 노동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노동 도구는 쟁기, 기계, 
설비 등 생산에 필요한 도구이고, 노동 대상은 인간이 도구를 가지고 노동을 하여 
완성된 물품으로 만들 재료나 원료를 말한다. 노동 대상에는 인간이 노동을 하여 
만든 가공한 재료 원료와 함께 자연상태 그대로인 재료 원료가 있다.  원시림 
상태의 나무는 자연상태 그대로인 재료이지만 목재나 펄프는 노동하여 만들어진 
원료이다. 바다속에서 헤엄치는 고기와 잡아서 냉동한 고기도 마찬가지이다. 이 
노동 대상 가운데 생산력에는 인간이 노동하여 만든 가공한 재료와 원료만이 
포함된다. 생산력은 인간에 의한 사회의 생산력을 말하기 때문이다.  생산력에서는 
살아있는 인간의 노동력이 가장중요한 요소이다. 생산 수단도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도구가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이 작동되려면 노동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사람들은 물질 생산을 둘러싸고 여러 형태로 서로 관계를 맺는다. 어떤 
사람은 직접 생산에 참여하
고, 어떤 사람은 생산 수단만 소유하고 일은 하나도 안한다. 또 생산물을 서로 
분배하고 교환하고 소비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물질 생산을 둘러싸고 맺게되는 
인간 관계를 생산 관계라 한다.생산 관계의 여러 측면에서 가장 기본적인 관계는 
생산 수단의 소유에 따라 맺는 관계이다. 한 사회는 사회에서  생산자와 
생산수단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느냐, 생산 수단을 누가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계급 사회와 무계급 사회,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나뉘어 진다. 원시 공산제 
사회처럼 생산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회는 무계급 사회라고 한다. 반면에 고대 
노예제 사회부터는 사회의 중요한 생산 수단을 소수 사람들이 틀어쥐게 되는데, 이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들이 지배계급이 되고,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피지배 계급이 되는 계급사회가 된다. 그래서 계급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을 차지한 
소수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억누르고 착취한다.
  생산 관계는 생산력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생산력 수준과 동떨어진 생산, 교환, 
분배, 소비는 가능하지 않으며, 이를 둘러싼 인간 관계가 따로 이루어질 수도 
없다. 고대 노예제 사회나 중세 봉건제 사회의 생산력 수준에서는 그에 걸맞는 
생산 관계가 형성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와 같은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생산 관계가 그 이전 사회에서는 형성되지 못한다.
  생산력과 생산 관계는 한 사회에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방식, 곧 생산양식을 
결정한다. 노동을 통한 생산이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가장 기본 조건이므로 
생산양식에 따라 한 사회는 다른 사회와 구분된다.
  한 사회는 물질의  생산, 분배, 교환, 소비 과정에서 맺는 생산 관계의 총체, 곧 
사회의 경제제도가 사회의 토대를 형성하고, 그 토대에 따라 정치 법률에 관한 
견해, 도덕, 예술, 철학, 종교 등과 그에 따르는 국가, 정당, 사회 조직체 같은 
제도, 기구, 조직들이 형성된다. 토대위에서 형성되는 이데올로기 견해 이론과 
그에 따르는 제도 직을 사회의 상부구조라 한다. 이 상부구조는 토대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토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생산 양식을 이루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으며  
역사의 변화  발전에서 서로 어떻게 작용할까?
  생산력 수준에 따라 생산 관계가 이루어지지만 생산 과정에서 인간의 경험과 
지혜가 쌓임에 따라 생산력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그에 비해 한번 이루어진 생산 
관계는 쉽게 변하지 않고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된다. 그리하여 어느 단계에 따르면 
그때까지의 낡은 생산 관계가 생산력이 계속 발전하는 것을 가로 막는다.
  예를 보자.  노예제 사회는  원시 공산제 사회에 비해 생산력이 높아졌다. 노예 
소유주가 노예를 가혹하게 착취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결과이다. 노예의 불만이 
차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노예는 날카롭고 가벼운 생산 도구를 파괴하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자 노예 주인은 집어 던지고 부수려고 해도 잘 안되는 무겁고 
둔탁한 도구로 바꿔버렸다. 일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조선 후기에  농업 기술이나 도구 등 여러 면에서 농업 생산력이 발전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독 탈곡기류는 잘 발달되지 않았다. 까닭은 탈곡기류가 
발달하여 가을에  나락을 정갈하게 거둬두면 지주가 빼앗아 가는 몫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정갈하지 못한 씨앗을 종자로 쓰게 되면 농사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덜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사실이다. 농민들은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켰지만 땅을 
가진 지주는 예전처럼, 또는 더 많이 빼앗아가려고 하니까 농사지을 의욕이 커질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떠한가? 기계가 자동화되거나, 새로운 것으로 바뀌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줄어드나? 오히려 공장의 노동자 가운데 일부는 해고되고, 
노동시간이 줄어들기는 커녕 시간은 같으니까 노동 강도는 높아지는데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만든 물건을 사 쓸 수 없게 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몇몇 예를 들어 보았는데, 이처럼  낡은 생산관계가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게 
되면 생산력의 주 담당자이며  노동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온 
생산자들은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는 낡은 생산관계를 부수려고 한다. 반면 낡은 
생산관계에서 생산 수단을 소유한 지배 계급은 그때까지의 생산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특권과 이익을 누리려 한다. 여기세서 생산력 발전을 담당해온 
생산자와 낡은 생산 관계를 유지하려는 지배 계급 사이에 필연적으로 계급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계급 투쟁의 결과 낡은 생산 관계가 무너지고 발전된 생산력에 걸맞은 새로운 
생산 관계가 수립되어 토대와 생산 양식이 바뀌고, 이과정에서 정치, 법, 윤리, 
철학, 종교, 예술에 관한 이론이나 제도, 조직, 기구 등 상부 구조가 서서히 또는 
급격하게 변화하여 한 사회 전체가 다음 사회로 발전하는 것이 사회 혁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 투쟁이나 사회 혁명은 사회를 혼란 시키거나 역사를 
후퇴시키지 않고, 오히려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낡은 둑을 트고 물꼬를 넓혀 
역사를 힘차게 진전시켜 나가는  추진력이다.
  역사는 이처럼 노동을 통한 생산력 발전과 낡은 생산 관계를 부수는 계급 투쟁이 
서로 작용하며 변화 발전해 나간다. 그래서  역사를 노동의 역사, 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역사의 변화 발전은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더욱 풍부하게 
생산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고,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보장되는 사회, 계급이 소멸되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가 
없어지고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이 사회와 역사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향하여 
끊임없이 전진해 온 과정이다.
   역사의 변화 발전이 필연적이고 합법칙성에 따라 진행된다면 사람들이 아무 일 
안하고 팔짱끼고 멍하니 앉아 하품만하고 있어도 바람직한 사회로 나간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자연은 어두운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자연히 오지만 인간해방의 새벽과 봄은 자연히 오지 않는다. 
낡고 썩은 사회 체제에서 물질적 이익 뿐만 아니라 모든 즉권을 누리는 지배 
세력은 반드시 새로운 세력의 힘으로 거세되고 새로운 사회 체제가 형성된다. 
그러나 저절로 사회가 바뀌지는 않는다. 사회에서 경제력을 틀어쥐고 있는 지배 
세력은 국가 권력을 장악하여 폭력을 행사하고, 중요한 선전 수단을 장악하여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역사 변화 발전을 
가로막고 낡고 썩은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의 법칙을 인식하여 사회의 모순과 과제를 해결하고 역사를 
진보시키려는 의식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인간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 
법칙을 이용하여 물레 방아를 만들고 수력 발전을 하였다. 그렇듯이 인류 역사의 
변화 발전은 객관적 역사 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인간은 이 법칙을 인식하여 
역사의 변화 발전을 가로 막으려는 낡고 썩은 세력과 질서를 깨뜨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역사를 변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3) 역사 변화 발전의 주체와 역사적 삶 
  우리는 앞에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역사에 일정한 법칙이 있고, 또한 
역사를 변화 발전시키려는 의식적인 실천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면 모든 
인간이 다 역사 변화 발전의 주체라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역사의 변화 발전을 
가로막은 세력은 역사 변화 발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러면 누가 역사 변화 발전의 주체인가? 요즈음은 너도 나도 스스럼없이 
민중이라고 대답한다. 민중은 누구이고, 왜 민중을 역사 변화 발전의 주체라고 
할까?
  민중은 사회에서 주요한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채 노동을 통하여 자기 삶을 
꾸려가는 노예, 농노, 노동자 같은 피지배 기본 계급을  중심으로, 그 사회의 모순 
때문에 피해를 보고 고통을 당하는 광범위한 층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민중은 첫째, 노동을 하여 물질적 재화를 생산함으로써 사회를 지탱하고 
역사를 발전시킨다. 노동하는 사람이 노동을 멈추면 인류의 역사는 정지되도 
만다.  아무리 훌륭한 위인도,  노동자 농민을 이야기하면 사팔눈을 하고 덤벼드는 
'순수'예술가도 민중의 생산 활동이 없다면 얼마못가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귀신이 될 것이고, 정치도, 과학도, 문화도, 예술도 그밖의 어떤활동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민중은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는 변혁의 중요한 
힘이다. 민중은 사회의 생산력을 담당하는 한편, 더 이상의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는 낡은 생산 관계를 무너뜨려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또한 침략자들을 물리쳐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보전하는데도 가장 앞장서서 싸웠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부패한 봉건 체제를 깨뜨리고 근대 민주 사회를 건설하며, 
기어들어 오는 침략 외세를 물리쳐 나라의 자주 독립을 보전하려고 싸웠던 1894년 
갑오 농민 전쟁, 기울어 가는 나라를 구하려는 한말 의병 전쟁,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하의 민족 해방 운동, 해방후 통일된 자주 민주 국가를 세우려는 운동 
등에서 가장  앞장서서 힘차게 싸워온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그들은 당시의 집권 
지배 세력도, 지주도, 자본가도 아니었다. 노동하여 생산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민중이었다.
  가까이 1987년의 '6월 민주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을 보자. 민중이 
전국에서 들고 일어나 '4.13 호헌'을 철폐하고 '6.29선언'을 얻어냈다. 한 사람이 
고독하게 결단하여 던져준 고뇌의 산물이 아니었다. 바로 민중이 스스로 권력을 
쟁취하지는 못했으나, 노동자들은 거제에서 구로까지 전국 곳곳의 공장에서 파업 
투쟁을 벌여 예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정도로 '민주 노조'를 건설하였다. 
노동자들의 민주 노조는 자본가들이 선심써 던져준 먹다 남은 떡부스러기가 
아니었다.
  우리 시대의 과제인 민주화와 민족 해방, 민족 통일은 소수 지배 세력이 해결할 
수 없다. 오로지 민중의 모아진 힘으로만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소수 지배 
세력은 오히려 독재와 종속, 반통일의 담당자일 뿐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역량과 역할이 급격하게 커진다.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할 수록 노동자 수가 늘어난다.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자본주의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들은 대규모  집단으로 모여 생산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또한 공장에서 하는 노동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며 모든 동작이 기계의 제약을 
받고 서로를 제약한다. 이처럼 생산 과정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노동자들의  
조직화하기 쉽고, 일상 생활에서 노동자는 조직에 필요한 인내, 규율, 협동, 단결 
등의 자질이 훈련된다. 또 노동자는 한 공장이나 한 지역에서 몇천 몇만 명이 함께 
노동하게 됨으로써 계급 의식을 공유학기 쉬우며 투쟁의  지혜와 힘을 집중하기에 
유리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민중의 과학이나 사상이 없었는데 
이제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서는 노동자의 과학과 사상의 무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대공업이 발전함에 따라  교통과 통신 수단도 발전하게 되어  노동자들의 단결을 
촉진시키고 여러곳의 노동자들을 재빠르게 연결시켜주게 되었다. 그전에 농민들이 
한 번 가려면 몇달 며칠이 걸려야할  거리를 노동자들은 철도와 고속도로를 통하여 
몇일 몇시간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지역과 지방, 전국 나아가 
세계적 조직과 단결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사회가 지니고 있는 기본 모순의 직접 
담당자이다. 그래서  가장 많이 착취당하고 억압받는다. 모등 생산 수탈을 박탈 
당하여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어리 노동력밖에 없는 노동자가 사회변혁에서 잃을 
것은 억압과 착취의 쇠사슬 뿐이고 얻을 것은 희망찬 노동 해방의 새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적극 참여한다.
  노동자들이 조직된 집단의 힘을 가지고 파업 시위를 벌일 때 그 힘은 엄청나다. 
모든 공장의 움직임을 멈
출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의 발을 묶을 수 있다. 노동자가 노동을 멈추면 모든 것이 
정지된다. 노동자의 노동의 힘은 이처럼 변혁의 힘도  된다.
 셋째, 민중은  물질적 재화의 생산과 사회 변혁뿐 아니라 건강한 문화를 창조하여 
삶을 풍부하게 한 정신 
문화의 담당자이기도 하다.
  민중은 노동을 하여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자를 창조했을 때 느끼는 기쁨, 
노동의 산물을 수탈당하는데 대한 분노, 사회를 변혁하려는 투쟁에서 승리했을 때 
느끼는 환희, 패배했을 때 다가오는 좌절의 고통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 전설, 글, 
노래, 춤, 그림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민중의 문화는 노동과 집단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창조와 진보의 편에 섰기 때문에 개인적이거나 이기적이거나 
퇴폐적이지 않은 건강함을 지니고 있다.
  또한 민중의 건강한 생활과 위대한 창조력은 뛰어난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따. 
자연 과학의 발전, 위대한 발명과 발견도 민중의 창조적 노동과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민중의 생산과 투쟁, 그리고 문화 창조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며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원천이다. 그리고 민중이 역사에서 한 역할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넓혀져 왔으며, 마침내  노동자가 해방되고 인간이 해방되는 사회를 이루어내는 
방향으로 역사는 변화 발전하여 온 것이다.
  역사 변화 발전의 주체가 민중이라면 개인의 역할은 역사에서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어느 한 개인의 위대한 발명, 발견이나 변혁운동에서 
지도자가 하는 역할은 생산력 발전,  계급 투쟁과 사회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리 탁월한 개인이라도 역사의 큰 흐름을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어떤 특정한 사건의 진행
을 빠르게 하거나 늦출 수는 있다. 몇몇 사건의 발생을 억제하거나 방향을 틀어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탁월한 개인의 뛰어난 활동이 개인의 우연한 예측이나 
천부적 재능의 결과가  아니라, 역사의 경험과 사회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개인이 노력한 결과 이루어진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을 올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세종 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를 보자. 한글이 단순히 세종 대왕의 
능력이뛰어났다거나, 심성이 고와 '백성을 어엿비 여겼기' 때문만으로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한글은 당시 '백성의 글'을 만들지 않으면 안될 조건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지배 세력이 '백성'을 누르고 빼앗는 것이 정단하다고 
가르치면서 다스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고려시대에 비해 '백성' 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에 '훈민 정책'의 수단으로 '훈민 정음'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변혁 운동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갑오 농민 전쟁의 농민군 지도자였던 
전봉준도 혼자 힘이 세거나 머리가 아주 비상해서 지도자가 된 것은 아니다. 변혁 
운동의 지도자는 역사의 발전 법칙과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를 올바로 인식하고, 
민중속에서 민중과 함께 민중의 진정한 요구와 이해를 실현하려고 역사적 과제와 
사회 모순을 해결하려는 투쟁에  온 몸을 던져가며 헌신적으로 앞장서는 사람이다.
  역사는, 역사 변화 발전의 주체인 민중과 역사 발전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 
역할을 하는 위대한 인물이나 지도자가 올바로 결합했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민중이 역사 변화 발전의 주체임을 깨닫고 역사의 전면에 올라와 해방의 
주역으로 나서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앞서 본대로 낡고 썩은 소수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이익을 계속 지키려고 수많은 경제 수단과 효과적인 정치 권력 
도구, 그리고 지배 계급으로서 지배해온 계급 사회의 오랜 경험을 자유 자재로 
활용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선전 수단을 틀어 쥐고 잘못된 사회 체제를 별 문제 
없다고 정당화하며, 민중에게 끊임없이 환상과 허위의식을 불어넣는다.
  외세와 독재 권력, 독점 자본이 지배하는 분단된 사회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여 경쟁에서 이기면 너는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잘못된 교육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앞에서 살펴본 지배 계급의 역사도 그러한 교육의 중심 
내용을 이룬다. 따라서 왜 올바른 역사인식, 역사 변화 발전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필요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배자들의 삶이나, 그들이 불어넣어 준 환상과 거짓 생각에 물든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삶은 올바른 삶이 아니다. 노예같은 삶일 뿐이다. 자신의 노예같은 
상태를 깨닫고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은 이미 노예적 
존재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노예 상태를 감수하는 자는  
언제까지나 노예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 가운데서도 노예같은 생활을 
기쁘게 묘사하면서  자신의 주인이 정당하고 훌륭하다고 찬양하는 자는 천박한 
환락에 빠져있는 멍청이거나 꼭두각시 노예일 뿐이다.
  이런 노예적 삶에서 벗어난 역사적 삶은 스스로가 역사 변화 발전의 주체임을 
깨닫고, 잘못된 현실이 마냥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변화 발전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신하며, 역사 변화 발전의 법칙을 인식하여 사회의 모순과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려고 주체적으로 노력하고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삶이다.
  그리고 역사적 삶은 저 혼자 따로가 아니라 민중으로서, 민중속에서, 민중과 
함께 역사를 변화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면서 해방되는 삶이다. 
우리가 이제 '거꾸로 된 역사'에서 벗어나 '바로 보는 우리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는 근본 이유는 바로 역사적 삶, 해방의 삶을 살 수 있는 무기를 얻고 
해방의 새역사를 창조하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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