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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5년07월25일(화) 01시09분41초 KDT
제 목(Title): [러'新刊:한반도문제-새로운 시각]④北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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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제공시각 : 07/24 09:20
 제목 : [러'新刊:한반도문제-새로운 시각]④北韓, 韓-蘇수교에 核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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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聯合) 李炳魯특파원=북한의 韓-蘇수교라는 소련의 공식입장을 전달받
고 "자력으로 몇가지 형태의 무기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核개발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토르쿠노프 MGIMO총장의 저서에서 밝혀진 새로운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90년  9
월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외무장관의 평양방문시 소련의 결정을 공식통보받고 이미
核무기 개발의사를 분명히 했다.
과 외교관계를 갖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이에대해 북한측은 다섯가지 불가론을 펴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을
우려하고 이렇게되면 북한이 자력으로 무기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다음은 韓-蘇수교관련해 토르쿠노프총장의 저서 `한반도문제-새로운 시각'에 기
술된 韓-蘇수교관련 부분의 요약이다.

    『▲고르바초프 新사고와 한반도 안정문제
    80년대말 소련이 선택할 수 있는 한반도 정책에는 3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번째는 종전처럼 북한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며 이는 실질적으로 존재하
는 두개의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방향을 급선회해 한국을 정치,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것이었다. 세번째는 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기존의 對북한 친
선관계는 유지하면서 한국과의 경제, 정치, 문화협력을 실질적인 외교적 승인의 수
준으로 높이는 것이었다.
    결과는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한국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협력상대자로
맞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기에 앞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90년  9
월2일과 3일 양일간 평양을 방문했다. 셰바르드나제는 당시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
에게 소련이 한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셰바르드나제는 한국
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하고 소련사회의 여론이 공식외교관계 수립을 원하고 있
으며 한국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는 북한 지도부의 이해를 구하지 못했다. 대신 북한은 외교관계 수립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했다. 평양당국은 한국과 소련의 외교관계 수립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1)한반도 분단을 공고화하고 통일의 저해요인이 된다.
    2)북한을 국제사회로부터 격리시킨다.
    3)북한의 사회주의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한국-미국-일본의 동맹이 형성된다.
    4)한국과 소련의 국교정상화는 북한으로 하여금 자력으로 몇가지 형태의 무기를
만들도록 강요할 것이다.
    5)한민족의 통일노력을 좌절시킬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관영 언론매체에서는 한국과 소련의 국교정상화와 관련해 反蘇캠
페인이 전개됐으며 여기서 소련 지도부와 소련의 정책이 신랄하게 비판을 받았다...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문제에 있어서 소련 지도부내에서도  모두  한가지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 고르바초프의 측근중 프리마코프의 경우 국교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후에 프리마코프는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소장으로
써 한국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또 셰바르드나제를 위시한 소련 외무부도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한국과  외교관
계를 수립하는 방안을 선호했다. 셰바르드나제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도 안고 있었다. 그는 88년 5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남을 만나 "공
산주의자로서"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분별하고 성급한 발언 때문에 셰바르드나제는 스스로 손발을 묶었고 이때문
에 그는 점진적인 정상화를 주장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자연스럽게 대통령 측근과
외무부직원들 간에 對韓 외교정상화 문제를 놓고 "내부 주도권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韓-蘇관계정상화는 한반도 문제에 관해 소련 정치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는 한반도 안정방안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라는  입장에서도  그렇
고 소련의 국가적 이익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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