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일 목요일 오전 12시 24분 27초 제 목(Title): 김영민/아직도 원숭이는 웃는다 아직도 원숭이는 웃는다 가톨릭 교회가 교의와 체제를 정착시켜 가던 6세기 말엽, 63명의 감독과 감독 대변인들이 모인 메이콘 회의(Council of Macon)에서는 ‘여성도 인간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합의에 이르지 못한 탓에 표결에 부쳤는데, 32 대 31의 근소한 차이로 여성은 결국 인간종(種)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진화론 논쟁이 한창이던 19세기 말, 창조론자들이 이론의 진의를 놓친 채 애꿎은 원숭이들을 비하하며 인간의 종적(種的) 차별성을 선포하자 전세계 원숭이들이 달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남자들이 하는 짓이란 게! 달밤에 원숭이 하품하는 소리 담론과 현실의 경계는 늘 복합적이지만, 서구에서 자생한 페미니즘 논의는 여성 권익의 실질적인 향상에 기여하는 한편, 남성중심적 제도와 편견 속에서 원천적으로 금제돼온 여성적 상상력을 주도하고 이를 구체화시키는 동력으로 기능해왔다. 구미에서는 이미 여성과 남성 사이의 제도적 ‘평등’을 정착시키는 단계를 훨씬 넘어섰다. 여성의 ‘차이’에 대한 섬세하고 속깊은 이해 위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사회적 균형과 활성을 진작시키는 태도와 관습은 쉽게 눈에 띈다. 우리의 근대화가 ‘발효형’이 아니라 급속한 템포로 수입과 이식에 분주했던 ‘전시형’이었던 만큼, 근대화의 정신문화적 측면이 비교적 소홀히 다루어졌을 것은 당연하다. 성차, 세대차, 그리고 취향과 이념의 차이가 격심하고 투박해서 심지어 불통과 절맥에 이르고, 따라서 광범위한 공적 합의에 의해 사회운영의 원리와 철학이 구성되기 어려웠던 점에도 이러한 배경이 있다. 이른바 ‘비동시성의 동시성’ ‘타자화’ ‘문화잡탕주의’, 그리고 ‘정체성의 위기’니 하는 현상들도 다 비슷한 문제군들이 뒤섞여 만든 것들이다. 그 와중에서, 탈근대의 급진적 기획들이 흩날리고 있는 지금도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남근중심주의는 그 완악함이 정도를 넘어선다. 정녕 “서구화와 근대화의 주술이 풀리고, 억압된 자들의 귀환이 속속 이어지지만, 이들의 귀환행렬 속에서 (동아시아)여성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이세영)은 것일까. 얼마 전 보도된 남성접대부 고용 금지법도 이런 맥락에서 나를 경악게 했는데, 정작 경악스러웠던 것은 더불어 경악하는 동료들이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5월20일 입법예고된 식품위생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은 남성접대부의 고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남성접대부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술을 따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이것은 근년 들어 접한 소식 중에서 단연코 가장 후안무치하다. 게다가 입법의 취지로 내세운 것이, “주부들의 탈선으로 인한 가정파괴를 예방하고 산업역군들이 호스트바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니, 그야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다. 수백만의 여성접대부들을 농축근대화의 뒤풀이 터에 배치해 놓고 노래와 술은 말할 것도 없이 지근지처(至近之處)의 엉덩이를 더듬느라고 날밤을 새우는 수백만의 남성들이여,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이따위 달밤에 원숭이 하품하는 소리를 끌어모아 법령이라고 음성에 힘을 주는가. 물론 여성계 일각에서는 남녀평등의 원칙을 상기시키는 수준의 성명과 항의를 내놓았다. 그러나 내게 그 항의는 의례적인 것으로 보였고, 이 철면피한 남근중심주의의 실체와 그 문화사회적 함의를 간파하고 그 문제성을 발본적으로 성찰하는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그 음험하고 투박한 남근중심주의 우리 사회에서 이런 종류의 사안을 건드리는 것이란 그저 천지신명이 애써 도우시면 본전치기로 끝나는 법이다. 특히 남성, 더더욱 나 같은 독신 남성으로는 내 몸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상함’도 견디기 벅찬 터에 중뿔나게 나서서 무슨 별종의 페미니스트 게릴라를 자처할 일도 아니다. 이것이 단순히 특정한 사안과 관련한 남녀의 제도적 평등 문제일 뿐이라면 나는 침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프로이트의 말처럼 ‘초남성주의적 국가 이데올로기’가 그 검은 속을 온통 드러내보이는 중대한 실언이다. 피상적 근대화의 정점을 과시하고 그 거품에 탐닉하면서도, 우리 삶의 기본인 남녀관계에서 기초적 합리성조차 갖추지 못한 채 그 음험하고 투박한 남근중심주의를 규모없이 드러내는 꼴이라니. 이 시행령은 여성의 자리와 그 사회적 위상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보고일 뿐 아니라 세계화를 떠들며 부풀어 있는 우리 사회의 근대화 수준을 단적으로 증거한다. 나 역시 한국사회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이익을 은근히 누려왔던 터, 웬만하면 함구하려고 했는데 오늘이 마침 오월 보름이라 달은 밝고 뒷산에는 원숭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심기를 못 이긴 탓에 이 글을 쓴다. 김영민/ 한일대 교수·철학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