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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6월 30일 수요일 오후 03시 48분 10초
제 목(Title): 진중권/ 반박문


 

  이글은 제8호 <대자보> '격돌! 논쟁 한 마당'에 게재된 변희재 정치부장님의 
'진중권, 니 얼굴에 침을 뱉으마!'에 대한 진중권님의 반박문입니다.
  언론의 기본 책무인 '반론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우리 <대자보> 
독자들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지난번 장기표 선생님과의 논쟁처럼 이곳 
'격돌!, 논쟁 한 마당'에 게재합니다.
  아울러 이 자리를 빌어 멀리 독일에서 이 글을 보내오신 진중권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글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무제(無題) 

  변희재라는 친구의 글을 보았다.  그냥 무시하려다, "정치부장" 씩이나 하는 
것을 보고 맘을 고쳐먹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NL아니면 PD계열의 활동가인 것 
같다.  왜? 

  한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NL과 PD.... 

  굳이 어느 쪽이냐 말하라면 나는 NL쪽에 걸겠다.  왜?  이런 식의 자화자찬은 
NL특유의 화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 추측이 맞는다면, 나는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그는 왜 하필 강준만에 대한 내 글을 문제삼았을까?  NL을 비판한 글이 
아니라.  나는 이게 궁금하다.  왜 그는 PD를 슬쩍 끼워넣고, 나아가 강준만까지 
내세우는 걸까?  내 추측이 맞다면, 그는 지금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강준만이라는 개인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 소리는 그냥 잊어 버리라. 변희재씨는 사람을 잘못 봤다.  아, 내가 
인격자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의 말대로 나는 나쁜 놈인데, 다만 그가 나를 너무 
쉽게 본 거 같다. 

① 본론으로 들어 가자. 내가 왜곡했다고 그가 주장하는 부분을 보자. 그가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하는 데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이 부분일 게다. 나름대로 
상당히 설득력도 있고, 사실 이 부분을 빼면 그의 글에서 읽어줄 게 별로 없다. 
나머지는 너무나 초라하다. 특히 복제인간을 만드는 부분. 압권이다. 열 셋? 
대단히 수고했다. 어쨌든 이 대목을 발견하고 그는 속으로 "만세"를 외쳤을 거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겸허하게 조기자로부터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강준만의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 "정치부장"님의 해설을 들어봅시다. 

  강준만의 책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진중권이 말한 것처럼 그 수법을 배우라는 
게 아니라 단지 조갑제 기자의 성실함을 배우라 그런 것임은 한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다 이해할 것이다. 

  물론이다. 이 답답한 양반아, 텍스트 독해는 "한글만 읽을 줄 아는" 것 가지고는 
부족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당신이 팔자 좋게 생각해 버리 듯이 글자를 
읽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 이상을 의미한다. 내 흉내를 내는 건 좋은데, 그렇게 
어설프게 하면 기껏 애써서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되는 거다. 또 굳이 내 흉내를 
내고 싶거든, 눈에 보이는 문체가 아니라 그 밑에 깔린 보이지 않는 사전작업에 
주목하도록. 
 
  물론 당신이 말한 대로 강준만은 이 말로써 조기자의 "성실함"을 배우라고 
얘기했다. 지적해 주지 않아도 그쯤은 나도 읽었다. 그것도 안 읽고 글을 썼을까 
봐? 그게 이 문장의 디노테이션, 즉 표면적 의미다. 그럼 이 문장의 심층적 의미, 
즉 코노테이션은 무엇일까? 머리가 달렸으면 생각좀 해 보라. 배울 것이 조기자의 
"성실함"이라면, 그건 예외 없이 누구나 다 배워야 하는 거다. 근데 이 문장의 
주어는 왜 "진보적 지식인"이 되어야 할까? 가령 "우리"가 아니라. 이런 것 좀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기억하는 한 이 얘기를 하는 너른 맥락에서 강준만은 조갑제의 지식인 
비판을 원용했다. 그리고 거기에 공감을 표했다. 내가 지적했듯이 두 사람의 
지식인 비판은 종류가 원래 다른 것이다.  따라서 강준만은 조갑제의 지식인비판과 
자기의 것을 구별했어야 한다. 그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런데 그는 이를 외려 
이용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겸허하게 조기자로부터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내가 이미 누누히 밝혔듯이, 강준만이 높이 평가하는 조갑제의 성실함이란 게 
실은 진정한 의미의 성실함이 아니다. 나는 그의 텍스트들을 읽었다. 그는 그 
성실함으로 기자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파시스트 선전대원 노릇을 한다.  내가 
아는 한 그가 성실함을 갖고 하는 일이란 게 죄다 기자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것들이다.  가령 최근의 예.  안기부 수사문 손 봐준다든지, 최장집 교수 공격을 
진두지휘한다든지, 몽골벨트를 쏘다니며 아제국주의를 선동한다든지, 집무실에 
책상을 따로 내어 박정희 찬가를 쓴다든지, 심지어 자기가 맡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빨갱이사냥 하는 데에 사용한다든지.  자, 그밖에 그가 하는 일이 또 있는가?

  이런 걸 성실함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런 걸 배워야 하겠는가? 내가 그의 
친절한 충고에 "No, thank you."라고 대답했을 때, 이로써 나는 그 밖에도 순발력 
있게 김용옥한테 달려가 잽싸게 지식인 비판을 챙겼던 조갑제의 그 "성실함"이 
대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암시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것을 배우면 
안 된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다. ok? 사실 우리보고 이런 걸 배우라고 말하는 그의 
충고가 내겐 너무나 황당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일종의 모욕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그 글을 쓸 때 나는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그 글에서 매사 이런 짓만 하는 조갑제를, 강준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 
조갑제의 세계관과 정치적 입장은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쳐버리면서 그의 
지식인비판은 챙긴다. 조갑제의 지식인비판의 핵심이 누구겠는가? 조선일보 편드는 
보수적 지식인? 조갑제가 한국의 정신문화의 발전을 위해 지식인을 비판한다고 
믿는가? 또 그가 얌전히 상아탑에서 공부만 하는 지식인들을 비판하겠는가? 그럼 
그의 지식인비판의 표적은 누굴까? 이걸 굳이 말로 설명 해줘야 아는가? 근데 
강준만은 아무 생각 없이 이를 그냥 챙긴다. 이런 거 비판하면 안 되는가? 그리고 
내가 대체 무슨 왜곡을 했다는 건가? 
 
② 두번 째는 아마 변희재씨 자신에게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억지로 느껴질 
것이다. 김용옥이 천재라는 이유에 대해서. 그의 말에 따르면, 강준만은 자신이 
김용옥을 천재로 보는 이유를 들었는데, 내가 그걸 놓쳤다고 한다. 그리고 "놓치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한다. 물론 내가 "의도적으로" 왜곡을 했다는 얘기일 
게다. 자, 그가 친절히 찾아준 그 이유라는 것을 들어 보자. 

  탁월한 언어구사능력과 그것보다 더욱 탁월한 시간관리능력.

  그의 "탁월한 언어구사능력"이 어떤 것인지는 내가 그 글에서 이미 
분석해주었다. 강준만이 커다란 공감을 표하며 인용한 천재적 문장가 김용옥의 
언급--도올의 학적 재능을 보여주는 유일한 인용인데--그건 내가 그 글에서 
입증했듯이 맹구수준의 자승자박의 논리다. 강준만 교수는 텍스트를 좀 더 꼼꼼히 
읽어야 한다. OK? 두번째 "탁월한 시간관리능력." 우습지 않은가? 시간관리를 
탁월하게 한다고 "천재"인가? 시간관리 못하면 바보인가? 상식을 가졌다면 양자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음을 알 게다. 한 마디로 강준만이 김용옥을 천재로 부르는 
이유는 상당히 궁색한 것이다. 그치? 

  그런데 그는 왜 이런 궁색한 이유까지 대가며 김용옥을 천재라 부르는가? 
강준만은 자기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강준만이 아마 
변희재가 찾아낸 그 언급을 자기의 김용옥 선호 감정의 필요충분한 설명으로 
간주했다면, 아마 이런 말은 안 했을 게다. 그치? 그런데 그는 자기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이런 맥락에서 그가 시비를 건 
내 문장이 시작된다. 

  결국 그가 김용옥을 천재라고 부르는 주된 이유는 그가 상아탑을 박차고 거리로 
뛰어나와 대중매체를 최대한 활용한 대중지식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매체를 최대한 활용한다고 곧 천재인가? 

  당연히 그럴 리 없다. 그런데도 왜 그는 김용옥을 싸고 도는가? 내 결론. 
김용옥은 강준만의 alter ego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 혹시 더 좋은 생각 있는가? 

③ 이제 내가 저지른 "본격적인 강간"을 보자. 그는 내가 아래 문장을 인용하면서 
뒤의 문장을 "의도적으로" 빼먹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우리 나라 지성계엔 진정한 진보세력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극우가 함부로 날뛰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 문장 뿐 아니라, 그 뒤, 그 뒤의 뒤, 나아가 그 뒤의 모든 문장도 
"의도적으로" 빼먹었다. 왜? 필요가 없어서. 나는 이 두 문장이 왜 "그래서"로 
연결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자 사이엔 아무 연관이 없다. 왜? 우리 
나라에 진정한 진보세력이 차고 넘쳐도 어차피 "극우는 함부로 날뛰"기 마련이다. 
아니 그럴 수록 더 극우는 "날뛰"게 될 것이다. 가령 최장집 교수의 건. 문제는 
사람들이 이걸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너무 진지하게 받아주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그는 말한다. "이 말을 진정한 진보세력이 없으니 깡그리 부정하자고 해석할 수 
있는가?" 자, 이제 그는 내 앞에 부담을 진다. 내가 어디에서 그렇게 
"해석"했을까? 인용, please. 참고로, 내 말을 다시 인용한다. 

  실제로 그(=강준만)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지식인들에 대한 인물평을 써 
부각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자기 말을 고스란히 부정해 줄 이 문장을, 그는 섭섭하게도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즉 나를 공격하는 맥락에서 요긴하게 써먹는다. 왜 그럴까?  인간복제에 
관련된 기술적 필요성에서 그러는 거다. 

④ 그가 궁금해 하는 진중권의 자기복제의 비결을 알려주겠다. 사실 굉장히 간단한 
건데. 왜 그걸 이해 못할까?  

복제인간 1: 그저 최소한의 상식, 최소한의 필력,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만 
가지고도 우리 사회의 사이비들과 싸운다.  

복제인간 2: 하지만 왜 그는 특정을 하지 않고, 모든 지식인을 싸잡아 비판하는가? 

복제인간 3: 실제로 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지식인들에 대한 인물평을 써 
부각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복제인간 4: 그는 타깃을 다시 진보적 지식인에게 돌려놓는다. 강준만의 지식인 
비판의 핵심은 진보적 지식인이다.  

  그는 이 네 문장에서 논리적 모순을 본다. 그럴 수 있다. 제 말대로 "머리가 
나쁜 사람"은 자기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자기의 양팔이 교대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그 놀라운 기적을 이해 못 할 수 있다. '어? 아하, 어? 아하..'  

  이제 "머리가 나쁜" 그가 "부탁"한대로 "교통정리"를 해주겠다. 자, 내 얘기는 
이런 거다. 강준만은 사이비 지식인과 싸운다(1). 반면 훌륭한 지식인은 칭찬을 
한다(3). 그런데 왜 지식인 비판을 할 때 가끔 "특정"을 하지 않는가?(2) 이는 
조갑제와 김용옥이 자주 사용하는 반칙이다. 그런데 왜 강준만은 이들의 
지식인비판에 동조하며 그것을 원용하는가? 이건 내가 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내 주장. 그가 특정을 하지 않고 지식인을 싸잡아 비난할 때, 그 표적은 
종종 "진보적 지식인"이다(4). 자, 이제 이해가 되는가? 이해가 안 되면 할 수 
없다. 그건 당신 문제니까. 아직도 나는 내 분석이 옳았다고 믿는다. 

  최근에 나온 '인물과 사상'에서 강준만은 또 다시 "진보적 지식인의 김대중 
혐오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과연 이런 표현이 그의 독자권 내에서 어떤 
정치적 효과를 갖겠는가? 이런 거 좀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는 
굳이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해야 할까? 계속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그의 무의식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자꾸 이런 표현을 쓰게 만드는가? 
어쨌든 그의 판단대로 특정을 하지 않은(=모든?) 진보적 지식인들이 김대중을 
혐오한다 하자. 그럴 때조차도 진보적 지식인이 혐오하는 게 어디 김대중 뿐인가?  

⑤  

  그런데도 황당하게 또 한 명의 진중권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NL, 
PD를 두들겨 패버렸다. 

  맞다. "NL, PD를 두들겨 패버렸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이유가 당신 문장 
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이 착각, 빨리 
버리라는 얘기다. 최근 임지현은 "이념의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에 대해 얘기했다.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반만 동의한다. 왜? 그럼 우리의 
"이념"은 진보적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삶의 보수성"이 대체 어디서 
나오겠는가? "이념의 보수성"에서가 아니라면... 언제부터인가 우리를 
"진보적"으로 만들어준 것은 우리의 이념이 아니라 "적"이었다. 

  내 얘기를 요약하면 이런 거다. 이진경의 논리는 지나치게 급진적이라서 외려 
현실적 맥락에선 현상(status quo)을 건드리지 않는 실천적 보수주의로 흐를 수 
있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니이체와 포스트모던 얘기를 하는 건 외려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리고 NL은 벌써 오랜 전에 진보적이지 않다. 그 동안 NL을 
진보적으로 만들어준 것은 NL이념이 아니라, 반대편에 서 있는 "적"이었다. 이 
점을 일찍 깨닫는 게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의  삶에 상당히 유용할 수가 있다. 

⑥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게 진중권은 자신을 아주 고매한 상아탑 속의 지식인이라 
여기고 있다는 거다. 
 
  맞다. 정말로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상아탑"하고는 일찌감치 담을 쌓고, 기껏 인세도 얼마 못 받는 책 써 대중에게 
구걸하며 먹고 사는 주제에, 왜 나 자신을 "상아탑 속의 지식인이라 여기"는 걸까? 
나도 궁금하다. 증거, please. 

  한겨레 신문의 기자는 내 텍스트를 아주 정확하게 요약했다. '강준만이 
(현실)정치적 글쓰기와 학적 글쓰기의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 강준만이 
"공정성"을 강조한다면, 현실정치의 구체적인 맥락에 사사건건 개입하여 김대중의 
편을 드는 것보다는, 그저 지식인으로서 정치과정이 진행되는 과정, 즉 게임규칙의 
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게 옳다. 하지만 종종 그의 글은 너무나 많은 현실정치적 
실질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는 "강준만이 정치하면 개새끼다"라는 말로 얼버무릴 
성격의 것이 아니다. 내 말은 이런 얘기였다. 변희재가 이 말을 이해하는 그 
독특한 방식.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게 진중권은 자신을 아주 고매한 상아탑 속의 지식인이라 
여기고 있다는 거다. 

  대단한 해석학적 상상력이다. 여기서부터 그는 밑천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막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번호를 매겨가며 복제공정에 가속을 
붙인다. 10호, 11호, 12호, 13호. 아마 그로써 그는 내가 이렇게 많은 왜곡을 
했다는 사실의 수학적 인상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변희재씨. 기가 막히지 않은가? 온건한 입장을 가진 강준만에 대한 비판의 글 
속에 이렇게 많은 왜곡이 들어있다면, 상당히 과격한 주장을 하는 NL과 PD를 씹은 
내 글 속에는 얼마나 많은 왜곡이 있겠는가? 특히 NL을 씹은 글에는? 그거 한번 
밝혀보는 건 어떨까? 간교한 진중권이 얼마나 문맥을 왜곡했는지 직접 한번 
밝혀보는 거다. 샅샅이. 그리고 여기에 또 한번 띄워 보라. 그럼 서로 얘기 하기가 
편해질 것 아닌가. 애꿎은 강준만 교수의 귀는 안 간지러워도 되고.....

  생각해보라. 조갑제 비판, NL과 PD비판, 강준만 비판. 내가 한 이 세 가지 
비판의 밑에 깔린 파토스를 비교해 보라. 조갑제 비판의 밑에 깔린 내 파토스는 
가차없는 조롱이다. 반면 NL 비판의 밑바탕에는 분노가, PD 비판의 바탕에는 
답답함이 깔려 있다. 강준만씨 비판의 경우에 나는 외려 상당한 긴장감을 갖고 
썼다. 말하여진 텍스트의 빈틈을 통해 나는 그의 무의식을 암시함으로써, 
"공정성"을 얘기하는 그가 깜빡하면 자신에게 속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권력이다. 그는 이제 이 점을 의식해야 한다. 

⑦ 

  강준만이 대중매체 이용해 진보지식인 다 죽인다 그런다. 

  인용, please. (반복을 피하기위해 ④를 참조하라.)

  하지만 바로 그 강준만의 매체에다 글을 쓰는 진중권 10호는 또 뭔가. 

  '의리'를 저버린 배반자. 믿어서는 안 될 놈. 다시는 글을 실어주면 안 될 놈. 
지금 이런 얘기 하고 싶은 거 아닌가? 어쨌든 이는 자기 가 텍스트를 오독한 
결과로 스스로 만들어 갖게 된 의문이니, 스스로 대답을 찾게 놔두는 게 좋겠다. 

⑧ 그는 남의 교우관계에까지 간섭한다. 이진경에게 내가 "늘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면서, 왜 그를 심하게 욕했냐고 비난한다. 이건 우리 둘 
사이의 문제다. 그러니 당신이 간섭할 주제가 못 된다. 그저, 한 가지. 이진경이 
여러 권의 책을 써서 자기의 주장을 폈다면, 적어도 독자들 앞에 내가 비판한 
부분에 대한 반론을 펴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내게 가졌을지도 모를 섭섭함은 
이걸 하면서 같이 표명하던지, 아니면 별도의 통로를 통해 해도 된다. 알겠는가? 
공인과 사인의 구별. 그리고 나와 그 사이의 의견대립은 실은 몇 년 묵은 것이다. 
그게 이제 터진 것 뿐이다.

⑨ 4대차별에 관한 얘기. 놀랍게도, 당신이 주장하는 내용 중에서 내가 수긍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맞다. 그건 내가 봐도 좀 심했다. 사실 강준만 교수의 글을 
주제별로 분류해 놓고 그것들의 화용론적 용법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던 중, 우연히 TV를 보는데 갑자기 김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마치 
영감처럼 그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이 부분을 얘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유레카'라는 갑작스런 느낌 때문에 내 자신이 정한 원칙 자체를 깼다. 

  애초에 180매 가량 썼던 원고를 수정하는 가운데, 나는 이 부분을 수정했는지 안 
했는지 가물가물했다. 확인을 해서라도 삭제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을 게을리 했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선 내 자신에 화가 난다. 그리고 그가 
요구한대로, 하지만 그가 요구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마음 속 깊이 
강준만씨에게 사과드린다. (그리고 나는 이런 문제 슬쩍 얼버무리고 넘어가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이 사과가 그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도록, 이 부분만 따로 떼어 
'인물과 사상'의 네트워크에 동시에 띄울 작정이다.) 

  착각하지 마라. 이 사과는 당신이 지적하기 이전에 내게 메일을 보내주셨던 어떤 
분의 논리에 설득이 되어 그러잖아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당신이 그 글로 선수만 
치지 않았다면 좀 더 시간을 갖고 형식을 갖춘 글이 되었을 텐데. 유감이다.) 그 
분의 메일을 받고 비로소 나는 내 글이 내가 의도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수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위야 어쨌든 당신 말대로 
내 말에 상처 받았을지도 모를 "비서울대 출신, 전라도 출신, 그리고 장애인이라고 
차별받았던 모든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의 말대로 나는 그분들께 
"죽을 죄를 지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글쓰기를 하는 방식에 상당히 문제가 있는 거 같다. 
아니 내 글쓰기 방식 자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내가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고 해 두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때가 되었다고 믿었는데. 버나드 
쇼우가 살았던 시절처럼 독설을 그냥 미학적 관점에서 평가해 그냥 가볍게 
받아넘기는 분위기가 되어 있다고 믿었는데, 한국사회는 그렇지가 않다. joker가 
장난을 치기에는 너무나 도덕적이고, 인격적이다. 

  이 글은 실은 7개월 전에 씌여진 것이다. 그게 이제 나온 것이다. 그 동안 
강준만 교수의 활동에도 변화가 있었고, 그것까지 이 글에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 
출판사에서 매번 오늘 내일 하는 바람에, 그리고 나도 바빠서 그만 교정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글을 쓰던 당시에 내가 '유시민과 강준만' 논쟁의 맥락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 논쟁을 보면서 나는 강준만의 
'진보적 지식인 비판'을 한번 전면적으로 검토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마 내가 거기 너무 집착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어, 출판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는 그와 아직 면식이 
없다. 괜히 알게 되면 내가 그를 비판하는 게 힘들어질까봐, 몇번 메일을 보내려다 
말았다.) 강교수에게 이 글이 그와 그의 독자들에게 지나친 비판으로 느껴질 것 
같다면, 매번 전화할 때마다 그 부분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아마 그 분에게 어떤 
식으로든 전달이 됐을 것으로 믿는다. 또 어느 신문에 보도될 때에도 출판사를 
통해 기자에게 이런 사정을 충분히 설명했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는 그 기사에 
충분히 반영됐다. 내가 내 텍스트의 수용방식을 교정하느라 사후에라도 노력했다는 
걸 밝혀둔다.  

  출판사에서 "강준만과 지식인혐오증"이라는 주제로 내게 청탁을 해왔을 때, 나는 
거기에 물음표를 붙였다. 나는 이 청탁을 받을 때 '사람들이 강준만은 지식인을 
혐오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때에 그것은 
지나친 것이었다. 그가 가끔 경계를 넘기는 하지만, '지식인 혐오증'이라는 명찰을 
붙일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난 거기에 물음표를 붙였던 것이다. 내 얘기는 
그는 지식인을 혐오하지는 않는다. 가끔 부적절한 방식으로 지식인비판을 할 
뿐인데, 거기에는 그가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어떤 정치적 동기가 있다. 이게 
내 주장이다. 

⑩ 그는 내게 세 가지 요구를 했다. 

첫째, 조선일보 비판에 충실하라. 
둘째, 아군과 적군을 가려라. 
세째, 휴머니즘적인 방법의 차별철폐운동을 제발 보여줘라. 

  첫째 요구는 못 들어주겠다. 나도 이제 신물난다. 내가 무슨 조선일보에 원수가 
졌는가. 나 역시 내가 자꾸 조선일보의 이미지와 결부되는 거 불쾌하다. 그 쇼우를 
벌이느나 스타일도 구길 만큼 구겼다. 나는 그 작업을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했다. 내 글이 약속을 깨고 실리지 않는 데에 대한 반발에서. 열받아서 시작한 
일이 결과적으로 무슨 공헌(?)을 했다면, 그건 애초에 내 의도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장난쳤을 뿐이다. "아군"을 위해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일종의 
취미생활이었다. 그러니 남의 취미에 왈가왈부할 거 없다. 

  둘째 요구도 못 들어주겠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이젠 도대체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내부의 비판을 허용할만큼 여유가 있는 
그룹이라면, 그냥 "아군"으로 삼고 살아가겠다. "아군과 적군", 이제 이런 
발상에서 벗어나는 것, 그거야말로 진보가 아닐까? 내가 조갑제, 이인화를 아무리 
싫어해도, 나는 그들을 없애야 할 "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없애야 할 것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이다. 

  세째 요구도 못 들어주겠다. 물론 나는 어떤 식으로든 "휴머니즘적인 
차별철폐운동"을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글에서 이미 그렇게 할 거라고 말한 바도 
있고. 하지만 그것을 당신에게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혼자 조용히 
하는 거다. 또 남에게 "보여"주고 다니는 거 아니다. 당신이야 물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겠지. 그래야 가끔 이렇게 그런 거 안 "보여"준다고 타인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겠지. 이건 두 사람의 인생철학의 차이니, 당신이 주제넘게 내게 
요구할만한 성격의 것이 못 된다. 

=========================================

이어서 강준만 비판에 대해 몇 마디 

① 내가 생각할 때 정말 문제 삼아야 할 비판은 이런 종류의 것이다. 가령 

"상대해 봤자 키워주기만 한다", 
"매일 읽어도 똑같은 얘기만 한다", 
"첫 장만 읽으면 뒷장까지 다 안다." 

  난 뒷꽁무니에서 이런 말 하는 자들, 혐오한다. 왜? 이런 식의 비판은 반박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 그건 감정의 표출에 불과하다. '난 강준만이 싫다'는데 
본인이 그걸 어떻게 반박하란 말인가? 

  이런 말 퍼뜨리고 다니는 비겁한 분들 중엔 내 지인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와의 
관계("의리"?)에도 불구하고 그를 비난한다. 근데 우리 사회에서 그런 짓 하면 
인간관계가 깨지는 괴상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는 분명히 
나눠야 하는 거다. "강준만 아류가 되지 않게 조심하라"는 충고를 주신 분. 나를 
생각해서 이런 충고를 주신 그 마음에는 감사드리지만, 충고는 사양하겠다. 왜? 
"강준만 아류"면 어떤가? 대체 왜 이런 식의 어법을 사용하는 걸까? 강준만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용감하게 나서서 비판할 일이다.

  최소한 내 비판은 논리적 반박 내지 사실의 해명이 가능한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마치며 그에겐 "마지막 말" 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건 
내 비판 속의 강준만의 모습은 최종적으로 확정된 진리가 아직 아니라는 얘기다. 
그것은 아직은 내가 본 강준만의 모습, 즉 그의 주관적 모습일 뿐이다. 나는 그를 
비판했고, 이제 그는 자신을 옹호할 차례다. 그의 객관적 모습은 그 결과로서 
밝혀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이라 애기했을 때, 그건 내가 다시 
반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왜? 나는 현재로서 내가 할 말 다 했고, 이제 그의 
말을 들어 보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OK? 

② 내가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그가 말하는 "공정성"의 가장 중요한 잣대는 
김대중이다. 하지만 김대중은 "공정성"의 화신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그가 
칭찬하는 진보적 지식인은 김대중의 정책의 테두리를 크게 넘지 않는 한에서의 
진보적 지식인이다. 그것을 넘어가려고 할 경우엔? 가령 다음 대선에 진보세력이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하려 한다면? 과연 그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이런 관점에서 
텍스트를 읽어 보면 안 되는가? 기껏 "정치부장" 씩이나 하면서 당신처럼 "4 : 4" 
(진보적 지식인 비판4 : 칭찬 4) 어쩌구 하며 스코어 보드 노릇이나 해서야 
쓰겠는가? 

  나는 강준만을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등장한 "전투적 자유주의자"라 불렀다. 
그리고 내가 앞에서 지적한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를 칭찬 했을 때, 나는 
이로써 그가 이제 현실정치과정의 사소한 문제에까지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글을 
쓰기보다는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자유주의의 신념에 맞게끔 좀 더 포괄적인 
차원에서 '게임의 규칙'의 준수여부에 더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우경도 99퍼센트다. 그리고 이건 "4대차별" 못지 않은 엄청난 
이념적 차별이다. 

  한국정치는 심하게 우경화되어 있다. 이건 울트라 불공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좌파의 정치적 진출은 그 자체가 자유주의적 민주개혁의 일부다. 그리고 내가 
강준만에게 요구하는 준법서약서제 비판은 그 노력의 상징이다. 당신은 내게 왜 
그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느냐고 투덜댔다. 이유가 있다. '준법서약서제' 폐지는 
어디까지나 자유주의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건 누구보다도 
자유주의자들이 앞장 서서 해야 할 일이다. 어떤 변명도 할 것 없이.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것을 "요구"했다. 그러면 안 되는가? 

  강준만은 대통령에게 "고언"이 아니라 "비판"을 해야 한다. 이제는 그럴 이유가 
좀 있다고 본다. 매번 "현실"의 눈치 보지 말고. 그런 건 정치가들이 할 일이다. 
그들에게 맡겨두라. 그는 자기의 글쓰기에 "성역"이 없다고 말했다. "현실" 역시 
성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는 성역이 좋아서 쌓겠는가? 언제나 "현실" 
때문이지. 물론 자기가 보는 "현실"이 유일한 "현실"이고, 남의 것은 몽상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가정과 함께.... 강준만은 이제 권력이다. 그 역시 견제가 
필요하다. 그 자신을 위해서라도.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갑자기 강교수를 옹호하고 나선 당신이 정말로 강교수에게 
애정을 갖고 있어서 그런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

마지막으로

  그럼 독일에서 돌아오기 바란다. 와서 싸우고 봉사하기 바란다. 그런데 요즘 
비싼 돈 들여 공부는 하지 않고 연일 매체에 나타나 싸움판만 벌이고 있다.

  그러잖아도 그 "비싼 돈"이 없어 허부적거리다 지쳐 공부 걷어 치우고 다음 달에 
짐싸고 들어갈 예정이다. 나도 이제 먹고 살아야지. 그러다 시간 남으면 "싸우고 
봉사"해 보겠다. 하지만 "학계의 빛나는 별"이 되라는 그의 기대는 유감스럽게도 
충족시켜 드릴 수 없을 것 같다. 학계 사정이 당신이 생각하 듯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거기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그리고 이제 매체를 이용하여 "싸움판" 벌이는 짓도 그만 하겠다. 나도 
피곤하다. 내가 무슨 역사적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남들 아무 불편 
없이 잘 사는 데에 분란을 일으킬 이유도 없고. 그러다가 이름 없는 메일 받는 
것도 불쾌하고.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이런 글을 잡지에 싣는 소모적인 작업도 
중단하겠다. 세상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매체는 그냥 당신들 것으로 남는 게 
좋겠다. 

  언젠가 "진보"라는 이름이 붙은 네트워크에 "진중권이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는 
글이 올랐다고 들었다. 많이 달라졌을 줄 알았는데... 영원한 문제일까? 진보를 
표방하는 네트워크에 내 글을 싣는 것은 어차피 이게 처음이자 동시에 마지막이다. 
이제 나는 10여년이 넘게 내 머리를 사로잡고 있었던 어떤 바보 같은 애착에서 
마침내 자유롭다. 내가 자부심을 갖고 오랫 동안 내 이름 앞에 붙이고 다녔던 
'좌파'라는 이름을, 이제 다른 좌파들의 명예를 위해 반납해야겠다.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진중권. 니 얼굴에 침을 뱉으마!
▣진중권은 왜 나를 못 믿는가?--변희재 기자의 재반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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