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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arkeb ()
날 짜 (Date): 1999년 6월  7일 월요일 오후 06시 43분 41초
제 목(Title): [퍼온글] 영어/ 한국인의 영원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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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목 : [영어 도발강좌] 오성식영어연구원장 오성식씨
  도서·오디오·비디오  등 해마다 수많은 영어교재가 시중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 중 하나라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공부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굳게 마음먹고 시작했다가는 며칠 못
  가서  주저앉고, 큰맘 먹고 사들인 영어 교재는 책장 한구석에서 먼
  지를 뒤집어쓰고 있기가 십상이다. 
  
  영어 학습교재 시장의 ‘대형 스타’ 중 한 사람인 오성식씨(吳成植
  ·39·오성식영어연구원장)는  이런 악순환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
  조금 쉬워 보이는 교재를 선택하라”고 권유한다. 
  
  “영어를 잘하려면 일단 영어가 재미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나 진급시험을 위해서 영어를 공부한다면 당연히 재미가 없겠지
  요?  의무적으로 공부하니까 실력도 별로 늘지 않고…. 따라서 어떻
  게든 영어가 재미있어지도록 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만약  학원을  다니겠다면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 클래스를 선택해서 
  공부하는 게 유리합니다. 테이프나 교재를 공부하려고 해도 좀 만만
  해  보이는 것을 고르는 게 좋아요. 어려운 교재를 선택했다가 도중
  에서  포기하면, 경제적 손해도 손해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막대
  한 피해를 보게 됩니다. 자신감이 뚝 떨어진다는 것이죠. 차라리 조
  금  쉽다  싶은 것으로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을 고르는 게 중요합니
  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한두 달 열심히 공부해서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말을 사용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
  인은  모두 그렇게 우리말을 배웠어요. 그런데 하루에 단 한 시간이
  라도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하루에 3
  0분씩이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이 결국은 영어를 잘하게 됩니다.
  ” 
  
  쉬운 교재 택해서 끝까지 하라
  
  ―꾸준히  하는 것 외에 영어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요인으로 또 무
  엇이 있을까요?
  
  “자기가  왜 영어를 잘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할 
  것  같아요. 영어를 하다보면 그런 목표의식이 생기는 수도 있구요. 
  제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저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썩 잘하는 편
  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영어를 하니까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주더
  라는  겁니다.  중·고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 앞에서 상받을 일이란 
  게 영어 경시대회에서 상 받아오는 것뿐이었어요. 영어를 잘하는 사
  람으로 인정받고, 그러니까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평균적으로  볼 때 한국인들이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 않습니
  까? 그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할 수 있는 한 가지 비결이 있기는 
  해요. 실제로 도입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지만…(웃음). 만약 대학입
  시에서 말로 하는 영어시험을 치르게 한다면, 우리나라 전체 영어수
  준이  부쩍 올라갈 겁니다. 아마 모두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어를  잘하려고 할 걸요? 사실 대학입시에서 듣기시험이 도입되면
  서 전반적으로 듣기 능력이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소위  ‘본토발음’이란 게 후천적으로 훈련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보세요?
  
  “일정한  연령대가 지나면 좋은 발음을 갖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영어이론 가운데 ‘critical period(주요 시기) 이론’이라는 게 있
  는데, 사춘기를 기준으로 그 이전에는 신체 안의 LAD(Language Acqu
  isition  Device:언어습득장치)라는 게 활발하게 작동하는 데 반해 
  사춘기  이후로는  이 기능이 거의 소멸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밖에 소화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증거는 어
  렵지  않게 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귀순한 김만철씨 가족 중 어른
  들은 세월이 한참 지나도 북한 사투리 그대로인데 비해 아이들을 금
  세 남쪽 어투로 바꿨습니다. 우리말을 그렇게 잘한다는 독일출신 이
  한우씨의 말도 아직 우리 귀엔 낯선 부분이 남아 있지요.”
  
  ―오성식씨 자신의 영어 실력을 자평한다면…. 
  
  “글쎄요,  저는 제가 영어를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예를 들
  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의 언어능력과, 5세·10세·고등학교 때 각
  각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의 영어능력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직원 중 한 사람은 미국에서 6∼7년 살다왔는데, 그 시기가 언
  어의 발달기간인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이었어요. 이 친구 말이 자
  기는  영시를 읽으면 느낌이 오는데, 우리말로 된 시에서는 그런 느
  낌을 받지 못한다고 해요. 제 경우에는 거꾸롭니다. 우리 시를 읽으
  면  행간에 숨은 감각과 정서를 읽을 수 있지만 영시에서는 아직 그
  런  느낌을  갖지 못합니다. 언어란 게 참 오묘합니다. 글이든 말이
  든,  결정적인  나이에 어느 문화권에 살았느냐에 따라서 꼭 그만큼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과 영어를 동시에 완벽하게 하는 사람
  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 경우는 후천적으로 습득한 영어입니다. 그래서 한계가 있다고 생
  각해요. 다만 좋은 선생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
  부분의  우리나라 학습자가 저와 같은 처지기 때문에 저는 그분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영어에 미친 나날들
  
  ―이제  오성식씨 영어의 내력을 들어볼까요? 언제부터 영어에 관심
  을 가졌습니까? 
  
  “제가  영어에 관한 한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에요(웃음). 저는 중학
  생  때부터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붙잡고 영어를 배웠어요. (손으로 
  쓴 두꺼운 책을 가져와 보여주며) 이 책이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만
  든  책입니다.  물론 출판되지는 않았어요. 여기 보면 머리말·저자 
  약력도  있고, 온갖 폼은 다 잡았지요? 이게 방학 때 영문법을 정리
  해보자고  마음먹고 심심풀이로 한번 만들어본 겁니다. 그때 시중에 
  나와  있던 영어책을 모아다가 정리를 했어요. 베낀 거지요, 뭐. 그
  런데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이게 오늘날 저를 만든 계기가 된 것 같
  아요.  이런  모방을 통해서 책 쓰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시절에 제가 또 한 번 변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영어 웅변
  대회였어요, 고2 때. 제가 우리말 웅변을 좀 했거든요. 다른 아이들
  이  영어 웅변을 하는 걸 봤더니 그보다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갔는데, 예선에서 탈락했죠. 영어 웅변은 우
  리말  웅변과 달라서 중요한 대목마다 책상을 두들겨가면서 하는 식
  이 아니었거든요. 
  
  그땐  웅변 원고를 봐줄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제 나름대로 
  원고를  써서  종로거리에 나가 지나가는 외국사람 붙잡고서 원고를 
  고쳐나갔어요. 그렇게 한 닷새 정도 열댓 명에게서 교정을 받으니까 
  거의 완벽한 원고가 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독립심을 기른 것 같아요. 원
  고도  제가 쓰고, 경복궁 같은 데 가서 외국인 발음도 녹취하고, 제
  스처도  혼자서 연습하고, 청량리에 있는 타자학원에서 나오는 누나
  를 붙잡고 박카스 사줘가며 원고를 타자로 쳐달라고 부탁하고….
  
  결국  제가 대학교(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 1학년 때 전국의 웅변대
  회를 평정했어요. 당시는 ‘코리아 헤럴드’와 중앙대학교가 개최하
  는  웅변대회 두 개가 권위있는 대회였는데, 이걸 포함해서 전국 영
  어  웅변대회를 휩쓸었어요. 참 집요했지요. 그걸 평정해서 뭘 하겠
  다고….”
  
  ―대학시절 때에도 활동이 대단했다고 들었는데….
  
  “굉장히  바빴지요. 외대에는 ‘샬라(Shalla)’라는 전국 영어동아
  리와 외대 통역협회가 있는데, 이걸 다 제가 만들었어요. ‘샬라(Sh
  alla)’는 1학년 때, 통역협회는 2학년 때 만든 겁니다. 영어교재도 
  많이  썼는데, 세보니까 대학 졸업 때까지 28권을 썼더라고요. 그땐 
  정말 겁나는 게 없었죠.
  
  그러다가 대학 2학년 때, 80년 7월30일, 지금도 또렷하게 날짜를 기
  억해요.  대통령 긴급조치로 과외금지조치가 내려졌어요. 당시에 저
  는  꽤  이름난 과외선생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이 조치로 갑자기 
  앞길이  막막해진 거예요. 이때 졸지에 실직한 과외교사들이 학습지 
  시장으로 처음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저도 영어 테이프 교재를 녹음
  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군대는 카투사로 갔다온 걸로 알고 있는데….
  
  “카투사를 가니까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어요. 군 복무기간에 그
  동안  궁금했던 것들, 이런 말은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하는 
  것들을 죽 정리했습니다. 영어로 쉽게 표현되지 않는 말들, 예를 들
  면 ‘나는 음치다’ ‘걔 조퇴했어요’ ‘속이 미식거려요’ 등등을 
  영어로  정리해봤어요. 그게 제대한 뒤 ‘오성식 생활영어 5400’이
  라는 책으로 나왔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유학도 다녀왔지요?
  
  “제대  후 책을 내고 사회의 주목을 받으니까 사실 좀 겁이 나더라
  고요. 그래서 86년 8월에 미시간 주립대학에 가서 1년만에 ‘외국인
  을 위한 영어교수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그 뒤에 정말 평생 
  남을 만한 영어교재를 써보자고 해서 만든 게 ‘오성식 생활영어 SO
  S 7200’인데, 이게 또 엄청나게 히트했어요. 그후 방송에도 나가게 
  되고, 그러다가 이 길로 접어들게 된 거지요.”
  
  ―결국  오늘의  영어 스타가 저절로 된 것은 아니로군요. 마지막으
  로, 요즘도 영어공부를 하십니까?
  
  “제  직업이 영어 선생이니까 당연히 해야지요. 한 가지 말하고 싶
  은  것은, 제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항상 영어를 벗삼아서 살아왔
  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제 영어실력이 100이라면 그중 고등학교 때까지 쌓은 
  실력이  70은 되는 것 같다는 겁니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 좌충우
  돌식으로  영어를  배운 게 제가 가진 최대의 자산이 아닌가 생각해
  요. 영어를 배우려면 무모할 정도로 열정적인 것이 세련되고 냉철한 
  것보다는 낫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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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목 : [영어 도발강좌] 동래여고 1년 김수인 TOEIC만점 비결
  우리  사회에 영어 조기교육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다.
  우리말도 온전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
  을  놓고 찬반 양론이 분분하지만, 아무튼 영어 조기교육은 이제 이 
  땅의  대다수  학부모들에게 일종의 ‘의무’처럼 됐다. 학원가에서 
  시작된  영어 조기교육 바람은 급기야 공교육 현장에도 들이닥쳐 이
  제는 영어가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 정규 교과목으로 버젓이 자리잡
  았다. 
  
  부산 동래여고 1학년 김수인양(金修仁·16)을 영어 조기교육의 대표
  적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양은 지난 2월28일 치러진 
  토익(TOEIC)  시험에서 990점 만점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성인들도 
  700∼800점  이상  받기가 쉽지 않다는 토익시험에서 어린 여고생이 
  만점을 받은 비결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4학년부터 영어발음 익혀
  
  당사자와 얘기하기 전에 우선 김양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재미있는 
  것은,  김양의 부친인 동아대 김성언교수(金性彦·48)가 한문학자라
  는  사실.  한문학자 아버지와 영어 도사인 딸? 집안 내에서 이뤄진 
  동서양의 절묘한 화합인가? 
  
  알고보니 김양의 모친인 김상희씨(金祥姬·부산대 강사)가 불어학을 
  전공한 학자였다. ‘그러면 그렇지. 어머니로부터 체계적인 어학 교
  육을 받았겠거니’ 짐작하고 모친과 대화를 시작했다. 
  
  ―불어학을 하셨다니 딸교육에 남다른 노하우가 있을 듯합니다만….
  
  “그렇지 않아요. 초등학교 5학년 올라가기 직전에 수인이에게 초등
  학생용  영어발음 교재를 구해준 것이 전부입니다. 그 때 이미 주변
  에선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시키고 있었어요. 2학년 때부터 시킨 
  집도 있고. 우리집은 늦은 편이었어요.”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었습니까? 
  
  “영어 선생님이 매일 전화를 걸어 영어로 대화하고, 집에서는 발음 
  위주로 만들어진 테이프를 듣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수인이는 매일 3
  0분에서  1시간  정도 꾸준히 테이프를 들었는데, 이때 귀가 트이지 
  않았나 싶어요. 6학년까지 2년간 참 열심히 했거든요. 그 사이에 제
  가 따로 가르친 것은 없고, 오히려 수인이가 제 영어 발음을 따라할
  까봐  많이  걱정했어요.(웃음)”(수인양 부모는 유학 경험이 없고, 
  국내에서 학위를 받았다.) 
  
  ―수인양이 어학에 재능이 있지요?
  
  “그때는  재능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영어교재 테이프
  를  열심히 듣는구나 하는 정도였지…. 6학년 때에는 미국인이 강사
  로 나오는 영어학원에 보냈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레벨이 빨리 올라
  가기는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가족이 하와이에서 1년간 살다 왔다고 들었습니다만.
  
  “남편이 하와이대학 한국학센터에서 연구하게 되면서 96년 2월부터 
  97년  2월까지 1년간 하와이에서 지냈습니다. 당시 수인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까 미국사람들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더라고요.” 
  
  ―부모님께선 영어를 잘하세요?
  
  “아이구, 잘하지 못해요(웃음). 애들 아빠는 하와이에 있을 때에도 
  한국학센터로  나갔기 때문에 우리말만 했어요. 그래서 발음을 알아
  듣기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에는 통역삼아 수인이를 데리고 다녔어
  요.”(웃음)
  
  ―하와이에서는 영어교육을 어떻게 시켰습니까?
  
  “거기서도  특별히  뭘 시키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미국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수인이가 산 영어를 배운 것 같아요. 그런
  데  미국 학교에선 수업시간에 애들에게 책을 읽어오라는 과제를 내
  주더라고요. 책 한 권 읽어오면 점수를 주는 식이죠. 그래서 수인이
  가  점수를 따려고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문
  법도 습득한 것 같아요. 
  
  그런데  얘는  책을 보면서 영한사전을 찾지 않았어요. 본인 말로는 
  그냥 ‘게스(guess, 추측)’한대요. 책 읽다가 정 모르는 단어가 나
  오면  저에게 물어봐요. 그때는 게으르다고 막 야단을 쳤는데, 지금
  은  그것이 오히려 영어를 모국어처럼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항상 영어로 생각했어요” 
  
  이제 수인양과 얘기해볼 차례. 전화선을 통해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
  왔다. 
  
  ―토익시험에서 만점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처음엔  저도  믿기지 않았어요. 본시험을 치르기 전에 집에서 몇 
  차례 모의시험을 해봤는데, 실제 시험이 훨씬 어려웠거든요.”
  
  ―시험에서 모르는 단어는 없었나요?
  
  “물론  있었지요. 그래도 문맥을 보면 단어 뜻을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어요.”
  
  ―요즘 어떻게 영어공부를 합니까?
  
  “요즘엔  인터넷을  많이 봅니다. 인권운동가나 대통령 연설문같이 
  좋은  영문을  매일 찾아서 읽고, 독해집도 사서 보고, 유익한 미국 
  책을 골라서 읽기도 하고요. 최근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설명한 책
  을 읽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나면 CNN 방송도 봅니다.”
  
  ―아이구, 다른 공부할 것도 많을 텐데 하루에 그 많은 일들을 해요
  ? 
  
  “영어  공부시간이 매일매일 달라요. 보통 하루에 30분 정도, 바쁠 
  때에는  10분밖에 못할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하루종일 영어만 하
  기도 하고…. 방송도 시간 정해놓고서 보는 건 아니에요.” 
  
  ―CNN은 고1 학생이 보기엔 좀 어렵지 않던가요?
  
  “하와이에  있을 때 보니까 미국 아이들도 CNN은 보기가 어렵대요. 
  시사용어가  많이 나오니까 그런가봐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논술
  준비  때문에  신문을 매일 읽으니까 CNN 방송이 훨씬 잘 들리는 것 
  같아요. 요즘엔 국제뉴스나 다큐멘터리 보는 걸 좋아해요.”
  
  ―수인양이 영어를 잘하게 된 요인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일상생활에서 모든 일을 항상 영어로 생각하려고 한 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처음 영어를 배울 때부터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저처럼 영어공부를 하다보면 문법이 좀 달리는 걸 느끼
  게 되는데, 길게 보면 제 방식이 낫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영어를 잘하니 학교 영어수업이 따분하겠네?
  
  “사실  하와이에서 막 돌아왔을 때에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웃
  음).  그런데 막상 와보니까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좋은 자료를 교
  재로 많이 쓰고, 수업을 딱딱하게 이끌지 않아서 재미있어요.”
  
  ―수인양은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요?
  
  “외교관이요. 그런데 엄마는 자꾸 법대에 가래요.”(웃음)
  
  1년간 외국생활을 했다고 해서 ‘당연히’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10년 이상 미국서 산 동포들 중에도 영어를 넘지 못할 장벽
  으로  느끼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그런 점에서 영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은  김수인양의 사례를 ‘돌연변이’로만 치부하지 말고 철저하
  게 ‘벤치마킹(benchmarking)’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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