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5월 26일 수요일 오전 04시 26분 32초 제 목(Title): 퍼온글/김영환 인터뷰 열린광장(JPLAZA) [8457/8120] 제목:[월간조선] 강철 김영환 인터뷰 올린이:fourzero(이동영) 99.05.25 17:13:13 조회: 40 ------------------------------------------------------------------------------ 이 사람이 월간조선에다 무슨 얘기를 했을까 궁금했는데 마침 찬우물에 있길래 가져왔습니다. 『찬우물-우물가(자유게시판) (go CW)』 17730번 제 목:김영환 월간조선 인터뷰 올린이:saemul (한기홍 ) 99/05/25 10:11 읽음: 28 관련자료 없음 ----------------------------------------------------------------------------- 다음은 월간조선 6월호에 실린 김영환의 인터뷰 전문이다. [주체사상 이론가 - 북한혁명가] 김영환(강철) 인터뷰 <편집자 주> 1980년대 주체사상을 우리 사회에 확산시키는 데 있어서 결정적 영향을 끼친 [강철] 김영환씨는 지금 서울에 없다. [시대정신]을 통하여 여러 차례 그와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타진했으나 확답을 얻지 못했다. 여러 경로를 거쳐서야 연락을 취할 수 있었고 결국 서면으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한국의 인권이 아니라 북한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의 타도를 위해서 이 한 목숨 바치겠다]는 그는 스스로를 북한혁명가라고 부른다. - 주체사상을 비밀리에 꾸준히 연구해 오셨다고 하셨는데 80년대부터 주체사상을 연구하게 된 배경, 과정, 전망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갖는 의미, 또는 난점에 대해 함께 설명해 주십시오. # 80년대 중반 경에 학생운동은 점점 과격화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급진주의적이고 폭력적이고 계급 극단주의적인 경향이 날로 강화되었습니다. 이것은 뭔가 옳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 때 본 영화가 <킬링필드> 였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크메르루즈의 대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였는데 이것이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90년대 들어와서 이 영화가 별로 과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많이 과장된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이, 이 영화의 10분의 1만 진실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하는 것이었죠. 그 때부터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며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내놓은 이론이 현재의 한국혁명의 성격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아니라 민주주의혁명이라는 이론이었지요. 그리고 민족해방운동론도 그 당시에 연구하기 시작했지요. 그러한 연구과정에서 주체사상을 만났습니다. 처음 주체사상을 접하게 된 것은 통일원 자료였고 그 다음이 극동문제연구소 자료였는데 상당히 제한된 것이긴 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마치 어둠 속을 헤매던 사람이 빛을 보는 듯한 벅찬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평양방송의 방송대학 강좌를 들으면서 체계적인 주체사상 학습을 했습니다. 독자적인 주체사상 연구를 시작한 것은 출소하고 난 89년경부터였는데 북한의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로 주체사상 연구를 하게 된 것은 92년경이었습니다. 주체사상 연구의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지루하고 너무 길 것 같으니 생략합시다. 현재 주체사상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대단히 적고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사람도 대단히 적습니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 연구가 원래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황장엽선생 망명 이후에 더욱 어려워졌을 것으로 봅니다. 때문에 북한에 주체사상 연구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남한 밖에 없는데 남한이라고 그래봐야 '북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주체사상 그 자체를 연구하는 사람은 황장엽선생을 포함해서 극소수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황장엽선생은 고령인데다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나도 역시 그렇게 자유로운 상태는 아닙니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황장엽선생이 중심이 되고 나와 몇 사람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인터넷에 주체사상연구포럼 같은 것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연구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따로 연구하고 있는 것보다 서로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몇 배의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다만 황장엽선생이 인터넷이나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되겠는데 이는 주위에서 도와준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주체사상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는 것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소지, 북한과 관련시켜 주체사상을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게 되면 더 큰 혼란을 주게 됩니다. 황장엽선생이 60년대 말에 주체사상을 처음 창시할 때의 이론과 현재의 이론이 근본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름을 바꾼다는 것이 나 개인적으로는 별로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 어쨌든 이름을 바꾸거나 안 바꾸거나 하는 문제는 주체사상에 관한 실질적인 저작권을 갖고 있는 황장엽선생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내가 이러쿵저러쿵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황장엽 비서의 망명이 갖는 사상사적, 정치적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인적으로 갖는 공감의 정도도 말씀해 주십시오. # 황장엽선생의 망명은 주체사상의 북한체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매우 중요한 사상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90년대 초부터 주체사상과 북한체제를 완전히 분리시켜서 봐야 한다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나 황장엽선생의 망명으로 이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었습니다. 내가 떠들고 다니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황주사니 김주사니 하면서 우리의 주체사상과 북한이데올로기를 분리시켜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45년부터 70년대 초까지 북한사회를 지배해온 사상이론적 골격은 맑스-레닌주의였지 주체사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독재, 국유제, 계급투쟁론, 레닌주의 당조직이론 등과 같은 것들이 그 시기 북한의 골격을 이룬 것들인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맑스-레닌주의에서 온 것이고 주체사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경제에서의 자립이니 국방에서의 자위니 하는 것들도 민족주의와 연관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체사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러한 주장들은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도 하는 것들로 특별히 독창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70년대 중후반부터는 아예 맑스-레닌주의의 원칙으로부터도 멀어지기 시작하여 완전히 봉건왕조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의 자주성을 극단적으로 억압하는 북한체제는 사람의 자주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체사상과는 완전히 반대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내세우고 있으니까 북한체제와 주체사상이 그 무슨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북한체제를 중심으로 주체사상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주체사상에 대해 우호적이긴 하지만 주체사상을 거꾸로 이해하고 있고 북한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주체사상까지 싸잡아 적대시하고 또 북한에서는 정권의 필요에 따라 주체사상에 온갖 왜곡을 해대고...... 주체사상은 그 동안 그 어느 곳에서도 설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황선생의 망명으로 주체사상이 북한체제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황선생의 망명 직후 한 언론사 기자와 가진 비공개 인터뷰에서 소감을 한 마디로 '감격스럽다' 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 만일 황장엽 비서를 만나게 된다면 주로 어떤 측면에서 대화를 나누게 될는지요. #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지만 그 중 중요한 것 몇 가지만 들어보면 첫째 주체사상이 창시되고 발전되는 과정과 관련해 궁금한 점, 둘째 주체사상의 이론적인 중요한 문제들, 셋째 주체사상의 연구와 보급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 넷째 북한혁명과 통일의 방향과 방법, 다섯째 인류 사회의 미래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 등입니다. -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남한 내 주체사상은 제도권내에 제대로 수용이 되지 않는 사상입니다. 대한민국 체제 내에서 주체사상이 수용, 발전될 수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 우리 나라에서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선전하는 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가 아주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사실 국가보안법 그 자체로만 보면 황장엽선생이나 내가 주체사상을 주장하면 그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황선생이나 나는 북한정권에 철저히 반대한다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처벌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일반인이 주체사상을 토론하고 선전했을 때 그것이 불법이냐 합법이냐가 매우 애매합니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원래 검사 측에서 범죄사실을 입증하도록 되어 있는데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에는 '북한정권을 이롭게 할 목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마치 피고인이 입증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검사가 이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유죄 판결이 나는 경우가 많았지요. 국가보안법 7조 자체가 문제가 많은데다가 그 적용에서도 문제가 많기 때문에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토론하고 선전하는 데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우선 국가보안법이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체사상을 잘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는 91년경에 주위 사람들에게 "주체사상이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주체사상 입문서를 써야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입문서라면 비밀리에 몇 권을 찍어내는 것보다는 공개적, 합법적으로 많이 찍어내어 널리 읽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후 몇 년 동안 법망을 피하는 것만 연구하다가 시간을 보냈습니다. 93년경에는 갈릴레이가 했던 것처럼 공자와 주체사상주의자의 대화 형식으로 주체사상입문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내 동태를 조사하러 온 형사가 요즘 뭐 하고 있냐고 묻길래 "요즘 공자사상을 연구하고 있으며 가을쯤에 공자사상과 관련된 책을 출판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것도 결국 쓰지 못했습니다. 몇 달 동안 연구하다가 이런 식으로 쓰더라도 결국 국가보안법을 피해가기 어려우며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우려만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중세암흑시대의 학자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그 때는 실제로 그랬습니다. 95년 이후에는 북한 문제 등 다른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주 섶瀯璨� 관한 연구는 실질적으로 손을 놓았습니다. 요즘은 사실 후회가 많이 됩니다. 그 때 여건상의 어려움이나 내용상의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입문서가 나왔더라면 운동권 내에서나 일반 지식인들에게나 주체사상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고 운동의 혼란을 어느 정도까지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내가 매우 비겁하고 게으르게 삶을 산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부끄럽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특히 지난 1~2 년 동안은, 주요 관심이 온통 북한문제에 가 있었기 때문에 주체사상 연구에 대한 열정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주체사상을 일반인이, 특히 지식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입문서를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주체사상이 합법화되고 제도권 안에 들어오고 하더라도 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극소수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체사상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우선 주체사상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의 수를 많이 늘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사상을 이해하는 지식인들이 늘면 이를 지지하는 지식인들과 비판하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논쟁이 벌어지고 이런 과정을 통해 수용되고 발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강철서신] 서문에서 어머님과의 문답을 보면 [이 민족을 떠날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민족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관성이 있는지요. #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민족주의적 열정에 불타올랐었고 이는 대학에 들어와서 맑스주의를 접하면서 약간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당시의 학생운동이 민족주의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성향은 지속되었습니다. 내가 대학 4학년 때인 85년과 86년경에 다시 민족주의적 열정이 급격하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내 사상을 민족주의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민족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민족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고요. 민족주의적 성향은, 고등학교 시절을 제외하고는 내 사상의 기본 줄기는 아니었지만 일관성이 있냐고 물으면 일관성이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런데 어쨌든 지식인이라면 과거에 어떤 주장을 했었느냐에 구애받지 말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의 과거 활동의 권위가 타격 받을까봐 혹은 일관성이 없어 보일까봐 잘못되었던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 [강철서신] 앞부분에서 인용한 홍동근씨의 북한체험기처럼 실제로 북한에 대해 이상적 사회라고 생각하셨는지요. # 내가 강철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여 여러 글들을 썼던 것은 86년의 일이었고 [강철서신]이라는 책은 89년에 나왔습니다. 이 책은 내가 편집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인쇄되고 난 다음에 이런 책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죠. 내가 쓰지 않은 글이 강철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글도 한 편이 있었지요. 그리고 홍동근씨의 북한체험기가 언제 쓰여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강철서신을 집필하던 86년에는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글을 89년에, [강철서신]이라는 책이 나온 이후에 처음 읽어보았고요. 나는 당시 북한전문가라고까지는 하기 힘들지만 북한에 관해 오랫동안 나름대로 연구해왔기 때문에 홍동근씨의 북한방문기, 루이제 린저의 북한방문기 등 친북인사의 북한체험기가 대부분 과장되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북한정권 핵심부가, 특히 김일성, 김정일이 주체사상의 동지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은 가리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북한에 대한 좋은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 동지적 의리라고 생각해서 이런 글들이 과장된 이야기라는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글들을 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지식인의 엄청난 책임방기지만 그 당시 내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자세가 옳았느냐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당시 나는 북한 사회가 이상사회라고 보지 않았지만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했고 현실 상태는 이상적이지 못하지만 주체사상의 지도 아래 꾸준히 노력하면 장기적으로는 점점 이상적인 사회에 접근해갈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역시 심각한 오판이었습니다. -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은 주체사상의 견지에서 가능한 내재적 비판입니까? # 당연하지요. 주체사상에서는 인간의 자주성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판단합니다. 사람이 잘 먹고 잘 입어도 자주성이 없다면 개돼지나 다름없다고 보는 것이 주체사상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인민의 자주성을 세계 그 어디에서보다 철저히 억압하고 있습니다. 북한정권은 주체사상을 따르는 정권이라기보다는 주체사상과 가장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정권입니다. - 북한 체제를 하나의 국가, 특히 근대국가로 인정하시는지요. 대한민국 체제와 관련해서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 북한 체제를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문제와 근대국가로 인정하는 문제는 사실 다른 문제이며 대한민국 체제와 관련된다면 더 복잡하게 되지요. 질문하는 의도를 추측해서 간단하게 답한다면 '현재의 북한 체제는 봉건왕조와 같은 것이며 대단히 전근대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북한 체제를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문제는 이 문제 이외에도 북한의 건국문제 등 역사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시대, 건국시기, 6.25전쟁 등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문제들은 대단히 복잡해서 그렇게 쉽게 판단해버리고 말 문제들이 없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된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간략히 말하자면, 나는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동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의 정통성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편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사람일수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이념과 건국 정신을 깡그리 짓밟아버리고 국가를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시키고 인민을 굶겨 죽이고 인민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무자비한 탄압을 일삼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적개심으로 타올라야 하며 김정일 정권 타도투쟁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합니다. 좌도 우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좌파일수록 김정일 정권 타도투쟁에 더욱 앞장서야 합니다. 현재 유의미한 유일한 전선은 김정일 정권 타도투쟁전선이며 전선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 이외의 전선은 다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역사 문제는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고 나서 냉정을 되찾아 침착하게 하나씩 토론해 가면 됩니다. 지금 역사 문제를 가지고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은 백해무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86년 나는 좌우대합작 노선(민주대연합 노선)을 제기했습니다. 야당을 적으로 돌리지 말고 야당과 연합하여 군부독재와 투쟁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삼민헌법'이니 '제헌의회'니 하는 추상적이고 급진적으로 보이는 구호나 '미제축출'과 같은 과격해 보이는 구호를 배제하고 '직선제 개헌'과 '민주정부 수립'으로 구호를 간략하게 통일하여 대중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하고 전반적인 투쟁형식과 내용을 야당과 협의해서 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장이 학생운동에서 전반적으로 공감을 얻으면서 87년에는 이것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만약 학생들이 87년에도 추상적이고 급진적인 구호를 외치고 다녔다면 6월대항쟁은 실패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다시 한 번 좌우대합작 노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좌우대합작은 그 대상이 군부독재가 아니고 김정일 정권입니다. 김정일 정권, 김정일 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좌든 우든 하나로 단결해야 합니다. '김정일 체제 타도'라는 절대절명의 중요한 과제를 앞에 놓고 역사 문제든 사회노선 문제든 다른 문제를 놓고 서로 다투고 갈라서서는 안 됩니다. 2천만 북한 인민의 끔찍한 현실을 보고도 더 중요한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피와 눈물이 메마른 사람이요 무엇이 선(先)이고 무엇이 후(後)인지 잘 분간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나에게 '북한 김정일 체제가 무너지면 당신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의 권위나 인기도 바닥으로 떨어질텐데 왜 김정일 체제를 타도하자고 주장하는가?'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이 이야기도 참 한심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북한 인민이 굶어죽고 맞아죽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주체사상의 권위나 인기라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까? 김정일 체제가 무너지고 난 다음에 주체사상을 지지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단 2~3명만 남아도 상관없으니 김정일 체제가 빨리 무너졌으면 좋겠습니다. 주체사상이 진리를 담고 있다면 극소수가 남는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굶어죽고 맞아죽고 있는 북한 인민들은 어떻게 살려낼 것이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그 비참한 삶은 어떻게 보상할 것입니까? 이런 것을 그냥 팔짱 끼고 보고만 앉아 있다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조국과 민중을 위해 한 목숨 바치고....' 어쩌고 말한 것도 다 거짓이요 위선이 되어버릴 뿐입니다. -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이 문제를 위해 시급하게 해야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 탈북자들의 증언이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특히 요덕수용소를 경험하고 92년에 탈북했던 강철환씨와 안혁씨의 증언이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는 86년 주체사상 학습을 위해 평양방송을 청취하면서 북한에 정치범 수용소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방송에서는 <특별독재구역>이라고 표현했지만 방송의 설명을 조금만 들으면 그것이 당시 있다 없다 논란이 되고 있던 정치범수용소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정치범수용소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곳이 그렇게 끔찍한 곳인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나는 김만철씨 등 그 이전에 탈북했던 사람들이 증언한 내용들이 내가 알고 있는 북한에 관한 지식과 대체로 일치했기 때문에 탈북자들의 증언을 대체로 믿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기자회견 하는 것을 조금만 들어보면 그 말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몇 년간의 훈련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증언의 앞 뒤 말이 일치되도록 하고 표정연기를 잘 하고 기자의 예기치 못한 기습적인 질문에 모순되지 않게 잘 대답하고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데 하물며 탈북한지 얼 � 되지 않는 사람이 거짓말을 이렇게 능숙하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는 북방정책이다 뭐다 해서 북한정권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던 시절이라 안기부에서 이렇게 끔찍한 거짓말을 지어낼 아무런 이유도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의 당시 공식 입장은 '이미 체제경쟁은 끝났으며 북한체제를 특별히 나쁘게 선전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증언들을 특별히 믿지 못할 이유가 없었지만 너무나 끔찍한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당시 이미 북한이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주체사상의 동지라고 생각해온 북한 김일성-김정일 정권이 이러한 끔찍한 일들을 자행한다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비겁하고 무책임하고 한심한 일이긴 하지만 한 동안 북한에 관한 생각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을 비판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론을 비판하고 맑스 계급이론을 비판하고 유물변증법을 비판하는 등의 이야기를 주로 했지 북한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심적 고통이 줄어들고 그냥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한 기초 위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몇 년이 흘렀는데 '김정일 정권 타도에 이 한 목숨 바쳐야겠다' 라고 결심한 것은 개천교화소를 경험하고 탈북한 이순옥씨의 증언과 이한영씨의 증언 등이 잇달아 나오던 96년경이었습니다. 북한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물론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김정일 정권이 타도되지 않고서는 어떤 노력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실태가 워낙 절박한 문제다 보니 그와 동시에 북한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국제적인 관심과 압력을 조직해 들어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스럽긴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것이 북한 인민이 처한 실태이니까요. - 최근 신동아에서 작성한 [젊은 피 수혈론]의 물망에 올랐더군요. 현실 정치에 참여할 의지가 있으신지요. # 신동아에서 작성한 [젊은 피 수혈론]의 대상자 명단은 나도 봤습니다. 아무렇게나 막 만든 것 같지는 않지만 현실 정치에 참여할 의지가 전혀 없는 듯이 보이는 분들이 많이 있더군요.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국회나 지방자치단체 등 제도권 정치영역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능력에도 부치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재 나는 북한혁명 이외의 다른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17년 동안 나 자신의 삶에 관해, 혁명가로서의 삶 이외에 다른 삶은 단 한 번도 꿈꿔본 적도 없습니다. 북한혁명이 성공하고 북한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면 조용히 이론연구에만 몰두하고 싶은 것이 개인적인 소망입니다. - 통일이 임박했다고 가정할 때 통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관철되어야 할 이념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민족사적인 측면,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말씀해 주십시오. # 북한혁명과 통일은 서로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 측면도 있지만 분리해서 봐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북한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우리가 관철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김정일 체제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정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민주주의란 이념은 통일과정에서도 역시 중요한 이념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김정일 체제가 완전히 붕괴되고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거나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가장 먼저 포용정신이나 민족대단결 정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북한 사람들 중에 살인이나 횡령, 뇌물수수 등 일반 형사법을 위반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하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이념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더라도, 노동당원이라 하더라도, 고위직에 있었다 하더라도 특별한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야 하며 이를 다 포용해야 합니다. 김정일 정권이 저지른 그 엄청난 죄행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물어 좀 더 많은 사람을 처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참고 다 포용해야 합니다. - 김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격월간 [시대정신]의 위상은 무엇입니까? 현실정치와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밝혀 주십시오. # [시대정신]은 창간호에서 밝힌 것처럼 '시대의 요구를 모색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한 작업의 하나'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도 역시 창간호에서 밝힌 것처럼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우물을 찾기 위해 땅 속 깊이 구멍을 뚫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대정신]은 간단하게 말해 사상이론지이며 사상이론지 중에서도 어떤 세력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설사 세력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저해되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시대의 중요한 요구와 관련된 부분은 사정없이 파 들어가 보자는 것입니다. 현실정치와는 어떤 특별한 관련성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 80년대 운동에 투신하신 이후 개인사적 위기랄까요, 가장 어려웠던 순간,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사안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누리지 못한 데 대한 고뇌는 없는지요. #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아무래도 86년 안기부에 검거되어 47일 동안 구금되어 심한 고문을 당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47일 동안 처음 20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 고문을 받았으며 그 후 7일 동안은 매일은 아니지만 며칠에 한 번씩 고문을 당했으며 마지막 20일 동안은 주먹으로 얻어맞거나 기합을 받거나 한 일은 있었지만 특별히 고문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고문이라는 것이 하루나 이틀 정도 받아도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20일, 혹은 27일 동안이나 계속 받았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내가 안기부에 잡혀 들어갈 때 키 175 센티미터에 몸무게 55 킬로그램이었으니 완전히 말라깽이였습니다. 그런데 팔 다리 등을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리고 부어오른 데를 또 때리고 해서 열흘 정도 지나자 팔 다리가 퉁퉁 부어 올라 뚱보처럼 되었습니다. 손가락으로 팔이나 다리를 누르면 1 센티미터 정도 푹 들어가는데 손가락을 떼어도 이것이 바로 원상 회복되지 않고 10분 정도 지나야 제 자리로 돌아왔어요. 몸이 완전히 엉망이 되었지요. 그냥 의자에 앉아 있으면 고문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산폭격과 같은 기합을 받으면 가벼운 고통 때문에 고문에 대한 공포는 잊어버릴 수 있어 차라리 나았습니다. 아마 의지가 좀 약한 사람 같았으면 미쳐버렸을 겁니다. 안기부에서는 내가 북한과 연계되어 있다고 보았고 주사파 (당시에는 NL파라 불렀음)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것을 보니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망라하는 거대한 조직이 있다고 보았으며 '직선제 개헌'이니 '민주정부 수립'이니 '민주대연합'이니 하는 것들을 주장하는 것을 보니 김대중씨와 구체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놓았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방대한 부분을 망라하는 간첩조직을 적발하여 이를 김대중씨와도 연계시켜 일거에 모두 날려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었겠지요. 수사 받는 도중에 주로 질문한 것이 이런 것들입니다. '북한과의 연계를 대거나 네가 직접 연계되지 않았다면 배후를 대라', '조직을 대라', '김대중씨나 김대중씨 비서관과의 관계를 대라'는 것들이었습니다. 다른 것들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무 것도 할 말이 없는데 무슨 말을 합니까? 그냥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나중에는 수사관도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는 것이 지겨웠는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고문만 계속 하더군요. 진심인지 회유하기 위해 꾸 楹� 말인지 모르겠지만 안기부 수사관도 내가 고문 받는 것을 보고 집에 가면 너무 처참한 모습들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정말 끔찍한 나날들이었지요. 그리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누리지 못한 데 대한 고뇌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 다시 말해 변호사라든가 교수라든가 재정적으로 안정된 권위 있는 연구소의 연구원이라든가 등의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에 있으면 이론연구나 사회운동을 훨씬 더 잘하게 될 것 같지만 실제로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평소에 글쓸 때 가장 집중이 잘 되고 효율이 높은 곳이 바로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노트북을 꺼내 놓고 글을 쓸 때입니다. 이론연구나 사회운동도 역시 지위가 안정되었다고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다른 동료 운동가들과 비교해보면 내가 비교적 좋은 상태에 있지요. - 개인적으로 [이것은 분명한 오류였다] 라고 생각된 부분이 있었는지요. 또는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지난 시절의 나의 오류는 너무나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지만 그 중에서도 치명적인 오류는 역시, 친북적인 분위기가 운동권에 널리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오류는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다른 오류들을 나열하는 것이 오히려 이러한 치명적인 오류를 축소시키는 역할을 할까봐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당시 주체사상에 큰 감동을 받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내가 주체사상과 북한을 따로 떼 놓고 보는 것은 실제로 힘들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심각한 오류가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후 10년 이상 한국 사회에 좋지 않은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 존경하는 사상가, 정치가는 누구입니까? # 존경하는 사상가로서는 먼저 황장엽선생을 들 수 있을 것 같고 또 맑스도 존경하는 대표적인 사상가입니다. 내가 지난 7~8년 동안 주로 해온 일이 맑스주의 비판하는 일이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스울 지 모르겠지만 맑스주의 이론은 제쳐놓고 맑스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사상가로서의 삶의 태도나 끝없는 지적 노력, 사상가로서의 사회에 대한 높은 책임의식,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고결한 정신, 탁월한 지적 능력 등 존경스러운 부분이 많은 사상가입니다. 정치가로서 존경하는 인물은 세종대왕과 중국 청나라의 강희제(康熙帝)를 들겠습니다. - 개인사를 통틀어 버릴 수 없는 신념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 글쎄요. 제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가져왔던 좌우명이랄까 이런 것은 초등학교 5~6학년 경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져온 '백만 명이 반대하고 단 한 명도 지지자가 없더라도 그것이 진리라는 확신이 들면 이를 자신 있게 외쳐라' 라는 겁니다. 이것이 어떤 유명한 분이 한 말을 내가 좀 바꾼 것인데 초등학교 때의 일이라 누가 말한 것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주체사상을 제기한 것도 이러한 좌우명과 관련이 있는 것 같고 요즘의 주장들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중학교 때 배워 감동을 받은 <日新, 日日新, 又日新>(날로 새롭고 나날이 새롭고 또 날로 새롭다 혹은 날로 새로이 하고 나날이 새로이 하고 또 날로 새로이 하라)이라는 말도 좌우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 버릴 수 없는 신념이라고 한다면 민주주의, 공동체주의, 주체사상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출력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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