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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ebronia (제5열)
날 짜 (Date): 1999년 4월 10일 토요일 오후 01시 47분 33초
제 목(Title): Re: 당대비평 6호: 지배의 언어,탈주의 �

호연지기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뭐든지 다
아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_^ (부담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호연지기님께서 퍼온 글들을 고맙게 읽은 사람으로서
작은 보답이 된다면 이진경씨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드리지요.
참, NL/PD는 각각 민족해방/민중민주의 약자입니다.

이진경씨는 80년 후반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그런 인물이지요. 87년에 나온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
이라는 이진경씨의 저작이 당시 대학가를 뒤흔들던 사구체논쟁
(사회구성체 논쟁)의 판도를 일거에 뒤바꾸면서 PD 계열의 스타로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이진경은 물론 가명인데, 당시 이 책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이진경"이라는 가명이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다"
이라는 말의 앞머리를 따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참 떠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진경씨가 82학번 근방인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이 책을 집필할 당시 고작 스물넷 정도의 젊은 나이였던 것이지요.
당시에는 사회과학책들의 앞글자들을 따서 약칭으로 부르는 것이
유행했었는데, 이 책도 "사사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무엇인가 불법적이고 은밀하다는 느낌이 드는 누런 종이에 조악한
인쇄, 그리고 "변증법"의 "변"자를 음만 같은 다른 한자(무엇인지
상상이 가시지요?)로 써서 NL측의 이론을 PD 입장에서 보면 무척
통쾌하게 비판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물론 이 책은 90년대에
이르러서도 PD계열 학생들의 필독서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뭏든 85년인가 창비를 통해 박현채-이대근 논쟁으로부터 불거져서
진보 학계와 운동 진영 내에서 뜨겁게 이어졌던 사구체 논쟁의 물꼬를
바꿀만큼 젊은 무명의 사회과학도가 자신감 넘치는 과감한 문체로 쓴 이
책이 일으킨 센세이션은 대단했었지요. 그는 90년 무렵 조직사건으로
체포되면서 박태호라는 본명이 알려졌지만, 이 사건으로 수감과 석방을
거친 뒤에 서사연(서울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서 저술 활동을
할때는 이미 잘 알려진 필명 이진경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90년대  
중반에는 "상식 속의 철학, 상식 밖의 철학" 이나 "철학과 굴뚝청소부"
등 교양철학서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요. 그보다 좀 전에 역시
운동권 출신의 위기철씨가 내놓은 교양철학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 그는 "철학의 탈주",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7편의 영화", 그리고 최근의 "탈주선 위의 단상들" 등 제목에
"탈주"라는 말이 들어가는 일련의 탈주시리즈를 내놓게 되지요.
"필로시네마-"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와 "모던타임즈" 등 영화 일곱편을
분석했습니다. 진중권씨가 PD측에 붙여준 "탈주의 언어"라는 별명은
이진경씨의 위 텍스트들에서 따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근작들에서
느낄 수 있는 이진경씨의 경향은 라캉, 데리다, 들뢰즈류의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 그리고 탈근대와 해체라는 담론에
대한 관심인 것 같습니다.

"사사방" 당시의 이진경씨를 NL 측의 소위 식반론
(식민지반봉건사회론)에 맞서서 우리 사회의 특수성 보다는 정통 맑스적
사유론의 보편성을 강조하며 신식국독자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론)의 기치를 들었던 원칙주의자로
본다면(쉽게 말해 계급 모순이 민족 모순에 우선하고, 자본주의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만국의 노동 계급이 단결해야 된다는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분석하겠다는 이야기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해 보일지
몰라도 87년 무렵에는 혁신적인 내용이었지요.), "탈주" 시대의
이진경씨는 지배적 가치에서 "탈주"하고자 하는 많은 흐름을 아우르고자
하는 유연성을 보인다고나 할까요. 그런 그를 87년 당시 주류 NL계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PD계에 혜성처럼 출현했던 그 시절과
같이 아직도 PD의 대표주자로 볼 수 있을 것이냐는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운동과 진보학계의 지형이 그동안
엄청나게 변화한 것도 고려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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