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26일 금요일 오후 02시 33분 41초 제 목(Title): 퍼옴/인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 골동품 되는가 강좌 폐강·전공자 감소등 와해 조짐…학생들 교양수준도 하향길 서울대 서양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은 벌써 3년째 자리가 비어 있다. 석사과정도 해마다 정원(8명)을 채우지 못한다. 학부생 20명중에 해마다 3, 4명씩만 와줘도 좋겠는데, 요즘은 기껏해야 1명이다. 예전처럼 공부 잘하는 '주류' 학부생이 대학원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힘들게 박사과정을 마쳐본들 시간강사 자리를 얻기에도 어렵다 보니, 교수가 공부에 자질을 보이는 학생에게 "전공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원 오라"는 말도 못꺼낸다. 학부제를 시행중인 덕성여대에서는 이번 학기에 3학년이 된 인문사회과학부 97학번 720명 가운데 단 1명이 철학과를 지망했다. 이 학생은 '동기생 없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됐지만, 4학년 선배들과 다른 학과생들이 강의당 최소 수강인원(11명)을 채워준 덕분에 그나마 졸업에 필요한 전공과목들이 폐강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철학과 단 1명… 박사과정 3년째 빈자리 대학원 진학률의 하락, 국어 한국사 철학개론 등 옛 교양필수과목들의 선택과목화에 따른 학생들의 유출, 인문학 강좌의 잇따른 폐강 등으로 상징되는 '인문학의 위기' 현상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문대 교수들이 인문학의 와해 조짐을 보다 확연하게 감지하는 대목은 학생들의 저하된 '교양수준'이다. 서울대 최갑수교수(서양사학과)의 말. "학부생들에게 프랑스어 원서 강독을 시켜보면 80년대 학생들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졸업정원제가 도입된 80년대초에 학과 정원이 10명에서 39명으로 늘어나면서 눈에 띄는 '질적 저하'를 실감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았다. 요즘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제대로 안 가르친 탓도 있겠으나, 번역 실력은 기본적으로 우리말 소양과 관련된 문제 아닌가." 더욱이 시장경제논리에 입각한 구조조정 바람이 대학가로 불어닥치면서 '말만 많고, 벌이는 시원찮은' 인문학의 입지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각종 재정지원이 이공계로 편중된 나머지 일부 대학의 이공계 학과에서는 과잉투자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반면 인문계 학과에서는 당장 필요한 책 몇권, 소프트웨어 몇장 사달라고 신청하는 데도 눈치보이는 형편이다. 서울대의 경우 인문대와 이공대 교수들의 1인당 연구비 격차는 1대 5.5에 이른다. 창원대에서는 학술논문에 대한 지원금의 70% 이상이 이공계로 집중되는데 반해 사회계는 7%, 인문계는 3%를 받고 있다. 20년 가까이 대학에 재직하면서 80년대초에 1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충북대 장성중교수(불문학과)는 "풀이 죽은 제자들에게 틈만 나면 '패배주의자가 되지 말라'고 호통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패배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문학 교수의 학문적 성과를 평가하거나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자연과학 분야의 계량화된 평가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유용한 연구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인문학의 특성을 고려한 독자적-객관적인 평가장치가 없다보니 논문 편수나 해외학술지 발표횟수 같은 양(量) 위주의 실적이 우선시된다는 것. 이런 사정 때문에 인문학 연구에서 가장 높이 평가돼야 할 업적의 하나인 동서양 고전의 번역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충북대 안상헌교수(철학과)의 지적이다. 많은 시간과 정열을 필요로 하는 고전 번역이 논문 한편의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탓으로 강의에 필요한 기본적인 고전조차 믿을 만한 번역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동서양 고전 번역작업 제대로 안돼 학자들 사이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자초한 내인(內因)들에 대해서도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 하나는 학문의 폐쇄성. 학부과정에서부터 전공이 지나치게 세분화되면서 인접한 학문 분야 사이에도 높은 장벽이 만들어졌고 이는 학과 중심의 배타적인 학풍을 조성했다. 최갑수교수는 "전문화의 병폐가 비단 인문학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총체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책임이 있다"면서 "한국의 대학에 '영문학'이나 '불문학'은 있어도 '인문학'은 없다"고 말한다. 학자들이 전공의 벽을 넘어 공동의 연구과제를 설정하고 머리를 맞대는 것은 아주 최근에야 간간이 눈에 띈다. 문제는 전공의 세분화가 학문 자체의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학과 이기주의나 기득권 나눠먹기 같은 학문 외적인 배경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는 데에 있다. 이 때문에 사회의 수요변화에 따른 학과 정원조정이나, 학부제를 효율화하기 위한 학과간 연계작업에 대해서는 단과대 내부에서조차 정상적인 논의가 불가능할 만큼 분위기가 경직돼 있다. 예컨대 한 국립대학의 경우 국사학과 교수가 10명인데 비해 독문학과 교수는 15명이나 된다. 일제 때 독일어에 대한 수요를 고려해 책정된 교원수가 지금껏 그대로 유지돼 온 것. 한일장신대 김영민교수(철학과)는 우리의 인문적 전통과 근-현대 학문 사이의 유기적 소통이 끊어진 것, 그리고 이 간극을 비집고 들어선 식민성을 인문학 위기의 원인으로 진단한다. 수백년간 축적된 문화적 전통이 식민화를 거치며 창의적으로 계승되지 못했고, 현대에 와서도 70~90년대에 두드러진 세대와 계층간의 단절, 이데올로기적 분절(分節)로 인해 인문학의 인프라가 다져지지 못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온갖 수입학문이, '밑둥이 잘려나간 고목'의 가지에 무분별하게 접붙여졌다. 김교수는 인문학의 자생력을 살리는 방안을 글쓰기의 성찰에서 찾는다. "독자들에 의해 이해되는 만큼 인문학은 서고, 이해되지 못하는 만큼 인문학은 무너진다"는 것이다. 인문학 전통의 단절은 잘못된 문자교육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의 인문학 유산들이 대부분 한문 문헌 속에 간직돼 있는데도 중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국학분야 외에는 한문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자료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제약했다. 이에 따라 국학과 서양학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같은 연구분야, 예를 들어 똑같이 한국경제사를 연구하는 국사학자와 경제학자 사이에도 대화의 '코드'가 완연히 달라 연구의 공유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최근에는 학생들이 강의실로 찾아오기만 기다리지 않고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손님 끌기'에 나서는 모습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일제의 학문 잔재라 할 구태의연한 '개론'과 '원론'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다양한 기호와 선택권을 배려한 과목들이 몇년 사이에 잇따라 개설됐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아 벌써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한 강의들도 적지 않다. "학과 이기주의-기득권 나눠먹기가 화 자초" 덕성여대 민형원교수(철학과)는 이번 학기에 개설한 '서양 근대에 있어서의 육체의 문제'는 수강학생 16명중 10명이 다른 학과 학생이다. '철학과 예술의 문명사'에는 무려 40명이 수강신청을 했는데, 이 가운데 철학과 학생은 8명에 불과하다. 예전에 '역사철학' 같은 과목을 가르칠 때와는 판이한 상황이다. 민교수는 "철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면 과목명에 '철학'이라는 글자를 넣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다소 선정성을 띠는 면도 있지만, 가벼운 시대의 학생들에게 '무거움'을 찾게 하려면 이 정도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서울대 이태진교수(국사학과)도 "'교양 한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많은 학생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한국사와 불교문화' '현대사의 이해' 등 주제별로 묶은 강의를 개설한 뒤에는 80% 이상의 학생들이 한국사 관련과목을 듣고 나간다"고 말한다. 사실 이같은 변화는 체계적으로 준비돼 온 것이 아니라 조악한 실용주의에 맞서는 전략의 일환으로 의도됐다. 따라서 이런 움직임이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 못지 않게 유념해야 할 것은 자칫 '깊이'와 본질을 오도(誤導)할 위험에 대한 경계다. 인문학자는 "앎의 단순성에 물든 학생들로 하여금 삶의 복잡성에 제대로 응대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는 데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김영민교수)는 지적을 새겨들을 만하다. ■인터뷰/뉴욕주립대 김성복교수 "인문학 육성… 미국을 본받으시오" 지난해부터 초빙교수로 모교인 서울대에서 강의해 온 미국 뉴욕주립대(알바니) 김성복교수(사학)는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전락한 우리 인문학의 현실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교육의 효율을 높이자는 차원을 넘어 '이윤 추구'를 전제로 대학에 시장경제논리를 도입한다면 인문학과 기초학문은 설 자리가 없어요. 시장경제의 '종주국'이라 할 미국은 인문학 위주의 교양교육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는데…." 김교수에 따르면 신좌익의 영향을 받은 신문화운동이 60∼70년대를 휩쓸면서 미국의 교양교육은 크게 쇠퇴했다. 신진 학자들은 전통 권위 존경 규제 역사 같은 개념에 대해 불신을 드러냈다. 당장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학문은 배척됐고, 대학의 전통적인 교양강좌들이 무더기로 사라졌다. 그 결과는 문화적 자부심의 추락이었다. 80년대 미국인의 문자해독력은 세계 45위로 추락했다. 뜻있는 지식인들의 반성이 뒤따랐다. 하버드대가 그 선두에 섰다. 81년부터 이 대학은 문학 작문 외국어 역사 예술 기초과학 등 인문학 중심의 교양과목을 '핵심강좌'(코어 커리큘럼)로 재구성해 모든 학부생들이 전공에 상관없이 필수과목으로 이수하게 했다. 전공에 앞서 인간과 사회의 다양한 측면들을 이해시키고, 폭넓은 사고능력과 비판정신을 길러줘야 한다는 데 교수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이같은 움직임은 곧 아이비 리그를 비롯한 다른 대학들에도 파급됐다. 김성복교수는 93년 뉴욕주립대 부총장에 취임하면서 교양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교수들과 단과대 이기주의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모델로 삼았던 게 동숭동 시절의 서울대 문리대였어요. 나눠져 있던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를 문리대(College of Arts & Science)로 통합한 뒤 교수들이 한 지붕 아래서 힘을 모아 질높은 교양과정을 마련하게 했습니다. 그 뼈대를 이룬 게 인문학이었지요." 김교수는 "미국의 인문학이 건재한 것은 과감한 투자와 인문학계 스스로의 변화의지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연방정부는 '자손들에 대한 투자'라는 인식에서 막대한 규모의 '인문학 진흥기금'(National Endowment for Humanities)을 조성해 연구비를 지원하며, 인문학자들은 사회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강의내용과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와 교류를 거듭한다는 것.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면 결국은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형삼 기자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