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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13일 토요일 오전 11시 58분 39초
제 목(Title): 퍼옴/박노해 진보의 본성은 변화 



      제 목 : [21C진보]'진보의 본성은 변화'라고 말하는 영원한 신세대 박노해

21세기다운 진보를 찾아서
‘진보의 본성은 변화’라고 말하는 영원한 신세대 박노해
새는 건강한 몸통이 있어야 난다

마음이나 몸의 어느 한 구석에라도 80년대가 깃들어 있는 사람이라
면   첫마음  이라는 시를 기억할 것이다.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 있다/ 첫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그렇게 8년 만에 첫마음을 간
직하고 벗들에게 돌아온 시인이 간절하게 들려 주고 싶은 말은 ‘참
사람’이었다. 그것은 ‘혁명’의 21세기적 이름이었다.

글 김경환 기자│사진 박여선 기자│미술 김수정

왜그랬는지 모른다. 80년대 중반   노동의 새벽  이라는 시집에서 박
노해라는 이름을 처음 만났을 때, 분노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
다. 어두운 표지에 박힌, 한 노동자가 머리에 손을 얹고 고통스런 표
정을 짓고 있는 판화 때문이었는지,   시다의 꿈  이니   손무덤  이
니   지문을 부른다   같은 충격적인 시들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나중에 ‘노해’라는 이름이 ‘노동해방’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
았지만 그 때의 인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시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13년이 지난 뒤에 그의 옥중명
상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를 읽으면서, 출소 이후의 박노해를 보면
서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박노해가 최초로 등장했을 때는 오랜
폭력과 억압의 시대였다. 짓누르고 밟으면 꿈틀대며 일어서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분노는 저항하기 위해 온몸의 힘을 끌어모으는 의
식이다. 그의 저항은 비합법조직의 결성과 활동으로 구체화되었고,
결국 지배권력의 힘 앞에 무너졌다. 감옥에 갇힌 그의 가슴 속에는
더 큰 분노가 자라났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그에게 정말 큰 분노
는 사랑이며 희망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박노해, 그는 맑은 얼굴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내가 좀더 겸손하고 순수했더라면…”

인사동의 어느 한적한 전통 찻집에서 박노해 시인(42)을 만났을 때
그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 보였다. 대추차와 한과를 앞에 놓고서도 한
참 동안 말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어제 밤
늦게까지 옛 동지들을 만났어요” 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7년의 수배
와 8년의 감옥생활, 그 척박한 세월을 함께 보낸 사람들끼리 어찌 재
회의 기쁨만 있었겠는가.

“지난 시대에 온통 자기를 다 쏟아붓고 고단한 일상으로 돌아온 동
지들을 보면 너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파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다
소모시키고,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가게 만들
고… 이것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동지들을 볼 때마다 괴롭고 힘듭
니다. 87년 이후에 세계가 급변하고 있었는데, 책임 있는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현실 변화를 좀더 빨리 감지하고, 좀더 열린 진보를
이루고, 좀더 겸손하고 순수했더라면…. 그 당시만 해도 저는 제가
정말 순수하다고 확신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죽음 앞에 서서 정직
하게 성찰해 보니 내 안에도 엄청난 야심이 숨어 있었어요.”

‘좀더’라는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그 말에는 지난 시절에 대한 연
민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시인의 눈길이 열린 장지문 바깥을 향



했다. 꽃나무가 유난히 많은 작은 정원에는, 풀어놓은 문조며 잉꼬,
십자매들이 푸드득거리며 가지를 옮겨 다녔다.

“전국을 돌아보니까 옛날 운동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보다 오히려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이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어요. 철저하게
운동했던 사람들은 거의 다 무너졌고, 탁월한 창조를 보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외곬수로 하나만 추구하다가 똑 부러져 버린
겁니다. 이상에 치우쳐서 현실을 건너뛰다 보니까 허무주의가 오고
작은 실천도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게 참 두려운 일입니다.”

시작부터 우리가 만난 것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였다. 어쩌면 그것
은 80년대를 지나온 사람들의 숙명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희망을 노
래하기 위해 절망을 확인해야 했다.

“가장 큰 절망은 진보운동의 몸과 머리가 분열되어 있다는 것입니
다. 삶은 자본주의 속에 절어 가는데 그것을 부정하느라 머리는 관념
속에 머물러 있어요. 나와서 보니까 슬프게도 우리의 첫마음을 얘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어요. 모두가 제 영역에 갇힌 채 단절된 섬이
되어 가고 있어요. 과거에는 그렇게 사람도 많고 논의할 의제가 많은
데도 만날 장소가 없었잖아요. 지금은 사방에 좋은 장소 천지인데도
논의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이념에서 삶으로, 조직에서 사람으로

박 시인은 출소 이후 ‘징역보따리를 풀 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내외 언론과 인터뷰하고 전국을 돌며 수많은 강연을
치러 내느라 집에서 밥 한끼 제대로 먹은 적이 없다고 한다. 노동부
특강 이후 다른 정부 부처에서도 강연 요청이 오고 있고, 쇄도하는
TV 출연 요청을 비롯해 하루에 서너 건씩 치른다고 해도 2∼3년이
걸릴 만큼 많은 일정이 밀려 있다. 광고 모델로 출연해 달라는 요청
이 들어올 정도로 그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런 그에게 고운 시선만
보내는 것은 아니다.

“요즘 박노해가 떴다고 하지요. 그거 다 거품이에요. 왜 산에 오르
는 것을 등산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진짜 산 맛을 아는 사람들은 그
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입산이라고 하지요. 산 속에 들어가려면 지극
히 작은 자가 되어 산 기운을 받아가면서 가야 합니다. 저는 지금 국
민 속으로, 민심의 한가운데로, 생활문화 속으로, 영혼 속으로 들어가
고 있는 거예요. 운동권에서는 이제 저 양반 일 좀 하겠다 하면 이상
해졌던 역사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집단 속에서 몸을 도사리고 있
는 것, 중간만 가는 것, 이런 것이 자기의 도덕성을 지키고 변질되지
않는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관성이 있어요.”

관성, 불교에서 말하는 습(習)이다. 습에 젖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깨
어 있어야 한다. 진보의 본성은 원칙의 고수만이 아니라 변해서는 안
될 것을 지켜가기 위한 적극적인 자기 변화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 격변의 시대입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변해서
는 안될 것까지 무너져 버립니다. 과거에는 절대 변해서는 안될 것을
이념과 조직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념과 조직은 변할 수 있지만
사람과 삶은 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에서 삶으로, 조직
에서 사람으로, 계급에서 개인으로 새로운 창조를 해야 합니다. 그래
야 계급적 진실도 이념과 조직의 진보성도 지켜질 수 있습니다. 저는
열린 감성을 가진 사람, 생활 속에서 진보를 실천하는 사람, 전심전력
으로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면서 그 실천의 축적을 통해 큰 것을 바



라보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박 시인의 강연이 끝나면 반드시 30분 정도의 ‘뒤풀이’가 이어진
다. 그의 사인을 받고 악수를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간혹 그를 손가락질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그는 그런 사
람들의 손을 꼭잡고 “생을 두고 끝까지 운동합시다, 우리 힘없고 작
지만 끝까지 운동합시다, 운동은 사랑의 확장이고 실천인데 포기하지
맙시다, 지금 생각 차이는 끝까지 운동하다보면 하나 되어 흘러갑니
다”라고 말한다.

“저는 사인을 해 달라고 몰려드는 분들이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저
는 정성을 다해 박노해라는 이름 석자를 적습니다. 사인을 한다는 것
은 그 사람의 인생에 나를 새기는 엄숙한 서약입니다. 저는 내일 다
시 죽음이 온다고 해도 변함없이 첫마음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나의 경쟁상대는 박찬호, 박세리, H.O.T”

퇴보하는 것은 어둡고 탁하기 마련이다.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탓
이다. 반면에 상승하고 진화하는 것은 밝고 맑은 기운을 내뿜는다.
그런 까닭에 박 시인은 신세대에게서 희망을 본다.

“저의 강연장에 오는 청중은 대부분 신세대들이거나 생활 속에서
작은 진보를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저는 상당한 희망을 발
견합니다. 신세대는 역사가 생존단계를 넘어서 생활단계로 접어들면
서 출현한 전혀 새로운 인간입니다. 감성이 활짝 열리고 자기를 구속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지요. 또 지역운동에 뿌리를 내린 건강한 30대
들이 많이 있어요. 그들에게는 70,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 온 경험
이 있습니다. 신세대의 문화감성적 진보성과 30대의 사회정치적 진보
성이 결합된다면 21세기를 주도하는 새로운 흐름이 나올 것입니다.”

박 시인이 신세대를 분석하는 틀 중에는 3N이라는 것이 있다. 뉴
(New), 나우(Now), 네트워크(Network)의 이니셜이다. 그는 신세대의
부정성과 긍정성을 동시에 보고 있다. 신세대의 부정성은 30대의 진
보성으로, 30대의 부정성은 신세대의 진보성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
한다.

“신세대의 특성인 3N에도 부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나우에는 미
래가 없이 당장의 쾌락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고, 뉴에는 유행만 추종
하는 한계가 있고, 네트워크는 자기 중심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
나 3N이 가진 진보적 요소도 많습니다. 뉴, 시대의 변화에 주목하고
현실 속에 생성하는 진보성에 자신의 더듬이를 맞추는 것은 중요합
니다. 나우, 우리의 목표가 외부 혹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우리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가치로운 것을 품어 키
우고, 그것을 가로막는 낡은 것과 싸우는 것이 진보운동이고 혁명이
지요.”

정지된 시각으로 바라보면 결코 박노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변화
의 격랑에 과감하게 몸을 던져 전혀 새로운 진보의 지평에 도달한
신세대다. 신세대라는 개념, 이것이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요
소 중의 하나다. 신세대의 시각에서 보면, 새로운 리듬과 비트에 맞
춰 춤을 추고, 신세대 스타들을 거침없이 자신의 경쟁상대라고 말하
는 그는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다.

“누가 뭐래도 21세기의 주역은 신세대입니다. 나는 경쟁하기 싫지만
누가 나한테 당신의 경쟁상대가 누구냐고 물으면 박찬호, 박세리,



H.O.T라고 대답합니다. 운동의 두 축은 ‘좋은 사람’과 ‘좋은 싸
움’이에요. 이 둘은 안과 밖처럼 불가분의 것이에요. 우리는 신세대
앞에 경쟁력 있는 운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신세대들이 보기에 진보
운동 하는 사람 참 멋있다, 저런 삶이 아름답다고 여기면서 ‘오빠’
하고 몰려들 수 있을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릴 수 있습니다. 저는 끊임
없이 신세대로 진화할 거예요. 죽는 날까지 재창조할 거예요. “

박 시인은 과거 운동이 남긴 유물로 집단주의, 유일주의, 이분주의,
전면부정주의를 꼽았다. 이념의 전쟁터에서 불가피하게 입을 수밖에
없었던 이데올로기의 갑옷이 창조와 감성과 영성을 가두었다는 것이
다. 그의 비판이 때로 거칠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박노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보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것 같
다.

“저는 각 분야에서 유홍준이나 구성애와 같은 운동가들이 그 영역
의 대표자로 창조돼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 20, 30대 속에서 훌륭
한 리더들이, 창조적 소수자들이 막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만큼 우리 운동의 수준은 높아질 것이고, 마침내 들어올려질 것입
니다. 저는 전국을 다니면서 창조적인 에네르기가 번뜩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각 개인이 자기 삶의 대통령이고 자기 인생의 최고경
영자가 되어야 합니다. 조직이나 집단의 눈치를 전혀 안 보고 주체적
으로 서로 연대하고 공동선을 이루어 가는 개인, 이런 개인이 가장
진보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해요. 운동가야말로 그런 지구시대의 주체
적 개인인 ‘참사람’이어야지요.”

그는 민심에 맞추어 낸 올바름, 현실에 디자인해 낸 올바름만이 대안
적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관념적이지 않고 철저히
현실적이다. 비판과 저항을 하려면 대안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다. 그래서 그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이란 지난 시대의 구호를 고이 품으면서 이제는 ‘한 사람의 열 걸
음을 열 사람의 열 걸음으로’라는 새로운 구호를 제시한다.

시대의 무게중심은 ‘몸철학’

박노해는 여전히 사회주의자인가. 그는 진보운동의 이 무거운 족쇄를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한다. 그는 사회주의라는 틀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두어 두는 것은 현대인의 뇌를 유인원의 뇌 속에 밀어 넣으려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라고 말한다.

“사회주의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현실 체제로서의 사회주
의입니다. 이미 붕괴한 동구나 북한은 실패했습니다. 이 실험은 소중
한 경험이지만 그런 체제는 인간의 진보를 더디게 만들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입니다. 이것
은 흔히 말하는 노동해방, 사회적 약자 옹호, 실질적인 민주주의 등의
개념을 포괄하지만 크게 계획경제, 사유재산제 부정, 프롤레타리아 독
재, 민중항쟁 노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는
보장돼야 하지만 어떤 닫힌 상황, 낮은 생산력 상태나 우리 같은 분
단 상황에서는 힘을 갖는 순간 절대 유일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습
니다. 셋째는 가치로서의 사회주의입니다. 평등과 공동선, 노동가치의
중시, 돈보다 사람 가치의 우선 등 사회주의적 가치는 대단히 소중하
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냉전 반공논리에 가로막혀 가치로서의 사회주
의 요소가 우리 사회에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박정희식의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판쳤고, 그런 구조적인 모순이 쌓여 IMF 사태
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가치로서의 사회주의 운동은 지원할 생각
이지만 저는 가치로서의 사회주의자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주의나 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일까. 그는 시장경
제가 이룩한 생산적인 요소와 가치로서의 사회주의, 생태주의와 여성
주의, 영성주의 등을 하나로 통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해 왔
다고 한다. 그는 우리 시대의 이념적 좌표를 중용에서 찾고 있다.

“리영희 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이념 좌표를 ‘중간에서 약간 좌’
라고 얘기했지요. 저는 이 선생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흔히 사람들
은 중용을 거리의 중간 잡기로 잘못 알고 있어요. 중용은 그게 아니
라 무게중심이에요. 오른쪽 날개만 잔뜩 커져 있는데 그냥 중간을 잡
아 버리면 추락합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면서 두 날개를 강조했습니다. 오른
쪽 날개가 크니까 왼쪽 날개만 키우면 된다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가
놓쳐 온 것은 좌우 날개의 균형은 몸통이 잡아 준다는 사실입니다.
새는 강인한 심장과 날카로운 눈과 지혜로운 머리를 가진 튼튼한 몸
통이 있어야 날 수 있습니다. 보수사회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통찰
력, 미래를 내다보는 투시력, 삶의 속살을 살찌우는 생활력, 극좌에서
극우까지도 넉넉하게 품어 안는 포용력, 이처럼 건강한 몸통을 만드
는 것이 중요하지요. 제가 정말 고뇌하고 쫓기다시피 하는 것은 개혁
주체가 될 ‘튼튼한 몸통’ 만들기예요. 진정한 진보운동, 21세기 진
보운동 말입니다.”

하루에 20km씩 짐승처럼 달리고, 엉덩이가 문둥병 환자처럼 짓무를
때까지 공부하면서 깨쳐 온 ‘몸철학’. 옥중 변증(辯證)의 성찰을
한바탕 치르고 난 그는 몸통(通)하지 않은 진리는 공허하다고 말한
다.

“감옥에서 목숨 걸고 참구해 왔습니다. 사회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새로운 길은 무엇인가, 이 빠른 변화시
대, 지구시대에 인간다운 삶의 내용은 무엇인가, 진보운동의 내용은
무엇인가, 8년간 침묵, 절필, 삭발, 정진하면서 최소한 나 박노해가 어
떻게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의 말과 행동과 삶에 책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당장이라도 실현하고 싶은 삶은 농사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
이다. 그는 함께 나누는 지구적 삶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농사는 ‘제4의 물결’이자 미래산업

“과거 진보운동의 꿈은 ‘고르게 부자인 삶’이었어요. 그러나 그
꿈은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해 있습니다. 바로 지구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구형제 가운데 굶주려 죽는 사람이 1년에 1천8백만명
에 달하고, 하루 두끼 이하로 먹는 사람들,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는
형제들이 20억이 넘어요. 따라서 휴머니즘의 핵심, 도덕성과 진보성
의 핵심은 자기 정량으로 살아가고 남의 정량을 갈취하지 않는 겁니
다. 사람은 세끼 밥을 먹어야지 지식과 정보와 서비스만을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농사가 중요하다고 봐요. 농사는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제1의 물결이 아니라 제4의 물결이자 미래산업이며
문명전환의 열쇠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밥은 끌어당김을 뜻한다. 가까운 사람이 먼길을 떠나
면 간절히 밥상에 마주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곡식 한
톨에도 우주만물의 원리가 담겨 있다. 농사는 자연과 사람과 영혼을
이어주는 생명의 고리이자 삼라만상의 뿌리를 이루는 일이다.




“농사마을 공동체는 생산과 소비, 놀이와 교육이 그 안에서 자연순
환될 수 있는 일정한 규모를 갖춰야 합니다. 또 일이 힘들지 않도록
과학기술의 성과를 최대한 활용할 것입니다. 하루에 4시간 일하고 나
머지 시간은 스포츠와 문화를 향유할 것입니다. 그래야 매력 있는 삶
이 될 수 있습니다.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생산물은 공장과 대학, 인
근 도시로 갈 것입니다. 농산물 가공생산 공장을 세우고 자체 브랜드
로 판매합니다. 흙집호텔에서는 화롯불이 타오르고, 인절미와 밤을
구워 먹을 것입니다. 생태건강원, 명상센터, 헬스클럽 같은 의료·휴
양시설도 들어설 것입니다. 울창한 숲에는 산책로와 자전거 길이 놓
여질 것입니다. 우리 꽃, 우리 토종 동식물로 예쁘게 꾸며진 작은 학
교는 태양열로 냉난방을 하고….”

감옥에서 그림까지 그려 가며 ‘연구’했다는 그의 구상은 끝도 없
이 이어졌다. 이 말을 할 때 그의 눈빛은 꿈을 꾸듯 아련해 보이기도
하고, 열정과 투지로 번쩍이기도 했다. 그렇다. 꿈을 꾸는 자가 아니
라면 그처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유토피아가 비현실의 세
계만은 아니다. 그 자신이 언젠가 말했듯 길을 찾는 사람은 그 자신
이 이미 새길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인류의 최대 문제는 실업과 생태위기입니다. 생태문제와 실
업문제를 동시에 뚫고 나갈 수 있는 키워드는 도  농이 연계되고 지
방자치와 직결된 농사마을 공동체입니다. 문명전환의 또 하나의 키워
드는 건강입니다. 인간은 몸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몸적인 존재입
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삶의 본체인 몸에 대한 욕구는 가속화될
것입니다. 농사마을 공동체는 인간의 삶의 목적인 공동선과 영적인
성숙, 그리고 몸의 건강함을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전환모델이 될
것입니다.”

“내 안에 상처가 너무 깊어 홀로 울며 간다”

박기평, 전라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과 벌교에서 자라고 열다섯의
나이로 상경하여 섬유, 금속공장, 운수 노동자로 살아온 그의 이름은
숙명적으로 박·노·해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가 서울노동운동
연합을 거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에서 활동하다 구속되어 무기징
역을 선고받고 경주교도소에서 8년 동안 복역할 때까지는 그랬다. 그
러나 이제 그의 발걸음은 노동해방을 넘어 인간해방을 향하고 있다.
앞으로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서 분노보다는 사랑과 희망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올해 2월부터 다시 침묵과 집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는 박 시인에게 수많은 고난에도 지치지 않는 생의 동력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참혹한 고통 속에서 나는 정녕 무슨 힘으로 그렇게 살아왔는지 수
없이 자문해 봤어요. 혁명을 위해서, 대의를 위해서, 양심과 의리를
위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진정 나를 움직이는 게 뭔가. 그것은 너
무나 평범하게도 사랑이었어요. 저는 사랑을 참 많이 받은 사람입니
다. 홀어미 자식에, 가난에, 전라도에, 학벌도 없고 온갖 불리한 것은
다 타고났는데 제가 받은 유일한 축복은 군대건 감옥이건, 공장이건
최악의 처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거예요. 안기부 지하실에서 그
걸 깨달았어요.”

15일 동안 잠 못 자고 고문조사를 받다가 “동지들을 불 것 같아”
하룻동안 생을 정리하고 기도를 하면서 자결을 감행했다던 박 시인.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 30대 젊은 나이에 홀몸으로 온갖 노동을 하면서 나를



정직하고 강인하게 살도록 해 주신 우리 어머니, 그리고 아내, 형님
박기호 신부님, 전동균 원장, 많은 동지들이 떠올랐어요. 내가 작은
꽃이기라도 하다면 그 꽃을 피워 낸 뿌리는 그 분들의 사랑입니다.
저는 그 분들이 사랑의 물줄기를 보내 주면 타고 흘러 내려갈 뿐이
에요. 그 사랑을 내가 독점하고 내 안에 가두어 두는 건 죄이지요.”

사랑만이라면 목숨까지 바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깊어
지면 고통이 되고 한이 된다. 그의 가슴에는 굵고 깊은 상처가 아로
새겨져 있다. 그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내 안에는 상처가 너무 많아요. 그 상처에서는 늘 새로운 피가 흘
러요. 길을 걷다가, 글을 쓰다가, 기도를 하다가 나는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나를 보곤 해요. 지금이야 사람들이 박노해니 뭐니 하지만 옛날
에는 못 배우고 못 가진 공돌이라고 말도 못하게 얻어맞고 살았거든
요. 참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내 안에 생생히 살아 있어요. 그
들이 고통을 당할 때는 내 가슴에 분노가 파랑새처럼 푸드득 살아나
요. 나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삽니다. 그런데
나 아닌 나인 그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편안할 리가 없지요. 지금 저
에 대한 오해도 많고 냉소도 많아요. 마음 아프고 고독하기도 하지
요. 그러나 돌아보면 늘 그랬어요. 그게 또 나를 긴장된 떨림으로 살
아 있게 하지요.”

박노해, 그는 자신의 첫마음이 붉고 아름다운 봄꽃으로 피어나기를
간절히 서원한다. 산중에 홀로 핀 외롭고 처연한 꽃 한송이가 아니라
사람 속에 무리져 환하게 쏟아지는 꽃다지를 꿈꾸는 것이다. 그럴 때
의 꽃이름은 다를 것이다. ‘참사람’ 그 눈부신 사람꽃을 피워 내기
위해 그는 허리 굽혀 씨앗을 뿌리고 땀흘려 가꿀 것이다.

겨울을 뚫고 왔다
우리는 봄의 전위

꽃샘 추위에 얼어 떨어져도
봄날 철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외로운 겨울 산천에
봄불 내 주고 시들기 위해 왔다
나 온몸으로 겨울 표적되어
오직 쓰러지기 위해 붉게 왔다

내 등뒤에 꽃피어 오는
너를 위하여
  진달래   (미발표 신작)

박노해, 그의 간절한 염원이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어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지만 더 크게는 진보
운동 전체의 몫일 것이다. 다섯 차례에 걸친 긴 만남을 끝내고 저녁
강연이 있다며 서둘러 길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새벽에 쟁기를 메
고 들로 나서는 농사꾼을 닮아 있었다.

인사동 거리를 가득 메운, 푸른 기운이 넘쳐 나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물결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거친 들판에 당당
히 선 수많은 ‘박노해들’이 이글거리는 아침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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