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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13일 토요일 오전 02시 06분 44초
제 목(Title): 김진균/진리를 위한 투쟁을 제안한다




[진리를 위한 투쟁을 제안한다] 

교수신문 133호(98-4-20) 교수신문 창간6돌 기념특별판 


IMF사태를 두고 뼈아픈 자성의 호소가 나오지 않은 것이 이상할 것이다. 잘 
살펴보면 실물경제의 흐름을 자료로 보고 있는 사람은 말 것도 없고 그 흐름에 다소 
떨어저 있는 사람들도 '징후적 독해'를 계속해서 그 위험성의 소재를 밝히고 
재빠른 대응을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문제의 소재를 인지하고 그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피드백시켰는데도 의사결정의 중요한 지점에 있는 사람들이 그 
정보를 빨리 바르게 읽고 이해하기 보다는 그 중요한 지점의 의사결정자들이 
그들의 주관적인 '소신'을 오히려 앞세워 그 자료가 함축하고 있는 사실의 뜻을 
무시하거나 특정 이익을 항상 대변해 온 관습적 판단에 의하여 그것을 은폐하거나 
왜곡하여 국민경제 전체 나아가서 국민생활 전체를 파탄으로 몰고 가서 외국 
투기금융자본의 입에 고스란히 가저다 바치는 꼴로 치닫게 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국가나 경제의 직능을 맡은 사람들이 기능이 갖는 국가적 의의에 대한 
총체적 판단이나 도덕적 책무를 무장하고 있지 않을 경우 그 기능주의적 행태는 
무책임하고 부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조 후기 학자로서 현재의 눈으로 보면 아마도 '근대적 주체를 인식할 철학'을 
추구했다고 볼만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당시 우리나라 학자들이 중국의 담론에 
유행처럼 휩쓸리고 있다고 비판한바 있다. 자기 역사적 현실에 치열하게 직면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를 우리가 다시 되새겨 보면, 지금 우리에게는 그 보다 더 
심하게 우리나라 엘리뜨 재생산메카니즘이 우리나라의 자주적 역사기반에 
뿌리내리지 않은체 외국에서 완벽하게 재생산되어 온다는 무서운 사실을 주목하게 
한다.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자연과학 모든 분야에서 가장 지적인 엘리뜨로서 
국가기관이나 대학, 대기업 할 것 없이 중요한 위상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외국의 최고교육기관의 학습을 받은바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자본주의발전경로를 쉼없이 치닫아 오면서 그것을 관리하고 목표를 세우고 할 
지적 인자들이 모두 미국식 자본주의경영의 기능적 부분에 인지적 기술적 숙련으로 
단련된 사람으로 구성되고 이들이 국내의 재벌자본의 하위파트너로 결합해 왔다. 
그리고 외형적으로는 재벌의 형성이 마치 경제성장의 지표처럼 내세워룶고 
'세계화-지구화'를 이끄는 현란한 주역으로 찬미되었다. 엘리뜨 재생산메카니즘이 
외국에 맡겨진다면 그 지적 엘리뜨는 여기 현실적 삶을 구성해 가고 있는 민중의 
생활에 밀착된 인식과 판단능력을 기룰 수 없을 것이다. 민중의 삶과 괴리된 
인식과 판단의 체계는 결국 성장의 수치에 매달리면서 민중의 삶을 살리는 방향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파괴하는 방향으로 담론과 이데올르기를 양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보면, 다산 정약용은 현실의 모순에 대하여 대결하는 세가지 수준의 
자세를 취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우선 삼정(三政)의 문란에 의하여 피팍받고 
있는 민초들의 삶을 시(詩)로서 읊었다. [哀絶陽], [적성촌에서], [굶주리는 
백성들][여름날 술을 마시며] 등등이 그 피폐된 농촌과 농민을 그려내고 있다. 
둘째는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주장하는 글들이다. 예컨대 田論, 職官論 庶孼論 
還上論 監司論 奸吏論등은 신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글들이다. 또한 그는 
[牧民心書]를 통해 행정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규율을 제시하고자 하여 행정의 
표준화를 통해서 국가의 本이 되는 민중의 삶을 합리적으로 살려내는 개혁의 
방향을 구상하였다. 세 번째는 지배적인 담론이나 이데올르기를 단절시키고자 하는 
'인식론적 단절'을 시도하였다. 예컨대 [論語古今註]와 같이 경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시도는 궁극적으로 조선에서 퇴락하고 동맥경색에 걸려 오직 
지배이데올르기의 퇴폐적 효과만을 내고 있는 조선 성리학으로부터 단절되는 
인식체계를 수립코자 하였다. 그의 평생의 지적이고도 실천적인 과업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조선이 너무 오래 동안 중국에만 한정된 폐쇄적 국제관계를 
염려하고 일본을 비롯한 다양한 외국과의 교류를 주장하였다. 

이제 미국의 초국적금융자본이 각국의 하위 초국적자본을 거느리고 합세하여 
세계의 곳곳에 도로를 깔고 비행기를 날으게 하고 에너지자원인 석유와 핵을 
발굴하는데 집중하게 투자하도록 국가들을 휘몰아가고 그들의 자본이 어느 한 
초라도 쉼없이 어느 나라의 국경도 아무런 제약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하고 이에 
지장을 주거나 장애하는 국가적 어떤 조치도, 노동자들의 어떤 방해와 저항도 있을 
수 없게 하도록 모든 국가들을 한 줄에 묶어가고 있는 세상 -기업 지배의 
세계지도가 작성되는 시대, '신자유주의시대'에 오직 소수 초국적자본의 이익만이 
지구적으로 챙겨지고 그 자본의 굴림만이 지구위에서 소리내고 있을 뿐인 시대의 
가운데 먹이로 한국이 놓여 있다. 98년 한국에는 이미 200만 실업자가 양산된다고 
한다. 실제로 어제까지 멀쩡한 사람이 거리의 부랑자처럼 나돈다. 오만하던 
재벌들도 안간힘을 쓰서 해체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종자회사도 
넘어가고 있다. 노동자의 피땀으로 일군 알짜 공장들이 외국의 자본에 넘어 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 어느 하나 IMF가 직접 한국의 국가정책에 깊이 적극 개입하여 
그들이 마련한 '프로그램 대출'에 충실히 따라나설 것을 강요하여 '준비된 
대통령의 국민정부'도 속수 무책으로 국가기간 국영업체마저 외국자본에 넘기고자 
하고 있다. 그나마 불실했던 사회복지예산마저 삭감되어야 하고 노동자의 임금은 
삭감되어야 하고 통화평가절하, 탈규제에 의한 외국투자 유인 등으로 나라 꼴이 
없어지는 지경에 까지 내몰리고 있다. 전지구적으로는 농업과 식량, 생명의 
유전자까지도 포괄되는 지적 재산권, '살인을 사업으로, 사업은 좋은 것'으로 
표방하는 전지구적 군수무역, 그리고 금융서비스를 무기로 해서 각국의 그 영역을 
파괴하고 그것을 그 들 자본의 운동권역안으로 끌어들이고 있고 이것에 저항한 
국가들을 이제 '다자간 투자협정'으로 굴복시켜그 시대를 완성하려하고 있다. 
녹아나는 것은 사람들, 해고와 실직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 여성노동자들- 
멕시코, 인도네시아, 아랍 중동, 미국, 프랑스, 네팔, 스리랑카, 피립핀, 인도, 
영국과 독일 그리고 러시아 등등에서 양산되고 있는 실직된 노동자와 여성들, 
굶주림에 내몰리는 어린이들, 그리고 자동차와 비행기와 석유와 핵에 의해 
오염되고 파괴되는 산과 들과 강과 식물과 동물들이다. 우리나라도 그 와중에 와 
있음을 이제 IMF사태로 갑자기 깨달은 것인가? 민중의 삶을 노래하던 사람들, 
환경보존을 위해 싸워온 사람들, 민중적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민중적 삶의 질적 
향상을 발전의 기준으로 겨냥하여 사물의 관계를 인식하고 판단하자고 하던 
사람들, 민주적 노동운동이 단지 계급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민족전체의 생존에 
직결되어 있고 선진국 개발도상국 어느 곳이든 세계적으로 해고와 실업에 내몰리고 
있는 지구촌 민중에게 지구적 민중연대의 기반임을 주창하던 사람들, 이들의 
존재가 새삼스러히 귀중하게 생각되는 지점이다.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뿜어나왔던 
변혁과 수구의 열띤 공방이 그 정치적 표현의 지형을 만들고자 했던 의지들에서 
애매한 민주의 진영의 잔영만이 정돈되어 있는 지금에 사회구성을 바라보는 눈 
높이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성찰이 생긴다. 

징후적 독해능력을 배양해 가는 교육과 학문의 체계를 우리나라 역사에 기반으로 
하여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고 그 독해능력을 비판의 힘으로 
배양되어야 한다. 오직 대학입시방법만이 모든 교육의 모순을 없애기라도 할 듯이 
교육개혁의 문제가 왜곡되고 있는 사이에 학문의 기초분야와 우리의 역사를 
복원하는 학문분야에 대한 투자와 전망을 위한 담론은 아직 발언권을 확실히 얻어 
내지 못하고 있다. 올바른 비판없이는 변혁의 길이 보이질 않을 것이다. 80년대 
한국의 변혁적 운동은 세기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화의 전망이 서고 통일의 
길이 생각게 하고 민주노동운동의 분출하는 힘이 세계의 움추러들어 있던 노동자와 
민중을 일깨웠다. 그 힘을 다시 불려내어 보자. 언제가 사회전체의 전환을 현실로 
다가오게 하는 '인식론적 단절'이 실천운동의 에너지와 합처저서 지식인의 깊고 
끊임없는 사유로부터 성장하여 변혁지향적 전망을 이끌어 내고 이것이 역사로서 
젊은이들에게 전수되어야 되지 않겠나! 그리고 민중의 삶과 자연의 자원이 서로 
상보하는 지구적 연대를 추구하는 일이 있어야겠다. 세계 곳곳에 해고자가 생기고 
여성이 일터에서 먼저 쫓겨나는 곳, 제철공장과 핵발전소나 핵폐기물저장소가 
들어서서 강과 산을 오염시키는 곳곳에, 사방팔달의 고속도로가 그믈망처럼 
뻗어나면서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곳곳에,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민중들은 
'죽음의 보증서'처럼 오는 그 확장의 파괴를 막기 위해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저항하고 있다. 그 지역의 민중적 저항이 없는 곳에서는 국가도 민중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이미 국가들은 국제적 여러 협약을 
통하여 초국적자본의 자유로운 운행을 위하여 그것을 저해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기로 두손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만 아직도 
민중의 삶이 민족국가단위에서 마무리되도 있다면 그 국가를 더욱 진보적인 
정권으로 대치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해야 하면서 '초국적기업의 지배'에 
대한 민족자결의 원칙을 다시금 그 의의를 새겨보아야 할 것이고 그 바탕위에서 
사회적 정의와 사회적 책임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조건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19세기를 독해와 비판 그리고 인식론적 단절의 고행을 거쳐 전망을 
쁹아나아갔다면, 우리는 새로운 세기에 재앙처럼 다가오고 있는 초국적자본의 
기업지배를 눈앞에 두고 민중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기준으로 하여 징후적 
독해를 하고 비판하고 인식론적 단절을 찾아 가는 것이 지식인의 자임된 도리일 
것이고 이를 또한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하는 책임마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진리를 위한 투쟁'이라고 부르자. 이것은 지식인과 민중의 생명력이 
합처서 수행할 수밖에 없는 것. 

(불 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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