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11일 목요일 오전 07시 48분 23초 제 목(Title): 퍼옴/21세기를 맞는 동아시아의 딜레마 오정근 한국은행 조사부 과장·경제학 박사 ------------------------------------------------------------------------------- - [76] 제목 : 동아시아, 域內 경제블록화로 美·EU 波高 극복해야 동아시아의 눈부신 성장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용’.그 상징적 존재였던 한국은 금융위기 한방으로 화려한 성장신화를 접고 말았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금융위기의 늪에서 허덕이는 동안 미국과 유럽은 21세기 세계경제를 주도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점점 노골화하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극복하고 다음 세기에 번영을 누리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 97년 7월 태국의 바트화 위기로 시작되어 인도 네시아와 한국을 강타한 동아시아의 금융위기 는 그동안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인구에 회 자되어온 동아시아 제국의 성장신화를 하루아 침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지난 20∼30년간 동아시아가 이룩한 고도성장 은 실로 눈부신 신화 바로 그것이었다. 1700년 대 중반 영국이 산업혁명을 시작한 이래 2백여 년 동안 산업혁명의 대열에 먼저 동참하였던 선진공업국과 그 대열에서 뒤졌던 후진국의 구 분은 불변부동의 경계였다. 선진공업국은 언제 나 기술집약적인 공업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었고 후진국은 노동집약적인 농업이나 기껏 해야 기술수준이 낮은 경공업 정도에서 비교우 위를 가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것이 60년대 까지 세계를 지배하던 가치관이었으며 경제학 계를 풍미하던 소위 후진국 경제개발론의 핵심 이었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동아시아 의 고도성장은 30여년간 지속되는 동안 신흥공 업국(NICS)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네마리 용 가운데 한국이 선진공업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불과 한세대만에 후진국에서 선진공업국으로 탈바꿈하는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네마리 용 가운데 싱가포르와 홍콩이 작은 도시국가인 점을 고려하면 이 성장신화의 한가운데 한국이 우뚝 서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한 62년, 한국의 1 인당 GNP는 1백달러에도 못미치는 87달러였다 . 그것이 95년 1만37달러로 ‘1만달러 고지’ 를 넘었다. 비록 그후 국가적인 금융위기로 다 시 추락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위업은 여간해서 이룰 수 없는 세계 경제개발사의 금자탑이 아 닐 수 없다. 한국이 한세대만에 이룩한 선진공업국으로의 탈바꿈은 만년 후진국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수많은 후진국들에 복음과도 같은 희망을 던져주었다. 말레이시아 ·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같은 동남아 국가 들은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외치 며 뒤를 이었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대열 에 합류했다. 다른 많은 후진국들도 동아시아 의 개발모델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를 두고 세계은행은 서방선진국이 2백여년에 걸쳐 이룩한 업적을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이 30년만에 달성했고 이제 중국이 10년만에 이루 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개발 이론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는 주 장이 대두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동아시아 경제개발에 관한 수많은 이론서와 실증 분석 이 쏟아져나왔다. 발라사·바그와티·체너리 등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물적생산요소의 축 적과 수출지향적 개방경제정책이 동아시아 경 제발전의 중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로스만·로머·루카스 등은 물적·인적자본 과 연구개발 투자를 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증 가하면서(수확체증의 법칙) 성장을 가속화시켰 다는 소위 ‘내생적 성장이론’을 새롭게 제시 했다. 수확체감의 법칙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 각해왔던 기존 경제학의 틀을 깬 사고의 대전 환이었다. 특히 연전에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루카스(시카고대) 교 수는 그 가운데서도 학습효과에 의한 인적자본 의 축적이 동아시아 성장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은행은 91년 “개발의 도전”이라는 보고 서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외국인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효율적이고 왜곡되지 않은 시장을 만들어온 시장친화적 개발정책이 중요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93년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보고서에서는 그동안 최고선으로 믿고 있던 시장경제 원칙을 다소 수정, 정부 의 안정된 거시경제정책·금융정책·교육정책 ·농업정책·산업정책 등 정부의 역할을 인정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아시아의 다음 거인 -한국”이라는 책 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MIT대의 암스덴 등은 전통적인 시장주의와 개방주의에 토대를 둔 신고전학파의 이론을 부정했다. 이들은 산 업정책과 전략적 무역정책 및 시너지효과를 유 발하는 정부와 민간부문간의 긴밀한 협조관계 가 동아시아 경제기적의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유교적 가치관 등 동아시아 적 가치가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는 분석이 대두되면서 ‘유교자본주의’라는 용어 까지 등장했다. 경제학 이론까지 바꾼 화려한 성장신화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21세기는 동아시아의 세기이거나 적어도 미국 ·유럽·동아시아 3자가 쟁패하는 세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존 네이스비트는 저서 “ 메가트렌드 아시아”에서 아시아가 세계를 바 꿔놓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프랭크 깁니 미국 태평양연안연구소장은 그의 저서 “태평양의 세기”에서 20세기가 대서양의 세기였던 반면 21세기는 동아시아를 축으로 하는 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IT대의 레스터 스로는 그의 베스트셀러 “경제전쟁”에서 2 1세기는 미국·유럽·동아시아가 쟁패하는 세 기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렇듯 전세계의 찬사와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동아시아 경제가 금융위 기 한방으로 참담하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각 도에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국제통 화기금(IMF)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석한 다. 위기국 금융기관들이 신용분석을 제대로 하지도 않은 채 무분별하게 투자하는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 이에 편승해 기업들은 과다 한 고위험 투자를 일삼았다. 이를 감독하고 규 제했어야 할 금융감독기관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한 가운데 거시경제정책도 안정적으로 운영 하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IMF는 구제금융을 지원 해 주는 대가로 가혹할 정도의 강력한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과 긴축적인 거시경제정책을 강 요하고 있다. 심지어 유교자본주의로 명명되면 서 동아시아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찬사를 받은 소위 ‘동아시아적 가치’ 자체도 정실자본주 의로 매도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사회적·윤리 적 가치관 자체가 경제위기의 원천이 되고 있 으므로 차제에 그 가치관을 대수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마저 대두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계화에 따른 자본자유화의 급속한 진전과 이에 편승한 국제투기자본들의 급속한 이동에 따른 폐해가 더욱 중요한 관심 사로 떠오르고 있다. 94년 중남미 위기 등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국제투기자본이 95∼96년 동아시아 개도국에 대량 유입된 후 97년 중반 급속하게 유출되면서 동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 실이다. 동아시아의 자본자유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94 년부터 96년까지 3년 동안 1천7백9억달러에 달 한 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필리 핀 등 동아시아 5개국에 대한 민간자본 순유입 액이 97년중에는 오히려 1백10억달러의 순유출 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통화가치는 급락(환율 급등)하고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금이 주도하던 주식시장도 일거에 붕괴되고 만 것이다. 이러 한 갑작스런 자금의 유출이 있을 경우 세계 어 느 나라도 견뎌내기 힘들다. 결국 동아시아 금융위기는 개방에 대한 대비도 채 갖추기 전에 선진제국의 개방압력에 밀려 자본시장의 빗장을 너무 빨리 열어놓은 결과 의 산물이다. 자본 유입으로 환율이 절상되어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면서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과 금융기관이 파산 위험에 직면하자 대 규모 자본이 한꺼번에 유출됨으로써 금융위기 를 맞게 된 것이다. 이러한 투기자금의 폐해는 다시 브라질 등 중 남미와 러시아에서 연쇄적으로 위기를 일으켰 다. 마침내 미국 헤지펀드의 하나인 롱텀캐피 털이 위기에 몰리는 등 미국경제에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자 국제금융계는 국제투기자금의 폐해와 국제금융제도의 문제점에 주목하기 시 작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슈뢰더 독일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이 국제금 융제도의 개혁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이 문제는 국제경제계의 현안과제로 떠올랐다. 이와 관 련하여 논의되고 있는 중요 이슈로는 국제투기 성 단기자본에 대한 규제, 급속한 환율 변동을 방지하기 위한 목표환율제도 도입,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IMF의 개혁 등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식 세계화에 비난 화살 이 문제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책 임있는 세계화’라는 주제로 열렸던 다보스 포 럼에서는 자본자유화와 시장경제의 기치를 내 건 미국의 신자유주의식 세계화가 금융위기를 초래하고 그로 인해 제3세계의 빈부격차를 확 대재생산시키며 세계경제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은 단지 금융자 본주의에 토대를 둔 미국시스템의 글로벌스탠 더드화를 요구하며 팍스아메리카나를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금융제도 의 개혁 주장에 미국만이 반대했음은 물론이다 . 전후에 탄생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과 IMF체제는 자유무역과 고정환율제에 토대를 둔 국제경제질서였다. GATT는 전후의 국제무역체제를 규정한 다자간 협정으로 당시 선진국의 경쟁력이 앞섰던 공산품의 자유무역 을 뒷받침했다. IMF는 전후 국제통화질서를 유 지하기 위한 기구로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고 달러화 환율을 금에 대해 일정비율(금 1온스 당 35달러)로 고정시켰다.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시키고(고정환율제도) 1% 범위 내 에서 조정 가능하도록 하였으므로 조정가능페 그제도라고도 한다. 고정환율제도인 만큼 자본 의 이동도 여러 가지 제약이 존재했다. 이 제도가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브레튼우즈 에서 열린 회의에서 결정된 까닭에 브레튼우즈 체제로 부르기도 한다. 이 회의에서 영국 대표 였던 케인스는 달러화의 기축통화안을 반대하 며 뱅코르(Bancor)라고 하는 새로운 국제통화 를 창설하자고 주장한 반면, 미국 대표였던 화 이트는 달러화 기축통화론을 내세운 끝에 당시 승전국의 리더격이었던 미국안이 채택됐다. 세계경제는 팍스브리태니카에서 팍스아메리카 나 체제로 급속히 재편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달러 발행으로 막대한 이익 챙겨 우선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됨으로써 미국 은 엄청난 주조차익을 향유할 수 있었다. 주조 차익이란 돈의 명목가치에서 실제 돈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뺀 차익을 말한다. 1백달러짜 리 지폐를 발행하는 데 불과 몇달러밖에 들지 않는 경우, 미국이 불과 몇달러의 비용으로 찍어낸 1백달러를 다른 나라들은 외환보유고 등으로 보유하기 위해 당연히 1백달러에 상응 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결국 그 차익은 고스란히 미국의 차지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축통화국은 자국에서 기축통화를 발행하기 때문에 소위 외환부족에 따른 외환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매년 1천억∼2천억달러에 달하는 국제수지 적자를 보면서도 외환위기를 걱정하지 않는 나라는 지 구상에서 미국밖에 없는 셈이다. 자연히 국제 금융계의 좌장으로서 세계경제를 주도하게 됨 은 물론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제수지 적자나 원조·대출 등 으로 국제금융시장에 달러가 지나치게 많이 공 급될 경우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는 반면, 달러 화가 지나치게 적게 공급될 경우에는 국제유동 성이 부족하여 세계경제 성장을 제약하는 모순 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처음 발견한 경제학자의 이름을 따서 ‘트리핀의 딜레마’ 라고 한다. 선진국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던 공산품의 자 유무역을 규정한 GATT체제와 달러화를 기축통 화로 한 브레튼우즈체제를 토대로 서방 자본주 의 경제를 리드해오던 미국경제는 60년대 후반 부터 문제점을 노정하기 시작했다. 달러화가 지나치게 많이 공급되면서 가치가 떨어지자 닉 슨 대통령은 71년 35달러당 1달러를 교환해 주 던 달러의 금태환제도를 폐지시켜 버렸다. 이 에 따라 세계 주요국 통화들은 고정환율제도에 서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하게 되고 마침내 브레 튼우즈체제는 붕괴하고 말았다. 이후 미국은 금태환의 부담 없이 달러를 발행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재화와 용역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실물경제와 금융자산의 거래가 이 루어지는 금융경제간에 괴리가 확대되기 시작 했다. 선물시장 옵션시장 등 실물거래와는 상 관없는 금융거래기법의 발전과 80년대 초반의 살인적인 고금리, 80년대 이후 획기적으로 진 전된 금융자유화를 토대로 금융시장의 규모는 엄청나게 확대되어 갔다. 오늘날 국제외환시 장에서 거래되는 하루 1조달러가 넘는 엄청난 외환거래의 대부분은 무역거래를 위한 것이라 기보다 ‘돈놓고 돈먹는’ 소위 머니게임의 일 환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머니게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 이 이른바 헤지펀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헤지펀드의 규모는 대략 3천억달러 정 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통상 10% 미만의 증거 금만으로도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통상 자 기자본의 20배까지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들이 동원할 수 있는 투자규모는 약 6조달러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IMF 1백40여개 회원국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보다 무려 4배 정도 많은 액수다. 헤지펀드는 워낙 덩치가 큰 데다 0.1%의 이윤 가능성만 보여도 곧바로 움직이는 속성 때문에 개도국은 물론 92년 영국·프랑스 등도 무릎 을 꿇고 만 유럽의 금융위기가 보여준 것처럼 선진국도 일단 타깃이 되면 예외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가와 환율은 춤을 추게 되고 자연히 실물경제는 멍들 수밖 에 없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실물경제는 점차 경쟁력을 상실해갔다. 반면 금융산업은 날로 번창해갔다. 여기서 미국이 재기할 수 있는 길은 자명해졌다. 제조업은 보호주의로, 금융 산업을 비릇한 서비스업과 전통적으로 경쟁력 이 있는 농업은 자유주의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 이 길만이 미국이 21세기에도 선진국으로 살 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 나온 것 이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의 결성 및 우르과 이라운드와 그 결실인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다. 우선 NAFTA는 한마디로 미주대륙을 블록화하여 경쟁력이 약화되어가고 있는 미국의 실물경제 를 보호하고자 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 느슨한 환태평양경제협의체 (APEC)를 결성하여 이 지역의 나라들을 묶어둠 으로써 경쟁적인 다른 블록의 등장을 방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몇년 전 시애틀에서 열렸던 APEC 정상회담 때 말레이시아의 마하티 르 총리가 불참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미국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당시 마하티르는 아세안과 한·중·일을 묶는 동아시아경제그 룹(EAEG·이후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로 개 칭)를 주창했으나 동아시아지역의 블록화를 경 계하는 미국의 반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었다. 마하티르의 주장은 ‘NAFTA는 하면서 왜 EAE G는 방해하느냐’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미국은 우르과이라운드를 주창했다. 그 핵심은 미국이 경쟁력을 갖춘 금융산업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산업 및 농산물시장의 개 방이었다. 개도국과 일부 유럽국가들의 줄기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슈퍼301조 등 반( 半)위협적 수단까지 동원한 끈질긴 협상 끝에 마침내 우르과이라운드를 성공적으로 타결지 었다. 그 결과 종래 공산품의 자유무역에 역점 을 두었던 GATT체제를 폐기하고 우르과이라운 드 협상 결과를 토대로 한 WTO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WTO가 국제적으로 합의된 다자간 협정 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WTO 규정이 미 국의 국익에 반하는 것일 때는 미국에는 적용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면서 오늘날도 슈퍼3 01조를 발동하고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중남미 등 개도국은 물론 유 럽제국까지 한 목소리로 단기자본 규제, 목표 환율제도 도입, IMF 개편 등 국제금융제도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완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미국의 21세기 전략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로화 출범으로 반격에 나선 유럽 제국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정식으로 반기를 든 것 이 유로화의 탄생이다. 지난 1월1일 독일·프 랑스 등 11개국의 참가로 유럽통화동맹(EMU)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1월4일부터는 금융시장에 서 유로화가 공식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했고 유 럽중앙은행은 단일통화정책을 수행하는 등 EM U가 빠른 속도로 정착되고 있다. 유로화는 가 치가 안정되어가는 등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제2의 기축통화로 정착되어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나의 돈을 사용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문 화적으로 엄청난 통합효과를 가져오게 마련이 다. 이런 속도로 간다면 유럽은 머지 않아 적 어도 경제적으로는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 이미 오래 전부터 대외 통상협상에서 유럽연 합이라는 단일창구를 통한 협상력 강화로 실리 를 취하던 유럽제국이다. 이제는 통화통합마저 달성함으로써 명실공히 엄청난 슈퍼파워로 등 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유럽의 통화통합은 어제 오늘 시작 된 것이 아니다. 일찍이 브레튼우즈체제가 불 안정을 보이기 시작한 69년 바르플랜으로 처음 제기되고 베르느보고서라고 불리는 EC 통화통 합 방안이 EC 집행위원회에 정식으로 제출되었 다. 이를 토대로 72년부터 79년까지는 소위 스 네이크(Snake)제도를 도입하여 회원국간의 환 율안정을 도모했다. 이어 79년에는 EC환율제도 (ERM)를 근간으로 하는 유럽통화제도(EMS)를 도입하여 운영했다. 91년 12월 EC 정상들은 마 스트리히트조약이라는 유럽동맹조약을 체결함 으로써 유럽통합의 초석을 다졌다. 그리고 마 침내 올 초 유로화를 출범시킨 것이다. 이와 같이 유럽은 근 30여년 동안 유럽통합을 준비해왔다. 여기에는 케인스 이후 미국 달러 화의 기축통화에 반대하는 유럽의 뿌리깊은 전 통이 깔려 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같은 대유럽주의자들은 여러 차례 달러화 기축통화체제의 수정을 제 의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환율의 불안정 성이 높아져간 70년대 이후 유럽제국은 스네이 크체제, ERM 등 꾸준히 역내 회원국간의 환율 안정을 추구해 왔다는 것이다. 통화통합은 결 국 완전한 고정환율제도를 의미한다. 여기에도 환율안정을 통해 실물경제의 활성화 를 도모하고자 하는 케인스적 전통이 토대를 이루고 있다. 변동환율제를 토대로 자유로운 투기성 금융자본의 이동을 주장하는 미국식 신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최근 유 럽제국들이 일제히 투기성 자본의 규제나 환율 안정을 위한 목표환율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것 도 이러한 역사적·철학적 배경을 토대로 하고 있다. 유럽은 이와 같이 통합을 통해 미국의 금융파 워와 일본·중국 등 동아시아의 경제력에 대항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사회적으로 도 미국의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제3의 길을 주 창하면서 나름대로 21세기 준비에 박차를 가하 고 있다. 이런 유럽의 21세기 대비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 럼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 는 유럽이 독일과 프랑스 등 구원(舊怨) 관계 를 접어둔 채 상생공영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는 점이다. 적어도 30여 년이란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기간 통합이 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긴 안목을 가지고 준 비해온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유로화가 제2의 기축통화로 자리잡게 되면 미 국과 동아시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여러 가지가 논의될 수 있겠지만 우선 단일 기축통화국으로서의 미국의 이익이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이미 완전 단일 기 축통화체제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달러의 사용 비율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여 기에다 만약 제3의 기축통화도 제 역할을 다할 경우 달러화의 위상은 그만큼 더 위축되어 미 국은 더이상 지금과 같은 국제수지 적자를 지 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국도 유로화나 제3의 기축통화를 어느 정도 는 보유하고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 지 않을 경우 달러화의 가치가 계속 추락하여 마침내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 가 크게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재무 장관이 강한 달러정책을 고수할 것이라고 공언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둔 때문으 로 보인다. 대전환기 맞은 국제경제질서, 동아시아의 선택 은 국제금융체제는 바야흐로 대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도 유로화의 탄생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현실 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기축통화국으로서의 마지막 위상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정책타깃은 자연히 동아시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아 시아의 통합 노력을 미국이 더이상 좌시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동아시아 지 역에서 거대경제국인 일본과 중국의 통화가 강 세로 가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세계전 략이 오늘날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 지나친 가설일까. 한편 국제수지 적자를 줄이려면 국내 소비를 줄여 수입수요를 줄이거나 자국 상품의 소비나 수출을 늘려야 한다. 이 가운데 정상적인 경 제여건 하에서는 국민의 소비수준을 줄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수입품 소비를 국산품으로 대체하거나 수출을 늘리기 위한 통 상압력이 거세지게 된다. 따라서 최근 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통상압력이 앞으로 더 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금융면에서는 세계화를 주장하면서도 무역면에서는 NAFTA와 같은 지역주의와 슈퍼3 01조와 같은 보호주의를 내세우면서 21세기에 도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 하고 있 다. 이에 유럽은 통합으로 대항하고 있다. 그 러나 지리멸렬한 동아시아 제국은 그동안의 고 도성장 신화를 뒤로 한 채 금융위기의 늪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이 세계경 제의 현재 모습이다. 동아시아의 선택①─통화금융 협력 그렇다면 동아시아는 어떻게 21세기를 대비해 야 할 것인가? 세계화와 더불어 지역주의가 가 속화하고 있고 자유주의와 더불어 보호주의의 파고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동 아시아도 공존의 구도를 시급히 모색해야 할 때라고 판단된다. 특히 경제규모나 여러 가지 면에서 대외협상력이 약한 우리나라는 강대국 들도 모두 뭉쳐 나오는 21세기의 험준한 파고 를 ‘무소속’으로 헤쳐나가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싶다. 동아시아의 공존구도를 모색하는 방향은 크게 통화금융 측면과 무역투자 측면 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통화금융 협력면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두가지다. 국제적인 단기투기 성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어떻게 역내 통화를 방어하느냐는 문제와 한 국가의 통화위기가 역 내 다른 국가로 감염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하 느냐의 문제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으로는 네가지 정 도를 꼽을 수 있다. 첫째 현재 역내 강세 통화 인 엔 중심의 엔블록을 형성하는 방안 둘째, 유럽과 같은 단일통화를 창설하는 통화통합 방 안 셋째, 최근 논의되고 있는 아시아통화기금 (AMF)을 설립하는 방안 넷째, 국가간 통화스와 프협정, 중앙은행간 환매조건부거래협정 등 공 조체제를 구축하는 방안 등이다. 첫번째의 엔블록안은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역내 국가들의 반대 가 만만찮을 것으로 보여 그 실현이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 일본이 주장했던 대동아공영권 의 잔영이 아직도 남아 있는 데다 이들은 일본 이 여전히 패권주의를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한 다. 특히 최근 급성장하면서 대중화경제권의 형성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과 동아시아의 엔블 록화를 반대하는 미국의 반대도 클 것으로 보 인다. 이 문제는 또한 트리핀의 딜레마, 미국 의 경제패권주의 문제 등 세계경제가 직면한 달러 단일 기축통화체제에 따른 문제가 동아시 아 역내에서 엔화 단일 기축통화 문제로 그대 로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의 통화통합안에도 장애가 있다. 단일 기독교문화, 비슷한 정치·경제수준 등을 지닌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문화적 배경이나 정 치·사회적 환경의 이질성이 크고 경제발전 수 준에서도 격차가 크게 존재한다. 때문에 현실 적으로 통화통합에 필요한 수렴조건을 도출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럽 국가들도 수렴 조건을 충족시켜 통화통합에 이르기까지 무려 30여년의 기간이 필요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 면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이 문제가 얼마나 지 난한 과제일 것인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엔블록으로 갈 수도 없고 통화통합도 어려운 점이 동아시아가 직면한 어려움이다. 여기서 나온 대안이 세번째의 AMF안이다. AMF안은 태 국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97년 9월 홍콩에 서 개최된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일본에 의해 제안됐다. 동남아 통화위기를 계기로 아 시아 국가들의 통화불안을 막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이나 중앙은행들의 외화부족을 보전해 주 기 위해서는 현재의 IMF로는 부족하다는 전제 위에 아시아의 역내 국가들이 공동출자하여 AMF를 설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초기에는 약 1천억달러 정도의 기금을 조성하 되 일본이 절반 정도 출자하고 나머지는 역내 아시아 국가들이 나누어 출자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우선 아세안 국가들이 적극 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당초에는 우리나라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일본·중국·홍콩·대 만·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역내 중앙은행의 외 환보유고만 하더라도 약 6천억∼7천억달러(97 년말 기준 외환보유고: 일본 2천2백8억달러, 중국 1천3백99억달러, 홍콩 9백20억달러, 대만 8백35억달러, 싱가포르 7백11억달러 등)에 달 하는 점을 고려할 때 당시 AMF의 설립에 동아 시아 국가간 협조관계가 공고했더라면 태국· 인도네시아·한국이 굳이 IMF로 가지 않아도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패권을 우려 하는 미국의 반대로 97년 11월 마닐라에서 개 최된 아태고위재무관계자회의에서는 IMF의 보 조기구 정도로 한단계 격을 낮춰 설립하는 것 이 논의되었다. 98년 3월 김우중 전경련 회장 은 재계의 입장에서 AMF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 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와 미국의 견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한국의 태도 약화와 중국의 소극적 입장 등으로 현재 는 그나마 무산된 채 보류된 상태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일본을 방문중이던 김종필 총리가 AMF 설립 구상을 제의했다가 정부·여 당의 신중한 반응으로 개인 자격의 의견이었다 고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AMF설립 구상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가 운데 일본은 3백억달러를 동아시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지원하겠다는 이른바 미와자와 플 랜을 제안했다. 네번째 안은 동아시아 역내 국 가 또는 중앙은행간의 공조체제 확립이다. 국 가간 통화스와프협정을 체결하거나 중앙은행간 환매조건부채권매매(RP거래) 계약을 체결해 긴급할 때 이를 토대로 외화를 조달할 수 있도 록 한다는 내용이다. 통화스와프란 외화가 필 요한 국가의 통화를 담보로 제공하고 외화를 조달하는 방식. 중앙은행간 환매조건부채권 매 매계약은 외화가 필요한 국가의 중앙은행이 보 유한 채권을 일정기간 후에 되살 것을 전제로 타국가의 중앙은행에 팔아 외화를 조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공조체제의 확립 필요성은 동아시아 금 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간에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어왔다. 이러 한 공동인식을 토대로 지난 1월 한·일간에 5 0억달러의 통화스와프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97년 11월 금융위기때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 원을 기대하고 재정경제부장관 등이 일본을 방 문, 협상을 시도했으나 지원받지 못한 전례가 있듯 AMF 만큼 체계적이지 못하고 지원규모면 에서도 미흡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아시아의 선택②─동아시아경제협의회 오는 4월부터 외환시장이 사실상 전면개방됨으 로써 헤지펀드 등의 공세는 더욱 강화될 것으 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제2의 외환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동아시아 차원의 공조체 제 확립이 더욱 절실하다고 하겠다. 이는 정도 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이 직면하 게 될 공통적인 문제다. 이렇게 볼 때 어떤 형 태로든 통화금융 협력체제가 모색되어야 할 것 으로 생각한다. 단기적으로는 국가간 또는 중 앙은행간 공조체제를 확립해 나가는 한편 AMF 와 같은 보다 체계적인 협력기구의 설립도 중 장기 과제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동아시 아 지역의 자금흐름에 대한 분석과 금융기관에 대한 효율적인 감독에 기여할 수 있는 국제결 제은행(BIS)과 같은 아시아국제결제은행(ABIS )의 설립도 검토해 봄직한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으로 무역투자 측면의 협력방안을 보자. 현재 거론되는 방안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제안한 동아시아경제협의회(EAEC)가 있다. 원래 EAEC는 90년 12월 미국과 유럽에 의해 주도되던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제안되었다 .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동전략 수립 및 역내 무역·투자 등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마하티르 총리가 동아시아경제그 룹(EAEG) 창설을 제안한 것. 동남아국가연합( ASEAN)은 이미 93년에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 TA)을 체결하는 등 무역·투자면에서 협조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NAFTA·EC 등 세계경제 가 블록화하는 추세 속에서 이들 거대경제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일본·중국·한국 을 포함하는 동아시아경제권의 형성으로 협상 력을 제고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이것이 EAEC 구상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그동안 고도성장으로 세계적인 대규모 시장으로 부상한 동아시아 국가들을 APEC이라 는 틀 속에 개별적으로 묶어둠으로써 이들 시 장을 확보하는 동시에 통상협상에서도 전략적 우위를 견지하고자 한 미국은 처음부터 이 안 에 강력히 반발했다. 반면 미국 중심의 아태경 제질서 형성을 반대하는 중국은 처음부터 EAE C 구상에 적극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과 통상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 일본 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이 지지의사를 표명하는 등 내면적으로는 참여의사를 가지고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유보 입장을 취하고 있 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결정을 지켜본다는 입 장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먼저 미국을 자극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자세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동아시아 경제는 무역 및 투자의 상호의 존도가 깊어지는 등 동아시아경제블록 형성을 위한 기본여건이 상당히 성숙된 것으로 분석 된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우선 경제블 록의 가장 기초적 형태인 동아시아자유무역지 대가 형성될 경우 한국·일본·중국·아세안 등 역내 국가간 교역이 18% 정도 증가하는 등 역내 교역증대 효과는 큰 반면 동아사아 국가 들과 역외 국가간의 교역은 거의 감소하지 않 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경제통합은 유사한 경제발전 단계에 속한 국가들간에는 시장확대에 따른 규모의 경제 및 경제촉진 등과 같은 동태적 이익을 유 발하고, 경제발전단계가 상이하여 상호보완성 이 높은 국가들간에는 생산요소의 효율적인 결 합을 가속화시킴으로써 동태적인 성장효과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 아 국가들이 대외통상협상에서 공동보조를 취 한다면 EU·NAFTA 등 거대경제블록과의 통상마 찰때 협상력이 한층 강화되는 것은 물론이다. 물론 예상되는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 예컨대 역내 선후진국간의 산업구조가 고착 화되면서 후진국들의 산업구조가 일본에 수직 적으로 종속되거나 역내 무역불균형이 확대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일본과 중국의 패권주의가 대두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 서 동아시아경제블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과 중국이 패권주의를 지양하고 특히 일본의 후진국 경제성장을 위한 협조 의 지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최근 들어 미국·EU 등의 대일 통상압력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일본으로서도 역내 국가들에 대한 대승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 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블록 형성 기본여건 성숙 오늘날 동아시아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내외적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EU가 거대경제권을 형 성하고 전방위적인 개방압력을 가하면서 동아 시아의 경제블록화에는 노골적인 반대압력을 가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도 이질적인 경제·사 회적인 환경과 일본·중국의 패권주의 상존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동아시아의 경제블록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준비되지 않 은 졸속한 개방이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이것이 21세기를 앞둔 동아시아가 당면한 딜레 마다. 한편으로는 세계화와 지역화, 자유주의 와 보호주의간의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등과 기존의 선린우호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역내 경제협력 관계 를 공고히 하느냐가 21세기 동아시아의 운명을 결정짓는 변수가 될 것이다. WTO 같은 다자간 무역기구가 엄연히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걸핏하면 개별적인 쌍무 협상을 강요하고 있다. 거대 단일경제권으로 등장한 EU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지금과 같이 개별적으로 상대하기에는 동아시아 제국 가운 데 한국이 가장 어려운 입장이 아닌가 생각된 다. 일본과 중국은 경제대국이다. 중국경제는 화교 자본의 유입과 풍부한 자원 및 12억 인구의 내 수시장을 발판으로 전방위 산업체제를 구축하 면서 홍콩·대만·싱가포르 등과 더불어 대중 화경제권을 형성해가고 있다. 일본도 세계 최 대 채권국이라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 엔화경제권을 추구하고 있다. 증가일로의 대미 흑자에도 불구하고 대미통상협상에서 전혀 밀 리지 않는 중국과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에서 보듯 그들은 개별적으로도 어느 정도 협상력을 갖춘 나라다. 아세안도 AFTA 결성 등 이미 상당한 수준의 공고한 경제블록으로 발 전해가고 있다. 합종연횡 전략 필요한 한국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어느 정도 대등한 협상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대국도 아니고 ASEAN처럼 어느 블록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동아시아 신흥공업국 가운데 한국만이 유일하게 대미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 이 모든 현실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동아시 아 질서와 국제경제환경의 변화는 우리에게 새 로운 패러다임의 사고와 행동을 요구한다. 국 제정치·경제 역학관계에서 대미의존도가 높으 면서도 수지면에서 적자를 보고 고통스런 통상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는 아이러니가 지속되는 한 우리 경제의 앞날은 결코 밝지 못할 것이 다. 어느 그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우리로서는 전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다자간 무역주의 와 지역주의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과제가 있 다. 심지어 다자간 협상 원칙이 확립되어 있음 에도 불구하고 미국처럼 국익 우선의 쌍무협상 을 스스럼없이 강요하는 오늘날의 국제무역환 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갈 전략을 하루빨리 세워야 한다. 다자간 무역주의를 원칙적으로 존중하고 전통적인 대미 우호선린관계를 염두 에 두면서도 중국·일본 및 ASEAN과의 보다 공 고한 협력관계를 모색하는 등 다양한 지역주의 전략을 동시에 구사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우리로서는 WTO 같은 세계적 차원의 협력체제 를 지지하는 한편 언제나 동아시아 지역협력체 의 길을 열어두고 미국을 비롯한 우방과의 관 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 인 것이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처음부 터 지역협력체제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나서면 동아시아지역과 우리 자신의 대외교섭력만 약 화시킬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전략적인 측면에서 EAEC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ASEAN 지역에 대한 수출이 2백3억달러에 달하는 등 78억달러의 무역수지흑자를 기록했다. 건설 수 주도 44억달러로 ASEAN 지역이 한국에는 세계 제1의 건설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직접투자 도 51억달러가 투자되었다. 이처럼 ASEAN 지역 은 무역 및 투자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경제 교류 상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EAEC는 우리나라의 대AS EAN 관계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 일본·중국 등 역내에서 패권 추구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도 우리나라와 ASE AN의 관계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국익 이 배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21세 기 동아시아는 대중화경제권과 대엔화경제권이 대두하는 가운데 한국과 ASEAN 제국들은 불가 피하게 합종연횡하면서 공존을 모색해야 할 것 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이 문제의 중요성은 더 욱 커진다. 이런 의미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지 난해말 ASEAN 및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동 아시아 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비전그룹 설립을 제안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바람직한 것 으로 생각된다. 오정근 (한국은행 조사부 과장·경제학 박사)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