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9일 화요일 오전 08시 10분 30초 제 목(Title): 한21/진중권 전태일의 희생이 아름다운 이� 전태일의 희생이 아름다운 이유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마틴 하이덱거 <예술작품의 근원> 진리를 세우는 또 하나의 방법은 본질적 희생이다. 마틴 하이덱거 <예술작품의 근원> 맞다. 사도들이 순교하지 않았다면, 누가 예수의 부활을 믿겠는가? 예수가 정말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왜 이들이 죽음을 자청했겠는가? 그래서 우린 그의 부활을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기 함정이 있다. 왜? 목숨 버려 거짓증거 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가령 전능하리라 믿었던 예수가 힘없이 죽었다. 이 쓰디쓴 현실을 심리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던 사도들, 제 몸 던져 예수를 부활시키려 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 아닌가? 하이덱거는 틀렸다. “희생”이 항상 “진리”를 세우는 것도 아니고, 또 그의 말대로 “국가”를 세우는 게 항상 “진리”인 것도 아니다. 가령 그가 협력한 제3제국, 미시마의 “희생”이 ‘부활’시키려 한 대일본제국은 징그런 허위였다. 이게 우익만의 일일까? 가령 사회주의 몰락 직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연쇄자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알 수 없다. 죽은 이념을 부활시키기 위한 희생? 그렇다면 그건 위증이다. 그럼 전태일의 죽음은 어떤가? 동대 법대 출신 인텔리 미시마와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이 둘의 희생은 ‘진리’를 세웠다. 즉 일본의 우익운동과 한국의 변혁운동. 그럼 이 두사람의 자살은 같은 것일까? 글쎄? 비교해 보자. 미시마의 죽음은 국가권력를 ‘위한’ 것이었다. 반면 전태일의 자살은 거기에 ‘반하는’ 것이었다. 미시마가 ‘국가’의 주권(=開戰權)회복을 위해 죽었다면, 전태일은 국가가 몰수한 ‘민중’의 주권(=노동3권)을 되찾기 위해 죽었다. 자유주의적 현실에 짜증난 미시마는 머릿속으로 국가주의적 허구를 ‘극화’했다. 반면 국가주의적 현실에 고통받던 전태일. 그는 민주주의라는 제목을 단 연극을 ‘탈(脫)극화’하여 그 허구성을 폭로하려 했다. 또 자기 삶을 예술작품으로 ‘극화’한 미시마가 제 주관적 드라마의 주연이 되어 배를 가르는 착란을 일으켰다면, 전태일의 경우 착란에 빠진 건 그가 아니라 사회였다. 국가주의 주제에 ‘민주주의’를 참칭했던 당시 한국사회의 거대한 착란. 미시마는 자기를 지움으로써 국가주권(?)을 회복하고 그것과의 동일시 속에서 제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나=대일본제국’. 반면 전태일은 제 정체성을 국가에 반납하기를 거부하고, 국민을 국가적 목적의 수단으로 보는 병영사회에서 제 존재를 철수해 버림으로써 “국가의 발전=나의 발전의 근본”이라는 허구적 등식을 깨뜨려버렸다. 양자 사이엔 이런 차이가 있다. 모든 “희생”이 “진리”를 세우는 건 아니다. 인간으로부터 자립한 압제적 권력에 ‘대항’하는 희생, 허구적 이념과 주관적 드라마를 ‘탈극화’하여 현실로 돌아오는 희생, 집단 혹은 이념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주장하는 희생. 이런 “희생”만이 “진리”를 세우는 거다. 전태일의 “희생”이 값진 건 그 때문이다. 모든 “진리”가 “희생”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가령 ‘전대협 6년사 불패의 신화’에 나오는 말. “총회를 죽음으로 사수하라.” 실제로 그걸 사수하다 죽은 사람들에게 전대협은 “영웅상을 수여”했단다. 이 무차별적 동일시 요구. 거기에 사수, 신화, 영웅, 이 변태적 낭만주의.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희생”이 “진리”를 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시절의 집요한 기억? 근데 이들의 주관적 드라마의 밖에서 그 잔인한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 OPEN! 한·겨·레 인터넷쇼핑몰! 한번 와보세요~ http://hani.s-mart.co.kr ▣ 한겨레21 1999년 03월 11일 제248호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