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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6일 토요일 오전 05시 02분 37초
제 목(Title): 조선/에릭 홉스봄 인터뷰 


 
[20세기 회고]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인터뷰 

  


20세기 생존하는 최고 역사학자로 영국의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교수를 
꼽는데 망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의 연저(연저)는 학계는 물론이고 일반 독자들에게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었으며, 전세계 수십개 언어로 번역됐다. 



지난 18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각 시대를 그처럼 명징한 언어로 통찰한 
역사학자는 일찌기 없었다. 로버트 하일브로너는 {(그의 저작 처럼) 우리의 
과거사에 환한 빛을 비추고, 우리의 가능한 미래에 조명을 쏘아 보낸 혜안을 알지 
못한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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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엑릭 홉스봄 박사는 "미국의 완전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김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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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대학 버크벡 칼리지의 부속건물에 자리잡은 그의 연구실은 이곳 날씨답지 
않게 2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창가로 넘치고 있었다. [E109] 호실이라 쓰인 그의 
방은 2평 남짓됐다. 그는 녹음이 잘 되는 것이냐고 확인한 뒤 팔걸이가 없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느릿느릿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에릭 홉스봄] 금세기 최고 사학자…유연한 사고 
 




--선생께서는 저서 [극단의 시대]에서 지난 20세기를 [파국의 시기](1914-1950), 
[황금 시기](1950-1973), [산사태의 시기](1973-1991) 등으로 나누었다. 만약 이 
책을 새로 쓴다면 1991년에서 지금까지의 시기에는 무슨 제목을 붙이겠는가. 
{1973년에 시작된 시기가 이미 완료됐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다. 세계 경제사적 의미에서 보건대 1973년은 하나의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이때부터 세계경제는 분명하게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97년, 98년에 세계가 겪었던 경제 위기는 아직도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됐던 역사 
발전 상의 똑같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극단의 시대]를 
통해 관측했던 같은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후에 세계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있지 
않았는가. 
{사실이다. 나는 80년말, 90년 초에 있었던 어려움과 위기가 오로지 공산주의와 
소련만 겪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세계 모든 시스템에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일반적인 위험이었다. 소련의 경제 체제는 사라졌지만, 그후로 세계 경제가 
돼버린 서구 경제 역시 전례없던 대혼란의 시기에 돌입하게 된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소련 체제의 붕괴는 어느정도까지는 세계 경제의 대혼란을 부채질했다. 
왜냐하면 소련 체제의 붕괴는 옛 소련 위성국가들을 포함한 대부분 남동부 유럽 
국가들에게도 정치적 경제적 붕괴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서구 경제는 사실상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자유 시장 경제를 도입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것은 소련 내부에 파국을 몰고 왔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서구로 번졌던 것 처럼 
위기의 확산을 부추켰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극단의 시대] 말미에서 관찰했던 
현상들이 더 강화되고 세계적으로 퍼졌다고 본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최후의 승리는 누가 차지했는가. 자본주의자들인가, 기업의 
오너들인가, 아니면 미국인인가. 우리는 도대체 역사에서 승자와 패자를 말할 수 
있는가. 
{정치적으로 말한다면 승자가 있다. 흔히 20세기는 미국의 세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메이저 강국으로 
남았다. 그러나 나는 역사학자로서 3번째 천년의 벽두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지난 
20세기를 되돌아보면서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7세기 유럽을 보자. 당시 사람들은 유럽의 최대 강국인 프랑스 그리고 그 
절대 군주 루이 14세를 승자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는 
그것을 17세기의 특별한 어떤 대표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역사학자들이 
인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20세기의 가장 큰 특징적 변화는 비약적으로 가속화한 
경제-사회적 발전이다. 가상의 세계를 통해 지난 50년을 여행해본다면 이 점이 
가장 놀랄만한 변화일 것이다. 그래도 정치적으로는 미국이 이겼다. 다만 나는 
다음 세기에도 이것이 중요 요인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음 세기는 
지구적 헤게모니를 차지하려는 민족 국가들의 투쟁이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승자를 말한다면, 패자(패자)도 말할 수 있다. 20세기에는 몇몇 패자가 있었다. 
나는 단지 공산주의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물론 패자다. 그들은 
끔직하게 졌다. 나는 일본도 패자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만약 20세기 중반에 
머물러 있다면 일본도 세계 역사의 동인(동인)이 된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들이 세계의 메이저 강국으로서 아시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20세기 전반부에 세계가 처했던 것과 같은 상황을 더 이상 갖지 
못할 것이다. 물론 독일에 대해서도 그들이 제1,2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군사적 
메이저로 군림했던 것과 같은 목표를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독일은 경제적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유럽연합(EU)의 중추적 임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아마도 
유럽연합의 장래에 있어서 헤게모니적 중심적 지배적 요인으로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프랑스인들은 싫어 하겠지만, 미국인들은 반길 것이다. (20세기를 
길게 봤을 때) 러시아와 일본이 사라졌던 방식과는 달리 독일은 국제적 정치 
무대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정치적으로 사라졌다는 것은 한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21세기에 첫 10년 동안 세계에는 누가, 어떤 계급이, 혹은 어떤 나라가 강자로 
부상하겠으며, 인류에게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인가. 
{이것은 매우 광범위한 질문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들은 전통적인 국가 특히 
민족 국가가 19, 20세기에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초(초)국경적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 충돌하는 일련의 
국가들을 발전시켜왔다. 이들중 많은 나라들은 특별한 국가들, 가령 미국같은 
나라와 연대를 맺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능적으로 구조적으로 서로 같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전혀 다른 시스템 속에 살고 있는데, 여기서는 미국, 일본 같은 
국가 사이의 관계 보다는 IBM, 소니 같은 초국경적 파워들의 관계 가 더 
중요해졌다. 이 초국경적 파워들은 자신들만의 국제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세계의 
무역도 국가간 거래가 아니라 초국경적 파워들 사이의 거래로 봐야 옳다. 
초국경적인 파워들의 장래를 점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들의 자본 축적과 
자본의 집중이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이 초국경적 파워들이 국가를 밀어내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한도의 미래까지는 적어도 [이중적 세계](dual 
world)에 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요한 나라들, 예컨대 미국, 
유럽연합, 중국, 일본, 브라질 등은 계속 중요한 국가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국가들이 형성하는 세계 그리고 매머드급 국제 회사들이 형성하는 
세계를 구별해야만 한다. 앞으로 21세기에 어떤 나라가 지배적인 국가가 될 
것이냐고 점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세기 말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지난 수세기 
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다음 세기에 세계 질서가 앞에 
말한 중요한 국가들의 개입 혹은 그들의 협상으로 지배되거나 결정될 것이라고 더 
이상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유럽 지식인들 중 일부는 미국 경제학자들이 [자유 시장 신(신)]을 경배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세계화(globalization)는 제한없는 시장 개방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종국적으로 인간행복에 이바지할 것인가. 
{나는 그것을 완전자유시장(pure free market)의 이데올로기이자 신학(신학)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80년대 지배적인 현상이 됐으며, 부분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소련에 대한 반동이기도 했다. 

동시에 50년대∼70년대의 경제의 정책적 실패에 대한 반동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고 이 이데올로기적 [신학적] 개념이 경제적 순리성(rationality)에 의해 
정당화됐다고 보지 않다. 통제받지 않는 자유 시장이 경제 성장을 최대화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논리적 귀결로 전체 주민들의 배분과 번영을 최대화했다. 이것이 
부분적으로 효력을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가령 한국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이 이룩했던 비약적 경제 발전은 통제받지 않은 완전자유시장 
덕분이었는가. 아니었다. 

사실 2차대전 이후 50년대, 60년대 경제성장이 가속화됐던 지역, 그리고 70년, 
80년대 한국 등은 자유시장 때문에 그같은 성취를 이루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 
통제받지 않는 자유시장이 있었다면 그같은 성취가 가능했을지도 의문이다. 
완전자유시장의 성공사례는 홍콩이 거의 유일한 예이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의 용]들은 계획경제와 자유기업의 콤비네이션이었다. 완전한 경제성장을 
최대화하는 것도 특정 조건하에서만 가능했다. 

두번째 질문, 즉 자유 시장에 의존해서 경제 성장을 최대화하는 것이 복지 증진을 
최대화하느냐에 대해서는 그 정반대라는 것이 모든 증거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 
완전자유시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불평등을 가속화했고, 사회적 공공적 기능을 
무시했다. 이것은 아담 스미스 자신도 인정했던 부분이다.(홉스봄 교수는 이 
대목에서 씁쓸하게 웃었다.) 완벽하게 통제받지 않는 자유시장, 자유무역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역사적으로 살피건대 헤게모니 국가에게 유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영국도 이 이데올로기를 이용했고 이익을 얻었다. 영국은 산업제품을 
수출하고, 의존적 국가들로부터 원자재 수입을 최대화하기 위해 영국은 자유 
무역이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완전자유시장의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미국의 상황에 
적합한 것이지 다른 나라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 때문에 오늘날 미국은 자신들의 완전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그토록 
확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인가. 
{미국은 역사적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정책을 강력하게 선호해왔다. 자유 
이동을 최대화하는 것은 현재 미국의 이익에 부합된다. 이 위기의 시기에도 우리는 
미국인들이 세계적 자유무역 기구들을 이용해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들(정책입안가)은 자유 이동, 투명성, 자본의 무제한 이동 등을 
장려하는 일반 정책을 펴는 한편, 일본을 비롯한 다른 경쟁자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동맹국으로서,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무자비한 경쟁자로서, 그리고 문화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할리우드물의 
소비자로서 앞으로 미국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 
{나는 한국의 군사적 상황이 10년 전과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특히 옛날 
스타일의 마지막으로 살아 남아 있는 공산 체제가 이웃하고 있는 관계로 한국은 
특수한 상황에 있다. 나는 한반도 상황을 특별하게 전망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는 
않지만, 북한이라는 독립적으로 유리된 공산 체제가 항구적으로 존속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다. 

한국의 통일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독일에서처럼 한국 체제를 
주축으로 한 통일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남북 군사분계선에 포진하고 있는 미국의 
군대에 어느정도 의존해야 하는 한국의 군 사적 상황은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독일의 통일에서 보듯이 전혀 다른 문제들을 야기할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제도적으로 한 나라를 통일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방법에 의해 반세기 동안을 발전해왔다. 한반도는 
통일의 최적 조건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독일인이 했던 것을 단순히 
한국인들이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적으로 시야를 돌리면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군사적으로지존무상인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없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있었던 옛날 타입의 국가간의 전쟁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도전을 제외한다면, 미국이 군사적으로 전면적인 대결을 각오해야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과 유럽인들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변혁하려는 것이다. 소련에 대적하여 스스로를 방위하려는 원래 기능은 사라졌다. 

현재 미국은 나토에 대한 새로운 정당성을 찾아내려는 것이고, 유럽인들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나토는 지금 코소보나 보스니아에서 보듯이 
미국의 평화유지군처럼 활동하면서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면 그리고 한국이 통일되면 한국의 군사적 장래에도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모든 나라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국지적 분쟁을 치르면서 세계적 헤게모니의 한계를 발견하고 
있다. 미국과 군사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나라는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동시에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결정짓기 위해 단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미국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라크가 그 좋은 예이다. 미국은 
9년 동안 이라크를 공격했고, 이라크는 철저히 부셔졌지만 미국에게 더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이것이 미국이 새로 발견해야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어떤 
상황에서 자신들이 이룰 수 있는 일, 이룰 수 없는 일을 알아야만 한다. 

현재 미국은 지상의 누구든 언제든 폭격할 수 있다는, 이른바 80년대에 확립된 
[부시 독트린]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몇년 동안 이러한 의지와 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 정치적 효과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현재 대중 문화적으로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문화적 측면에서 조명해 보았을 때 장래의 모습은 미국과 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 것인가. 
{나는 미래의 문화는 다음 3가지 요소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모든 사람들이 문화에 대한 욕구가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둘째는 현대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광범위한 발달에 의해 문화적 수요과 공급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세째는 영어권 문화 상품이 훨씬 빨리 수요되고 이해될 것이란 점이다. 

나는 그러나 이것이 꼭 미국화를 의미한다고는 생각지 않다. 미국의 문화 생산품이 
지배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일례로 몇몇 대형 미디어들은 오늘날까지도 국지적 
혹은 지역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력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TV 프로그램이 
국제화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 영어가 갖는 
광범위한 확산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역적인 
전형성(전형성)은 그대로 살아 남을 것이다. 

TV 광고를 보면 갈수록 지역적 문화 차이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같은 
영어권 지역인 미국과 영국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광고를 하면 실패한다. 문화는 
분명히 국제화 세계화에 한계가 있다. 영화 부문에서 미국이 질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거의 독점권을 행사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할리우드는 
갈수록 미국이 아닌 다른 지역의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과 그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특별하게 미국적일 필요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세계 공통의 취향 혹은 
[국경을 초월하는 무엇]으로 변화하고 발전해갈 것이다. 대중 문화가 그렇다면 
소위 엘리트 문화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화될 것이라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권력 독점을 둘러싸고 동-서로 나뉜 지역 감정이 사회 곳곳을 멍들게 
하고 있으며 고질적인 [한국병]으로 악화됐다. 선생께서 어떤 처방을 할 수 
있겠는가. 
{세계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중앙 국가의 표준어에 반발하면서 자체적인 지방 
토속어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하나의 경향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성격이지만, 일단 다른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어와 아울러 지역적 특성을 강조하는 운동도 
병행되고 있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이와 별도로 좀더 극단적 케이스로 변질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소수 집단은 다수집단으로부터 그리고 실권측은 집권측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특정 지역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든지 그후 
그 반작용이 있다든지 하는 것은 한국 전쟁 이후에 특히 더 눈에 띄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대부분 나라에서 지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모두 같은 정도로 중앙정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강력한 중앙 집권 이후 갈수록 지역적 독립과 자치 등을 요구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점차 국가를 어떤 연방정부 
형태로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경향의 장래를 믿지는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 극단적으로 변질된 지역주의 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국가 정책에 대한 독점주의로 치달으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것의 가장 위험한 사례는 스리랑카의 싱할리족, 타밀족 사이의 내전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스리랑카와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말씨가 다른 방언을 쓰는 식으로 구별되는 지역주의가 발전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 대한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스위스를 상정할 수도 있겠다. 
자동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일정한 수의 정부공직자나 선출직 공인에 대해 
인구 비례로 쿼터를 나누어 놓는 것이다. 

어떤 지역도 여기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스위스는 독일어권 인구의 권력 
독점을 막았고, 그 결과 오늘날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또한 한국이 인구 비례와는 
전혀 관계없이 각 지방의 대표를 동수(동수)로 선정하는 미국식 상원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가지고 최근 여러가지 외교 전략적 목적에 따라 카드게임을 
벌이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현재 핵을 갖고 있는 나라는 미, 영, 중, 러, 불,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모든 종류의 핵에 대해 반대한다. 북한 핵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북한 핵이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한 우려의 대상일 것이다. 모든 
나라들이 한꺼번에 핵을 폐기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 핵을 
별도로 어떻게 관리해야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선생께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인류의 지적이고 과학적인 학문기반을 어지럽힌 
죄과가 있다고 공격했다. 
{그들의 위험은 지적인 상대주의에 있다. 그들은 우리가 학문을 진전시키기 위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약속들을 파괴하려고 시도했다. 나의 견해로는 과학 혹은 
문명이라는 것은 서로 토론할 수 있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우주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파괴했다. 
내가 믿는 것이 네가 믿고 있는 것과 같은 유효성을 지니고 있어야만 우리는 
이른바 객관적으로 학문적인 결정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위험할 뿐 아니라 과학을, 그리고 합리적 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선생께서는 평생을 대학에서 보내셨는데, 그리고 한국을 방문하신 적도 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의 젊은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나는 내 인생 전부를 대학에서 살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학생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막중하다는 것을 깊이 강조하고 싶다. 특히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일은 그들 자신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성적이고 야심만만한 대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을 
풍요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을 대학에서 닦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앞으로 수십년 후에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공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런던=김광일기자 : kikim@chosun.com)


[에릭 홉스봄] 금세기 최고 사학자…유연한 사고 

 

'생존하는 세계 최고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917년 이집 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태계 영국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 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두살때 
빈으로 옮겼다가 1931년 베를린으로 이사했으며, 다시 2년 뒤 히틀러가 집권하자 
유태 인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했다. 

런던에서 중등과정을 마친 홉스봄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킹 스칼리지에 들어가 
역사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진보적인 성향 의 홉스봄은 케임브리지의 보수적인 
학풍과 맞지 않았고 결국 런던대학 버크벡 칼리지에 학문의 둥지를 틀게된다. 
1947년 이 대학에 시간강사로 부임한 그는 전임강사(1959년)를 거쳐 1970 년 
경제사 및 사회사 담당 정교수가 됐다. 1982년 은퇴 후에는 명예교수를 맡고 있고, 
1984년부터는 뉴욕 신사회연구원 교수 로 런던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역사학자로서 홉스봄의 주 연구분야는 19세기 영국 노동사 이다.그는 1950년 
'페이비언주의와 페이비언들 1884∼1914'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노동하는 
인간'(1960) '노동의 세계'(1980) 등의 저서를 냈다. 그러나 홉스봄의 저술 활동은 
전공의 울타 리를 훨씬 넘어서 '1780년대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의적의 
사회사' '재즈의 역사' 등 다방면의 저술을 갖고 있다. 

홉스봄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만든 것은 19세기와 20세기의 세계사를 다룬 일련의 
저작이다. '혁명의 시대 1789∼1848'(19 62) '자본의 시대 1848∼1875'(1975) 
'제국의 시대 1875∼1914' (1987)등 19세기 3부작과 '극단의 시대 
1914∼1989'(1994)는 전 세계를 넘나들며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하 는 대표적인 전체사로, 출간될 때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 다. 그의 
저술은 진보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유연한 시각과 엄청난 박식으로 어떤 입장의 
독자라도 거부감없이 빨아들이는 장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홉스봄은 지난 87년 2주간 방한한 바 있고 '극단의 시대' 에서 한국을 제3세계의 
최대 성공담으로 꼽는 등 우리나라에도 깊은 이해를 보이고 있다. 

(이선민기자 : sm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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