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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6일 토요일 오전 03시 40분 40초
제 목(Title): 퍼옴/ 性, 命

Jolly=장원석 

Posted By: Jolly (요플레) on 'Philosophy'
Title:     인간의 본성은 존재하는가? - 1
Date:      Mon Jan  5 13:10:57 1998  

 - 인간본성에 대한 가설 
 
 서구전통의 많은 사상가들에게 인간이 '인간본성' 이라고 
 불릴만한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처럼 생각 되었다. 
 본성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고 서로 갈등까지 했지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  
 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도 없었다. 
 그들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 '도구를 만드는 
 인간' '유희적 인간' 혹은 '사회적 동물' 등등으로 규정했지만 인간이 바로 
 그 자질에 의해 보편적으로 규정되는 본성이 존재한다는 신념의 관점에서는 
 동일했던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어떤 '이상'
 의 역할을 수행한다. 즉 '네 본성을 깨닫고 거기에 너를 합일시켜라!'는 
 함의가 인간본성의 논의에는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을 이데아를 
 감지 할수 있는 영혼이 있다고 규정한 플라토은 인간의 교육의 프로그램을 
 이데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지식을 획득하는데 집중 하였던 것이다.
 플라톤을 위시로한 그리이스 전통, 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imago dei
 중세 기독교, 근세의 르네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자아 cogito ergo
 sum이 모두 이런 가정에서 벗어 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본성에 대한 이해에 최근에 제기된 반론은 '문화 인류학'의 발달로 이루 
 어졌다. 수많은 다양한 문화와 그 양태들을 관찰한 학자들은 고정된 인간의 
 본성이 있다는 생각을 점차 버리기 시작 했다. 과연 아프리카의 부시맨과 
 조선시대의 이퇴계와 월 스트릿의 금융가를 공통적으로 규정할수 있는 보편성 
 이란 존재 하는 것일까 ? 여기에 한 걸음 너 나아 간것은 '포스트모던'의 실체
 비판이다. 그들은 서구의 전통이란 사실상 백인, 남자, 성인 중심의
 세계관이라고 
 비판 하면서 어떤 보편성을 추구 하는 지적인 프로젝트 자체가 언어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보편적 이성의 추구는 소외와 강압적인 위게질서
 와 전체주의적인 음모라고 그들은 주장하는 것이다.  

-동양 전통의 인간에 대한 생각  
 서양 철학사를 읽다가 동양의 사고에 눈을 돌릴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 오는것
 중의 하나가 '인간본성' 에 대한 논의가  부재 하다는 것이다. 흔히 맹자와 
 공자의 인성논쟁을 서구의 그것과 비교 하지만 , 나중에 분명이 드러나겟지만,
 이들의 성 性이란 생각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소유한 실체적 자질'로서 인간본성
 human nature 란 생각과는 근원적으로 차이가 난다. 
 동양의 철학적 전통에서 사물의 인식은 매우 '구체적이고 개별적' 이다.
 예를 들어 현대어의 자연 nature 에 해당하는 고대 중국어는 '하늘 땅 天地'이다 
자  
 연보다 하늘땅은 구체적인 사물의 조합으로서 자연의 이미지를 확 떠오르게 
 한다. 한문은 매우 이미지 중심의 그리고 생생한 언어이다. 
 이들의 인식은 매우 시간/공간의 구체적인 이미지 속에서 사물을 이해 한다고 
 할수도 있다. 중국인들은 그들을 인간이라는 보편성 속에서 규정 하지 않고 
 '한나라 사람 ' (한족 漢族) '가운대 나라 사람' (中國人)이라고 규정한것을 
 주목해야 한다. 모두 구체적인 공간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바다 동쪽나라' (海東 해동), '파란 언덕이 있는 나라 (청구 靑丘)' 등으로
 불렷 던 것이다.

 이 전통의 핵심이 되는 책중의 하나는 '주역 周易'이다. 이 문화의 핵심적
 사유가 매우 잘 드러난 이 책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는 발견하기 힘들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이 여러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고 이용해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발휘하는 것이 주된 테마로 등장한다. 
 여기에는 큰 사람, 성인, 군자, 현명한 사람, 마을 사람, 소인, 바보, 외눈박이
 어머니 아버지 아우 동생 누이 남편 부인 전사 보스 행운아 상인들 군중 우정을 
 지키는 사람들 등등이 나오지만 보편성에 대한 규정을 시도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인간은 그가 처한 시간과 공간의 구체성 속에서 사물과의 경험에 참여하는 변화 
 하는 인간으로 이해 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보편성의 기준으로 맞
 추어 감으로서 발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처한 환경과의 구체적인 교섭
 과 대응을 통해 독특한 개성을 창조해 나가는 존재로서 묘사된다. 
 이런 자기 창조적 self-creative 인 인간 이해는 '덕을 닦고 일을 완성시키는 
 進德修業 진덕수업' 하는 존재로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盡性致命 진성치명' 하는  존재로 묘사 되는 것을 발겨할수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인간 이해를 잘 알기 위해 핵심적인 용어 성 性과 명 命 의 이해를 
 심화시켜 보기로 하자.

>Posted By: Jolly (요플레) on 'Philosophy'
Title:     동양철학은 운명론인가? - 2
Date:      Mon Jan  5 19:50:33 1998 

- 명 命의 초기 문헌의 쓰임  

 흔히 명 命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외부의 힘을 의미 한다고 생각 해왔다. 
 우리는 고전들의 상세한 분석을 통해 이 이해의 타당성에 도전하려 한다.
 이에 앞서 우선 어원학적인 탐구를 선행 시키기로 하자.
 설문해자 說文解字라는 어원사전에서 글자 명은 두 부분으로 분해 된다.
 입구 口자와 지시할 령 令 자의 조합으로 명은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뜻을 설명하기를 명은  ' 명령으로 무엇인가를 하게하는것' '명령 그자체'
 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우선 우리는 여기서 명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모종의 힘이자 커미뉴케이션의 문제를 제기 한다는 것을 지적해두고 다른 
 주나라 이전의 초기 문헌의 용례를 파악해 보자.
 주나라 이전의 사상을 나타낸다고 생각 되는 시경 詩經 서경 書經 등에서 
 명은 하늘의 명령 천명 天命으로 표현되거나 하느님의 명령 제령 帝令으로 
 표현 된다. 흔히 천명과 제령은 서로 교환 할수 있수 있는 용어이다.
 초기 문헌에서 이들 명의 힘은 결정론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정벌, 추수,
 이사, 일의 성사 등등이 바로 이 하늘의 명령이나 하느님의 명령의 완수로 
 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이 명령 자체의 완고함은 서경에서 '천명유상 
 天命唯常' (하늘의 명령은 변하지 않는다)는 구절로 잘 대표 된다. 
 그러나 초기 문헌에서의 하느님이나 그의 명령을 기독교 전통의 여호아나 
 그의 전지전능성으로 이해 하기는 힘들다. 하느님 (제 帝)은 혈현상 족보의 
 시조로 표현되는 조상신의 뉘앙스가 짙고 이들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을 통해 인간사에 힘을 발휘하는 내재적인 존재인것이다. 그레서 이들의 명령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모든 일을 완벽하게 지배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시작 될때에 여러 힘을 부여하는 의미로서 많이 쓰이는것을 본다.  

- 주역의 하늘과 명개념의 혁명 革命 

주역은 매우 혁명적인 문헌이다. 그것은 이전 시대의 여러 실체적인 개념들을 
 완전히 과정적인 개념들로 전환 시킨 시대전환의 epoch-making  증거들을 가지고 있
는 문헌이다. 주역에서 인격적 신으로서의 제 帝나 상제 上帝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명령 命의 의미도 인간의 반응과 대응과 연결되어 사용되기 
 좋아한다. "천명에 따른다" "천명에 대응한다" " 천명을 탄다" 등등의 표현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딱 한군데 혁괘 革 에서 상황에 따라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 더 길하다는 구절도 발견된다. 명은 그 외부적인 절대성을 잃어 버렸을 
 뿐 아니라 인간의 대응에 따라 안 받아 들이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는 생각의 
 발전도 보이는 것이다. 같은 혁괘에서 명은 바뀌는 것으로 이해 된다. 흔히 
 현대어에도 쓰이는 혁명 革命의 사상은 바로 이런 주역의 괘에서 출발하고 
 있다. 서경에서의 언제나 지속하는 명령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또 인간이 
 능동적으로 이용하여 변화 시키는 명의 개념으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발견 
 하는 것이다. 시경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구나!  하늘의 명령이여!'라고 
 감탄한다. 명은 불변의 전제 조건에서 시간속으로 들어 오고 인간과의 
 교섭을 통해 변화하는 것으로 바뀌어 진것이다.  - 명은 운명론인가? 

-논어의 예 
  
  명이 운명론이라는 주장을 뒷받침 하는 좋은 예는 논어의 쯔시아의 말에서 
  찾아 진다. " 쓰마니우는 탄식했다 '모든이들이 형제가 잇는데 나만 외롭구나 
  !' 쯔시아는 이에 대답한다 "제가 듣기로 생사는 命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군자는 겸손하여 남을 존중하고 관게를 맺어 
  온누리의 사람들이 모두 형제라더 군요. 어찌 군자가 형제 없음을 근심
  하겟읍니까? " (논어 12장 5) 
  얼핏 읽으면 이는 명의 결정적이고 운명적인 성격을 강조한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구절의 꼼꼼한 이해는 우리를 명에 대한 정 반대의 이해로 이끌 
  고 간다. 군자에게 명은 주어진 환경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런 환경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이 아니다.생사라는 주어진 조건에 직면하여 그는 
  스스로의 자발적 노력으로 이를 잘 사용한다. 쯔시아의 쓰마니우에 
  대한 대답은 그의 혈연적인 형제 없음이라는 주어진 불리한 환경 -명 命은
  군자의 겸손과 남에 대한 존중으로서 '모든 사람의 형제' 라는 긍정적인 
  결과로 전환될수 있다고 하는 긍정적 사유의 표본을 보여준다. 
  쯔시아에게 명은 어쩔수 없는 외부의 강압적인 명령이 아니라 그것은 인간의 
  긍정적인 수용과 이를 전환시키는 노력에 의해 더욱 나은 조건으로 개선되는 
  자기 도야의 모티브인 것이다.  - 명은 인간의 가능성의 개화의 바탕이 되는 
  주어진   환경이다.  명은 영역될때 fate, destiny등으로 번역 되는데 이는 매우 
잘 
  못된 것이다.
 오히려 최근의 environement, circumstance라는 번역이 훨씬 적절하다고 
 생각 된다. 우리는 '인간본성은 존재하는가?'라는 글에서 동양의 인간이해가 
 구체적이며 상황적이라고 지적했는데 이런 시공간 속에서 구체적인 인간이 
 막딱드리는 환경과 주위의 추세를 우리는 명이라는 말로 정확히 이해 할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명은 가변적이며 인간의 발전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인간은 그의 주어진 환경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이용 take
 advantage 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데로 발휘하는 게임에 참여 하고 있는 것이
다.
  바로 주역이라는 책은 이런 구체적인 상황속에서 인간들이 그들의 위치를 
 정립하고 주어진 명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는 법에 대한 총괄서인것이다.
 이런의미에서 '주역은 다만 창조적 대응과 주어진 환경에 대한 책 '이라는 
 이 율곡의 이해는 탁월한 것이다.     
    
>Posted By: Jolly (요플레) on 'Philosophy'
Title:     창조하는 인간 - 3 
Date:      Wed Jan  7 12:55:02 1998 

- 인간은 창조한다 : 성 性 과 생 生  인간 존재를 표현하는 한문은 인성 人性 
혹은   
 성 性이다. 맹자와 공자가 이 글자를 두고 머리터지게 싸웠고 모든 
중국철학자들의   
 입에 오르는 중요한 터미놀러지가 되었다. 그런데 과연 성이란 무엇인가?
  현대 중국학자들 사이에는 성 性이란 곧 삶 生을 의미 한다는데 합의가 되어 
  있는 듯하다. 생 生은 삶, 자라남, 태어남 등의 의미를 지닌다. 한나라때 
  만들어진 어원사전 "설문해자"의 生자의 설명은 "새싹이 땅을 뚫고 나오는 
  모양" 이라고 풀면서 "발달한다" 는 의미를 덧 붙히고 있다. 성 性자는 
  이 生에다가 마음 심 心을 덧 붙힌 글자로서 마음 심은 이 '자라남'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풀어 놓고 있다. 우리는 성이란 지향을 가진 
  , 의지를 가진 성장과정 을 의미 한다고 추측할수 있는 것이다.   

- 주역에서 창조성 生의 핵심적 역할   

  중국의 현대 철학자 황똥메이는 주역을 네 글자로 축약하여 '창조하고 또 창조 
  하는 덕 生生之德' 이라고 불럿을 뿐 아니라 중국전통의 가장 핵심적인 언어로 
  또 자신의 철학의 지침이 되는 구절로 생각했다. 주역에서 生은 아주 핵심적인
  중요성을 가닌다. 하늘과 땅의 위대함은 이들이 바로 "창조하는 生" 힘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늘과 땅의 섞임은 만물이 스스로 자신을 개성있게 
  창조할수 있는 (生) 힘을 준다고 말한다. 하늘과 땅 인간의 창조성은 
  "낳고 또 낳음 生生" 이라고 표현되면 이는 변화 易의 본질이라고 주역을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 性도 이런 창조의 과정으로 규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性은 삶을 성장시키는 창조적인 힘 그 자체   

"한번 음 이 되고 또 한번 양이 되는 것이 바로 도의 흐름이다. 이 과정을 잘 
 이어나가는 것이 바로 '잘하는 것' 이다. 그리고 이런 퉁탕대는 과정을 
 겪으면서 일을 완성 시켜가는 창조적인 힘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
 (주역 계사 1-5)  그리고 '성성존존' 成成存存이란 말도 사용하는데 이는 
변함속에서
의 존재를 역동적으로 표현한 어구로 보여진다. ( 계사 1-7)  주역에서의 性은 
시간속
에서의  일의 성취와 연결 되어 이헤 되고 있다. 이 인간 본성의 역동적인 힘은 
맹자
가 인성을 설명하면서 빌려오는 유기적인 비유들 - 나무의 자라남 동물의 털갈이 
곡식
이 영글음 물의 흐름 - 등등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인성은 바로 어떤 실체적인 
속성이 
아니라 "삶을 성장시키는 창조적인 힘  그 자체'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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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後後�    �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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