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5일 금요일 오후 01시 54분 17초
제 목(Title): 한형조/ 주희의 '성즉리'


                                                                               
  
韓亨祚의 고사성어 산책 

                          性   卽   理    

성(性)이란 육신의 생리, 그 욕망과 충족의 메커니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性)은 오히려 생리를 억제하고 순화해서 다가가야 할 혹은
회복해야 할, 영원에 속한 것(理)이다. 
성(性)은 본성보다는 본질에 가까운 개념이다.            
도교와 불교의 개인주의는 수당대(隋唐代)를 풍미했다.하지만
거듭되는 외침과 혼란은 지식인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시켜
나갔다. 북송(北宋)대에 들어 그동안 묻혀 있었던 유교적 관심이
전면에 등장했다. 유교 지식인들은 인간의 본질과 사회의
원리를 본격적으로 탐구해 나갔고, 그 성과는 우리에게
주자(朱子)로 더 잘 알려진 주희(朱熹)에 의해 집대성되었다.
태동기의 일시적 핍박을 견딘 그의 학문은 원대(元代)를 거치며
동아시아 전체의 지배적 권위로 등장하였다. 고려 말 한반도로
전해진 주자학은 조선조의 지적 담론이자 문화적 정치적
이념으로 개화 이전의 5백 년을 지배했다.   
주희의 철학적 골격을 우리는 이기론     (理氣論)이라 부른다. 오랜
세월을 풍미한 도가(道家)와 불가(佛家)를 넘어 유학(儒學)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지적 고민과 모험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런데 정작 이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다들 난감해 한다.  
이기(理氣)를 불가해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조금 진지하게
접근해본 사람은 이 모형이 모호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렇지만 과연 그런 불완전하고 자가당착적인 모형이 수백 년간
흔들리지 않는 권위와 위상을 한 문명권에서 확보하는 것이
가능할까. 조선조가 그 모형을 둘러싸고 지식인 집단의 학문적
에너지를 집중 투입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기 모형의 불가해성은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관찰자의 실패에
더 크게 기인한다. 그 실패의 요인은 다양하다. 하나만 꼽자면
근대 이후 자연과학의 압도적 위력을 들 수 있다. 전통과 근대
사이에 걸친 인식론적 단절과 심연이 전근대적 사유 모형을
그토록 낯설고 다가서기 힘들게 만들었다.                         
주자학의 ABC    이기의 구상은 지금은 유통되지 않고 묻혀진 과거의
패러다임이다. 비판적 번역을 통해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통로를 확보하지 않으면 생산적
논의의 지평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기에 관한 언급들은 근대과학의 인식론을 쉽게 연상시킨다.
   
개론서들은 즐겨 기(氣)가 사물과 현상을 가리키고, 이(理)는
그것을 구성하는 과학적 원리 같은 것이라고 적고 있다.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정과 유보 없이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오해와 혼란을
야기한다.   『주자어류(朱子語類)』를 들추면 처음 『이(理)의 밖에
기(氣)가 없고, 기(氣)의 밖에 이(理)가 없다(理外無氣,
氣外無理)』는 구절에 접한다. 그리고 곧이어 『이(理)와
기(氣)는 분리될 수도 그렇다고 통합될 수도 없다(不離不雜)』가
이어진다. 이런 대목은 앞의 개론적 진술을 받쳐주는 듯하다.
『그렇지, 존재하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일정한 원리가 있고,
존재와 원리의 관계는 분리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동될 수도
없다. 범주가 서로 다르니까』   
그러다가 그들은 주자학자들의 이기(理氣) 논의가 과학적
인식론의 표명이 아니라 윤리적 이념적 가치의 표명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을 보고 아연 놀란다. 이기(理氣)의 표준구는
대체로 『이(理)는 귀하고 기(氣)는 천하다』거나, 『이(理)가
기(氣)를 지배해야 한다』거나, 혹은 『기(氣)가 이(理)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은 이(理)를 둘러싼 논의의 중심이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당위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에 대해 갈피를 놓치고 만다.
그리하여, 이기의 구상이 과학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한, 초보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한심한 발상으로
치부해 버린다. 최초의 근대적 중국철학사를 쓴 풍우란(馮友蘭)조차 이 구상에 
올바로 접근하는 데 실패했다.
동시대의 철학자인 웅십력(熊十力)은 그를 가리켜 「주자학의 ABC도 모르는 사람」이
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기(氣)는 자연주의적 개념    

앞서 두 번의 연재에서 살펴보았듯이 기(氣)는 합리적
과학적이기보다 신화적 형이상학적 사유의 산물이다.
『장자(莊子)』를 펼치면 다양한 생명의 신비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한대(漢代)의 일상적 인식의 집대성인
『회남자(淮南子)』는 생명의 끊임없는 변이(mutation)에 대한
지루하리만치 풍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생명의 유전과 변이에
대한 경이가 기(氣)의 사유를 물들이고 있다.    
요즘도 기(氣)를 말하는 사람들은 무슨 신비적 생명력을
비의적으로 발양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생명의 에너지는
활동적이고 신비 그 자체이다. 양화와 분석, 한정적 가설과
실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근대과학은 그 빛나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직 인간의 소화과정의 수수께끼조차 속시원히 풀지
못하고 있다. 위장의 소화과정을 대체하기 위한 플랜트를
세운다면 경기도만한 크기의 정교한 공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생명의 신비는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유전자
조작조차 생명 자체의 자발적 유기적인 생성력을 운용할 뿐,
창조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유기체의 신비가 수학이나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 신비는 신비로 놓아두는 것이 더 정직하고 덜
위험할 수 있지 않은가. 더구나 과학에 대한 인간의 오만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자연에 대한
신화적 상상력이 더욱 절실할 때가 아닌가.   
기(氣)는 창조자나 조정자 없이 자체의 운동의 자연성에 의해
일정한 조직과 구성을 갖추어 나가는 추진력이다. 생물이나
무생물을 막론하고 이 원리는 같다. 기(氣)의 사유는 모든
존재하는 것을 그 생명의 활동으로 보기 때문에 비활성조차
활성의 잠재적 형태로 인지한다. 그런 점에서 기(氣)를
matter(물질)라고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질은
근본적으로 세계를 정지에서 바라보는 인식의 산물이다. 그것은
기(氣)에 담겨 있는 자발적 변화와 변이를 포괄하지 못한다.
기(氣)의 사유는 세계를 정지가 아니라 활동에서,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서 파악한다. 계절의 순환에서, 생리의 흐름까지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변화하고 있다. 역(易)이 동아시아의 유구한
인식론적 전통으로 자리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氣)의 동적인 세계 모형은 기독교 신학의 중심주제인 창조의
수수께끼에 말려들지 않았다. 그들은 보이는 세계의 충만한
생명력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경외했다. 그들에게서 절대자는
바로 자연(自然)이었다.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은 기(氣)의
세계를 기술(記述)하는 양식이지 설명(說明)하는 양식이 아니다.
그리하여 근대 과학의 발흥에 필수적이던 실험과 가설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다.                         

이(理)의 필요성    

이와 같은 소박한 자연주의는 동아시아의 유구한 일상적
인식이었고, 이 사유는 문명의 인위성에 오염되지 않은 도가에
전형적으로 발전되었다. 도가는 자연에 대해 전폭적으로
낙관했다. 그들은 우주 안에 있는 기의 계기들이 분화하고
교섭하는 과정에서 자발적 조화와 질서를 형성한다고 믿었다.    
그들이 우려한 것은 인위(人爲)의 개입이었다. 그래서
무위(無爲)를 최고의 이념으로 설정했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행동(non-action)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행동의 권유다. 자연(自然)은 인간의 개입을 줄일 때 본래
예비된 순수성과 완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도가는 질서와 조화의 이상을 특별히 부각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도가에서 이(理)는 기(氣)의 내적 질서와 조화를
소극적으로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가의 접근은 이와 전혀
달랐다. 그들은 자연에 대해, 유보없이 낙관하지 않는다.    
기(氣)는 중립적이거나 순수하지 않다. 현실을 구성하는 기(氣),
즉 생명의 세계, 욕망과 의지의 세계는 불안하고 위태롭고
혼돈스럽다. 따라서 기(氣)는 제재되고 억제되며 혹은 유도되고
발양되어야 한다.    「스스로 그러한 것(自然)」을 그 자체로 방기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인문성의 자각이 기(氣)에 대립되는 이(理)를 적극적
지평으로 끌어올리게 했다. 사실 대립(對立)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정확하게는 「대대(對待)」가 옳다. 이와 기는 서로 맞서
있지만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론은 자연세계의 일탈과 기형, 무질서를 철두철미
인간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들은 세계 가운데서 인간이
중심이자 척도임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았다. 차라리 속시원한
일 아닌가. 「종족의 우상」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점에서
그들은 도가와 확연히 구분되었다.   「살아 있는 것」은 일탈과 분쟁을 본질적 
징표로 갖는다.
그래서 기(氣)는, 특히 인간사회에서 기(氣)는 모종의 규율과
질서를 요청하게 된다. 도가에서는 몰라도, 유가의 이기론에서
이(理)는 기(氣)의 질서에 대한 승인이 아니다. 이(理)는 기(氣)의
자연질서를 추인할 수 없었던 인간의 사회적 고민, 그리고 그
갈등의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끌려 들어왔다.   현실은 그 자체에서가 아니라 
규범이나 이념과의 상대적
연관하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특히 신체와 정신을 통한 인간의
활동 역시 모종의 기준에 합치할 때 비로소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여기가 유가의 이기론을 도가와 불교로부터 갈라놓는
자리다. 이기론은 도가와 불교가 척도와 표준을 적극적으로
의식하지 않고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긍정하는 무책임한
교설이라고 힐난한다. 이기론은 단호하게 말한다. 『현실은
척도로 가늠되어야 하고, 인간의 신체와 정신 활동 또한 일정한
표준과 이념에 의해 제재 간섭, 통제되어야 한다』   
요컨대 기(氣)가 「있는 것」을 가리킨다면 이(理)는 「있어야
할 것」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규범이라 부를 수도 있고,
아니면 모종의 비전, 나아가 인간의 꿈이 깃들인 유토피아로
읽을 수도 있다.   그 다양한 함의를 뭉뚱그리는 번역어에 「척도(尺度)」가 있다.
전통적 용어로는 준칙(準則)이라 한다. 누가 내게 이(理)의
의미에 가장 근접한 번역을 선택하라면 「척도」를 들겠다.
옛적 제왕들의 권위를 상징한 것이 이 척도였고, 암행어사가
지니고 다니는 표지 역시 이것이었다. 진시황은 도량형을
통일함으로써 제국의 코드를 통일하는 표지로 삼았다.   이 척도가 현실을 지배해야 
한다. 척도는 자연세계뿐만 아니라
인문적 세계에 동시에 적용된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의
열매가 익으면 가을의 걷이와 조락이 따르듯, 인문세계의 모든
제도와 관행 또한 일정한 척도에 합치해야 한다. 척도는 특정한
상황하에 상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보편적
규범의 다양한 적용이라고 그들은 믿었다(理一分殊). 그들은
모든 현상과 행위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통합된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것이 태극(太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영원의 척도(準則)이다.                      

이(理)는 어디서 오나    

『척도가 있다. 그것도 영원의 척도가 있다』는 주희의 종교적
 믿음을 일단 인정하기로 하자. 그렇더라도 물음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 척도의 근원은 어디인가, 혹은 설정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 척도는 현실과 어떠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는가.
 그 척도는 진정 현실을 통제하고 강제하는 근원적 동력을 갖고
 있는가. 현실의 다양한 정황하에서 그 척도를 어떻게 행위자의
 선택에 적용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우리는 그 척도를 인식할 수
 있기는 한가.   마지막 물음부터 대답하자면, 주희는 인간이 주체적 탐구
 노력을 통해 척도를 확인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위한 진지하고도
 지속적인 노력을 치밀하게 경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주희는
 그를 위해 참람(僭濫)의 비난을 받을 것을 각오하면서
   『대학(大學)』의 원본 텍스트를 뜯어 고치기까지 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즉 「척도의 헌신적 탐구와 그 확인」은
  그의 철학적 방법론의 출발점이자 초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젊은 시절 왕양명(王陽明)은 길을 잘못 들었다.
   대나무를 몇날 며칠 뚫어지게 쳐다본들 무슨 신통한 통찰이
   얻어지겠는가. 이(理)란 동태적 삶의 연관하에서 확인되는
   척도지, 대상에 대한 박제된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희는
   『붓대롱 속에서 무슨 척도(理)를 찾겠습니까』라고 물은
   제자들의 질문에 『아주 미미하니 굳이 찾을 필요없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朱子語類』). 젊은 양명은 격물의 대상이
   삶의 의미와 척도라는 것을 투철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정치적 박해를 받아
   머나먼 미개의 땅 용장(龍場)에 유배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실존적 깨달음으로 양명학이 출발하게 되었음은 잘 알려진
   바다.   주희는 척도를 확인하는 가장 긴요하고 중요한 일로 독서를
   들었다. 독서는 척도의 보고이다. 경전뿐만 아니라 역사 또한
   척도의 파노라마이다. 역사는 「보편적 거울(通鑑)」로
   일컬어졌다. 동아시아에서 역사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의 객관적
   기술이라기보다 척도와의 긴장 속에서 선택적으로 인식된
   「교훈」이고 「모범」이었다. 그 결과 왕조의 흥망을 결정한
   대사건이 무시되는가 하면 일개 이름 없는 산간 선비의 행실이
   대서특필되기도 하는 것이다.                       
   
생략된 철학적 질문    

 그렇다면 그 척도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이 자기
 욕망의 억제와 타인에 대한 배려임은 쉬 짐작할 수 있다. 전자를
 의(義), 후자를 인(仁)이라고 부른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인의(仁義)라는 척도가 욕망의 합리적 조정을 위한 임의적
 타율적 규범으로 인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의라는 척도의
 전망은 우주론적 형이상학적 전망을 갖고 있다.   
『현실(氣)의 척도, 인간 생리(氣)의 척도(理)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그리고 이 인의예지는 우주의 모든
  생명들의 보편적 절대적 준칙이다』    
 이 형이상학의 표명으로 주희는 과학을 넘어 도덕과 종교로
 기울었다. 치밀한 유기적 과학적 사유를 천명하는 듯한 주희의
 인식론이 어째서 객관적 과학으로 성장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 이기론의 표면적 불가해성과 다기한
 오해의 진원 또한 이 언저리에 있다. 과학의 관점에서 이기를
 읽은 사람들은 주희의 종교적인 독단과 신념 앞에서 틀림없이
 황당해 할 것이다.   주희의 이기론은 과학적 인식을 위한 이론적 틀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근거(根據)하고 지향해야 할 지상(地上)의 척도에
 대한 일생에 걸친 고민의 결정체이다. 학자들은 과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학이라 부르기도 뭣한 이 독특한 사유에
 도덕형이상학(moral metaphysics)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것은
 일상적 규범을 우주론적 형이상학적 토대 위에 정초해 놓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준칙은 「영원의 근원」을 갖는다고 주희는
 생각했다. 준칙의 근거를 영원에 두매 세계의 필연성과 인간의
 당위성은 인간의 자의적 판단과 상황적 필요에 의해 거부하거나
 수정, 변용할 수 없는 절대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주희는
 말했다. 『길(道)이 인간으로 하여 비로소 존재한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하라(道非因人方有)』   주희는 이(理)가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와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구절은 주자학을 말하는 사람의 입에 언제나 회자(膾炙)되면서
 그 정확한 함의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비판적 연구자들은
 전자를 「사실」, 후자를 「당위」로 구분하고 주희가 이 둘의
 일치를 아무런 논리적 매개없이 일치시켰다고 불평한다.    
 이는 문자를 정밀하게 읽지 않은 독법이다. 주희는 제자들에게
 늘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을 통해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에
 이르러야 한다고 일렀다. 여기서 소당연지칙이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준칙(則), 즉 척도를 가리키며, 소이연지고는 바로
 그 준칙의 존재 근거를 가리킨다. 전자가 척도의 현실적
 측면(用)이라면 후자는 그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측면(體)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둘은 이원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體用一原).   
 절대적 준거의 문제는 서양철학이 상대주의와 객관주의라는
 이름하에 오랫동안 논의해 온 아포리아(aporia)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기의 사유는 상대주의와 객관주의의 논리적
 딜레마에 그다지 깊이 주의하지 않았다. 그들이 관심을 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 보편적 척도의 내용, 그리고 그것과
 현실과의 관련에 관한 것이었지 그 존재 여부를 놓고
 시시비비하는 데 정력을 소모하지 않았다. 이것이 참으로
 특이한 점이다. 또한 이기의 미래적 비전에 가장 심각한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나면서 둘인 것    

 삶의 척도는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근원에서 온다고 했다.
 그리고 이 둘이 이원화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규범에 주목했던 「척도」는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측면에서
 「의미(意味)」가 된다. 나는 이(理)의 함의를 근원에서--혹은
 이기론의 용어로 「본체(本體)」에서-- 포괄하는 용어로
 「의미」란 말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인의예지라는 유가의 척도는 영원의 것이 다. 그것은 시간의
  추이와 공간의 상이에 구애받지 않으며, 생명의 종류와 순도에
  영향받지 않는 불변의 절대다. 우주의 창생과 변이는 바로 그
  의미를 구현하는 과정이다.    주희는 복기견천지지심(復其見天地之心)이라는
 『주역(周易)』의 한 구절을 『생명의 단초, 새로운 시작에서
  하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풀었다. 이때 하늘의 마음이
  다름 아닌 의미이다. 그리고 『한번 양(陽)하고 한번 음(陰)하는
  동적 과정을 일러 도(道)라 한다(一陰一陽之謂道)』에서 굳이
  주희가 일음일양(一陰一陽)과, 그것을 그렇게 시키는(之) 또
  다른 요소를 분리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요소란 다름 아닌
  「천지의 생성과 변화에 역사하는 절대적
  의미(太極生陰陽)」를 가리킨다.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는 없다. 그리고 존재 없는 의미는
  무의미하다. 이것이 주희가 말한, 『이(理) 밖에 기(氣)가 없고,
  기(氣) 밖에 이(理)가 없다』의 진정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훈련이나 매개없이 현실과 척도는 합일(合一)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理)와 기(氣)는 결단코 서로 다른
  물건이고(理氣決是二物), 그래서 기(氣)는 기(氣)이고 성(性)은
  성(性)이며, 이(理)와 기(氣)는 결코 뒤섞일 수 없다(不可挾雜).
  의미의 차원에서 보면(在理上看), 모든 존재는 의미를 구현하기
  위해 태어났다.    
  또 마찬가지로 생리의 차원에서 보면(在物上看), 모든 존재에는
  의미가 숨쉬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 둘은 서로 혼동될 수는
  없지만(不雜) 또한 분리될 수도 없다(不離). 「혼동될 수
  없다」는 것은 생리가 의미를 전폭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므로
  분리와 이원화의 간극을 피할 수 없음을 뜻하고, 그럼에도
  「분리될 수 없다」는 말은 생리를 떠나서는 의미를 구현할
   바가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의미와 생리는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一而二, 二而一).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희가 생각한 이 형이상학적
 '의미'는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우선 조선 유학사의 기나긴
  논쟁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음을 귀띔해 둔다. 주희
  이래의 유교 문명권에서 이 물음은 세계에 대한 해석, 아울러
  교육과 훈련의 양식까지를 예고하고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같은 것이었다. 이기(理氣)의 연관과 선후(先後)를
  논의하고, 이발(理發)과 기발(氣發)을 따지는 것은 본시 한가한
  공리공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의 의미와 삶의 지표를 찾기
  위한 진지한 성찰과 구도로 출발했음을 일깨워두고자 한다.                  
 무위(無爲)면서 유위(有爲)인 것    영원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다음과 같다.
 이(理) 는 의도를 갖는 작위(作爲)적 주체인가, 아닌가. 다른 말로 하면 이(理)는
 무위(無爲)인가, 유위(有爲)인가. 이 물음에서 단박 기독교적
 신학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수적인
 유학자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주자학의 중심논제는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것이었다.    
 조선 유학 또한 마찬가지다. 퇴계와 율곡은 영원의 의미의
 실재성을 놓고 의견이 갈렸던 것이 아니다. 둘 다 영원의 의미가
 우주에 편만함을 확인했다. 둘의 차이는 그 의미의 위상과 성격,
 특히 그것의 직접적 권능에 대한 것이었다. 진정 「영원의
 의미」가 우주를 움직이고 생명을 빚어내는 권능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인간의 생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실현되는
 상대적 척도일 뿐이냐는 것이었다. 퇴계는 의미의 직접적인
 역사(役事)를 믿었고 율곡은 의미가 직접 행사하지는 않는다고
 믿었다. 이른바 주리(主理)와 주기(主氣)가 여기서 갈라졌다.   
 여기서 이(理)의 우리말 번역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나는 처음 이(理)를 척도라고 했고, 그 척도의 보편적 근거로서
 「의미」를 말했다. 그런데 이제 그 의미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갈림길에 서 있다. 얼핏 보더라도 의미라는 용어는
   무위에 더 가깝다. 즉 의미는 이(理)의 함의를 대체로 포괄하고
   있지만 그 유위성(有爲性)과 작위성(作爲性)을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 이(理)의 무위(無爲)와 유위(有爲)를 동시에 포괄하는
   적절한 역어가 없을까.   문득 나는 그 용어를 우리가 일상에서 
   오랫동안 저항없이
   써왔음을 깨달았다. 여기까지의 논의에 참가한 사람이라면
   떠오르는 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뜻」이다.
   뜻은 「의지(意志)」나 「의도(意圖)」이기도 하고, 동시에
   「의미(意味)」나 「의의(意義)」이기도 하다. 『하늘의
   뜻』이었다』거나 『내 뜻이 아니었다』고 할 때는 전자의
   측면이 강조되고, 「삶의 뜻」이라거나 「뜻도 없는
   중얼거림」이라고 할 때는 후자의 측면이 강조된다. 나는
   주희가 구상한 이기론에서 이(理)가 뜻하는 바에 가장 근접하는
   우리말이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함석헌의 해석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1930년대 『성서조선』지에 실린 글을 해방 후에 다시 실으면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란 제목을 달았다. 그
   서문에서 그는 성서적 자리에서만 역사를 쓸 수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역사철학은 성경밖에 없다고 썼다. 그런 그가 15년 뒤
   네번째 판을 내면서 제목을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고쳤다.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찍힐 것을 각오하고 바꾼 이 제목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의인 죄인 문명인 야만인을 다같이 구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유신론자 무신론자가 다같이 믿으며 살고 있는 종교는
   무엇일까. 그래서 한 소리가 뜻이다. 하나님은 못 믿겠다면 아니
   믿어도 좋지만 뜻도 아니 믿을 수는 없지 않으냐. 긍정해도 뜻은
   살아 있고 부정해도 뜻은 살아 있다. 져도 뜻만 있으면 되고
   이겨서도 뜻이 없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뜻이라고 한 것이다.
   이야말로 만인의 종교다. 뜻이라면 뜻이고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고 생명이라 해도 좋고 역사라 해도 좋고 그저 하나라
   해도 좋다. 그 자리에서 역사를 보자는 말이다』                     
 

 유위보다 무위에 가깝다    주희는 형이상학과 신학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달리보면 그의 구상은 형이상학과 신학을 아우르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모호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사유의
 풍요로움이기도 하다. 이 양면성을 놓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조선 유학은 이 모호성을 견디지 못하고 더 분명하고 한정적인
 태도를 취하려 함으로써 서로 다른 체계를 분화 정돈시키며
 오랜 논란을 거듭했다. 큰 줄기는 둘이다. 퇴계가 이(理)의
 유위를 확신한 데 대해 율곡은 이(理)의 무위를 철학적 사유의
 출발로 삼았다.   나는 주희의 이(理)를 무위에 가까운 것으로 읽었다. 그에게서는
 신학적태도보다 자연학적 태도가 두드러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희의 이(理)는 의지보다 의미에 가깝다. 그는 영원을
 비활동성과 비인격성(無情意 無計度, 淨潔空闊的 世界)에서
 읽었다. 주희는 늘 이(理)가 신학적으로 해석되지 않게끔 신경을
 썼다.    그는 『논어(論語)』와 『중용(中庸)』 그리고
『맹자(孟子)』에 나오는 신(神) 천(天) 귀신(鬼神) 등의
 인격신적 관념을 애써 「자연론적」으로 탈색시키려고
 노력했다. 초월적 신이라고 말하는 것들(鬼神)은 실제
 음양(陰陽)의 변이가 갖고 있는 신비에 대한 인간의 경외를
 의미한다(鬼神二氣之良能)고 말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이기론을 버리고 원시 유학과의 제휴를 적극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주희에 의하면 인간은 육신의 생명과 더불어 영원의 의미를
부여받은 존재이다(氣以成形 理亦賦焉). 그리고 그 하늘의
뜻(天命)은 「흡사 명령하듯(猶命令也)」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렇지만 이는 실제의 강압이나 통제는 아니다. 우리는 명령
아닌 명령으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주희의 독특한 사유의 초석은 다름 아니라 이 의미가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의 보편적 본질(性)이라는 데 있다. 이를 일컬어
성즉리(性卽理)라 한다. 주희의 사유를 성리학(性理學)이라
일컬을 정도로 이 선언은 주자학의 철학적 구상을 단적으로
대표하고 있다.
   주의할 것은 여기서 성(性)이란 육신의 생리적 경향성, 그 욕망과
   충족의 메커니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에게서
   성(性)은 오히려 생리의 제재 간섭 순화를 통해 다가가야 할,
   또는 회복해야 할 영원의 의미였다. 그래서 굳이 『성은
   성이고(性自性), 기는 기(氣自氣)』라고, 『둘은
   뒤섞여서는(挾雜) 안 된다』고 그렇게 강조해 마지않은 것이다.
   성(性)은 그러므로 평범하게 본성이라고 번역해서는 아니 된다.
   그보다는 본질 쪽이 본래의 개념을 덜 손상시킨다. 본질은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기원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생리와
   일정한 대대(對待)로 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mail: newsroom@mail.dongailbo.co.kr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