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2월 5일 금요일 오후 01시 25분 39초 제 목(Title): 한21/월남 '고엽제'피해 대물림. “엄마, 다리는 자르기 싫어요” 베트남/ ‘고엽제 피해’ 대물림 번퀸 (사진/ 번퀸의 다리엔 혹이 솟아 있다. 딸의 다리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어머니 카오티킴쿡은 캄보디아의 전장과 D항전구를 누비고 다니던 전사였다.) “존경하는 총리님, 저는 동나이성 빈호아시에 사는 훙붕학교 6학년, 풍번퀸입니다. 저는 13살인데, 골수암 선고를 받았어요.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너무너무 아파요….” 지난해 초 응급실에 실려갔다온 번퀸이 갑자기 물었다. “누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분이지요?” 어머니인 쿡은 “총서기장과 총리”라고 답해주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번퀸이 그날 밤을 꼬박 새워 판반카이 총리 앞으로 편지를 쓸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밤을 새워 ‘총리님’에게 편지를 쓰다 (사진/ 고엽제 휴유증으로 다리를 자른 베트남의 한 어린이. 5만명 이상이 기형아로 태어나기도 했다.) “제 어머니도 갑상선암을 앓고 계십니다. 겨우 10살인 제 동생도 항상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제 가족의 질병이 미군들이 살포한 고엽제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적들의 살상지역에서 활동한 전사이시기 때문입니다.” 번퀸의 아버지인 풍테톤은 1968년 군에 입대하여 B5전선 제2소대에 배치됐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그는 케산, 족미우, 아르이, 쿠앙치 등 가장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던 전장들을 두루 거쳤다. 75년 전쟁이 끝나고 조국은 통일됐지만, 그는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의 부대에서 살아남은 대대원들에게는 땅 속에 묻힌 지뢰와 고엽제 부대를 수거하는 임무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는 미군들이 퍼부어대는 폭탄과 고엽제 가루가 스콜(열대성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지요. 고엽제 부대가 파묻혀 있는 구덩이에 들어가면 냄새만 맡고도 전우들이 질식해 쓰러지곤 했어요.” 톤의 회상이다. 번퀸의 어머니인 카오티킴쿡도 캄보디아의 전장과 D항전구를 누비고 다니던 전사이다. “이제 전쟁은 끝났지만, 저희 가족들은 아직도 그 가혹한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더이상 흘릴 눈물조차 없어보이는 어머니를 바라볼 때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나라의 공무로 바쁘실 총리님께 이런 편지를 드리는 것이 잘못인 줄은 알지만, 제게는 의지할 곳이 총리님밖엔 없습니다….” 그의 편지는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번퀸의 편지를 받은 판반카이 총리는 동나이성 인민위원회에 최선을 다해 번퀸의 가족을 도우라는 지시를 하달했고, 번퀸에게는 자신의 친서를 전달했다. 번퀸의 동생인 선하를 앞장세워 그의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길에 “배 아픈 건 좀 어떠니?”하고 물었다. “많이 아파요. 하지만 누나가 더 많이 아픈걸요. 우리 반 아이들이 저를 돕겠다고 하면 우리 누나가 더 많이 아프니까 누나를 도와 달라고 하지요.” 어린아이답지 않은 대답에 눈시울이 아파왔다. 톤은 테니스장에서 공을 줍고 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치안수력발전소에서 운전수로 일했으나 고질적인 두통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도 가봤지만 병명을 찾아내지 못했다. 머리를 잡아뜯어도 보고, 벽에 부딪혀보기도 하면서 두통과 씨름해오던 어느 날인가부터 손에도 종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톤 가족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인인 쿡의 목에 돋아난 갑상선종 역시 악성으로 판명된 것이다. 급기야 지난 여름에는 기력이 쇠해가는 어머니를 대신해 공을 줍던 번퀸마저 쓰러졌다. 톤이 다리가 아프다고 울부짖는 딸의 다리를 주무를 때, 밤톨만한 혹이 만져지긴 했지만, 그저 공을 줍다가 다리를 삔 것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게 암이었다니…. 왜 후손들이 참형을 당해야 하는가 톤에게 머리는 좀 어떠냐고 물었다. “다, 나았어요!” 그러나 그는 연신 알라산이라는 진통제를 입에 넣어 씹고 있었다. “외국에서는 골수를 교체한다든가 해서 암을 고칠 수도 있다던데, 맞나요?… 그냥 물어본 거요. 의사들은 다리를 잘라내도 암이 골수에 너무 빠르게 번지고 있어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외국인인 필자에게서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건지려는 듯 집요하게 빛났다. “번퀸은 살아야 해요! 나하고 애엄마야 군인이었으니 그렇다쳐도 왜 우리 번퀸이 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거요?” 애원하듯 불타던 그의 눈빛이 물기로 흐려져 갔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삼림의 잎을 제거하여 북베트남군이나 해방군의 근거지를 노출시키고, 그들이 사용할 것이 분명한 곡물을 파괴할 목적으로 제초제를 사용했다. 1961년부터 71년까지 약 1100만갤런(G/A)의 고엽제가 베트남 전역에 뿌려졌다. 이로 인해 베트남 전 국토의 10%에 이르는 삼림과 농지가 초토화됐으며, 약 200만명 가량의 베트남인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고엽제의 가장 큰 비극은 그 후유증이 2세에까지 대물림된다는 데 있다. ‘느린 탄환’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고엽제로 인해 베트남에서만 약 5만명 이상의 기형아가 탄생했다. 최근에는 고엽제로 오염된 지역에서 자라난 곡물에서도 연조직 육종암, 후두암, 다발성 골수증 등 수많은 질병을 부르는 다이옥신 세제가 검출됐다는 보고가 나와 식품마저 안심하고 먹을 수 없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엄마! 제발 절 그냥 죽게 내버려두세요. 다리는 자르지 마세요. 너무 아파요. 그리고 엄마랑 아빠랑 가족들 모두 저 때문에 고생이잖아요!” 가끔씩 번퀸은 아픔에 못이겨 부모의 억장을 지르는 소리를 내뱉곤 한다. 그때마다 톤은 억울하다. 베트남전쟁은 20세기의 인간이 저지른 잘못인데, 신은 왜 21세기를 살아야 할 후손들에게까지 참형을 내리는가. “전쟁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자식들에게는 전쟁에 대해 입도 뻥긋 한번 안 하고 살아왔어요. 꿈에라도 다시 나타날까 무서워 무조건 잊으려고 했지요.” 톤은 전쟁은 끝났다고 믿었다. 그것은 이제 책이나 영화 속에서 가끔 재현되는 역사의 일부로 잊혀져가길 원했다. 21세기 소망을 묻는 필자에게 그는 바람소린지 한숨소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끝나야지요….” 그의 소망처럼 먼 훗날 21세기가 저무는 언저리쯤에는 전쟁도, 고엽제도, 그로 인한 모든 고통들도 아득한 전설의 하나로 잊혀져 갔으면 좋겠다. 빈호아=구수정 통신원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