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1월 24일 일요일 오전 05시 33분 37초 제 목(Title): 신동아/ 시인 김지하의 마지막담론 시인 김지하의 마지막 담론 “21세기에는 단군사상이 인류 구원한다”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부 기자 ojong@donga.com〉 『불초 자손은 오늘 이 자리에서 높으신 「한님」께 굳게 약속합니다. 첫째, 술을 단호히 끊어버리겠습니다. 또한 음란한 성적 호기심과 일체의 패륜적인 망상, 그리고 고인의 진리를 피나는 노력없이 슬쩍 훔쳐서 제 명예를 위해 써먹으려는 도적놈 심보를 결단코 끊어버리고 특히 담배는 오늘로부터 영영 끊어버리겠습니다. 둘째, 고대 풍류도의 현대적 부활인 단학인(丹學人)의 한 사람으로서 그 수련과 과제와 사명을 철저히 수행하여 마침내 성통공완(性通功完)하겠습니다. 셋째, 「지옥」을 뜻하는 지금의 제가 만들어낸 이름 「지하」를 버리고 부모님이 주신 이름 「꽃 한송이(英一)」를 회복해 차차 그 깊은 뜻을 삶과 함께 깨우쳐 기어코 영롱한 꽃 한송이를 제 삶과 이 민족 역사 위에 피우겠습니다. 저의 오늘이 있게 해주신 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단기 4331년 음력 개천절 불초자손 김지하(영일) 엎드려 올림』 지난해 음력 개천절인 11월22일, 시인 김지하가 공개석상에서 국조(國祖) 「단군 할아버지」에게 바친 발원문 중 일부다. 20세기 한국 지성사에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상가 김지하의 입에서 단군 이야기가 거침없이 나오고, 한국 전통의 기 수련법인 단학수련(丹學修鍊)이 흘러나올 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시인 김지하는 그렇게 변했다. 선천(先天)의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듯 그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개벽(開闢)」됐다고들 한다. 문제는 그의 「변신」이 한 개인의 일신상 변화로만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지하의 변신과 발언에는 시대의 변화를 예감하고 이끄는 힘이 있었고, 그것은 종종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곤 했다. 김지하는 70년대 박정희의 유신독재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저항시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다 감옥에서 출옥한 후인 80년대에 「느닷없이」 생명운동을 들고 나왔을 때, 그를 아끼고 따르던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진보 지식인층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다. 세상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배신자」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참뜻」에 호응한 사람들이 생명운동에 익숙해지고 이제는 생명이라는 말이 오히려 상투적이라는 느낌마저 드는 90년대 말, 그는 또 홀연히 「율려(律呂)운동」을 전개하면서 단군과 단학 이야기를 21세기의 화두(話頭)로 끄집어냈다. 그의 변신과 발언은 또 어떤 파장을 불러올 것인가. 10년간의 고통 99년 정초, 그의 일산 자택을 방문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기자를 맞는 시인의 모습은 과연 변한 듯했다. 컬컬한 목소리는 예나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왠지 밝고 맑아 보였다. 사실 30대 후반인 기자는 예순을 바라보는 시인 김지하(58)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와 친분있는 시인의 글에서 그의 리얼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그려보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후 감옥에서 풀려나 원주에 있던 80년대 초 김지하의 모습은 이랬다. 『어, 으슬으슬허네. 올 겨울은 춥겠구만…. 헐렁한 한복차림으로 쭈그려 앉은 그가 스산하고 씁쓸한, 가래 굵직한 목소리로 예의 그 험한 얼굴 표정을 일순 누그러뜨리며, 야윈 어깨를 짐짓 추스르며, 그렇게 깡마른 온몸을 신음 반 흥얼중얼 반으로 소리를 내뱉었을 때 시인 이시영은 그 어리숙한 얼굴 표정을 마구 펴면서 감탄, 찬탄했다. 허 시인이야 어허…』(김정환 시인의 묘사) 이후 김지하의 후배인 김정환은 80년대 중반 생명운동을 펼치는 김지하를 다시 대면하고는 「그는 검고 삐쩍 마른 채로, 그리고 간간이 신경이 곤두선 듯한 채로 거대해보였다. 그는 술에 찌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질탕한 술고래라기보다는 밤을 새우며 불면증과 함께 독한 술에 자신을 조금씩 그리고 철저히 파먹히는 거였다」고 묘사했다. 그러다 90년대에 들어서 김정환은 다시 김지하를 만났는데, 김지하는 전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김정환은 김지하의 부친(96년 작고)으로부터 『갸가 잠을 통 안 자서 어떤 때는 무서워…』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을 뵈니 참 많이 변하신 듯합니다. 몸도 건강해지신 것 같은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이제는 내 중심이 섰으니까 이런 얘기를 해도 되겠지요. 지난 10년간 나는 병이 들었고 아팠습니다. 매일 생각하는 것은 자살이었고 끊임없는 환상, 환시, 환청에 시달렸어요. 나는 혼자서 「이히 빈 리스 메어(나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만 중얼거렸어요. 시인 휠덜린의 말년과 비슷했지요. 그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9년 동안 한 농가에 머물다가 쓴 시가 바로 「이히 빈 리스 메어」거든. 병원에서는 신경안정제를 주었는데 그걸 먹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어요. 그런데 신경안정제를 먹고 나면 몸이 퉁퉁 붓고, 위장이 엉망이 되고, 변비로 시달렸어. 말도 잘 못하고, 걸음도 잘 못 걷고, 진짜 내 별명처럼 곰이었어요. 사람 만나기도 싫었어요. 우리 애들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슬슬 피해. 아버지도 아니고 완전히 방관자였지요. 그 십년 동안에 애들이 굉장히 우울하게 컸어요. 아내는 만날 옆에서 수발들다가 온갖 병이 다 들고. 그러다가 97년경에 단학을 발견했습니다. 아내가 단학수련을 먼저 시작하고 나서 내게 권유한 것이지요. 단학선원에 나가 수련한 지 이제 1년 반이 되는데, 11년 동안 먹던 신경안정제를 6개월 전에 끊어버렸어요. 이렇게 몸도 좋아졌고요. 그런데 저는 단학을 통해서 몸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단학이 말하는 고조선, 단군사상, 풍류도에 대해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내가 존경하던 동학의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 선생, 그리고 증산교 창시자 강증산 선생, 정역(正易)을 펼치신 김일부 선생 같은 19세기 사상가들도 결국 원시반본(原始反本)에 의해 고조선의 신시 풍류도와 환인·환웅·단군의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의 삼화사상, 그리고 천부경의 삼극(三極)사상을 19세기식으로 부활시킨 것이 아닌가? 오늘날 이것을 되살릴 수 있다면 나의 명예보다도 내 삶이 살 수 있겠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습니다』 울면서 쓴 단군 발원문 김지하의 이러한 욕구가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지난해 음력 개천절에 발표한 발원문. 김지하는 그 자리에서 여인이 어떤 마음을 다질 때 머리를 변화시키듯, 평생 달고 다니던 술을 끊겠다고 맹세했고 담배까지도 끊어버렸다. 그는 단군 발원문을 쓰면서 다시 한번 신묘한 체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단군 발원문을 울면서 썼어요. 새 길을 가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의례적으로 공표한 것이 아니고 한님, 즉 하늘과 거래하는 마음으로 한 맹세입니다. 발원문을 쓰고 잠시 누워 있는데 갑자기 날씨도 추워질 텐데 장모님(소설가 박경리씨)은 어떻게 사시는지, 애들은 어떻게 할까,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묘소는 괜찮나, 친구들은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건 나한테 굉장한 변화예요. 나는 이제까지 어머니 생각 안 나고, 애들도 관심없고, 친구들도 안 만났어요. 그렇게 폐인이 돼 있었고 감각이 죽어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벌떡 일어났지. 아, 내가 치료가 됐구나, 감각이 회복된 거죠』 ―말하자면 사람에 대한 사랑·애정 같은 감정이 되살아났다는 것이군요. 『그래요. 그런데 그걸 단학수련과 연관시켜볼 수 있어요. 단학에서는 하단전(배꼽 밑 혈), 중단전(가슴 부분의 혈), 상단전(이마 부분의 혈)을 중요시하는데, 단전마다 특징이 있어요. 하단전은 정(精)으로 물질에 비유되고, 중단전은 기(氣)로 생명에 대한 사랑이나 사회적 관계망에 비유되고, 상단전은 신(神)으로 영혼, 영성에 비유되죠. 결국 나는 막혀 있던 중단전이 열리면서 사방으로 마음이 뻗어나가는 사랑의 감각을 되찾았어요. 이렇게 보면 사람은 한 몸에 세 가지 모순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는 물질 또는 육체로서의 인간이 있고, 또 하나는 정서적 또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영적이고 신적인 말하자면 우주적 인간이 있지요. 이 세 차원이 서로 모순되면서도 한 몸안에 통일돼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활동도 당연히 이렇게 굴러가야지요. 물질 면에서 적어도 빈곤에서 벗어나고 빈부 격차를 넘어서는 복지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을 해야지요. 그 다음에 정신적으로 행복해야 하니까 과학을 공유해야 하고 교육도 일반화돼야지요. 또 사람은 우주적·무의식적 존재이기도 하니까 영적으로 평화로워야 하고 명상을 통해 우주적으로 삶이 확대돼야지요. 이렇게 다방면으로 충실하고 거기에 맞춰 활동하는 존재를 저는 「신(新)인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신인간은 단순히 새로운 인간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 즉 재발견을 뜻하는 거죠』 김지하는 역시 달변가였다. 연못에 돌멩이 하나 던지면 물결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가듯, 그는 한 소재를 지구적 우주적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켜나갔다. 기자는 미리 준비했던 인터뷰 질문서를 슬그머니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차라리 나을 성싶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친구들에게 회귀 김시인은 자신의 삶 자체도 물질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이제는 영성으로 발전하는 궤적이었던 것같다고 풀이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 세가지 차원이 통합되지 못하고 따로따로 놀아 발생했다는 것. 『내가 학교 다닐 때 확실히 사회정의 쪽으로 많이 움직였잖아요. 사회 개혁이다 변혁이다 해서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운동을 해왔어요. 그러다 생명운동을 시작하면서 이전 친구들과 다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은 생명운동을 같이하던 친구들도 안 만났어요. 또 주위에 종교가들, 명상가들이 많았는데 그들도 떠나가버렸어요. 친구들이 저에 대해 두 가지 얘기를 합니다. 하나는 섭섭하다는 거고, 또 하나는 저 사람은 여기 있다고 생각해 찾아가보면 벌써 저리로 가서 다른 것을 하고 있어 곤혹스럽다는 거죠. 그런데 저도 참 둔하죠. 지금까지 세 개의 시기에 추구해온 것이 모두 한 몸안에 있다는 것을 이제 와서 느끼니 말이죠.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었는데 그걸 깨닫지 못했으니…. 이젠 젊은 시절의 친구, 중년 시절의 친구, 그리고 함께 늙어가는 친구들을 다 만날 겁니다. 다 친구가 되는 거야. 예전에 내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이 느끼던 당혹감 같은 것은 앞으로 없을 겁니다. 그래서 뭘 느끼는 줄 아세요? 해방감입니다』 ―그러면 이전엔 친구분들과 단절하면서 무언가…. 『아 그렇지. 매우 찜찜했지(웃음). 사람이란 게 우주적 존재입니다. 사람의 기가 사방으로 뻗쳐 있다구. 누가 나를 씹거나 못마땅하게 생각하면 내 마음도 불편한 거예요. 그런데 이제 마음이 열리니까, 실제로 만나든 안 만나든, 그렇게 평안한 것이 없어요. 이런 마음가짐과 의식의 변화가 결국은 단학 수련을 거치고 단군사상을 이해한 데서 나온 겁니다』 --선생님은 결국 단학을 통한 몸의 변화에서 사상적으로도 단군사상과 같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와 생명운동을 펼치실 때도 비슷하게 몸의 변화를 겪지 않으셨습니까? 몸이 선생님께서는 중요한 테마가 되는 것 같은데요. 『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 세상과 관련된 저의 사상적 변화에는 실존적인 동기도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감옥에 6년 있었는데 한 5년쯤 되니까, 그때가 박정희 말기예요, 어느 날 갑자기 벽이 다가들어오고 천장이 자꾸만 내려앉기 시작하더라구요. 감옥에서는 이를 「벽면증」이라고 합니다. 독감방에 오래 있는 사람한테 가끔 그런 증세가 생긴다는데, 이거 큰일났다 싶더라구. 24시간 티브이 모니터가 나를 감시하고 교도관이 10분마다 거동을 기록하는데, 내가 힘들어하는 기색을 조금만 보여도 정보부 사람들이 달려와 「각서 쓰고 손들어라」 할 판이거든. 그래서 손가락도 무던히 깨물고 몸부림치고 기도하고 별짓을 다 했는데 소용없었어요. 그때가 마침 봄인데, 쇠창살 사이로 하얀 민들레 씨가 날아들고 창틀 홈에 피어난 개가죽나무란 풀을 보았어요. 웅크린 채 소리죽여 얼마나 울었던지! 그저 생명이란 말 한마디가 신선하게, 눈부시게 내 마음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 혹독한 조건에서도 꽃이 피는데, 내가 생명의 이치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감옥에 안과 밖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읽어온 모든 종교 경전과 과학 서적이 다 이 생명이란 한마디에 연결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하자 나는 곧바로 참선에 들어갔어요. 꼭 백일간 참선했는데, 묘하게 백일 만에 박정희가 죽어버렸어요. 그런데 교도관한테서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이상해. 내 뱃속에서 대뜸 무슨 말이 쑤―욱 올라오는데 꼭 세마디야. 권력무상, 안녕히 가십시오, 나도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깜짝 놀랐지요. 박정희 말만 들어도 이를 부득부득 갈았는데…』 그리하여 김시인은 출옥한 후 80년대 벽두부터 그 유명한 생명운동을 펼치게 된다. 몇몇 벗들과 함께 생명운동, 생명사상을 논의한 후 실천에 들어갔다. 그 기초 운동으로 유기 농산물 생산과 공급 운동, 도농 직거래, 소비자 공동체 창설 등 「한살림 운동」을 시작했고, 89년에는 당시 환경운동을 갓 시작한 활동가들과 힘을 모아 생명문화운동기구인 「한살림 모임」을 창립했다. 또 90년대 초부터는 생명운동의 시민적 정치형식인 지방자치 운동을 벌여 「생명과 자치」라는 두 가지 개념을 전파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그는 그러면서 생명사상이 전문명사적 전환운동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이는 역사적으로 19세기 말의 동학의 현대적 재창조임을 강조하는 글을 간간이 발표했다. 단학 수련의 세계 ―선생님은 생명운동을 전개하면서도 그 토대로 동학을 기본으로 한 19세기의 사상운동을 중요시했고, 이번에 단군사상과 단학을 말씀하시면서도 역시 수운, 증산, 일부 등 19세기 사상가들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사상가들을 단군사상을 통해 볼 때와 생명운동을 통해 볼 때 서로 차이가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19세기 사상가들을 머리로만 보느냐, 그들이 수행한 것처럼 수련을 통해 이해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사실 나는 감옥에서 나와 동학, 강증산, 김일부를 공부했고 그중 깊이 들어간 것이 동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운동을 하면서 수련은 안 하고 머리로만 동학을 했어요. 한계가 있었지요. 내가 20년 가까이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유기농운동, 환경운동, 페미니즘 운동, 문화운동에 다 관여했지만 결론은 머리로만은 안 된다, 사람의 마음이 달라져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로 시작하려는데 그만 아파버렸죠. 그리고 단학수련을 했죠. 단학은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오행(三神五行) 사상과 「천부경」에 근거를 둔 풍류도의 현대판 심신수련법입니다. 이것을 해보니까 단학이 바로 동학의 현대적 부활이에요. 수운의 「시천주 사상」이니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사상이 단학을 통해 몸으로 마음으로 깨달아지는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동학뿐만 아니라 강증산, 김일부의 사상도 단학에서 다 만나고 있어요. 강증산은 원시반본의 원리를 말하면서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후손들에게 의탁할 바가 없어 떠돌고 있다」고 분명히 밝혔어요. 또 김일부의 정역의 원리와 가장 유사한 게 천부경입니다. 말하자면 최수운, 강증산, 김일부 세 성인들은 고조선시대의 단군사상을 19세기적으로 부활시켰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단학이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거지요』 ―사실상 일반인들은 수행·수련과는 거리가 멉니다. 대체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수련을 통해 체험해 안다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요. 세상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입니까? 『나는 아직 영적인 세계에서는 큰소리를 내지 못하겠어요. 감옥에서 백일 동안 참선하면서 묘한 체험을 했고 그때 이후 단학에 들어와 뇌호흡을 하고 있지만 아직 초보예요. 사람이 무엇을 한다면 육체적 단련, 과학적 공부, 영적 명상, 이 세 가지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뇌가 그렇습니다. 과학적 분석이나 공부는 좌뇌로 하고, 상상과 명상 혹은 직관은 우뇌로 하거든요. 그런데 영적인 명상은 좌뇌와 우뇌를 통합한 활동 같아요. 수련을 하려고 앉아 있으면 우선 마음이 넓어지고 가라앉아요. 의식이 확장되죠. 그러면 그 다음에 내부에 중심 되는 줄기가 서고 안으로 행복해집니다. 이 과정에 「나 자신이 우주구나」 하는 우주적 체험도 하고, 나는 아직 거기까지 못 갔지만, 투시도 하고 초능력도 생기고 한대요. 하여튼 포괄적이며 깊고, 투명성이랄까 관통한다고 할까 하는 것이 지금 과학의 분석적인 접근과는 다릅니다』 미래주의, 목적주의의 한계 ―수련으로 본다면 모든 기성 종교에도 저마다의 수행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참선을 하고, 기독교에서도 기도라는 수행을 통해 하느님을 찾지 않습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단학과 종교 계통의 수련법은 다른가요? 『저 자신이 종교에 관심이 많아 불교와 천주교 등을 기웃거려봤습니다. 참선도 해보고 불경, 역대 조사의 선시와 법어 등을 공부했습니다. 대체적으로 불가에서는, 「달마역근경」이나 소림사 전통이 있긴 하지만, 육체나 생명 같은 것을 상당히 거부하는 편입니다. 종국적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은 중요시 하지 않아요. 그것 자체가 헛것이라고 보지요. 그것도 일리가 있고 배울 점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편으로 몸과 분별지, 그리고 견성(見性)에서 말하는 성품이 다 중요하다고 봐요. 단학은 이 모두를 소중히 합니다. 또 하나, 나는 목적론자가 아닙니다. 옛날엔 마르크시즘과 진보주의에 관심을 가졌고, 기독교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목적론이란 게 인간을 이상하게 부패시키고 역사를 굴절시키는 것 같아요. 미래의 왕국은 저 앞에 있다, 하늘에 있다, 이래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인류는 오늘을 희생시키면서 그저 내일을 위해 하는 식으로 몇천 년간 살아왔어요. 그 과정에 힘있는 자들, 머리 좋은 자들, 운 좋은 자들, 꾀 있는 자들이 출세하고 배불리 살아왔어요. 대다수는 내일을 위해 절하는 동안 다 날아가버렸어. 그러니까 목적론, 화살과 같은 직선적 시간관, 미래주의, 진보주의 등이 문제라고 생각돼요. 그래서 무슨 목적이든 간에 바로 지금 여기서 낮은 차원, 제한된 범위 안에서 조금씩이라도 충족되는 과정을 밟으면서 계속 확산, 진화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질적으로 진화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돼야 합니다. 단학을 하며 깨달음에 이르다 보면 조그만 성취, 육체적 건강,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단전이 개발되면 그렇지요. 중단전은 사회적 사랑인데, 생명과 사람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 그 다음에 상단전의 영적인 깨달음, 우주적 깊이로의 확장이 있는데 이 또한 중요하지요. 이 모두를 버릴 수 없는 거예요』 단군의 실체 ―선생님께서는 단학수련을 통해서 단군 사상의 부활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단군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실체로 보는 사람도 있고, 신화 속의 존재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단 사학계의 경우 대체로 단군에 대해서 신화의 인물로 보는 성향이 강합니다만, 선생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단군을 신화로 보는 이들은 주로 식민사관을 계승한 사람들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경성제국대학을 중심으로 식민사관을 퍼뜨린 이후 이병도씨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관학파들이 단군을 신화라고 주장하지요. 그 이후에도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한 소위 문헌고증학파들, 실증사학자들이 계속 신화라고 하지요. 우리도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아왔고요. 그런가 하면 신채호, 정인보씨 등 연세대에서 시작된 민족사학자들과 단국대 설립자인 장도빈 선생 같은 분들에 의하면 단군은 엄연한 역사지요. 우리나라 사학계가 식민사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북한에서는 단군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했어요. 북의 단군 관련 논문을 읽어보니까 유물주의, 주체사상, 폐쇄적·방어적 군사국가라는 한계가 분명한 가운데도 단군 역사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이 놀라웠어요. 또 상고사 연구에서도 남쪽보다는 훨씬 진취적이고 깊이 들어갔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나는 단군을 역사의 실체로 보지만, 신화로 보는 사람들을 비난하지는 않아요. 일리는 있으니까. 사실 상고사로 올라가보면 역사와 신화가 잘 구별이 안 돼요. 현대과학이 지금 밝히는 과정에 있어요. 다만 상고사를 연구하면서 신화니까 역사와 관계없다든가, 역사니까 신화와 관계없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것은 마치 유물주의자들이 영혼을 물질의 한 종류로 본다든가, 형이상학자들이 유물주의자를 천한 속물에 불과하다고 내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상고사의 주인공들에게는 역사성, 자연성, 그리고 초자연성이 함께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단군이나 환웅이나 환인을 신인(神人), 즉 신이면서도 인간인 존재, 깨달은 사람으로 봅니다. 단군의 역사는 신선들의 역사라는 것이지요.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올라가는 환인·환웅·단군시대는 산에 들어가 수련해서 우주의 이치와 대자연의 흐름, 그리고 인간의 마음과 육체의 원리를 깨달은 사람들의 정치적 지배였다고 보는 거지요. 그들이 당시 물질적 생활 안에 갇혀 있던 수렵시대의 사람들을 깨우쳐준 것이지요. 그런 증거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사·운사·풍백이 등장한다거나 곡식·형벌·생명·선악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360사(事)를 관장했다는 기록은 단군시대에는 인간사와 우주사를 통합한 커다란 우주적 통치체제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김 시인이 말하는 단군 역사와 관련해 우리나라에는 문헌이 절대적으로 빈약하다. 고려시대의 승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단군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 있을 뿐이고, 단군시대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환단고기』나 『단기고사』 『규원사화』 같은 책은 강단사학계에서 위경(僞經)이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김 시인이 언급한 「천부경」 「삼일신고」 같은 기록 역시 이들 책에 소개돼 있다. 단군의 경전, 천부경 ―단군의 역사적 실체 문제와 관련해 또 하나 짚어볼 점은 단군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천부경」과 「삼일신고」 같은 문헌들이 역사적 증거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강단 사학계에서는 이를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 같은데…. 『아직은 그래요. 「천부경」 「삼일신고」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나온 수운의 「동경대전」이나 증산의 어록인 「대순전경」, 김일부의 「정역」마저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석적이고 검증 과학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크리스천적 종교 세례를 받은 사람, 일본식 식민사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이마저도 부정해요. 그러면 이렇게 부정하는 사람들의 사상적 근거, 분석적인 척도도 거꾸로 검증해봐야 합니다. 이들의 태도가 과연 옳은가 하는 점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수운, 증산, 일부에 대해서는 평가가 광범위하게 이뤄져야 해요. 내가 보기에 19세기의 세 사상가들은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사상의 씨앗을 잉태한 사람들이 틀림없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뭐라 했느냐, 상고로 돌아가서 원신반본하자는 것이지요. 세 사람은 수련을 통해 똑같이 신비적 체험을 하고, 19세기식으로 요즘과 같은 과학적 공부를 거친 뒤에 뭔가를 세상에 내놓았거든. 따라서 이런 사람들에게 접근할 때, 예를 들어 서양과학식으로 좌뇌만 움직여서 분석해 들어가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요. 동양학 전체가 그렇습니다. 유학이 조금 예외적이긴 하지만 「주역」 같을 걸 봐요. 역을 동양과학이라고 하는데, 신비적이며 직관적인 파악과 검증적 접근을 배합하지 않으면 알기 힘들게 돼 있어요. 천부경도 마찬가지예요. 1916년에 세상에 공개된 천부경을 위경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위경이라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없습니다. 천부경은 아주 묘하다구. 내가 주역도 공부하고 복회역, 문왕역도 들여다봤는데, 천부경과 제일 흡사한 게 정역입니다. 이게 삼극(三極)의 논리야. 삼극의 논리는 중국 문화에는 없어요. 주역은 태극과 음양, 사상과 같은 짝수의 논리예요. 그래서 천부경이 단학 고유의 논리며, 단군사상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또 하나 역사를 보는 눈에는 신비(神秘)사관이란 것도 있습니다. 특히 고난에 빠진 한민족이 긴 역사적 굴곡을 거친 끝에 다시 살아나려고 천부경이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천부경이 나온 해는 수운, 증산, 일부 이후 1910년에 한일합병이 된 후 일본 제국시대에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 자체가 신비사관에서 볼 때 의미가 있는 거예요. 정리하자면 이 시대에 나온 것을 물질적이면서도 신비적인 신인간의 입장에서 종합해서 봐야 합니다. 그렇게 보지 않으면 이 민족은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가만히 생각해봐요, 그렇게 보지 않으면 이 민족을 도대체 어디다 갖다 붙여!(김 시인은 이 대목에서 비분강개한 투로 말했다)』 한편으로 김시인은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세계적 사상이 한민족에게 있는데도 밖으로만 눈을 돌리는 한국 지식인사회에 대해 매우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국의 이론가나 지식인들은 3~5년 단위로 생산되는 서구의 새로운 담론들을 배워다가 그것이 최고인 양 써 먹고, 한 3년간의 「약발」이 떨어지고 나면 또 새것을 기웃거리는 풍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구 지식인들이 동아시아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성배(聖杯) 민족을 찾아라 ―동북아시아가 미래를 이끌 것이라는 지적은 몇 년 전 선생님이 구상하셨던 동북아 생명운동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나온 걸로 압니다. 왜 지역적으로 동북아시아인지, 서구 지식인들이 동북아시아에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궁금하군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서구지식인들이 18세기와 19세기에는 인도에 천착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인도 사상이 문제입니다. 이런 말을 참 하기가 힘들지만, 거기서 불교가 나오고 여러 가지 요가 철학이 나왔습니다만 그 배경이 되는 힌두교 같은 것에 의해서 장애받는 느낌이 들어요. 게다가 불교가 가장 크게 꽃핀 데가 인도가 아니라 오히려 동북아이고,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선도 문화도 이곳에서 함께 용해돼 있잖아요. 내가 보기에는 동북아가 좀더 종합적인 문명권이에요. 그러니 중국과 한국, 일본 세 나라가 자연히 동양사상사적 의미에서 중요시될 수밖에 없지요. 둘째는 서양문명이 쇠퇴해지면서 토인비나 크리스토퍼 도즈 같은 가톨릭 문명사가까지도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우주관, 세계관, 그리고 문명이 싹틀 것이라고 보았어요. 인지학교를 세운 신비주의자 루돌프 슈타이너도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삶의 흐름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어요. 일본의 다카하시 이하로라는 사람은 슈타이너를 공부하고 왔는데, 그이가 보기에 성배(聖杯)민족이 있다는 거라. 로마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이었는데, 현대에는 새로운 성배민족이 동아시아에서 나온다고 해요. 이 민족은 굉장히 영적인 민족이지만 오랫동안 고난을 받고 그 고난 속에서 잉태된, 새 세계에 대한 꿈을 가진 민족이라는 거죠. 가만 생각해보니까 일본 민족은 아니라는 거야. 일본 민족은 침략을 했잖아요. 그런데 조선사를 읽고 동학을 읽다 보니까 「아, 이 민족이다」 이렇게 됐다는 거야』 민족주의와 쇼비니즘 ―동양 3국 중 특별히 한민족이 주목받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뭐라고 보시는지요? 『중국과 일본을 비교하면서 한국을 한번 봅시다. 먼저 사상사적으로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 맥이 끊겨버렸고, 등소평식 개혁에 의해 돈 벌고 물질적 성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지금 오염 같은 것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해결 못하고 있어 큰일이에요. 일본의 경우 얼마 전에 일본 가서 몇 사람 만나봤습니다만, 창조성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사람들이에요. 일본의 전문가들은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아 사상적으로, 특히 문화적으로 세계에 대해 신선한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닌 것 같아요. 일본 사람들은 조그맣게 뭔가를 열심히 하는 걸로 만족해요. 그러니까 문학적 의미에서 보면 한(恨)이 없어요. 한을 단순히 슬픔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한은 크게 날고 싶은, 나쁘게 보면 야망이고 갈망 같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인에게는 있어요. 또 한국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내 인생이 이래서 되겠느냐,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느냐, 이름없는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해요. 거기에는 무엇인가 한에 의한 창의력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러면서 김시인은 99년부터 「밀레니엄 라운드」가 시작되면 모든 게 개방되는 세상이 되는데, 한국이 살아남는 길은 창의력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21세기는 창조화시대이고, 영성, 창조력, 예술적 창의력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인데, 그것이 지나쳐서 국수주의나 쇼비니즘이라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닌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벌써 날보고 쇼비니즘이 아니냐고 비판했어요(웃음). 그런데 쇼비니즘이 되고, 제국주의 철학이 되는 것은 사상적 원액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일본의 경우가 그렇죠. 니시다 철학 같은 것이 제국주의의 침략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것은 철학자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들이 이용해먹은 거죠. 그런데 제가 얘기하는 단군사상과 단학은 좀 차원이 다릅니다. 도대체 세계민족 역사상 건국 목표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내세운 민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홍익인간이란 두루 유익한 인간을 뜻합니다. 인간에게 두루 유익할 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에 두루 유익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이화세계는, 우주의 이치로―천부경의 이치겠지요―세계를 변화시키고 감화시키겠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민족은 애당초 민족적이면서 동시에 인류적이고 우주적인 사상을 타고났어요. 그러니까 단군을 복원하고 사상의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현대 내지 초현대적 사상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전 인류에 대한 구원뿐만 아니라 우주적 사상으로, 또 의식계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깊이까지 도달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천부경, 풍류도 등 단군사상을 밑바탕으로 삼아 수운, 증산, 일부 세 사람을 재조명해야 하고, 이를 구심점으로 유·불·선을 새롭게 해석하고, 동시에 기독교라든가 신과학이라든가 생태주의 철학 등을 선택적으로 결합하면서 새로운 것을 내놔야죠』 ―그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그게 가능할 것인가, 이것 때문에 고민 많이 했어요. 단학도 처음엔 선뜻 들어서지 못했어요. 여러 단계를 거쳐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섰기 때문에 단군 발원문도 썼지요. 혼자 할 수는 없겠지요. 내가 시작은 하겠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해야겠지요. 어떤 친구들은 단군 얘기 자꾸 하면 불리하다고 말해요. 나는 그렇지는 않다,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중에 같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지구는 개벽되고 있다 ―선생님은 단군사상과는 별개로 지난해부터 > Transfer interrupted! 껭존� 우주의 음악, 우주의 소리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진짜로 우주의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웃음) 『율려라는 말은 「천자문」에도 나옵니다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우주의 조화로운 질서를 가리킵니다. 좁게 얘기하면 우주 음악이란 뜻이구요. 우주의 음악, 즉 율려는 양의 소리인 육률(六律)과 음의 소리인 육려(六呂)로 12음을 말합니다. 나는 율려를 명상을 통해서나 혼자 있을 때 들어본 적은 없어요. 그러나 내가 시각적 현상에 민감해서 그런지 수련하다보면 온몸에 별이 돋는다든가, 성운(星雲)이 등장하고, 그러니까 내 몸이 바로 우주체가 되는 것 같은 체험을 했어요. 그러면서 이 우주체가 시계가 돌 듯이 빙 돌아갑니다. 나는 그것을 우주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을 인간세계의 음악으로 표현하자면 고도의 정신력·관통력 같은 것이 있어야겠지요. 옛날 같으면 성인이나 현자들이 그렇게 했지요.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 가고, 다만 우주가 변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어요. 예를 들어 지구의 극이 이동한다든가…』 기자는 김지하 시인의 입에서 지구의 극이 변하고 있다는, 매우 예언적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구 극이 변한다는 것은 지구 자체가 물리적인 의미로 대변동의 과정을 밟고 있다는 뜻으로, 서양의 대표적인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와 한국의 남사고 선생 등 동·서양의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이런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이 부분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선생님께서 물리적인 의미에서 지구가 변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19세기의 세 사상가들도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특히 강증산 선생은 후천개벽이 사상과 정신의 혁명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 그리고 우주까지도 변화한다고 했고, 김일부 선생도 지구가 물리적으로 변해 새로운 역(易)이 생긴다고 했는데,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십니까? 『그래요. 김일부의 정역을 보면 지금 기울어진 지구의 축대가 똑바로 서고 1년이 360일이 된다든가, 극한극서가 없어진다든가 하는 변동을 동양과학으로 밝혀놓았죠. 그리고 이 모두가 일월(日月)의 작용에 의한 것인데, 이것이 변하면 사람도 변할 수밖에 없지요. 재미있는 것은 정역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역수성통원리(曆數聖統原理)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이 변하니까 우주가 변한다는 거예요. 사람의 의지와 욕구에 따라 마음이 변하니까 우주도 변동한다는 엄청난 얘기지요. 나는 그걸 믿는 쪽입니다만, 그걸 다른 사람도 믿으라고 할 수는 없고…, 하여튼 우주나 인간의 마음 및 문화에 변화가 같이 오는 거죠. 나는 지금이 그때라고 봅니다. 실제로 지금 절기(節氣)가 제대로 맞지 않아요. 우리가 지난 봄에 여름을 경험했듯이 옛날 절기가 아니에요. 북반구에서만 일어나던 기상현상이 지금 남반부에서 일어나고 있고, 더위와 폭설이 뒤집혀서 나타나요. 이것은 지구의 극이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오존층 파괴 등 지구 오염 때문만이 아니고 지구를 포함한 우주 자체가 변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생태학 하는 사람들도 인정해요. 오존층이 뚫리고 해수면이 올라가고 하는 변화는 지구 오염만으로는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지구 오염 플러스 우주변동이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서양의 우주과학은 이런 것을 설명하지 못해요. 사실 엘니뇨 현상도 확실한 원인을 못 짚고 있잖아요? 그래서 서양 과학자들은 지금 당황하고 있어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밑받침이 없어요. 기껏해야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 기독교의 하느님 심판 정도입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것을 멋있게 설명합니다. 후천개벽이라는 것이지요. 후천개벽논리는 종말론이 아니에요. 우리의 19세기 사상가들은 새 시대(후천)가 열리려고 우주와 지구와 인간이 이러저러하게 변하고 있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습니다. 올해가 1999년이기 때문에 서양의 지구 종말론과 우리의 후천개벽론을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주의 중심음, 율려(律呂) ―다시 율려 부분으로 돌아가죠. 지금 율려운동이 왜 중요한지요? 『율려는 동양의 음악개념이죠. 육률과 육려를 합친 12율이 5음과 어우러져 여러가지 음악적 구조가 나옵니다. 이러한 음악들은 우주를 모방한 것입니다. 서양에서도 피타고라스 이후에 우주음악이 있었다고 하고, 중세 때는 음악을 우주론적으로 보잖아요.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에 음악이 인간 음악으로 세속화해버리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지금 속악(俗樂)이 유행하고 있습니만 정악(正樂)은 우주적이죠. 수재천이라든가 정읍, 영산회상 등 제례음악을 들어보면 굉장히 우주적이에요. 그런데 제가 율려를 통해 찾으려는 것은 전환시대의 우주 중심음입니다. 12율 가운데 「황종」이 있는데, 이것은 우주의 중심음을 말합니다. 황종, 즉 중심음은 시대마다 다르다고 해요. 그러면 이 중심음이 왜 중요한가를 살펴봅시다. 고대 중국은 중화 중심적이고 제왕 중심적이고 군자 중심적인 나라였어요. 그들은 우주의 중심음을 기본으로 우주질서를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왕조마다 중심음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라 다른 음악이 나오고, 음악에 따라서 시가 붙을 것 아닙니까. 또 시에 따라서 춤을 추면 이 춤이 예의 기초가 됐어요. 그러면 예가 도덕을 낳고, 도덕이 철학을 낳고, 그 철학에 기초해 정치철학이 전개되고, 정치는 형벌을 결정하고 기존 제도를 혁파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 음악이었어요. 음악과 춤, 시. 유학이 「시경」을 중요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러면 선생님께서 율려를 말씀하시는 것은 현대에 맞는 우주의 중심음을 찾아, 음악과 시와 춤을 통해서 세상을 바로잡아보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동양의 음악론인 「악기」를 보면 나라가 망하려면 음악이나 시나 춤이 음탕해지고 폭력적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를 세우려 한다면 우주를 잘 관찰하고 인간 마음과의 관계를 잘 살펴서 중심음을 찾아 새로운 음악을 짜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연주하고, 음악에 시를 붙이고 춤을 붙이면 새로운 예가 일어나죠. 그래서 성인이 예악(禮樂)을 일으킨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되면 정치도 변혁되죠. 지금 세상이 혼란합니다. 우리나라는 정치·경제·문화·사상적으로 매우 혼탁해 갈 길을 못 찾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윤리가 완전히 망가져버렸습니다. 새로운 문화운동이 시작돼야 사람의 마음이 변합니다. 내가 환경운동을 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사람의 마음이 변해야 환경운동도 하겠더라고. 안 그러면 만날 감시와 고발 같은 서양의 그린피스를 흉내내다 마는 거예요. 시민운동 단체도 그렇습니다. 지금 전국에 1만개의 시민단체가 있는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게 대부분이야. 겨우 존재를 드러내는 게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경실련, 이 몇 개뿐입니다. 그나마 이들도 하는 게 법적 소송을 걸어 조그만 권리를 찾는다든가, 소액주주 운동을 벌인다든가, 동강댐을 고발 감시한다든가 하는 정도입니다. 물론 이런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만, 단체 내부에 정신적인 자세의 변동이라든가 철학 또는 인생관의 변화가 보이지 않아요. 그러면 새로운 개혁적 사회관도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개혁이 안 되는 거라. 결국 진짜 개혁은 사람의 마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의 재발견이 필요하죠. 그리고 마음이 변하고 인간이 변한다는 것은 철학과 사상과 문화가 변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우주 중심음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그게 율려운동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문화운동인 율려와 단학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건가요? 율려를 찾기 위해서는 단학을 공부해야 하는 건가요? 『단학에서도 지금 율려운동을 해요. 그러나 내가 지금 율려학회를 통해서 율려운동을 하는 것은 단학과는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르죠. 단학 같으면 인간의 재발견을 위해 호흡 수련을 하죠. 오기조화신공, 음성내공 같은 수련을 하면 안으로 영적인 기운이 움직입니다. 예를 들어 주문 수련으로 천부경을 「일―」 하면서 시조하듯이 읊으면 몸 안팎을 울리게 되죠. 그때 정맥과 동맥에 전부 기운이 도는데 그 기운에 따라서 단무(丹舞)를 춰요. 즉 음악에서 춤이 나오는데 이 춤은 기 상태에서 나오는 매우 우주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게 율려입니다. 그러니까 단학에서는 호흡·소리·춤을 전부 율려라고 해요. 그러나 누구나 다 명상 수련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반인들은 음악과 시, 춤 등 문화운동을 통해서 율려를 찾아가는 거지요. 앉아서 정악이나 명상 음악을 듣는다거나, 꽹과리와 징을 치는 등 사물놀이에도 율려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점차 사회적으로 모럴도 세우고, 예절도 새롭게 생각하고, 그 다음에 정치, 사회. 경제, 외국과의 관계, 문명, 이걸 전부 새롭게 전개하자는 거죠. 바로 이런 활동이 대중과 호흡을 함께하는 율려운동이 될 수 있겠지요. 저는 율려학회를 고급 예술운동이 아니라 대중으로 확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 기자는 이 즈음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우리 사회가 IMF체제를 맞아 극도의 정신적 혼란과 패배주의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현 정부는 IMF 체제 이후 지속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발전론」을 정책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일부 경제학자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미국식 시장자유주의 원칙을 충실히 따라가는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는 논리가 대세를 이룬 듯한 느낌입니다. 이에 반발해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활발한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단정적으로 말해서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핫머니나 헤지펀드, 기관자본들로 전세계를 지배하자는, 사회주의 이전의 원형적 자본주의, 즉 천민자본주의 논리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회주의의 견제력이 없어지니까 헤지펀드들이 판치는 카지노 자본주의라. 따라서 시장의 역동성을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복지에 대한 국가적 개입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지금 유럽에서 제기되고 있는 제3의 길을 우리 나름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3의 길은 앤서니 기든스라든가 토니 블레어가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니고 하버마스와 후설의 공공성 이론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입니다. 즉 상호소통이론에 의한 사회적 공공성이 그것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제3의 길은 한국에서 이미 오래 전에 제시됐습니다. 강증산이 제시한 천지공사(天地工事)와 천도교 청우당의 소위 제3방향이 그것입니다. 특히 증산은 신과 인간이 합발해(神人合發) 우주의 공심(公心)으로 인간계와 신명계, 나아가 우주계를 새롭게 짜는 천지공사를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신과 인간만의 상호 소통이 아니라 무기물과 동식물까지도 상호 소통해야 한다는 우주적 공공심이었습니다. 이 원리는 지금의 환경운동, 시민운동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환경운동과 시민운동은 독일의 경우처럼 서로 따로 놀고 있어요. 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사상이 부재하기 때문인데, 하늘과 땅과 인간을 새로이 하는 증산의 천지공심은 훌륭한 대안이 됩니다. 지금 우리 정부가 할 일이 있어요. 무작정 신자유주의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앞에서 제가 말했던 것처럼, 절대 빈곤을 없애고 빈부격차를 넘어서는 복지사회를 건설하고 동시에 정신의 행복을 위해 과학과 교육의 평등을 꾀하고 동시에 인간의 영적인 평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다른 나라와 인류적인 연대를 하면서 지구를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조화(造化)정치」입니다. 「동양의 전통적인 조화정치」 이것을 정부가 해야죠』 김대중과 마하티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지만, 정치와 경제를 책임진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강력한 「교시」 때문에 아래 사람들이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고…. 『모두 얼어가지고 그러지. 그러면 안 되죠. 이제까지 민주주의 왜 했습니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표현과 비판의 자유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민주화입니다. 그 동안 민주화운동을 위해서 수천명, 수만명이 감옥에 들어가고 고통받았어요. 이 사람들 중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전부 없어져버렸다고. 대신에 정부는 미국에서 공부하던 신자유주의 참모들을 데려다가 일을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말이 개혁이지 개혁 주체가 어디에 있어요. 각 방면에 골고루 다 박혀 있어야 주체가 서지. 그러니까 신자유주의와 민주화 운동 간에 거리가 생기고 뒤죽박죽이 되는 거예요』 ―얼마 전에 APEC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 간에 아시아 경제 위기에 대한 해법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그 얘기 잘 꺼냈습니다. 이번에 일본갔을 때 산케이신문과 인터뷰한 얘기를 해볼게요. 내가 세 가지 얘기를 했습니다. 하나는 아시아가 IMF에 투항하듯이 항복했는데 그건 완전히 대미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고,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인 헤지펀드들한테 무릎을 꿇은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어요. 둘째, 아시아가 경제위기에 휘둘리고 나서 아시아적 가치의 붕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역시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나는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다만 아시아적 가치라는 게 집단주의, 가족에서의 가장 중심, 남성 중심, 그리고 회사에서는 사장 중심, 근면 질서 등 일종의 유교 이데올로기를 뜻하는 거라면 반대합니다. 아시아적 가치에는 유교를 포함해 불교와 선교의 것까지 포괄하는 풍류도도 있고, 19세기의 후천개벽사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수입도 아니고 자립도 아닌 창조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수입은 김대중 대통령 같은 태도야. 자립은 뭐냐, 마하티르 같은 태도거나 일본이 주장하는 AMF체제 같은 태도, 또는 한국의 김종필 총리 같은 태도야.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자기를 구심점에 놓고 AMF든 IMF든 가려먹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게 창조입니다. 이를 테면 마하티르식으로 제국주의, 식민주의니까 민족적으로 자립하자는 건 옛날 얘기입니다. 마하티르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폐쇄적으로 나가서는 얼마 못 갑니다. 반면에 김대통령 같은 태도는 복지정책을 제대로 못 펴고 정치적 자위를 지키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시아적 가치의 근본을 따져서, 시장경제를 하더라도 천박한 신자유주의 시장이 아닌 성스러운 시장이 돼도록 해야 하고 따뜻한 인간의 얼굴을 한 도덕경제를 지향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금방은 안 되겠지만 각 방면에서 그러한 문화를 조성해 성스러운 시장이 되도록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요?』 중심이 없어 방황하는 신세대 ―요즘 신세대에 대해서 여러 평가가 있습니다. 한 사회의 미래는 젊은이들한테 달려 있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우리 젊은 세대를 어떻게 보십니까. 『옛날에 학생운동할 때를 기억하면 민주화, 경제적인 분배, 정의 등의 문제만 갖고 밤새 얘기하고 그 이튿날 또 얘기하고 했어요. 그러니까 목적을 하나만 보고 줄기차게 뛰었다고. 그런데 요즘 젊은층들은 어떻게 된 게 저쪽 얘기하다가 이리 튀고, 이 얘기하다가 저리 튀는 식이야.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까 탈중심 다핵시대인 거라. 그러면서도 멋있다고는 안 느껴져. 탈중심적이고 다핵적이고 분산적인 건 좋은데 중심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젊은이들한테는 그 모든 것을 한 몸 안에서 통합하는 장치가 필요해요. 안 그러면 분열이 됩니다. 젊은애들 스스로도 중심이 없는 것을 굉장히 허전해해요』 ―80년대 후반부터 우리 사회에 기(氣)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단학수련 혹은 기 수련을 하는 사람들 중에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이 많더군요. 사회주의식 이데올로기에 천착해 있던 이들이 어떠한 의식의 변화를 거쳐서 매우 형이상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지…. 『허허, 그래요? 누군가가 박노해 시인이 출옥해 나왔는데 김지하의 길을 따라간다고 해요. 내가 이렇게 말했지, 그건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를 따라가는 거라고(웃음).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회주의자인데 「죽음의 집의 기록」을 보면 스무살 때 고통을 통해 신비주의에 눈을 떠요. 러시아에 대한 원초적 사랑 같은 것, 그리고 러시아정교에 대한 관심이야. 나는 박노해씨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도 단학에 관심이 있다고 하대요. 하여튼 뭔가 새롭게 출발해야죠. 사실 아주 과격한 유물론자는 한꺼풀 벗겨 놓으면 지독한 종교적 열정이 내면에 있어요. 사람이란 게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반드시 반대쪽으로 반동(反動)하게 돼 있어. 내면이 비면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이치지요. 바깥으로 너무 뻗어나간 사람은 기다 영이다 해서 안으로 다시 들어와요. 현대의 정세도 그래요. 세계화하면서 지방화·개성화가 동시에 진행돼요. 전세계 고속정보망이 깔리고 세계화돼 바깥으로 확산되면 될수록 안으로 굴러들어가요. 즉 창조적 콘덴츠를 요구해요. 그러니까 바깥으로 나가면 나간 만큼 안으로 들어오는 이치가 생명입니다』 김지하 시인과의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6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는 열정적이었으며, 특히 단군사상과 신인간주의에 대해서 사자후를 토해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길이라는 단호함을 보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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