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9년 1월 1일 금요일 오후 08시 45분 42초 제 목(Title): 한21/인터뷰 역사학자,강만길 “젊은이여 내 책을 덮어라” 역사학자 강만길 (사진/북한과 중국이 맞닿은 도문에 선 역사학자.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빚어내는 조화가 21세기 세계를 움직이는 큰힘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를 생각하면 저절로 ‘분단시대’란 말이 떠오른다. 20년 전 그가 낸 책 이름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은 그의 이마에 ‘분단시대의 역사학자’란 머리띠를 둘러주었다. 리영희 선생이 쓴 <전환시대의 논리>와 함께 <분단시대…>는 80년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이 ‘그 시대’를 바르게 살아내기 위해 읽어야 했던 필독서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민족사적 과제가 분단극복이라는 생각에서 썼지만 너무 반향이 커서 부담감을 느꼈다”는 그는 그 간판을 달고서 살아온 평생이 ‘분단 극복 사학’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구라파와 중국에 주목 “해방 후를 분단시대라 이름붙였으면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이론을 세워야 했을 텐데 그게 나 혼자 힘으로 어렵단 말예요. 어쨌든 금강호가 떠가고, 예전 같으면 당장 냉각됐을 법한 일이 일어나도 교류가 지속되니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햇볕정책이니, 포용정책이니 하는 말은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한쪽이 좀 밑지는 것 같아. 이름 정리를 해야지요. 남북이 다같이 흡수통일 안 하겠다 했으니 그럼 뭐냐. 난 그걸 ‘대등통일’이라고 불러요. 한반도 문제가 늘 ‘주변’이 문제였는데 이제 남북이 동등한 주체로 나서 주변 조건을 우리쪽에 유리하게끔 끌고 가야지. 우리 역량이 이제 웬만하니까 21세기엔 우리가 주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강만길(66) 교수는 강단을 떠나는 중이다. 32년을 봉직했던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를 2월에 정년퇴임한다. 제자들이 학교 근처 돈암동 주택가에 모여 꾸려가던 공부방에 ‘여사서실’(黎史書室)이란 문패를 달고 들어가 같이 있기로 했다. 여사는 그의 호다. 역사의 ‘여명’과 역사의 ‘평민성’을 아우른 뜻을 담았다. “남들은 정년쇼크다 뭐다 해서 안 좋다는데 난 오히려 홀가분해요. 80년에 해직교수가 됐을 때 이미 한번 연습을 했거든. 책읽고 여행가고 놀고, 해방감을 맘껏 즐길 참이오.” 그는 후련해보였다. 몇년 새 중국나들이가 잦았다. 왜 중국에 자주 가느냐 물었더니 “볼 게 많아서”란 짧은 답이 돌아왔다. 역사학자로서, 동양학하는 사람으로서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 중국이다. ‘유니텔 가상대학’에서 강의한 걸 묶은 <20세기 한국사 강의>, 60년대 러시아 한인들의 시베리아 강제이주사 길을 따라가본 <회상의 열차를 타고>가 곧 책으로 나올 예정이지만 그외에 책 쓸 계획은 아직 없다. 우선 열심히 놀겠다고 말할 때 이 근엄한 역사학자 얼굴에는 잠시 개구쟁이 소년의 얼굴이 겹쳤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그가 ‘좌와 우를 넘어’ 도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나 궁금하다고 했다. “역사를 공부한 입장에선 그래도 전 지구에서 구라파가 제일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럽공동체가 뜨는 것도 대단하고. 구라파 주요 나라들이 다 지금 사회민주주의가 세력을 쥐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또하나 내가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곳이 중국입니다.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접목한 이 나라 중국이 21세기에 어떻게 나갈 것인가, 그런 문제들을 차분히 읽어봐야겠어요.” 그는 진지하고 깐깐한 스승으로 유명했다. 새벽이면 하루 2시간씩 수유리 집에서 대동문까지 오르내리는 등산으로 다져진 건강이 휴강없는 열강의 밑바탕이었다. “역사 강의는 진검승부랄까. 한마디로 허튼 소리 하면 안 되는 엄숙한 시간입니다. 역사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가치를 추구하는 학문이에요. 대상이 인간 아닙니까. 사람들 생활을 더 낫게 만드는 데 기여해야지. 그런 목적의식이 없다면 야담사화와 뭐 다를 게 있겠소.” 그는 바로 역사학자의 그 목적의식을 가지고 한세기가 저물고 새 세기가 밝는 걸 기다리고 있다. “21세기를 얼마나 지켜볼 수 있을까”했지만 새로운 밀레니엄 얘기가 나오자 그는 눈을 반짝였다. “한해가 바뀌는 1월1일 하루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그 새 날을 중시하며 뭔가 새 각오를 다집니까. 그게 중요해요. 역사를 발전시키려는 새 다짐, 그게 시간을 나누는 제일 큰 마디라 할 세기를 맞으니 얼마나 큼직하겠습니까. 20세기는 인류사 전체로 봐서 너무 불행한 세기였잖아요. 21세기는 상당히 다른 세기가 될 거라고 나는 봅니다. 민족국가의 벽을 넘어서 지역공동체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평화공동체가 꿈틀대는 걸 느낍니다. 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믿는다는 의미에서 낙관적 역사학잡니다. 그런 내 눈에 21세기는 인류애와 욕망이 얽혀 다같이 잘 살려는 세기, 훨씬 전진하는 세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입니다.” 구세대가 깔고앉았던 멍석을 치우자 그래서 그는 신세대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금세기 냉전의 마지막 지역 한반도가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와 지역공동체 결성을 쥐고 있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는 7천만 한민족 손에 세계사적 문제가 걸려 있다며 크게 웃었다. “한국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민족문제 해결에 주역이 되면 통일 가능성은 커요. 기성세대는 아무리 노력해도 피흘리고 싸웠던 과거 때문에 북한이 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신세대는 북한이 동족으로 보인다 말이야. 이게 얼마나 큰 차입니까”하고 그는 되물었다. “어른이 뭡니까. 뒷세대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젊은이들이 내 책을 읽고 나랑 같은 생각을 하면 이 나라는 망하지요. 우리 세대가 깔고 앉아 있던 분단시대를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야지요.” 그는 “나를 밟고 넘어서라”고 했다. “그래야 역사는 분단을 넘어 다시 하나가 되면서 전진할 것”이라고 노학자는 붉어진 얼굴을 들었다.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c.k.@mail.hani.co.kr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