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28일 수요일 오후 12시 42분 42초 제 목(Title): 윈/허준의 동의보감 동의보감의 생명력 세계 의료인의 애독서·임상교재 김남일 경희대 한의과대 교수 ------------------------------------------------------------------------------- - 14년의 집념어린 노력으로 편찬한 “동의보감”. 동아시아의 모든 의학적 지식을 수집, 정리하고 身土不二의 의학정신을 불어넣은 이 의서는 의학사의 독립선언이다. 또 체계적인 항목 선정과 독창적인 논리 전개는 압권이다. 하나의 약물로 치료하는 단방요법까지 기록해 의학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이 책은 오늘날까지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시 강서구 탑산 초등학교에 마련된 허준 기념실에서 학생들이 허준 선생의 높은 뜻을 배우고 있다. 한국인의 손으로 쓴 서적 가운데 외국인에 의해 가장 많이 간행됐고 가장 많이 읽힌 서적은 아마도 “동의보감”(東醫寶鑑)일 것이다. “동의보감”은 1613년 한국에서 처음 간행됐다. 이후 이 책의 우수성을 인식한 일본·중국 등지에서 다투어 간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1662년 3월 사신을 보내 “동의보감”을 가져간 후 조야(朝野) 의학자들 사이에 널리 읽힘에 따라 막부(幕府)에서 의관(醫官)인 미나모토노 모토 도오루(源元通)로 하여금 교정하도록 하여 일본판 “동의보감”(東醫寶鑑)을 간행했다. 이것이 바로 1724년 교토(京都)에서 1차 간행된 교토판 “동의보감”이다. 이후 76년이 지난 1799년 오오사카(大阪)에서 중간본(重刊本)이 나온다. 미나모토노 모토 도오루는 책의 발문(跋文)에서 “동의보감”을 ‘백성을 보호해주는 신선의 경전이요, 의사들의 비법을 담은 문서”라고 극찬했다. 중국에도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17세기에는 이미 “동의보감”이 전래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전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738년 “영조실록”에 중국에서 사신을 보내 “동의보감”과 청심환(淸心丸) 50알을 구했다는 내용이다. 기록에 의하면 “동의보감”이 중국에서 처음 간행된 것은 1763년이다. 첫 간행 이후 “동의보감”은 널리 중국 의사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그에 따라 16차례나 간행됐다. 1763년에 간행된 초간본에 붙여진 서문에서 중국사람 링위(凌魚)는 “천하의 보배”라고 극찬했다. 서구의 경우에는 독일에서 번역출판됐고 영역본도 간행돼 있다. 이렇듯 외국에서 일찍부터 이 책의 간행과 번역에 힘쓴 것은 이 책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널리 활용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동의보감”의 출간은 여러 가지 역사적 의미를 띤다. 먼저 당시 동북아시아의 의학상황을 고려할 때 이같은 의서의 출현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허준이 생존했던 16세기 중국 의학계는 여러 학파들이 난립해 저마다 자기 학파의 주장만 고수하는 상황이었다. 비록 중국의 몇몇 의학자들이 이들 학파의 주장을 집대성해 하나의 학문체계로 구성해내고자 시도했지만 거의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동의보감”이 성공적으로 여러 학파의 주장을 종합정리해낸 것이다.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해내지 못한 작업을 한국인의 손으로 이뤄낸 것이다. 조선 의학의 독립선언 다음으로 이 서적에서 사용한 ‘동의’(東醫)라는 용어와 관련된 의의다. 허준은 중국에 북쪽의 기후와 풍토에 맞춰 의학을 정립한 북의(北醫)와 남쪽에 맞춘 남의(南醫)가 있듯 우리나라 의학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구성되어 이어졌기 때문에 동의(東醫)라 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의학사의 독립선언이라 할 만한 대사건이다. 동의보감이 출간된 후 우리나라 의학은 이 책에 의해 주도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0여 차례 간행, 보급된 것도 그러하고 수많은 아류들의 출간도 그렇다. 현재 한국의 한의학계에도 이 책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이 책을 필독서로 인식하고 환자 치료에 참고로 한다. 한의과대학 임상교재로도 이 책을 다수 인용한다. 현재까지도 한의학은 이 책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우수성이 돋보인다. 먼저 그 체계적 항목 선정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내경편(內景篇)·외형편(外形篇)·잡병편(雜病篇)·탕액편(湯液篇)·침구편(鍼灸篇)� � 다섯 편으로 구성돼 있다. 4권으로 구성된 내경편은 인체 내부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생리학(生理學)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먼저 1권에서는 신형(身形)·정(精)·기(氣)·신(神)이라는 제목을 볼 수 있다. 도가에서 인체생리의 기본단위로 꼽는 정·기·신 세가지의 작용을 설명하고 여기에 치료법도 첨가했다. 이는 동의보감이 다른 의서들과 크게 구별되는 점 가운데 하나다. 즉, 도교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의학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2권에서는 피·꿈· 소리·언어· 진액·담음(血·夢·聲音·言語·津液·痰飮) 등 인체 내부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들을 제목으로 설정했다. 인체 내부의 혈액(血)은 밖으로 출혈되는 여러 양상에 따라, 꿈(夢)은 그 내용의 해독을 통해, 소리·언어 등은 그 고저장단 양태 등으로, 진액(인체 내부의 체액)·담음(인체 내부의 비생리적 액체) 등은 그 분비되는 모양과 장소에 따라 인체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3권에서는 인체 내부의 장기인 오장육부(五臟六腑)를 논했다. 오장은 간장(肝臟)· 심장(心臟)· 비장(脾臟)·폐장(肺臟)· 신장(腎臟)의 순으로, 육부는 담부(膽腑)· 위부(胃腑)· 소장(小腸腑)·대장(大腸腑)· 방광(膀胱腑)·삼초(三焦腑)의 순으로 그 위치와 용량·기능· 질병· 치료법 등을 기록했다. 3권의 말미에 자궁(胞)·기생충(蟲)을 첨가한 것도 특이하다. 자궁을 오장육부의 뒤에 두어 비록 자궁이 오장육부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 중요성은 오장육부에 버금간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4권에서는 소변(小便)과 대변(大便)이라는 제목으로 배설물을 다루었다. 대·소변은 인체 내부의 것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처리된 종말처리물이므로 내경편의 끝에 위치지은 것으로 보인다. 내경편에 이어 4권으로 구성된 외형편(外形篇)은 인체의 외부 기관들을 다룬다. 1권과 2권에 걸쳐 머리·얼굴·눈·귀·코·입과 혀·치아·목구멍·목·등허리(頭· 面·眼·耳·鼻·口舌·牙齒·咽喉·頸項·背) 등 머리끝부터 등허리까지 다뤘다. 다음 3권과 4권에 걸쳐 가슴·젖통·배·배꼽·허리·옆구리(胸·乳·腹·臍·腰·脇)의 순서로 내려온 후 이어 살가죽·근육·맥·힘줄·뼈(皮·肉·脈·筋·骨) 등 외부로부터 내부로 이어지는 인체조직을 살폈고, 다음으로 팔·다리·털·외부생식기·항문(手·足·毛髮·前陰·後陰)의 순으로 증상과 치료를 다뤘다. 이렇게 본다면 외형편은 해부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질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 있어야 진단 외형편에 이어 질병을 다룬 11권으로 구성된 잡병편(雜病篇)이 있다. 동의보감은 질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질병을 진단해낼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잡병편의 처음 1권을 진단과 치료의 대원칙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데 할애했다. 이것은 현재에도 한의사라면 반드시 정통해야 할 내용들이다. 2, 3, 4권에 걸쳐 외부의 사기(邪氣)인 풍· 한·서·습· 조· 화(風·寒·暑·濕· 燥·火)와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질병인 내상(內傷·음식과 술로 인한 손상), 허로(虛勞·지나친 노동에 의한 손상)를 논하여 질병의 원인에 초점을 맞췄다. 이어서 5, 6, 7, 8권에 걸쳐 당시 흔했던 질병들을 나열,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 기록된 질병으로는 곽란( 亂)· 구토(嘔吐)·기침(咳嗽)· 종양(積聚)·부기(浮腫)·창만(脹滿)· 당뇨병(消渴)· 황달(黃疸)·학질·전염병(溫疫)· 사숭(신들린 듯한 병)· 멍울(癰疽)·온갖 부스럼(諸瘡) 등이다. 9권에는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의학지식을 중심으로 기록했다. 제상(諸傷·다쳤을 때), 해독(解毒·독을 푸는 법), 구급(救急·응급요법), 괴질(怪疾·이상한 병들), 잡방(雜方·여러 가지 요긴한 처방들) 등이 그것이다. 10권과 11권은 각각 부인과 소아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깊이 있게 다뤘다. 이렇게 본다면 잡병편은 병리학에 대한 내용을 담은 셈이다. 잡병편에 이어 3권으로 구성된 탕액편(湯液篇)과 1권으로 된 침구편(鍼灸篇)이 이어진다. 이 두 편은 치료와 관련된 약물과 치료법을 각각 다루었다. 다섯 편의 나열된 순서를 보면 이 책은 먼저 내경편에서 인체의 내부를 다룬 후 외형편에서 외부에 대해 논함으로써 내외를 논하고, 내외의 부조화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들을 잡병편에서 다뤘다. 그리고 이 질병을 치료하는 수단으로써 탕액과 침구를 탕액편과 침구편에서 다뤘다. 이렇게 본다면 동의보감은 목차를 통해 의사는 반드시 인체 내부와 외부를 파악해야 하고 질병이 발생한 다음에는 그 원인과 증상을 잘 파악하고 나서 치료에 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의보감의 우수한 점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체계적인 항목 선정과 논리전개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어떤 의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성과 우수성을 과시하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항목마다 뒷부분에 단방요법(單方療法·여러 약물로 구성된 처방이 아닌 하나의 약물로만 되어 있는 치료방법)을 기록하여 가난한 백성들도 싸고 간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도 이 책의 활용도를 넓게 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하나의 약물만으로도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도를 제시한 것은 주변 산야에 널려 있는 야생 한약재의 이용을 촉진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므로 의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탕액편에서 약물의 한자(漢字) 이름 밑에 한글표기(이를 鄕藥名이라 함)를 병기하여 한국산 약재의 이용을 촉진시킨 점도 높이 살 만한 점이다. 이전까지 당약(唐藥)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산 약재가 이용되기도 했지만, 그 수량이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사용이 어려웠다. 약물에 대한 한글표기는 한약에 대한 일반 백성들의 친밀도를 높여줄 뿐 아니라 그 재배 및 수급도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므로 약재의 단가를 낮춰 저렴한 한약재의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데 공헌한 셈이다. 한약 대중화에 공헌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동의보감”이 나오게 된 원천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허준의 개인적 능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허준은 궁중의사로 활동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선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을 만큼 출중한 실력자였다. 그는 뛰어난 의술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상을 받은 경력도 있었다. “동의보감”의 편찬을 시작한지 1년반만에 정유재란(丁酉再亂)이 터져 허준을 제외한 편찬의사들이 대부분 뿔뿔이 흩어져 허준 홀로 편찬작업을 이끌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력에 대한 선조의 신임이 크게 작용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조선 중기까지 축적된 학문적 역량을 꼽을 수 있다. “동의보감”에 보이는 도교의학적 요소, 성리학적 요소 등은 조선 전기까지 축적된 학문적 역량이 이 책이 쓰여진 시기에 꽃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의학 내적인 측면에서도 “동의보감”은 이전까지 한국에 존재했던 잠재력을 표출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 왕성했던 향약(鄕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의서들의 출간은 자국의 질병은 자국산 약재를 써서 치료해야 한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사상을 강화시켰다. 또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수많은 중국의서들도 이미 충분히 소화해 새로운 체계로 구성해낼 수 있는 학문적 역량이 이미 성숙해 있었던 것이다. 향약이란 한국 땅에서 나는 국산 한약재를 말한다. “동의보감”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이어져온 한국인의 병을 한국 땅에서 나는 약재로 치료해야 한다는 향약의 정신을 계승하여 약물에 대한 기록을 한글표기로 병행하고 있다. 이 책에 인용된 의서를 봐도 그 방대함을 헤아릴 수 있다. 모두 1백80여종의 의서가 인용됐으며, 의서가 아닌 책 60여종을 참고했다. 이중 현재 없어진 책도 40여종이며,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은 14종이나 된다. 우리나라 전통과학 가운데 대외적으로 가장 경쟁력이 있는 학문분야는 아마도 한의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의학 분야에서도 순수하게 우리의 것으로 내보일 수 있는 것은 “동의보감”과 관련한 분야일 것이다. 민족 전통과학인 한의학을 대외적으로 선양해 한국인의 저력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한의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동의보감”을 독립된 연구분야로 분류해 문헌적 연구와 실험적 연구를 병행해 나가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정부당국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당국자들은 “동의보감” 연구가 우리 민족의 저력을 만방에 과시하고 한국인을 건강한 민족으로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이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과 격려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우리 국민이 “동의보감”에 대해 애정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