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23일 금요일 오후 12시 44분 21초 제 목(Title): 이규태/혼불 성냥과 라이터의 고마움을 다시한번..^^; [이규태 코너] 혼불 불씨문화가 대단했던 우리나라다. 조상 대대로 전승돼온 불씨를 꺼 뜨려 선안되었다. 그 불씨로 재를 짓고 제주 제수를 지었으며 조령과 교감하는 향불도 그 불씨로 켜야만 했다. 먹는 밥도 그 불씨로 일으킨 불로 짓는데 친팔촌 외사촌 처삼촌 이 내 친인척만 불씨밥으로 짓고 그 밖의 식구는 구애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불씨를 꺼뜨리면 반드시 종가를 찾아가서 불씨를 얻어와야만 한다. 그래서 이사할때도 장손이 불씨 단지를 안고 맨처음 새집에 발을 딛게 했다. 불씨에 서린 혼으로 구심되고 그 혼불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게 결속된 가족공동체였다. 비단 가족뿐 아니라 도예나 야금 대장같은 불 을 본으로 하는 장인들도 그 특정 유파의 혼을 간직하는 불씨를 전승 하고 반드시 그 불로 공작을 하는 것이 관행이다. 피난갈때도 맨먼저 챙기는 것이 혼불이었지만 임진왜란때 밧줄에 묶 여 끌려가는 조선의 도공들에게 챙길 여유가 있었을 리 없다. 꼭 4백 년전에 남원을 점거하고 있던 일본 장수(도진의홍)는 남원의 도공들을 자기네 봉건 영지인 사쓰마(녹아도 지방)에 끌어다 도자기를 만들게 했다. 이들이 만든 도자기는 사쓰마야키라 하여 일본에서 명품으로 법통 을 이었고 장인이 푸대접 받았던 한국과는 달리 그 명성으로 사족대접 을 받았었다. 자존심도 강해 많은 후예들이 일본성으로 바꾸지 않고 한국성을 고집해 내렸다. 2차대전 말기 일본 전시내각 외무대신으로 지금 재평가를 받고 있는 도고(동향무덕)도 5세 때까지 박무덕으로 불 렸던 피랍 도공의 후예였다. 지금 그 사쓰마야키 현장에서 4백년제를 베풀고 있는데 가마에 4백 년전 못가져 갔던 조국의 불씨를 옮겨 지피는 의식이 그 제전의 절정 이었다. 고향땅인 남원에서 채화하여 불항아리에 담아 그 도공들이 끌 려갔던 뭍길 뱃길을 따라 옮겨간 것이다. 앞으로 구울 사쓰마야키는 이 혼불의 변수로 때깔이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