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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10월  8일 목요일 오후 12시 25분 27초
제 목(Title): 이규태/조선 삼국시대의 옷 


[이규태 코너] 삼국시대의 옷 

 당나라에 외교사절로 갔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사신들의 옷차림 그림 이 대만 고궁 
박물관에서 발견되어 공개되었다. 머리에 쓴 관만 다를 뿐 바지 차림에 무릎 
위까지 덮는 미니 두루마기(포)를 입고 있는데 세 나라가 공통되고 있다. 
고대 한국 복식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북방계의 호복과 서방계의 한 복이다. 
전투적인 호복은 말타고 달리기 좋게끔 바지로 돼있는데 한족 은 요즘 원피스같은 
치마 차림이었다. 기원전 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 이 전투력 기동화를 위해 말타기 
불편한 원피스를 야만 투피스의 바지 로 바꾸는 대담한 의복혁명을 했다. 



이에 대한 저항은 대단했다. 이 복장 개혁에 군신들은 거의가 이에 승복하지 
않았으며 이를 둔 갈등을 '사기' 에서는 1천3백75자라는 방 대한 분량의 기록을 
할애했다. 중국 사상 굴지의 전투였던 오월간의 싸움이 겨우 3백5자인 것과 견주어 
볼 만하다. 

삼국시대에는 우리 남자가 치마(군)를 입었음을 시사하는 문헌이 있다. 
'삼국유사'에 보면 김유신이 집 앞에서 김춘추와 축국을 하는데 김유신이 김춘추의 
치마(군)를 밟아 그 끈이 떨어져나가는 바람에 집 에 들어가 김유신의 누이에게 
꿰매게한 것이 배필을 맺게 된 동기로 나온다. 

세 삼국사신의 미니 두루마기가 한결같이 오른편 깃을 위로 덮는 우임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서울이 만주에 있었던 시절의 고구려 고분벽화 인물의 
옷매무새는 온통 왼쪽 깃이 위에 오르는 좌임 인데 장수왕의 평양 천도 이후 
한반도 고구려 고분 인물의 옷은 우임 이 대부분이다. 

곧 북방계는 왼깃에 좁은 바지통(좌임착수)인데 서방계는 오른깃에 
치마(우임광군)였다. 삼국 사신도가 우임인 것은 그 무렵은 이미 당나 라 정치나 
문화가 우리 삼국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입 맛이 쓰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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