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5월 28일 목요일 오전 05시 31분 59초 제 목(Title): "倭는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연세대 국학� 번호 : 47/1012 입력일 : 98/05/27 16:54:04 자료량 :39줄 제 목 : "倭는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연세대 국학연구원 날 짜 : 98년 05월 27일 (서울=연합) 고구려 정복군주 광개토대왕이 토벌했던 삼국시대 왜(倭)는 일본이 아닌 한반도 남부지방에 있었으며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는 한반도에서 축출된 왜 가 고토회복을 위해 한반도에 잠깐 설치.운영했던 전진기지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薛盛璟 교수 연구팀은 오는 29일 `韓.日 국학갈등의 원천을 해소한다-한반도 내 倭의 존재 가능성을 중심으로'라는 학술대회 개최를 앞두고 27 일 미리 배포한 논문 발표요지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연구팀은 광개토왕 비문과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 빈번히 등장하는 왜 는 기원전 2세기말부터 서기 5백년경까지 전라도 영산강 유역 나주지방을 중심지로 전남.북과 경남 일부 등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강성하게 활동하다 일본 열도로 축출 됐다고 주장했다. 또 삼국과 가야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왜는 원래 중국 동북지방에서 활약하다 서 기전 194년 위만조선이 들어섬에 따라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남하한 뒤 전라도를 중 심으로 한반도 남부지방에 정착한 북방계 족속이라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이에따라 韓.日 역사학계에서 그 존재여부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을 빚고 있는 任那日本府는 서기 5백년경 백제 동성왕에 의해 완전 축출된 왜가 서기 541∼554년 까지 13년 동안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운영했던 일종의 고토회복 기지라는 것. 연구팀은 이러한 근거로 `한서 지리지'와 `후한서',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비 롯한 초기 중국측 정사와 삼국사기,삼국유사,일본서기 등 韓日 역사서에 나타난 왜 의 위치와 이동경로 등과 함께 나주지방을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에서만 왕릉으로 추 정되는 대규모 고분 2백여개가 발견된 점 등을 들었다. 특히 이들 고분군에서 금관을 비롯한 각종 유물이 발굴된 나주지역은 `삼국지 동이전'과 광개토왕 비문에 똑같이 등장하는 `한예'(韓濊) 혹은 `왜한'(倭韓)이 있 던 곳으로 종래 학계에서는 이를 韓과 倭라고 별도의 국가로 잘못 해석왔으며 마한. 진한.변한처럼 `韓땅에 있는 왜'가 정확한 해석이라고 연구팀은 주장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한반도 남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왜는 그러나 396년 광개토 왕의 대대적인 토벌을 받고 당시 왕이었던 응신왕(應神王)을 비롯한 왜인들이 일본 열도로 탈출한 뒤 세력이 현저히 축소됐으며 서기 498년에는 백제 동성왕이 전남지 역을 완전토벌함에 따라 왜는 한반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에따라 종래 백제인으로서 일본에 유학을 전파해준 것으로 일본서기에 기록된 왕인(王仁) 박사는 당시 왜가 지배하던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왜인으로 광개토대왕 의 정벌 직후인 405년 일본으로 영구 이주했다고 연구팀은 주장했다. 薛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로 韓日 양국 학계가 첨예한 대립을 빚고 있는 광개토 왕 비문과 任那日本府설의 논쟁을 마감하고 지금까지 잘못 알려져 왔던 倭의 실체를 규명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