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Nevido (될데로되라롔) 날 짜 (Date): 1997년07월25일(금) 07시18분54초 KDT 제 목(Title): Re: 로마인 이야기 전술상의 이견은 나올 수 있습니다. 한니발 전쟁이 십몇년동안 벌어진 장기전이었고 그동안 수많은 집정관이 총사령관에 취임했으니 전술의 변화가 오는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77만 로마군은 아니죠. 동원가능한 전체 성인남자 수가 그정도이고 실제로는 1년에 많아봐야 20개 군단이상 편성하기 힘듭니다. 1군단에 6000 잡으면 고작 12만명 정도.. 실제적으로 이당시에는 10개군단 정도 편성이 고작이었죠. 그에 비해 한니발은 거의 3만명에 육박했죠. 전쟁기간 내내 갈리아인을 용병으로 이용했지만 한니발 전술의 핵심은 이들 카르타고용병들이 담당합니다. 약간 비꼬긴 했지만 한니발이 얼마나 뛰어난 장군인지 알 수 있습니다. 3만명이 안되는 군대를 이끌고 전 이탈리아반도를 유린했으니.. 비록 허를 찔렸지만 (알프스방향에서의 침공) 로마군이 한니발군을 겁낼 이유는 없었습니다. 1차 포에니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났고 한니발군은 3만 이하의 수준이었으니 초기에 제압하려 한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연속되는 대패에 속전속결론이 수그러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국론이 분열되었다고 볼 수는 없죠. 그리고 위에 말한 단결은 사실 로마내부의 단결이라기 보단 로마와 로마주변국 들(에뜨루리아, 삼니움, 그리스식민도시등..)의 단결이라고 봐야하죠. 한니발도 이 조직(-_-;)의 와해를 시종일관 관철시키려 했구요. 오랜기간 로마와 투쟁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 치곤 단결은 이상하리만치 강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삼니움의 예를 들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삼니움과의 전쟁을 치러낸 로마에 전쟁 종료 후 2~30년 만에 삼니움출신 집정관이 당선됩니다. 이만큼 로마는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에 주변국을 포용할 수 있었죠. 같은 민족, 같은 나라사람이면서도 학연,지연등에 얽매이는 우리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해야 겠죠. (요즘 정치,사회가 너무 울적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