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Nevido (될데로되라롔) 날 짜 (Date): 1997년07월21일(월) 21시55분42초 KDT 제 목(Title): [re]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역시 로마인 이야기에서 발췌하자면 국론분열을 들수 있겠습니다. 한니발을 필두로 하는 해외파와 하논만이 리더로 있는 국내파의 대립으로 적절한 지원을 못했다는것이 큰 원인이었겠죠. 그리고 지중해의 재해권을 로마에게 빼앗긴 카르타고의 수송능력에도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에스파냐에서의 지원도 로마의 견제로 완전히 끊어진 상황이었죠. 만약 한니발가문에 그 반만큼의 인재만 있었더라도 충분한 지원이 가능해졌겠지만 불행히도 에스파냐로 원정온(목적은 한니발고립) 로마군에 대해 세배의 전력이 있었지만 그걸 세부대로 나눠서 각각 로마군에게 박살났습니다. 이건 히틀러의 전격전에 필적할만큼의 전술인데 한니발을 제외한 카로타고 장군은 힘을 결집한다는 중대한 원칙에 무지했기 때문에 참패하고 맙니다. 국내파가 지배적인 카르타고 본국에서는 굳이 로마정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한니발에 대한 지원은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고.. 용병에 의존한 카로타고의 군제에 대해서는 사실 그럴수밖에 없다는 점도 참조 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농업국인 아프리카의 강자 카르타고로서는 중요한 자금원 인 농업인력으로 군대를 구성할 바에는 전문전투원을 사는게 이익이었죠. 사실 명확한 국가개념이 확립되지 않은상황에서 이것은 그리 나쁜방법은 아니었 지만 국난에서는 다소 약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카르타고는 아프리카에서 적수가 없었으니 상설군대는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같은 농업국이지만 건국이후 주변도시들과의 끊임없는 충돌로 모든국민에게 병역을 요구한 로마는 그런면에서 국민개개인이 전투원이었다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에니전쟁의 승패를 가름한것은 전략적 사고를 하는 장군의 수에� 차이가 났다는 것일겁니다. 포에니전쟁 중 25명의 집정관급 장군을 배출한 로마와 한니발 1명의 카르타고는 분명 큰 차이가 났을 테니까요. 그리고 알다시피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갈리아를 횡단한 후 북이탈리아를 통과해 서 남이탈리아로 진군했습니다. 목표인 로마를 남겨두고.. 이것은 한니발이 일관한 전략에 의한 것인데 로마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로마동맹 부터 해체하는 것이 영속인 방법이라는 생각에 파죽지세로 로마군을 격파하면서도 정작 로마는 남겨둔채 전 이탈리아를 로마로 부터 떼어내는 작업에 골몰했습니다. 만약 한니발이 전쟁의 승리, 로마의 패배만을 생각했다면 전쟁은 초기에 끝장났을 겁니다. 로마가 이기든 한니발이 이기든.. (제생각으로 한니발이 이겼을거라 생각 하지만) 어쨋튼 이전쟁후 로마군의 전력은 크게 강화되는데 이것은 아마도 한니발의 덕택 이라고 생각해야 할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