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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2mb18noma) **is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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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Date): 2011년 06월 27일 (월) 오후 10시 52분 51초
제 목(Title): 유재흥 아직 살아 있냐?


유재흥

일본군 장교였던 유승렬의 아들, 일본 나고야출생.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제55기로 졸업, 일본군 육군 대위로 근무

1949년 제주도지구 전투사령관에 임명되어 제주 4·3 사건때 민간인 학살을 
명령 또는 관여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제7사단장으로서 의정부 축선을 책임
7사단은 붕괴 괴멸 결국 서울 함락
제2군단장으로 임명. 이후 덕천 전투에서 지휘실수로 중국군 38군과 42군에 
포위 되어 
제2군단이 사실상 전멸되어 해체
현리 전투에서도 제3군단을 해체케하는 등 한국 전쟁에서 지휘한 전투마다 패전
오마치에서 유재흥은 군단을 버리고 항공기편으로 도주 
이 도주행각으로 3군단은 사실상 지휘통제가 불가능한 와해.
결국 현리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에게 포위섬멸당하며 3군단은 해체 
이 사건을 계기로 미8군사령관은 국군의 모든 군단사령부를 해체하고 
일체의 작전지휘권을 미군 장성들에게만 부여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가 서툴러 군에 명령을 하달할 때 
"돌아가라"를 "또라가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1951년 7월 시작된 정전회담 당시 남한 옵서버로 참관했으나 
부친 유승렬 대좌에 의해 어릴 때부터 일본 군인 교육을 받아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6.25 초반부터 유재흥 있는곳에 사단 군단해체 따라다녔음에도 
전후에도 승승장구 

1953년 : 육군참모차장
1957년 : 합동참모본부 의장
1959년 : 군사령관
1960년 : 예편 (중장)
1960년 : 주 타이 대사
1963년 : 주 스웨덴 대사
1967년 : 주 이탈리아 대사에 임명되었다.
1970년 : 대통령 안보담당·국방담당 특별보좌관
1971년 : 국방부장관
1974년 : 대한석유공사 사장
1978년 : 석유화학공업협회 회장
1983년 : 한스칸디나비아재단 이사장
1991년 : 성우회 회장

1951년태극무공훈장을 비롯, 수교훈장 등 여러 차례 훈장을 수여

계속되는 패전과 무단도주로 작전통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된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였지만, 
1990년대 이후 작전통수권 반환 움직임에 결사반대를 표시하여 많은 비아냥을 
사기도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별 달고 거들먹거리기만 했다'라고 발언한 것 때문에 예비역 
장성들이 발끈했던 일이 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재흥은 발끈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경북 경산 하양초등학교에는 유재흥 장군 전승기념비가 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아버지 유승렬과 함께 선정되었다.


아직 살아있냐?
내가볼대 유재흥만 없었어도 6.25 군 사상자 반은 줄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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