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guest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alalalalalal Guest Auth Key: 104f669e7e517cd62a65b69c0dc39b35 날 짜 (Date): 2010년 01월 19일 (화) 오전 10시 51분 27초 제 목(Title): 설기현 좀 아쉽긴 하다 벨기에 하위팀에서 프리미어리그까지 노력해서 올라갔는데 다시 K리그로 가니까 감회가 새롭겠네. 어차피 은퇴를 생각할 나이니까 한국에서 지내면서 자리잡았으면 좋겠네. 설기현이 아예 벤치만 지킬정도로 개허접선수는 아닌데.. 호지슨 감독하고 잘 안 맞았나봐. 시즌 초반에 헐시티에서 이적제의가 들어왔었다고 했는데.. 그때 이적을 했더라면 인생이 어찌 바뀌었을지... 하여튼 설기현은 이동국만큼 스타대접은 못 받았지만 또 박지성같은 더 잘 나가는 선수에 가려 덜 스폿라이트를 받고는 있지만...커리어로만 봤을 때는 차범근, 박지성 다음 가는 정도 아니겠나? -------- 2010년 1월 18일 오후, 인천공항. 모자를 눌러 쓴 설기현이 출국장을 빠져 나왔다. 그동안 주로 해외에서 거주해왔으니 입출국과 인터뷰가 새삼스러울 리 없건만, 몰려나온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설기현의 얼굴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무려 10년간의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자리이니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3개 나라, 4개 리그, 6개 클럽을 거치며 한국을 대표하는 해외파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설기현은 길었던 타향살이를 접고 이제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K-리그 포항 스틸러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며 생애 첫 한국 프로 축구 선수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가 해외에서 보낸 1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지난 2000년, 성공을 다짐하며 벨기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20대 초반의 총각 선수는, 10년 동안 수 많은 기록과 기억을 만든 뒤 이제는 아이 둘을 낳은 아버지가 되어 돌아왔다.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의 차이만큼이나 긴 세월 동안 - 그가 청운의 꿈을 안고 떠났던 김포공항은 더 이상 원거리 국제선을 운항하지 않는다 ? 한국은 적잖은 변화를 겪었고 이제 그는 새로운 축구와 새로운 환경에서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서야 한다. 스물 한 살 이후, 대부분의 삶을 해외에서 보낸 설기현에게 한국의 축구 환경은 낯설게 느껴질 지 모른다. 물론, 진짜 도전은 경기장 안에 있다. K-리그와 전혀 인연이 없던 설기현에게 한국의 축구는 편하기보다는 낯설고 만만하기보다는 까다로운 무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늘 도전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설기현에게는 별다른 걱정 거리가 아닐 지도 모른다. 벨기에와 잉글랜드에서 그는 늘 최고의 적응력을 보여줬다. 입단 초기의 활약이 워낙 눈부셔 시즌 중반 이후 득점포가 잦아드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주목을 받을 정도였다. 한국인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기록지에 득점자로 이름을 올린 활약상과 2002년 월드컵에서 전 국민의 가슴을 울린 골장면은 그 중에서도 가장 또렷이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징표다. 설기현의 10년은 개척자로서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직 유럽이 멀게만 느껴지던 시절, 설기현은 아직 한국 축구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에서 자신의 능력만으로 편견과 싸웠고, 그렇게 만들어낸 자리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1980년대 차범근 이후, 유럽에서 10차례의 개막전을 치른 첫 번째 한국 선수로 기록된 설기현의 10년은, 그가 버티고 빛낸 긴 시간만으로도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하나의 이정표다. 이쯤에서 설기현의 10년史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일 것이다. 로열 안트워프 (2000~2001) 리그 25경기(21선발) 10득점 또래 동료들이 일본 J리그의 문을 두드릴 무렵, 설기현은 대한축구협회(KFA)의 우수 선수 해외 진출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 진출을 시도한다. 설기현을 낙점한 곳은 벨기에 로열 안트워프. 막 2부리그에서 1부리그로 올라온 안트워프는 스쿼드가 두껍지 않아 상대적으로 경쟁이 수월한 클럽이었다. 하지만, 유럽 무대에 첫 발을 내딛는 설기현에게 주전 도약은 쉽지 않아 보였다. 국내에서도 큰 기대는 없었다. 때는 아직 2002년 월드컵이 치러지기 전이었고, 유럽 리그는 머나먼 꿈의 무대로 여겨지던 무렵이었다. 게다가, K-리그 MVP 트로피를 거머쥔 안정환이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 땅을 밟으며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니 설기현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설기현은 예상보다 빨리 빛을 보기 시작했다. 성공 시대의 출발점은 2000년 8월 12일, 벨기에 1부 리그 데뷔전이었다. 베스터로와의 개막전에 교체 출전한 그는 2라운드 베베렌과의 홈 경기에서 첫 선발 출전 기록을 세웠고 석달 뒤인 11월 12일 리그 첫 골을 신고했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그는 리그 마지막 경기까지 전 경기 출전하며 팀의 주축으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특히, 리그 반환점을 돈 이후부터 팀의 전담 페널티키커로 나서는 등 감독의 신뢰를 얻었고 2001년 3~4월에는 리그 6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하며 주가를 한껏 높였다. 안더레흐트 (2001~2004) 리그 72경기(47선발) 18득점 설기현의 안더레흐트 이적은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안더레흐트는 명실상부한 벨기에 최강팀. 라이벌이라 할 클럽 브뤼헤보다 두 배나 많은 리그 우승 회수를 자랑하는 벨기에 최고의 명문 클럽이다. 유럽 대회 우승 트로피도 다섯 개나 보유한 클럽이 이제 막 리그 데뷔 시즌을 마친 스물 두 살 동양 청년을 영입했으니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화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약 250만 유로의 이적료에 팀을 옮긴 설기현은 공식 경기 데뷔전이자 팀의 시즌 첫 경기인 벨기에 수퍼컵에서 후반 25분부터 12분 동안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당시 안더레흐트는 전반 17분 아루나가 퇴장당하며 내준 PK를 실점해 0-1로 뒤진 상태로 10명이 뛰고 있어 패색이 짙은 상태였다. 하지만 1-1 상황에서 세 골을 더한 설기현의 맹활약으로 승리를 따냈다. 설기현은 4일 뒤에 열린 스웨덴 함스타드와의 챔피언스리그 예선 3라운드 1차전(2001년 8월 8일)에도 선발 출전해 후반 3분 골을 터뜨려 팀의 3-2 승리를 돕기도 했다. 설기현의 이 골은 한국 선수 사상 첫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이다. 이후 설기현은 같은 해 9월 11일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 리그에 교체 출전해 이 대회 본선에도 한국 선수의 첫 발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설기현의 안더레흐트 최고 시즌은 이듬해인 2002/2003 시즌이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고 소속팀에 돌아온 설기현은 리그 개막전부터 4경기 연속골(6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하는 등 이 시즌 팀이 치른 리그 33경기 가운데 32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넣었다. UEFA컵에서도 활약은 이어져 덴마크 미틀란트와의 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2003년에 부임한 브루스 감독은 그를 크게 중용하지 않았고 설기현은 안더레흐트에서 보낸 마지막 1년 동안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한다. 설기현은 안더레흐트에 머문 세 시즌 동안 벨기에 1부 리그 우승과 수퍼컵 우승을 각각 한 차례 차지한 뒤 벨기에 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강릉종합운동장에 전시된 설기현 동상을 아이들이 올려다보고 있다. 울버햄턴 원더러스 (2004~2006) 리그 69경기(50선발) 4득점 설기현이 새로 몸담게 된 울버햄턴은 잉글랜드 챔피언십리그 소속 클럽으로 1950년대 세 차례 영국 챔피언에 오른 전통의 명가였다. 이전 시즌을 프리미어리그 최하위로 마쳐 챔피언십리그로 강등된 울버햄턴은 프리미어리그 복귀를 위해 선수단을 재편해야 했다. 특히, 팀내 최다득점자인 세네갈 공격수 앙리 카마라가 이적을 요청하는 등 공격진 재구성이 절실했던 그들에게 벨기에 리그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많은 골을 터뜨린 설기현은 매력적인 카드였다. 2004년 여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 참가해 전 경기를 소화하고 돌아온 설기현은 이적 시장 막판 울버햄턴으로 옮겨간 뒤 리그 7라운드에 선발출전하며 잉글랜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번리와의 리그컵 2라운드에서 데뷔 한 달 만에 골을 터뜨린 그는 2005년 1월 한 달 동안 리그와 FA컵에서 4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한다. 그 무렵, 데이브 존스 감독의 뒤를 이어 울버햄턴의 지휘봉을 잡은 글렌 호들 감독은 설기현을 주전 스트라이커와 측면 공격수로 전천후 기용하며 두터운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다. 설기현은 두번째 시즌인 2005/2006 시즌에도 꾸준히 기회를 얻으며 전반기에만 리그에서 4골을 터뜨리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상대팀 서포터스로부터 인종 차별적 구호가 섞인 야유를 받는 등 울버햄턴 주축 공격수로서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챔피언십리그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팀은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번번이 실패했고 그는 마침내 이적을 결심하게 된다. 레딩 (2006~2007) 리그 30경기(24선발) 4득점 설기현의 다음 목적지는 프리미어리그에 갓 승격한 레딩이었다. 챔피언십리그에서 설기현의 활약을 눈여겨본 스티브 코펠 감독은 15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설기현 영입을 확정지었다. 레딩에서 보낸 첫 시즌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출발이 좋았다. 시즌 개막과 함께 주전 자리를 꿰찬 설기현은 리그 5라운드 세필드 전(2006년 9월 16일)에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터뜨렸고, 보름이 지난 10월 1일에는 웨스트햄과의 경기에서 전반 2분만에 결승골을 꽂아 넣어 팀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이 기간, 팀의 오른쪽 미드필더로 나서 왼쪽의 헌트와 함께 팀 공격을 주도한 그는 ‘상대팀 왼쪽 풀백 킬러’로 불릴만큼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코펠 감독은 리그 후반들어 부상으로 빠져 있던 글렌 리틀이 복귀하자 설기현의 출전 시간을 줄였고, 기회를 잃은 설기현은 다시 이적을 모색하게 된다. 그 무렵, 설기현은 교체 아웃되면서 코펠 감독의 악수를 거부하며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는데, 당시 코펠 감독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설기현과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풀럼 (2007~2010) 리그 17경기(6선발) 1득점 설기현은 로제니어와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풀럼 유니폼을 입게 된다. 출발을 나쁘지 않았다. 설기현은 팀이 치른 첫 20경기 가운데 10경기에 출전하며 새로운 팀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영입한 로리 산체스 감독이 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새로 부임한 로이 호지슨 감독은 설기현을 철저히 외면했다. 설기현은 호지슨 감독이 부임한 직후 한 달 간 리그와 FA컵에 각각 2경기씩 출전하는 데 그쳤고 그나마 선발 출전은 아스널 전 한 번에 그쳤다. 호지슨 감독은 부임할 때 영입한 선수들에게 더 많은 출전 기회를 보장했고 이 과정에서 설기현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2008/2009 시즌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이전 시즌 주전으로 뛰던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주전 자리를 꿰찬 설기현은 헐 시티와의 개막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시즌 초의 뛰어난 활약은 라이벌 격인 헐 시티가 설기현 영입을 추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풀럼에서 자리잡기를 원한 설기현은 고민 끝에 헐 시티의 제안을 거절했고 이적 시장의 문을 그렇게 닫혔다. 그러나 부상자가 복귀하면서 호지슨 감독은 다시 설기현을 외면했고 잏우 설기현은 리그에서 단 2번의 교체 출전 기회만 얻은 채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자 사우디 알히랄로 전격 임대된다. 알-히랄 (2009) 총 24경기 1득점 한국인으로 첫 발을 내딛은 사우디 리그에서 설기현은 묵묵히 경기에 나섰다. 훗날, 설기현은 사우디 리그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선수들의 수준이나 관중의 열기는 기대 이상이었고 경기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마도 내 생애 가장 열심히 훈련했던 시기”라고 돌아볼 정도로 노력을 거듭한 끝에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그는 5개월 동안 24경기에 나서는 강행군 속에 알토란 같은 공격 포인트를 올렸고 팀이 컵대회 우승과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한다. 사우디에서 자신감을 얻은 설기현은 2009년 여름 풀럼으로 복귀해 유로파 리그에서 골을 넣는 등 쾌조의 몸상태를 유지하지만, 설기현 포지션에 다미안 더프(아일랜드)를 추가 영입한 호지슨 감독은 설기현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결국 설기현은 2009/2010 시즌 상반기 동안 풀럼에서 컵 대회와 유로파리그 포함 단 5차례 출전(1선발)에 그친다. 이후, 설기현은 풀럼과 상호 합의에 따라 잔여 계약을 해지한 뒤 2010년 1월,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