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rbages ] in KIDS 글 쓴 이(By): cookie () 날 짜 (Date): 2012년 11월 30일 (금) 오전 11시 27분 02초 제 목(Title): Re: 중동의 강국 터키 터키와 한국이 근대에 맺은 인연은 역시 6.25때 터키의 파병이 시초. 터키는 미국 영국에 이어 가장많은 1만 5천명 가량의 대규모 여단급 보병부대를 파견했고 전사 721명, 부상 2147명 실종 175명, 포로 346명의 의 손실을 겪었다. 그당시 터키가 이렇게 많은 파병을 한데는 터키의 반소련/반공정책도 영향을 주었고 2차대전때 독일과 형식적인 동맹은 맺었지만 실질적으론 중립을 지켜 독일의 침략도 연합군의 공격도 받지않아 전쟁피해가 없는 유럽/중동국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매우 영리하고 현명한 처신이었다. 터키군의 전투중에는 특히 금양장리 전투가 유명한데 중공군에 밀려 1/4 후퇴후 UN군이 전열을 정비해 반격에 나선게 51년 1월 25일 무렵이었다. 그당시 중공군은 평택 금양장리 부근에 강력한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를 강화하고 있었다. 당시 터키군은 이전 군우리 전투에서 무질서한 전투로 패해 체면이 깍인터라 명예회복을 위해 이 고지 탈환에 나선다. 터키군은 미군의 항공지원과 탱크의 지원을 받으며 대대병력이 이 고지를 탈환하기위해 용감하게 고지 돌격전 백병전을 벌여 중공군을 크게 쳐부수고 대승을 거둔다. 600여명의 터키 대대원들은 전원 소총에 대검을 착검 하고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면서 고지로 돌격해 고지를 지키던 중공군을 거의 전멸시키며 고지를 탈환한다. 중공군은 시체만 474구이고 대부분 총검에 찔리고 턱이나 머리가 깨진 백병전에서 죽은 시체. 터키군의 피해는 전사 12명 부상 70명. 이 백병전에서의 대승 소식이 API보도를 타며 "백병전에는 터키군" 이라는 강한 인상을 심으며 투르크 전사혼의 후예로서 터키군의 용감성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된다. 그일대 사흘간의 전투로 중공군은 사상자 1900여명, 터키군은 모두 합쳐 100여명의 사상자만 내는 일방적인 대승을 거두어 UN군이 서울로 북진을 하는 길을 연다. 그래서 평택 부근에는 터키군 참전 기념비가 서있고 전사한 터키군 중 480 여명은 현재 부산 연제동 UN묘지에 묻혀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