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garbages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a drifter) 날 짜 (Date): 2011년 08월 13일 (토) 오전 03시 06분 30초 제 목(Title): 고흐에 대해 (고흐에 대해 적어본 글이고, 물론 내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있을 것임. 의견을 구하는 의미에서 올려 봄)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흐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나름의 의견을 내긴 하는데 세부적으로는 엇갈린다. 따라서 세세한 부분까지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잘 알려진 몇가지 사실을 통해 고흐라는 인간에 대해 대략적으로 접근해 볼 수는 있다. 고흐의 동생이자 인생의 후원자 테오가 말한 것처럼 고흐는 양극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면은 성격이 불 같고 자기 주장이 강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의견 융합을 잘 못했던 것이다. 이런 성격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다른 한면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섬세한 감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교에 다니기도 했고... 곧 그만 뒀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광산촌을 찾아 종교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오래 못함 -_-; 당연하게도 당시 유럽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사회주의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렇게 보면 성격이 유난스럽지만 본바탕은 착한, 정상적인 사람 중 하나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고갱과 사이가 틀어지자 자신의 귀를 자른다거나, 정신요양원에서 입원해야 했고 거기서도 발작증세를 여러번 보였다는 등, 고흐에게는 정상인의 범위를 넘는 어떤 정신장애가 확실히 있었다. 어떤 종류의 정신장애인지, 사회생활을 힘들게 하고 결국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이 정신장애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당시 의료기술의 한계 때문에 의견이 갈린다. 고흐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았고, 본격적으로 화가로 활동한 것은 10년 남짓이다. 하지만, 동생 테오가 그랬듯이 집안에서 미술상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어려서부터 집안 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광산촌에서 종교활동을 하던 시절에 목탄화를 그리면서 미술활동을 시작했다가, 이 후 미술학교도 두어군데 다니면서 정식 미술교육도 받았다. 이 역시 의견 충돌 끝에 오래 다니지는 못했지만... 초기에는 지나치게 어두운 그림을 그렸고, 그의 신념에 따라 광산촌 등의 어려운 사람들 즉 기층민중의 삶을 그림에 담았다. 그의 그림이 밝아지고 화사한 원색을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은 빠리에서 여러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한편으로 당시 유럽 미술계에서 주목 받던 일본 판화에 영향을 받으면서이다. 또한 신념이 맞아 존경했던 밀레를 따라 그리기도 즐겼다. 빠리에서 프랑스 남부의 아를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고흐는 자신의 표현양식을 발전시켜 갔고, 아를 인근의 생레미의 정신요양원에 있던 시절에 고흐의 특징적인 표현 기법은 거의 절정에 다다랐다. 고흐가 아를을 떠나 빠리 인근의 오베르로 이주한지 2개월 만에 자살을 선택한, 그 시기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다. 심해진 정신 질환을 여전히 치료 받아야했고, 열심히 그렸던 그의 그림들은 인정 받지 못하고 겨우 하나 팔린 정도였다. 인생의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와도 의견 충돌로 소원해진 상태에서 테오가 곧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것은 유일한 후원자가 고흐에 보일 관심이 줄어들 수 밖에 없음을 의미했다. 불우한 생활과 질환에 시달리며 죽음에 대해서 심각히 고민하던 충동적인 인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자살 방법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총으로 가슴을 쏘는 자살을 시도해서 심한 부상을 입었으나 죽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죽고 싶은 의도가 없었다고 하기도 그렇지만 생에 미련을 완전히 버린 류라고 보기도 그렇다. 동생 테오가 놀라 달려왔을 때는 나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총상에 의한 감염이 심해지면서 결국 자살 시도 이틀 후에 사망했다. 그리고 고흐의 동생 테오... 고흐가 자살한 지 몇 개월 후에 병으로 사망했다. 아끼던 형제의 죽음이 영향을 준 듯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당시 유럽에서 악명 높던 전염병 매독이 원인이기 때문... 형제의 죽음으로부터 30~40년 후, 페니실린 등이 발명되어 인류의 의료기술은 감염이나 매독 등에 잘 대응하게 되었다. 이런 때라면 두 형제의 인생은 사뭇 달랐을 거다. 이렇게 고흐에 대해 확실히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가슴 한편으로 따뜻한 연민을 가지고 있던 감성 풍부한 화가가 다른 한편으로는 의견충돌을 잘 만드는 극렬한 성격과 정신장애에 시달렸고, 자신의 작품이 거의 인정 받지 못하는 불우하고 고독한 생활에 고통 받던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dramatic한? 아니 얕은 드라마로 담기 힘든 진정 자신의 그림과도 같았던, 그런 고흐의 생애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다. ............................................................................... a drifter off to see the world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