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bages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garbages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a drifter)
날 짜 (Date): 2011년 02월 07일 (월) 오후 11시 45분 57초
제 목(Title): 예수 부활 후?


예수 부활 후의 행적에 대해서 어나니에서 말이 나오는데...
달력의 역사에 대해서 알려고 보니까, 우리가 표준으로
쓰는 서양달력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그러다보니
보통은 우리가 관심 갖지 않던 기독교 초기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이거저거 보고듣게 되더군요.
나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태 보고 들은 것을 이해한 대로
정리해서 적어보면...

예수 부활 후 행적에 대해서는 사실 명료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는 기독교계 학자나
믿지 않은 학자나 기독교가 예수 부활 혹은 부활했다는 믿음
때문에 차별성을 가지게 됐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는군요.

무슨 얘기인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당시 로마지역을 포함한
지중해 문화권(!)은 여러가지 종파의 부침이 심했다고 합니다.
신약성서에도 예수 종파와 다른 종파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던데요.
이게 지중해 문화권에서만 있던 현상은 아니고 세계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현상이죠. 어느 문화권에서나 특정 종교 내지는
종교적 신념이 사회를 지배하는 신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기
전까지는 여러 종류의 믿음이 부침이 심한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유교>불,선 구도가 자리잡기 전까지
제자백가니 하면서 갖가지 사상이 난무했고, 인도에서도 불교
->힌두교가 지배하기 전까지, 서아시아에서 이슬람교가 확고
해지기 전까지 시기처럼, 지중해 문화권에서도 기독교->이슬람
->기독교 순으로 확고하기 전에는 다양한 종교적 신념들이
우후죽순처럼 있었던 거죠.
사실 그런 것들이 요새 말로 하면 사이비 종교입니다. 지배적인
종교신념이 있다면 자기에 반하는 종교적 신념을 사이비로
몰았을텐데, 그런 지배적 종교가 없으니까 사이비로 몰리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기원 전후 시대에 로마나 이스라엘은 예수 종파도 그렇게
많은 여러 종파 중 하나로 보았습니다. 예수를 처형한 것도
여러 종파 중 특히 눈에 거슬리는 종파를 다루는 수법 중에
하나였다고 합니다. 여러 종파가 들쑥날쑥하다 보면, 함부로
사이비종파라고 못한다고 해도 아무래도 혹세무민하는 종파도
있을 것이고, 제국이나 사회의 지도력을 거스르려는 종파가
생기기 마련일텐데, 이런 종파는 지도자를 잡아죽이면 종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었거든요.
그래서 예수를 처형했던 것이고, 처음에는 예수 종파에도 이
수법이 먹혀드는 것 같아서 예수 종파 전체가 의기소침해졌다
는군요. 근데 어느 순간 이것들이 오히려 미친듯이, 정말
죽음을 불사하고 포교전에 나서더라는 겁니다. 예수가 부활했고
자기와 자기 종파 지도자의 신념이 맞았다면서...
여기서부터, 즉 예수의 부활에서부터 기독교가 당대의 여타
종파와 차별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죠. 결국 오늘날의
기독교가 있도록 한 것, 즉 예수 사후에도 헌신적인 추종자들이
있도록 한 것(헌신적이고 똑똑한 제자들이 계속 유입 되었기
때문에 예수 종파가 흥했던 것임)이 예수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후대 역사가들이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서 이 특이한
현상을 해석해 보는데...
예수 부활을 믿는 주로 기독교 신학계통 역사가들은, 정말로
뭔가 있으니까, 즉 부활이 사실이니까 예수 종파가 갑자기
그렇게 미친 듯이 포교전에 나서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다른
이유로 그렇게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당시 예수 종파 사람들에게 진정성이 있었다고 믿는 해석
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역사가들은... 부활 후의 예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명확하지 않고 어떤 것은 마치 환상을 본 듯이 묘사된
점에서, 무슨 이유인지 집단환각 같은 것에 빠져서 그렇게
미친 듯이 나서게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인간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제대로 된 상황은 아니었다는
거죠.
한편으로는, 좀 그렇기는 하지만, 음모론적 해석도 있습니다.
20세기에 발굴된 그노시스파 계열 문서? 중에서 유다 복음서도
있다고 하는데요. 여러가지 정황 상 예수 사망과 부활은
예수와 유다가 짜고친 고스톱 아니였냐는 의구심이 든다는
거죠. 신약성경에도 이런 의구심을 갖게하는 구절들이
있다는데요. 사실 초창기 기독교는 유다를 미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다를 미워하기 시작한 것은 예수가 죽고 몇십년
후, 1세대 추종자들도 대부분 사망한 다음 기독교와 유태교
(하필 이름이 유다교? -_-;)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라는군요. 예수를 밀고했는데도 그 제자들이 유다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한데, 유다복음은 한술 더 떠서
유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아끼는 제자였다고
적는 것입니다. 이에 따른 음모론적 시각에서는 예수 부활
(? 혹은 처형 후 다시 나타남?)도 어째건 사실이고, 부활
후 행적이 명료하지 않은 것도 설명이 되는데, 유다와 짜고
꼼수를 써서 처형을 피했던 일종의 범죄자인 예수가 내놓고
활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최근 화제가 된 책 '다빈치코드'도, 물론 전체적으로는 허구
즉 fiction 맞지만, 여러 음모론적 시각 중 하나의 연장선에서
쓰여진 fiction인 것입니다.

이러니 기독교도들에게는 예수 부활 후 행적에 대해서 묻는
것이 마치 예수의 동정녀 잉태가 사실이냐고 묻는 것과 비슷
하게 보이는 겁니다. 뭘 모르는 기독교도는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반응만 보일 것이고, 뭘 좀 아는 기독교도은 논란
거리인 만큼 회피하고 싶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동정녀 잉태를 부활만큼이나 숭고하게 여기고, 카톨릭은 예수
모친 마리아를 성녀로 여기지만, 기독교 초기 기독교와
대립했던 다른 종파들은 예수는 마리아가 로마군인과 간통해서
낳은 사생아라는 얘기로 이를 해석하고 비웃음거리로 여겼다고
하거든요.
대략, 구약성경을 믿는 종파(유태교? 이슬람교?)들에게 아담과
이브는 최초의 사람인데 그 부부의 아들 카인은 어떻게 다른
부족 여자와 결혼했나요 하고 묻는 것과 비슷한 셈입니다.


여기까지 보고들은 것을 이해한 대로 적은 것이니까, 다른
의견있으면 주세요. ^^



...............................................................................

                                                a drifter off to see the world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