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6년04월29일(월) 18시11분20초 KST 제 목(Title): [re]환단고기 쩝(큰바우얼굴님께) 큰바위얼굴님.. 아주 흥미있는 주제인데요?:> 그 강의 맡으신 강사(교수)님이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려주시고요. 원본을 보셨다고 했는데 정확한 저작시기와 발견시기를 알려주세요. 그리고 그 연도가 어떻게 밝혀졌는지 하고요(방사능 연대측정이면 그 여부도 함께요:)) 일본 만세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도 궁금하고요. 그리고 일본 원본에도 삼성기, 신시역대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지 그리고 그 이름들도 그대로인지 아닌지 여부. 그리고 그 원본의 대충 연대기들을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음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단군조선 시대의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박창범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라대일 (표준연구원 천문대) 가.머릿말 현존하는 단군조선 시대의 역사가 시대순으로 기록된 대표적 사서를 들라면 발해시대 대야발(大野勃)편찬하고 황조복(皇祚福)이 증간한 단 기고사(檀奇古史)와 고려시대 행촌 이암(李癌)이 쓴 한단고기(한檀古 記)의 단군세기(檀君世紀)편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이 사서들의 출원 이나 전래경로, 그리고 그 내용의 후대 첨삭정도가 확인되지 않는 상 황에서 이에 수록된 내용을 그대로 사실로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최소한 사서에 수록된 내용이 단군조선 시대의 기록이라는 금석학적인 증거가 확보된다거나, 그 내용이 국내외 다른 역사기록들 과 엄밀히 비교, 확인되지 않는 한 이들이 기성사학계에 신빙성 있는 사료로서 인정되기는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경우 사서의 사실성은 어 떤 절대적 기준에 의거하여 검섯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금석학적인 입증법 이상으로 신빙성있게 사료내용 의 충실도를 알아보는 방법이 바로 천문현상을 통한 과학적 검섯방법 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였다. 천문현상은 무릴법칙을 따라 일어나며, 이 들은 과학적 계산에 의하여 정확히 재연될 수 있다. 천체의 움직임 은 내용의 단순, 명확할 뿐만 아니라, 과학적 과학적 계산을 통해서 그 진위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관적이거나 후세 절삭왜 곡될 가능성이 큰 다른 역사적 사건들과 중요한 차이를 갖는다. 또한 역사가 변조되었을 경우 천문 현상기록은 하나의 시간표로서 역사적 사건의 올바른 시기를 찾는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 동아시아 제국들은 천체현상이 지상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주술적 믿음하에 전속 천문관으로 하여금 천체운행에 간한 많은 기록을 남기 게 하였다. 이들의 사서에는 방대한 양의 천문현상기록들, 특히 일식 과 행성운행의 특이사건 기록들이 나타난다.단군세기와 단기고사에는 단군조선시대에 일어난 천문현상에 관련된 기록이 12회 수록되어 있 다. 우리는 이들 기록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기록상에 나타난 모든 천 체의 움직임을 BC2333년까지 역추적하여, 실제 일어난 자연 현상과 두 사서에 나타난 기록들을 과학적으로 비교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사 서들의 기록이 진실된 것인지, 또는 후대에 임의로 조작된 것인지를 과학적 확률계산을 통하여 알아 보고자 한다. 이 논문의 구성은 다음 고 같다. (나)절에서는 먼저 이 12회의 천문현상 기록을 정리하고, (다)절에서 각 천문현상을 유형별로 기록과 계산을 비교한다. 마지막 (라)절에서 이 과학적검증의 결과를 토의해 보았다. 나.천문현상 자료 단군시대의 기록이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는 상고사서로는 앞서 언급 한 단군세기와 단기고사 이외에 조선시대 숙종 2년 (AD1675)에 북애 (北崖)가 저술한 규원사화(揆園史話)가 있다. 그러나 규원사화는 다른 두 사서보다 내용이 적고, 역대 임금의 재위 기간이 다르며, 천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으므로 본 연구에서 제외하였다. 규원사화 와 한단고기의 삼성기편에는 단군조선 이전의 상고사가 기록되어 있으 나 천문현상에 관한 내용이 없으므로 역시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단군세기와 단기고사에 나오는 천문현상기록은 세가지로 분류된다. 그 중 일식현상 기록이 10번으로 가장 많고, 5행성의 결집이 한번 그리고 강한 조수현상 기록이 한번 나온다. 표 1에 이들 관측 내용과 해당 문 헌을 정리하였다. 단군조선 시대의 서력 연대는 임승국 번역 한단고기 의 연대표를 참조하였고, 기자조선 시대는 1세 서여(西余)기자가 25에 단군인 솔나(率那) 39년(BC1112)에 건국하였으므로 (단기고사) 이때로 부터 각 기자의 재위기간을 빼어 연대를 계산하였다. 이들 기록에 의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일식 기록은 BC2183 부루(扶婁) 단제 때에 나온 다. 중국 주(주)나라 시기에 처음 기록된 일식이 BC776이므로 이는 상 당히 이른 기록이라 하겠다(渡邊敏夫 1962). 한편 이들 사서에는 "두 해가 함께 나타났다 (兩日竝出)" 라든가 "흰태양이 무지개를 뚫었다( 白日貫虹)" 등의 기록들이 있으나 그 의미가 분명치 않으므로 차후에 연구하고자 한다. 이런 기록은 모두 4번 나오는데 이들을 합친 16개 천문현상관측 기록의 시간에 따른 분포를 보면 그림 1과 같다. 전반적 으로 후기로 갈수록 관측기록 수가 증가하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보이 고 있다. 삼국사기에서 볼 수 있는 천체 관측기록 수의 변화와 한가지 다른 점은 삼국기록에는 천문현상기록 수가 각국의 멸망시기 근처에서 현저히 감소하는 반면, 단군조선시기의 기록은 이런 추세를 보이지 않 는다는 것이다. 물론 단군조선시기의 기록 수가 매우 적어 통계적 비 교는 할 수 없다. 그림 1에서 한 구간의 크기는 550년인데, 이는 근사 적으로 삼국의 정립시기를 통틀은 기간에 해 占 일식 세기,고사 7 35세 단군 사벌 8년 4월(BC765) 사월 일식 고사 8 19세 기자 1년 봄 (BC579) 일식 고사(기자) 9 39세 단군 두흘 21년8월(BC525) 팔월 일식 고사 10 44세 단군 구물 3년 2월(BC423) 이월 일식 고사 11 47세 단군 고열가 48년10월(BC248) 십월역일 일식 세기 12 36세 기자 인한 35년(BC241) 일식 고사(기자) | 6 | +---------+ | +---------+ | 4 | | | | | +---------+ | | 2 | +---------+ | | | | | | | | | 0 +----+---------+---------+---------+---------+-- 2400 1850 1300 750 200 시간(BC) 그림 1.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 관측기록 수의 시간에 따른 분포 다. 천체역학적 계산과의 비교 1.행성 결집현상 표 1에 보인 바와 같이 BC1733년 흘달(屹達) 단제 50년 五星娶婁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오성은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 등 육안 관 측이 가능한 5개 행성들일 것이고, 루는 24수 중의 하나로 그 主星은 양자리의 베타별 ( Aries)이다 (이은성 1978). Aries는 1993년 현 재 적도좌표계 상에서 (적경,적위) = ( 1h 54m 15s, 20 46` 27") 위치 에 있으며, BC1733년 경에는 지구의 세차운동과 이 별의 특이운동을 고려하면 (22h 41m 51s, 0 0` 38" ) 위치에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 다. 먼저 오행성들의 결집 상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BC1733년을 중심으로 150년에 걸쳐 다섯 행성 간의 평균 거리의 변화를 계산하였다. 이 계 산에서 행성 위치의 최대 오차는 약 3"이고 일반적으로 0.5" 이내의 값을 갖는다(Meeus 1991). 이러한 오차는 행성결집을 알아보는 목적에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양이다. 평균거리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구했 다. D = ( d(i,j) /10 ).......(1) i≠j 여기에서 d(i,j)는 i행성과 j행성 사이의 각거리(angular distance) 이며, 분모는 5개 행성간의 각거리가 모두 10개 (일반적으로 n(n-1)/2 개) 있기 때문이다. D는 행성의 결집에 매우 민감한 변수량이다. 그림 2는 D의 변화를 150년간 보인 것이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오행성이 약 20년의 주기로 서로 근접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공전주기가 11.8622년과 29.4577년 (Allen 1976) 으로 가장 긴 목성과 토성이 약 19.9년마다 만나기 때문이다. 결집 지속기간을 결정하는 것은 반대로 공전주기가 가장 ┃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수성과 금성으로 하늘에서 각속도가 하루에 1°~ 2° 정도이므로 5행성은 20일 이상 한곳에 모여 있지 못한다. 그림 2에서 150년간 5행성이 서로 가장 가까이 모인 시기는 BC1734년 7월 13일 초저녁으로 이때 D값은 10.26도이다.(이 시각은 지구 역학시 로 실제의 셰계시와는 이 당시 몇 시간 차이가 나지만 일식 계산이 아 닌 경우에는 중요하지 않으므로 그대로 사용한다.) 이때 일몰 직후 태 양으로부터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 그리고 추가로 초생달 등이 일렬지어 하늘에 나타나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이날 오행성의 평균 적경은 7h 29m 으로 婁星 위치가 아니라 이로부터 130도 가량 떨어진 長星, 즉 바다뱀 자리에 위치한다. 그러나 다섯행성이 10도 이내에 모 이는 매우 드문 현상이 기록과 1년 차이로 실존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 기록이 실제로 단군조선때의 옛기록에 근거하여 쓰여 졌다면 (예로서 대야발에 의하여), 결집현상 자체는 와전될 여지가 별 로 없으나 결집위치에 대하여는 BC1700년대 단군조선인들이 사용하던 별자리를 2500년 정도의 시간이 경과한 후대의 별자리와 연결시키는데 에 잘못이 있었을 가능서이 높다. 그것은 발해시대 사람들이 지구의 세차운동에 의한 별자리 이동과 양자리 베타별의 특이 운동을 알았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림 2에서 BC1734년의 결집과 바로 인접한 행 성 결집주기에서 가장 행성들이 가까이 모이는 때는 BC1716년 1월 30 일인데, 이 경우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좌우에 갈리게 되어 5행성 들이 결집한 것으로 관측되지 않는다. 한편 BC2000년에서 BC1450년까 지 550년간에 걸쳐서 5행성 위치를 계산한 결과 5행성이 이보다 더 가 까이 모인 경우는 BC1953년 2월 25일 새벽 단 한번 있었다 (D =2.3). 따라서 이들 사서에 나온 5행성 결집에 관한 기록년(BC1733)이 완전 무작위로 선택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BC1734년의 5행성 결집현상보다 같거나 더 강한 결집이, 이 현상보다 기록에 같거나 더 가까운 시기에 우연히 있게 될 확률은 2*2/550=0.007이다. 여기에서 첫번째 2는 기록 년 전후로 1년을 고려한 것이고, 둘째 2는 기록년 1년 전에 실존했던 BC1734년의 결집보다 5행성이 모인 정도가 같거나 더 강한 경우가 두 번 있기 때문이다(BC1734년과 BC1853년의 결집). 이 확률은 전 세계의 모든 국가 중에 하나를 임의로 선택했을 대 그 것이 한국일 확룰에 비유될 수 있는 작은 값이다. 2. 조수현상 두 사서 모두 29세 단군 마휴 9년(BC935)에 "南海潮水退三尺" 이라는 기록을 보인다. 조수면의 변화는 달과 태양의 조석력에 의하여 일어나 므로 이 기록은 천체운동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지구가 받는 조석력 은 달과 태양의 중력에 의하여 지구중심이 받는 힘과 지구표면이 받는 힘의 차이에 기인한다. 예로서 조석력이 최대가 되는 삭(朔)이나 망 (望)에서의 조석력은 다음과 같이 주어진다(최승언 1992). F = 2 G Re(Ms / Rs^3 + Mm / Rm^3) .............(2) 이식에서 G는 중력상수, Re,Rs,Rm 는 지구와 태양과 달의 반경, Ms와 Mm은 태양과 달의 질량이다. 즉 조석력은 태양과 달의 하늘에서의 위 치와 지구로부터의 거리에 의해 결정되는데, 조석력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달의 위치와 거리가 불규칙하게 변하므로, 삭이나 망에서 조석 력의 값이 항상 다르게 된다. 또한 조수면의 실제 높이는 지형과 일기 (풍향, 풍속, 강우 등)에 영향을 받는다. 그림 3은 1992년과 1993년에 걸치는 기간동안 식 2를 써서 계산한 조석력과 교통부 수로국에서 제 공한 인천만에서의조수면 최저치 (역서 1992-1993 )와의 관계를 보인 것이다. 여기서 조석력은 CGS 단위로 구한 값에 적당한 상수를 곱했 다. 조석력이 최대가 되는 시각보다 조수면이 최고 또는 최저가 되는 시각이 뒤에 있데 되는데 대체로 이삼일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이 그 림은 조석력에 거의 정비례하여 조수최저면이 낮아짐을 보인다. 특히 조석력이 강할 수록 조수위값이 적은 분산을 보여 더욱 강한 상관관계 를 갖는다. 따라서 식 2의 결과로 우리는 조수면의 최저수위를 추정할 수 있다. 그림 4는 BC935년을 중심으로 200년에 걸친 기간동안 조석력의 변화 를 보인 것이다. (편의 상 조석력이 188이상인 강한 조석력만 그림에 나타내었다). BC935년에는 이렇다 할 강한 조수현상이 없으나 4년 후 인 BC931년 11월 22일 조사된 200년 기간동안에 가장 강한 조석력이 지구에 미쳐졌다. 그 다음으로 강한 조석력은 BC975년과 BC913년에 있 었다. 그림 3에 의하면 조수위는 주어진 조수력에 대하여 상당한 분산 을 보이므로 그림 4에 보인 조석력들은 비슷한 정도의 조수간만의 차 를 야기시킬 것이다. 그러나 문헌기록에서 4년 떨어진 해에 200년 기 간 중 가장 강한 조수현상이 있었음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 기 록이 전혀 근거없이 임의의 시기를 선택한 경우, BC931년에 지구에 미 친 조수력과 같거나 더 강한 조석력이 발생한 때가 기록이 있는 해로 부터 우연히 4년 이내에 있을 확률은 1*8/200=0.04이다. 3. 일식현상 어느 한 일식을 지구상의 모든 곳에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한 나라 에서 기록한 여러 일식경로를 알면 그 나라의 위치까지도 추정할 수 있다. 즉 기록된 모든 일식들에 대하여 일식을 최대로 잘 볼 수 있는 최적 위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삼구깃대의 기록처럼 많은 일식 기록이 단기간에 수록되어 있고 연대가 정확한 경우 개개의 일식의 진위를 모 두 가릴 수 있어 위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단군시대의 경우 연대가 분정확하기 때문에 일식기록의 효용이 크게 떨어진다. 그 이유 는 부분일식을 포함한 모든 관측가능한 일식의 수가 한반도와 만주, 중국,몽고에 걸치는 지역에서 평균적으로 약 1.4년에 한번씩 볼 수 있 기 때문이다. 즉 한개의 기록에 대응하는 실제로 일어난 일식들이 너 무 많아 문헌의 연대를 정학하게 현대력으로 변환할 수 있지 않으며 그 진위를 파악하지 힘들다. 단군시대에는 문헌의 연대 자체에 오차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기록과 사실과의 비교가 어렵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일식을 일년에 두번 이상 다섯번 이하 일어난다. 이중 에서 단군시대인들이 관측했을 법한 일식을 추리기 위해 아래와 같은 선별작업을 먼저 하였다. 즉 1960년에서부터 1992년까지 최근에 일어 난 모든 일식들에 대하여 두개의 변수를 각 일식에 다음과 같이 대응 시켰다. 첫째는 일식이 최대로 진행되고 있을 때 한반도에서 본 태양 의 고도 (A), 둘째는 지구중심에서부터 달그림자 중심까지의 거리를 지구반경으로 나눈 값(γ)이다. 그림 5는 개개의 일식을 이 두 변수공 간에서 보인 것인데, 만약 어느 일식이 한반도와 만주와 중국 등지에 서 부분일식으로나마 관측가능하면 O표로, 전혀 그렇지 않으면 X표로,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으면 표로 표시하였다. 관측 가능성은 책 력(Astronomical Almanac 1960-1992) 에 나온 달그림자 위치로부터 경 정하였다. 단군 조선의 수도 위치를 정확히 안다면 그 위치에서 관측 할 수 있는 일식의 변수공간이 크게 줄어들지만, 단군조선의 위치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없으므로 여기에서는 만주와 중국 주위의 광범위 한 지역을 모두 고려하였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동아시아에서 관측 가능한 일식이 (A,γ) 공간상에서 잘 정의됨을 아 수 있다. 따라서 어 떤 일식의 (A,γ) 값이 그림에서 보인 곡선내에 들어가면 관측이 되었 을 가능성있다고 판단하여 기록과 비교하는데에 사용하였다. 이렇게 선별된 일식들도 상당수이어서 단군조선조에 모두 1500개 이상이나 된 다. 일식은 매우 분명한 자연현상이지만,앞서 연구한 오행성 결집이 나 강한 조수현상보다도 훨씬 빈번히 일어나는 단점이 있다.수도위치의 불확실성도 일식기록의 효용성을 떨어 뜨린다. 단군세기와 단기고사에는 일식기록이 BC2183년을 시작으로 BC241년까 지 모두 10번 나온다. 이 중에는 일식이 일어난 달이나 계절이 함께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 있으나, 일단 일식 연도만 고려하면 5개가 실제 현상과 결부된다. 표 2에 일식기록이 있는 해에 실제로 일어난 일식들 을 비교하였다. 일식계산을 Meeus(1991)의 해와 달의 위치 계산 공식 을 응용하여 수행하였다. 비고한에서 문선상의 일식일과 결부된 실제 일식일이 양력과 음력이 갖는 시간차 정도가 있을 경우 이들이 달까지 일치한다고 표시하였다. 나머지 다섯기록이 나오는 해당년에는 동아시 아에서 관측할 수 있는 일식이 없었다. BC2183년과 BC5133년과 BC241 년의 일식들에 대해서는 그 해로부터 가장 가까운 시기에 실현되었던 일식을 기입하였다. 10개 기록 중 5개의 연도가 일치하는 것은 확률적 으로 무작위 과정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10개의 일식기록이 임의의 연 대에 배정되었을 경우, 그 연도가 일식이 실존한 연도와 우연히 일치 하는 횟수의 기대값은 동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일식이 1.4년에 한번 있으므로 (1/1.4)*10=7.1 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기대값은 모든 부분 일식까지 포함하고 중국에서 북만주와 몽고에 걸치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일식을 다 포함하므로 과장된 값이다. 한반도, 만주, 북부 중국 등으로 관측영역을 줄이고,관측된 최대 식분이 0.3이상인 일식 만 고려하면, 이러한 일식은 3년에 한번 일어나고 10회 기록 중 실제와 우연히 일치하는 일식 횟수의 기대값은 10/3 = 3.3 이다.단군시대 일식 기록의 실현율은 표 1과 2의 서력환산을 받아들인다면 2/8=0.25인데 (연도만 있는 경우 제외), 渡邊敏夫(1962)의 일식 기록표로부터 계산 한 BC54년 이래의 삼국시대 일식기록의 실현율이 0.77이고, AD628년부 터 나오는 일본 일식기록의 실현율이 0.44인 것과 비교가 된다. 한편 BC935년의 썰물기록연구에서 강한 조석력이 4년후에 실제로 있었음이 앞의 조수현상 연구에서 밝혀졌다. 그런데 BC935년 이후에 나오는 두 일식 기록의 해당년(BC918,BC837)에는 실제 일어난 일식이 없었지만 4 년 후에는 각각 대응시킬 수 있는 일식이 실존하였다. 이 두 일식기록 의 연도를 이렇게 4년 후로 수정한다면연도 적중률은 7/10 = 0.7로 높아 지고, 따라서 앞서의 연구결과는 일식자료와 잘 어울리는 관계에 있 다. 표 2. 문헌에 기록된 일식시기와 실제 일어난 일식과의 비교 (실제 일식시기는 줄리안력은 따른다.) 문헌상의 일식일 비교된 실제 일식 비고 BC2183 BC2181년 8월 30일 ? BC1533년 여름 BC1536년 7월 11일 ? BC 918년 7월 BC 914년 8월 3일 4년후 BC 837년 3월 BC 833년 3월 13일 4년후 BC 765년 4월 BC 765년 2월 10일 일 BC 23년2월 BC 423년 3월 10일 달일치 BC 248년 10월 BC 248년 4월 24일 연도일치 BC 241년 BC 237년 9월 16일 ? 표 2에 수록된 실제 일어났던 일식들에 대하여, 일식 진행 경로를 조사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림 6은 연도가 일치하는 5개의 일식과 bc833년 일식들을 보인 것이다. 일식 진행 계산에 필요한 이론 은 Meeus(1991)을 참조하였고, 계산 결과는 BC1500년 이후의 일식도 (즉 달의 은그림자 경로)를 보인 영국의 Stephenson과 Houlden(1986) 의 계산, 그리고 BC800년 이후 일식도를 계산한 度邊敏夫(1962)의 결 과와 매우 잘 일치하였다. 그림에서 실선들은 굵기 순으로 최대 일식 분이 0.9, 0.7, 0.5, 0.3인 곳이고, 그림자처럼 점을 찍은 곳(BC248 더하면 지방 표준시가 된다. (물론 서울의 경도는 동경 127도 이므로 8시간 28분을 더해야 지방시가 된다.) 그림 6에서 BC765년과 BC579년 의 일식은 관응 〈 지역이 서쪽으로 치우쳐 있어 기록연대의 오차 로 인해 잘못 선택된 듯하다. 한편 BC525년과 BC248년의 일식은 한반 도와 만주, 중국 북부에 달의 은그림자가 드리워져 인상적인 경우이 다. 만약 단군조선의 수도를 안다면 기록과 대응하는 일식 수가 크게 줄어 비교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단군조선 시대의 천문 현상기록이 지금의 하르빈 근처에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고, 눈으로 일식을 분명 히 느낄 수 있는 식분이 0.7 이상인 일식만 고려해보자. 계산에 의하 면 하르빈의 위도에서 이러한 일식은 9년에 한번 일어난다. 따라서 10 번의 기록이 임의의 연대에 있을 경우 식분이 0.7 이상인 일식의 기대 치는 1/9*10 = 1.1 음 현상을 더 따른다고 할 수 있다. 라. 토의 이상에서 단군조선의 역사기록에 나타난 3가지 유형의 천체관련 기 록 12개를 과학적 계산을 통해 사실성을 조사했다. 먼저 10회로 가장 만이 있는 일식 기록은 기록연대가 불하 실한 점, 단군조선 수도 위 치가 불확실한 점, 일식이 빈번히 일어나는 점 등으로 인해 실제 일식 과의 비교가 매우 어려웠다. 일식 계산과 비교한 결과 10개 기록 중 5 개 일식이 실제 일식과 같은 연도에 있으며, 이 가운데 2개는 달의 온 그림자가 만주, 북중국, 한반도에 드리워지는 일식이다. 그러나 이 연 도 일치율은 무작위로 일식 연도를 기입한 경우에 비해 높지 않다. 일 식현상과는 달리 5행성의 결집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 이것은 토성과 목성의 궤도 주기 때문에 20년에 한번꼴로 결집 기회가 주어질 뿐만 아니라 이때 다른 세 행성이 토성과 목성의 위치에 있어야 하기 때문 이다. 5행성들의 위치를 기록년인 BC1733년 근처에서 계산한 결과, 1 년 전인 BC1734년에 다섯행성이 약 10도 이내에 모임이 밝혀졌다. 오 행성이 이보다 더 가까이 모인 경우는 BC1733년을 중심으로 550년에 걸쳐 한번 있었다(BC1953년). 따라서 오행성의 결집을 사서에 임의로 기입했을 때 이런 정도의 일치를 보일 확률은 0.7%에 불과하다. 조수 간만의 수위는 일식이나 5행성 결집과 같은 분명한 자연 현상과 달리 그 차이를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정확히 측정하였을지는 의심스 럽다. 그러나 해와 함께 조석력을 일으키는 중요 요인인 달이 불규칙 한 궤도운동을 하므로 조수 간만의 차이는 항상 다르게 마련이다. 큰 썰물이 기록된 BC935년을 중심으로 해와 달의 계산하여 지구에 미친 조석력을 200년간 계산한 결과 4년 후인 BC931년에 가장 강한 조 석력이 발생되었다. 썰물기록도 사서에 임의로 삽입되었다고 가정할 가장 큰 실제 썰물과 이 정도로 일치될 확률은 4%이다. 이상의 연구에서 단군세기와 단기고사에 수록된 12개의 단군시대 천문 현상 기록 중에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흘달(屹達) 단제 50년(BC1733)의 5행성이 모인 현상 기록이다. 비록 문헌에 "聚婁"라고 했고, BC1734년의 결집이 婁星에 이루어 지지는 않지만. 그 시기 전후 수백년간에 다섯 행성이 가장 강하게 모인 때가 바로 1년 전임을 우연으로 보기는 힘들다. 두 사서의 내용 중의 일부는 후대에 추가되고 윤색되었음이 분명한 것도 있으나. 자연 현상기록들은 변조될 여지가 별로 없으므로 단군시대 연구에 자연현상 기록들을 더욱 활용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大野勃, 단기고사, 고동영 역, 1986, 한뿌리, 서울 渡邊敏夫, 일식월식 옥전, 1962, 웅산각, 동경 北崖, 규원사화, 고동영 역, 1986, 한뿌리, 서울 李癌, 한단고기의 단군세기편, 임승국 역, 1991, 정신세계사, 서울 李殷晟, 한국의 책력, 1978, 전파과학사, 서울 최승언, 천문학의 이해, 1992, 서울대학교 출판부, 서울 한국표준과학 연구원 천문대, 역서록들은 변조될 여지가 별로 없으므로 단군시대 연구에 자연현상 기록들을 더욱 활용할 필요가 있다. ------------------------------------- 퍼오기 끝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 천문학 교수들의 연구에 오류가 있거나, 아니면 재야사학자들이 일본 원본을 베낄 때 우연히 더 천문학 기록이 더 잘맞게 베꼈거나, 일제시대때 다음과 같은 일들이 영향을 주었거나.. ==> 일제는 식민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민속 조사를 실시하고 우리 의 민속신앙들을 미신으로 몰아세웠다. 특히 동제를 중점적으로 탄압했는데 촌산지순의 연구에 의하면 동제는 일본의 신도와 공통성을 지니며, 여러가지 고대문화를 보존하고, 현실적으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기능을 할 뿐 아니라, 민중심성을 개발하는 가장 으뜸가는 향토 오락이며, 성씨별 분열을 막고 이를 통합하는 기능을 지니고, 마을 사람들의 심신을 정화시켜 주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능들은 일제의 반일본화작업에 있어 방해요 소가 되었기 때문에 다각적인 탄압을 진행하였다. 경찰국에서는 중추원시정연 구회의 연만뜀자문받아 무녀 취체 법규를 제정하고 무당들을 경신 단체에 가 입시키는 한편, 강력한 취체 행정으로 이를 금압하고, 학무국에서는 신사.신 도 정책을 펴나가 각급학교 학생들에게 신사 참배를 의무화시켰으며, 사회과 에서는 우리의 민속신앙을 미신(미신이라는 말은 이때부터 쓰이기 시작함)으 로 간주하는 사회 교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사서20여만권의 소각과 더불어 시작된 조선사의 편찬은 당시의 조선 인들로 하여금 소위 {공명.정확}한 새로운 사서를 읽혀 조선인에 대한 동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루어 졌다. 즉 {공명.정확}한 사서의 편찬을 위해 사료가 필요하다는 구실로 중추원을 앞세워 전국적인 사료수색을 감행하였는 데 1차적으로 1910년 11월 부터 다음해 12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37년까지 이루어 졌고 압수대상 서적은 단군관계 조선 고사서, 조선지리, 애국충정을 고취하는 위인전기.열전류 및 <<미국의 독립사>>까지 포함되었다. 이들 사서중에는 조선세종때부터 단군관계사서를 수집하여 장서각 및 규장각 에 보관하였다는 기록을 보아 귀중한 단군관계 고사서가 많았으리라 추측 된 다. 조선사 편찬시 상당수의 조선인이 참가하였는데 여기에는 이병도, 신석호 , 최남선, 권중현, 박용구, 이완용, 박영효 등이 있다. 다음에 다시 서술하겠 으나 우리는 이병도씨가 이 작업에 참가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조선사의 성격과 구성 내용등을 살펴보자. 일제의 식민사관을 성립 시키는데는 3대요건이 필요하다. 그 첫째가 상고사와 국조의 부정이 둘째가 동양사의 주체였던 한민족의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만 압축해 버리는것 마지 막 세째가 한국 민족은오늘날까지 제대로 완전한 독립을 해본 응 없는 주인 도 없고 뿌리도 없는 유랑민으로서 무능하고 부패하고 민족 분열을 일삼는 망 국근성의 민족인 것처럼 자타가 공인하도록 하는 것이다.조선사는 위의 요건 을 충실히 따랐고 또 단군조선의 말살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던 당시 일본의 가장 악질적인 어용사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같은 자를 중추 인물로 세움으 로써 그 의도가 명백하다고 할 것이다. 시대구분에서도 위와 같은 의도가 엿 보이는데 1916년 1월의 회의때 결의한 시대구분인 상고삼한.삼국.통일신라 등 이 1923년 1월 8일 제 1차 위원회 회의에서 삼국이전.삼국시대.신라시대로 1 925년 10월 8일 제 1회 위원회때는 신라통일 이전.신라통일시대로 압축되었다 . 내용상에 있어서 위와같은 의도는 확연히 들어 난다. 몇가지 살펴보면 조선 의 반도적 지리요건으로 인해 독립이 불가능 하다는 점(반도북부--중국의 식 민지, 반도남부--임나 일본부) 조선역사는 위만 조선으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조선인은 자립, 자치 능력이 없다(당쟁.반란의 의미 확대) 조선의 조정은 동학란 때문에 뺙ざ窄 불러 들여 왔으나 일본이 처음 무찌르자 합방해 주 기를 원하므로 합병하여 조선인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잘 살게 되었다라는 등 이 있다. *** 윗 일제시대 글은 심준학님의 글(역사보드; 한국 역사학계 현실 세미나글)에서 일부 발췌한겁니다. 큰바위얼굴님의 의견을 듣고싶네요:) 혹시 그 교수들 방법에 문제가 있나요? --,--`-<@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잠이 들고파.. Till the rivers flow up stream | Love is real \|||/ @@@ Till lovers cease to dream | Love is touch @|~j~|@ @^j^@ Till then, I'm yours, be mine | Love is free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