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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sagang (보라빛향기)
날 짜 (Date): 1996년04월12일(금) 05시52분11초 KST
제 목(Title): 도니님께 드리는 댓글.



하하.. 제가 님을 끔찍히 싫어하나 보다구요?
글쎄요.. 그런지 아니한지 님에겐 별 의미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래도
먼저 밝히는 것이 나으리란 생각이 드는군요.
전 님의 여러 글들에서 사랑스러움을 느껴왔습니다.
님을 본 적은 없지만 님의 글들을 통해 님께 호감을 느꼈단 말이지요.
하지만 그 글이 어떤 주제에 대한 논쟁을 하기위해 쓰여진 글일 경우.. 그런
글에서 느낀건 일종의 혐오감일 때가 많았습니다.
왜냐구요?
우선 님의 글은 상당한 정중함으로 겉치장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때문입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한 가지 들자면, 타인의 발언의 뜻을 교묘히 왜곡하고
그 뜻을,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훼손하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교묘하다고 한 것은, 님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간에 그런 내용이 겉으로 
확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은근하게 숨겨져 있기 때문이죠.
실질적인 예는 먼저 쓰신 글에도 있지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바로 이전의 
글에도 있으니 그 글의 반박에 대해 쓰면서 밝히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 하나를 들자면 님의 글에서 보이는 님의 무례한 용어선택과
그리고 그에대한 무신경입니다. 
님께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엔 그렇습니다.

제가 그런 면에 민감한 것은... 
아마 제 스스로가 건방지고 오만하기 이루 말할데가 없으며, 아주 더러운 성격
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만한 자는 타인의 오만을 참기 어려운 법이니까요.

자 그럼 본론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포스팅한 글을 놓고, 구절 구절 반박을 하는 것은 자칫 토론을 다른 차원의 길로
>변질시킬 우려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 가급적 그러한 류의 댓글은
>쓰지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만, 사강님의 글을 본 후에 그 형식을 빌 수 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강님의 글에서
>느꼈던 것은 제 글에 대한 굉장한 분노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웃음 역시
>느껴지더군요.  

네 그랬습니다.
님의 글을 읽고 기분이 상당히 나빴었고, 그래서 저도 님의 기분을 상하게
해드리느라고 노력을 좀 했죠.
제가 수양이 부족한 못된 인간이라서 그렇습니다만, 적어도 전 그러면서 그렇지
않은 양 하지는 않습니다.

>>성직자가 청렴하고 깨끗이 산다는 점이 그 성직자가 특별히 더 존경을 받을만
>>한 덕목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인간적으로 성직자의 그런 삶에 존경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성직자라면 그래야만 하는 게 당연한 것이고 그러하지 못할 바에야
>>스스로 성직자이길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성직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청렴하고 깨끗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바른 삶입니다.  사회의 지도층인사중에서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극소수인 까닭에 그런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제가 한 이런말까지 공격을 당할줄은 몰랐습니다.  각박하시군요.

네. 맞습니다. 성직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겠죠.
그런데 하물며 그가 성직자라면...
전 지도층인사라는 말을 아주 싫어하고 또 그 용어에 적합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
합니다만, 어쨌던 그 소위 지도층인사라는 사람이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든 사람
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덕목을 갖추었다 해서, 그 점이 그가 특별히 더 존경을
받을만한 이유가 되는가 하는데 대해선 여전히 의문입니다.
지도층인사중에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극소수이건 아니건 마땅히 그래야하는 일
일 뿐이다 이거죠.
네.. 제가 각박한 인간이라서 미안합니다.
아마 제가 원칙론자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아마 똥묻은 원칙론자이겠죠? 푸하하...

>>그럼 신도의 헌금이 그런식으로 유용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아니
>>보편적이고 세계적인(귀하의 우습기 짝이없는 한국적이란 표현에 반해서 써본
>>것인데 역시 우습긴 마찬가지군요) 것입니까?

>한국적이란 표현을 쓴것이 그리도 거슬리십니까?  그 이유는 왜인지 오히려 궁
>금합니다.  왜 한국적이란 표현은 오직 좋은 것에만 쓰여야하고 네가티브한 면
>을 표현하는데에 한국적이란 말이 들어가면 그리도 흥분하고 들뜨시는지 모르
>겠군요. 자신도 모르게 한국적이란 말이 안좋은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은 아
>닌지 의문이 생깁니다.  

어떤 좋지않은 성향을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한국적'이라는 
한국인 전체를 지칭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라고 느낍니다.
일부의 얘기를 전체로 오도할 우려가 있으니까요.
저보고도 그런다고---개신교 목사에 대한 총체적인 비난을 한다고--- 뭐라고 
하셨는데 그 얘긴 나중에 나올 때 하죠.

>그리고 제가 그 말을 한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하신것 같아보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면 또 아래 연배에나 할 말을 한다고 흥분하실 지도 모르겠군요.)

아뇨.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알아들었습니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니 역시 제가 제대로 이해를 했던 게 맞네요.
그리고 위의 말씀은 아래 연배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님께선 지금 엉뚱한 예로 제가 아무 말에나 아래 연배에게 쓰는 말이 아니냐며
시비하는 걸로 몰고자 애쓰시는 것 같군요.
(물론 겉으로는 조심하시느라 그러시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요.)

>제가 왜 한국적이라고 표현을 했는 줄 아십니까?  한국적인 조롱과 비방이란
> 말. 자 자신도 사실 쓰기 싫어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가족의 일에 얽힌 것
>으로 구설수에 오르기 쉬운 분위기를 지닌것은 사실아닌가요?  저는 한국인
>입니다. 한국에서 25년을 자라왔고, 그리고 외국에서 5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외국인과 교류를 해온지는 10년이 넘습니다.  우리가 그들에 비해 다른것은
>지극히 가족적 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이나 친척에 대한 소위
>`뒷말`이 많을 수 밖에 없지않을까요.  아무래도 외국은 개인의 성향이 더
>강합니다.  목사의 아들이 호모이건 장관의 아들이 도둑질을 하건간에, 부친
>이 공범이 아니라면 별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적이란 표현
>을 쓴것입니다.  이러한 말에 대해서도 동의를 못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동의를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위에서 말씀드린
데로입니다.
한국적이란 표현에 대한 저의 조롱에 치중하시느라 그러셨는지 제 물음에 대한
답은 없으시군요.
이것도 글의 서두에 제가 말씀드린 그 남의 말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인인으로서 피해가고 싶은 부분일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남은 그런 부분을 얘기하는데 그 점에 대한 어떤 댓구는 하지않고 그 
문제에 대한 다른 면을 강조하는 것은 그렇게 하므로써 타인의 의견을 은근히
무시하는 아주 교활한 수법입니다.
저 역시 님의 글에 대한 댓글에서 그러한 부분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제가 받은 만큼밖에 대접할 줄 모르는 그런 인간이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하
>>시는 말씀이죠? 정말 웃기지도 않은 선입관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전 만인을 돌봐야할 성직자라면 독신이어야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라 생각합
>>니다.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한 성직자의 손길이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 어려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 있는 데도 성직자가 그들을 보살피는 데
>>보다 자기 가족을 보살피는 데 여념이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문제삼는 것은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그런 것들이 아니라
>>그 도가 지나친 경우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웃기지도 않은 선입관이죠.  정말 근거없이 떠도는 말이길 원하는게 제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목사아들이 축구를 하다가 옆아이와 부딪혔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입밖으로 `씨발` 이란 말이 튀어나왔죠.  그 대꾸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목사아들이 욕을 해? `  이건 아주 작은 예이고 그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죠.
>어린아이들의 작은 생각도 이러한데 거기서 더 발전이 되어나간 어른들의 생각은
>어떠할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정상적인 성직자들은 자신의 가족의 안위는 뒷전입니다.
>목사아들은 천사 아니면 깡패란 말이 있죠.  그말은 근거가 있습니다.  
>
>열심히 공부를 해서 자신이 앞길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적응에 실패
>하고 아버지의 직업을 원망하면서 타락의 길로 빠져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목사
>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신도들을 보살피느라 그냥 보고만있죠.  그러다간 
>깡패가 된 아들때문에 그 교회에서 아들교육도 못시키는 목사가 무슨 신도를
>맡을수 있냐는 욕을 들으면서 쫓겨나게 되지요.

네. 정상적인 성직자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이 얘기가 처음 나온건 그렇지 못한 비정상적인 성직자가 많이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님께선 그 예에대한 글에 주위의 풍문에만 의거해서 그러한 말에 동조한다
느니 하는 식으로 몰아붙이시더니 이제는 목사가 쫓겨나는 아주아주 드문 경우를
일반적인(최소한 천사아니면 깡패라는 단순한 이분법의 절반만큼) 것처럼 얘기하시
면서 처음의 예와 제가 예를 든 경우같은 건 없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글쎄요, 제가보기엔 비정상적이고 파렴치한 목사의 수가 아무리 적어도 님께서
예를 드신 그러한 이유로 쫓겨나는 목사의 수보단 훨씬 많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라뇨? 전 님을 포함한 님께서 말씀하신 그 '우리'에 들어가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고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가 우리라는 말을 쓴것에 대해서 심한 반발을 느끼시는 것을 보면 제가 그리도 
>끔찍히 싫으신 모양입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란 말이
>있죠.  물론 영어에도 그런 비슷한 속담은 있습니다만 배가 아플 정도까지는 아닙
>니다.  전 계속 우리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우리는 유치원시절부터 경쟁이라는 
>것을 체험하면서 자랍니다.  학교가 높아갈수록 남들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고교
>내신이란 것도 과목에 대한 개인의 성취도 측정이 아닌 전체 정원중에서 몇등을
>차지했나로 측정을 해옵니다.(지금은 어떤지 모르겠군요)  자연히 남들을 누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대학 역시 상대평가 기준에 의해서 그중 몇명은 하위 학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군대에 가면 대표적인 얼차려가 바로 선착순입니다.
>남을 누르고 먼저 들어와야 좀 더 편안하게 쉴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살아오셨다면 가련하기 그지없는 일이네요.
그렇게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자신보다 잘 사는 사람을 곱게 안쳐다봅니다.  성직자는 그래서 좋은 먹거리가
>되는 거죠.  대부분의 성직자의 삶은 윤택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자가용 굴리고
>아파트있는 목사의 삶이 부자라고 판단하신다면 할 수 없죠.  하지만 전 목사가
>능력이 된다면, 아파트도 있고 자가용도 있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능력이라고 한것을 가지고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목사의 차가 자신의 차종보다 좋으면, 반드시 욕이 나옵니다.  물론 비신도들에게
>서도요.  악의가 있던 없던 간에, 대수롭지않게 목사가 차를 굴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님의 행위는 결정적으로 교활해 보입니다.
이 부분에선 제 글을 삭제하고선 "만일 자가용 굴리고 아파트있는 목사의 삶이
부자라고 생각하시면 할 수 없죠."라고 서술하므로써 마치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발언을 한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어 가시니까요.
전 공부도 못하는 목사의 두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체도 불분명한 과정
의 자비유학을, 그것도 물가가 비싼 일본에서 목사의 월급과 무관한 교회돈으로
하고있는 것이 과연 정상적으로 보이느냐는 질문을 했을 따름입니다.
상황을 자세하게 전하기 위해 목사의 월급과 기타 생활수준을 얘기했을 뿐이고요.
여보세요 도니님.
목사님이나 신부님같은 분은 오히려 보통의 직장인보다 더 차가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도 살 집은 있어야 하는게 당연하고요.
그러나 목자가 목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주기때문에 차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 차가 고급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굳이 품위를 유지해야만 하겠다고 고집한다면 제 기준으론 소나타 정도까진 
봐주겠습니다만 그 이상의 비싼차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교회의 사택대신 교회에서 아파트를 하나 얻어 살게해줄 수는 있다고 
보지만 48평형(작다면 작다고도 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선
그렇지만은 않을겁니다)의 아파트를 자기 월급과는 무관한 교회돈으로 구입하고
그것도 목사의 명의로 되어있다면 이것도 잘못된 것 아닐까요?
하지만 전 이런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단지 한국 가정의 평균적인 삶의 수준보다 나은 경제적인 여유
를 누리는 목사의 뭔가 석연치 않은 자녀유학에 대해 얘기했을 뿐입니다.

물론 목사도 잘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누구나 잘 살 권리가 있으니까요.
온누리님께선 반대하셨지만, 목자가 부자래도 좋습니다.
단 다른 모든 사람이 다 잘 살고 있다면요...
왜냐면 그는 목자이니까요.

>교육심리학을 전공하신 분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한국의 어린이들과
>미국의 어린이들을 비교해보면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어린이들은 대체적으로 타인의 각자의 재주를 인정하고 자신만의 재주를
>발견하려고 애를 쓴답니다.  반면에 한국의 어린이들은 모든 면에서 남보다 뛰어
>나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비리를 바라보는데 무슨 '깊은 이성적인 사고'가 필요합니까?
>>그리고 무슨 근거로 주위의 풍문에만 의거해서 동조하고 그런 연유로 반기독교를
>>내세운다고 확정지어 말씀하십니까?

>>또 똑똑해 보이지 않다뇨? 뭐 "올바른 일이 아닐 것이다"와 같은 표현이라면
>>모르겠지만, 똑똑하다는 표현은 아랫사람에게나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위에 님께서 말씀하신 "하지만"에서 "않는다"로 끝나는 그 문장 정도가 님께서
>>여러번 내세우시는 "깊은 이성적 사고"의 결과로 나온 것이라면 님의 그 '이성적
>>사고'라는 게 의문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아래에 말씀하신 것처럼 감정이 배제되지 않아 어찌 하시다보니 표현이
>>그렇게 되었다면 최소한 타인의 이성적 사고에 대해서 함부로 왈가왈부는 하지
>>않으셨어야 하는겁니다.

>긴 댓구가 필요없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똑똑하다라는 표현은 
>아랫사람에게 쓰는 표현이 맞지만 제 문맥상 쓸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현명한
>이란 말보단 똑똑하다란 말이 경박하게 들리는 것이 전 사실 싫습니다.  그리고
>사강님의 글에서 그리 타인에 대한 배려가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타이르다가 흥분을 하시는 모습같이 저에겐 느껴집니다.  제가 아랫사람이라서
>생각이 짧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요.

네. 님의 글에서 받은 느낌만큼을 님께 돌려드리는 것도 목적의 일부였으므로
배려가 없었던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님을 타이른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감히 누가 누구를 타이를 수 있겠습니까?
단지 제가 하고싶었던 얘기를 별로 좋지않은 방법으로 했을 뿐이죠.

>너무 길어져서 다음글로 옮기겠습니다.

>>현재 한국 기독교의 현실에서 목사님과 신부님이 동등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주교단은 과거 중세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천주교도 현재 열린 태도--근본적인 한계는 있겠습니다만--
>>를 표명하고 제법 바른 모습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고 또 실제로 
>>어느정도 그러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는 님의 "목사님 신부님"이란 표현은 대다수 신부님들의 
>>좋은 모습을 빌어 마치 대부분의 목사님들도 그런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아
>>보여서 조금은 우습네요.
>>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죠.

>>끝으로, 배출되는 신학생이 많으면 뭐합니까?
>>그들 모두가 올바른 자세로 목자의 길을 걷고싶어 하더라도, 그들이 <이미 잘못
>>된 길을 걷고 있는 기득권을 가진 엄청난 세력>을 이겨낼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목사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현존해 있는 개신교계의 문제점이 나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들을 수행하는 것만으론 목자로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다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현재 한국의 개신교계가 썩어있는 수준을 볼때...

>이 토론의 맥을 보면 기독교에 대한 것이지 개신교에 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독교의 배타성이란 것에 대해서 말을 꺼낸것이지요. 천주교와 개신교
>는 기독교니까요.  그런데 사강님의 그런 조롱조의 말을 보니 사실 저도 화가 
>납니다. 신부님의 좋은 모습을 빌어서 목사님을 위장하는 형태의 글로 볼 정도라니
>그 무한한 상상력에 감탄을 보내고 싶습니다.  

종교자체의 배타성만을 따진다면 물론 그렇지만, 현실에서의 그 배타성의 극단적인
표출을 얘기하자면 아무래도 개신교만을 따로이 떼어놓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재 한국에서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그 자리매김이란 것도 그런 것을 얘기한 것입니다.
타 종교인이나 비 종교인의 시각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배타성
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그리고 칭찬 고맙습니다. 저도 쓰면서 제 상상력에 조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습
니다만, 기독교 외부로 뿐만 아니라 신교가 태동할 무렵의 과거는 잊어도 좋을만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기독교인 천주교를 적으로 여기는듯한 아니 최소
한 타 종교와 별다르지 않게 대하는 개신교의 그 지독한 배타성을 강조하느라 
그랬습니다.
현재의 전체적인 타락의 정도를 볼 때 천주교와 개신교의 위치가 과거의 그때와는
달리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는듯이 보이는데도 말이죠.

>천주교와 개신교, 뭐가 옳고 그르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한국기독교 현실
>에서의 자리매김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학생들이 평가하는 자리매김입니까 아니
>면 기성세대에서 매기는 기준입니까?  아니죠 자세히 말하면 학생운동을 하는
>축에서 매기는 것입니까?  제가 한마디 할까요?  1971년 김 수환 추기경의 대정부
>공명선거 촉구 성명서 이전까진 천주교는 개신교보다 뒷자리였습니다.  개신교계
>는 대체로 박정희에 대해서 강한 반발감을 보이고있었던 반면에 천주교는 침묵으로
>일관을 했기때문이죠.  그래서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개신교로 왔죠.  5공이 
>들어서면서 천주교는 반정부측에 선 반면에 개신교 지도층은 어정쩡하게 5공측에
>서는 모습을 보였죠.(저는 지금 각 종교계의 얼굴마담들을 놓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 카톨릭은 민주인사를 지키는 수호천사의 모습으로 개신교는 5공정권에
>빌붙은 흡혈귀의 모습으로 보여졌습니다.  적어도 운동권내에서는요.

종교계의 얼굴마담의 정치적인 성향과 그 처세는 그다지 중요한 사항이 아니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소위 종교를 가졌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종교
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임에 틀림없지만, 수많은 개신교도들에서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이를 포함한 타종교인에대한 눈꼽만큼의 사랑도 없음을 보게되는 현실을 개탄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러한 모습의 자리매김을 깊은 사고없이 이리뛰고 저리 휩쓸리는 생각이라
>단정짓습니다.  종교자체에 대한 생각보다는 과연 그 종교가 자신들의 목적에 
>얼마나 부합이 되는것인가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 때문이죠.

네. 저도 동감입니다.

>신부님들 좋으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비율로 보자면 개신교보다 훨씬 높은 
>수치지요.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개신교 목사님들 역시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전체적인 숫자로 따지면 천주교보다 많습니다.

네. 맞습니다.
전체적인 숫자로 따지자면 좋으신 신부님의 수보다 훨씬 많은 수의 훌륭한 목사님
들이 더 많이 계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그 비율이 문제인 것입니다.
바른 길을 가고있는 분의 비율이 천주교의 그것보다 훨씬 낮으므로, 바르다고
말하기 뭣 한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목사의 수 역시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신도들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수준에 와있다는 거죠.

>저는 개신교도이지만 카톨릭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성공회의 나라에서
>공부중입니다.  좋은 신부님들과 목사님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신부님들께서 독신으로 지내시면서 자신이 삶을 헌신하는 것과
>개신교나 성공회의 목사들이 가족의 희생을 무릅쓰면서 자신들의 일을 하는 모습
>엔 별 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의 실체를 보지못하는 우리가 
>사강님 표현대로 밖에서 왈가왈부하면서 일부의 모습으로 전체를 매도할 수 없다
>고 생각합니다.  

네. 좋은면만을 바라보고자 하시는 그 마음은 충분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있는 환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곪은 상처는 짜내야 하고, 더 심한 수준이라면 도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실체를 모르고 밖에서 왈가왈부한다고요?
하하..
원래 좋은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아도 나쁜 모습은 그것이 풍기는 악취가 너무
심해서 멀리까지도 그 냄새가 진동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교리상의 문제와 배타성에 대한 기독교의 문제에서 이젠 개신교 목사에 대한
>총체적인 비방으로 이어진것에 대해서 실망을 느낍니다.

아니죠. 도니님과 제 글의 근원은 교리상의 문제와 그로인한 기독교의 배타성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배타적인 기독교인의 사례들에서부터입니다.
그리고 그 사례중 일부에 대한 도니님의 고의적인 무시와 그것에 대한 저의 댓글
뭐 그런 순서가 아니었나요?
그리고 전 개신교 목사를 총체적으로 비난한 일이 없습니다.
님께서 제 글을 잘못 읽으신 것 같군요.

>처음 제가 올린 글이 감정의 배제가 없다는 말은 했습니다.  물론 빠져나갈 
>구멍을 위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제 글이 온누리형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고 나중에야 느꼈지만, 저는 온누리형 역시 감정적인 오해는 없으시리라
>믿고있습니다.  하지만 4디형의 글 이후로 붙는 글들을 보면서 자칫 흥분해서
>한방향으로 흐르는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그런 말을 한것입니다.물론 제가 잘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길어진 글이 되었습니다.  조목조목 반박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되는군요. 제 글에 마음이 상하신
>분들게 사과를 드리면서 이 즐겁지않은 긴 글을 맺을까 합니다.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하시게 해드려 무척 미안한 마음입니다만, 저 역시 님의
글에 상당한 불쾌함을 느끼고 시작했던 것이므로 사과말씀을 드리진 않겠습니다.
저의 잘못도 많음을 알지만, 또 설령 잘못이 없다고 느낀다 하더라도 저로인해
마음이 상하셨을 분께 사과를 드리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시점에서 드리는 사과는 아무래도 가식적으로 여겨져서 내키지 않네요.
하하.. 물론 제 사과 따위야 전혀 개의치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요.

                  ....
                  바다는 넓고/고독은 자라고/세인트헬레나의 옛사람을 닮아
      思 江       아무도 걷지 않는 해안선에/솔밭이 있고/모래밭이 있고
                  하늘과 바다와 소라가 있고/소라와 같이 고독한 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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