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eXpressio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Gentle ()
날 짜 (Date): 1996년02월27일(화) 04시37분48초 KST
제 목(Title):  "삼십세"




   [ 30세에 접어 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

     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

     어난다. 그리고는 문득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

     는 것이다.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으면,

     살아온 모든 순간과 함께, 그는 다시금 가라앉아 허탈의 경지로 떠내려간

     다.

     다시금 의식을 되찾아 전율을 하면서 ... 벌떡 일어나 낮의 세계로 뛰쳐

     나가야만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을때,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불가

     사의한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을 해내는 능력을.

     일종의 고통스러운 압박을 느끼면서, 지나간 모든 세월을, 경솔하고 심각

     했던 시절을,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을 기억해내

     는 것이다.. ]

                             --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 중에서 --




   오늘 아침, 우연히 거울을 보게 되었다. 피곤하고 지친 낯선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눈가에는 더더욱 낯선 잔주름이 마치 오랜세월동안 당연히 있었던

것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내야할 사진 한장이 필요해서 먼지덮인 앨범을 꺼내 펼쳐보았다.

새삼 알게 된 것이지만, 난 참 사진을 안찍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져보면 조금

더 찾아낼 수 있겠지만 고향에 두고온 앨범을 제하고 겨우 한권의 앨범이 전부였

다. 몇장 되지 않는 사진첩을 뒤적이면서 단편들로 엮어진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나의 삶을 훑어 불 수 있었다.



   머리통만 커다랗게 가분수처럼 보이는 국민학교 시절의 사진.. 누렇게 빛이 바

랬지만 만지면 통통 튀는 탄력으로 반길것 같은 미끈한 두 뺨을 가진 아이에서부터

까까머리의 중학 시절 모습도 있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도 보였고, 이제 겨우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춘 대학 시절의 모습도 있었다.

대학 시절이라고 하지만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나지 않았던가..



   졸업식 때의 사진도 있었다. 나의 두번의 졸업식 사진들에는.. 남들에게는 당

연하게 들어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없다. 4 학년때부터 중해진 어머님의 병환 때문

에 어머님은 물론 아버님도 두번의 졸업식 모두 오시지 못했었다. 꽃순이 하나 없

는 내 옆에는 시커먼 친구 녀석들하고 누나, 매형이 요란하게들 서 있다.



   그땐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저 아쉽다는 생각만 들었었다. 늘 보던 사람들과

한바탕 채팅을 하고난 지금 이 새벽.. 혼자서 쭈그리고 앉아서 보고 있는 나의 졸

업 사진들이 이렇게도 쓸쓸하게 보일 수가 없다. 이것들은.. 나에겐 전혀 가치없

는, 아무런 의미도 담고있지 않은 한장의 종이 조각에 불과한 것들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슬픈 사진들이구나..



   앨범의 맨 마지막 장에는 두장의 사진이 들어있다. 한장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는 어떤 여자의 사진이고, 다른 한장은 돌아가신 어머님의 사진이다. 어머님의

사진을 언제 꼽아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예기치 못하게 맞닥뜨릴

땐.. 울컥 치미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한다..



   잠시 눈을 옆의 사진으로 돌려본다. 제주에서 찍었다는 사진속에서는 또다른

감정들이 고개를 쳐든다..



   사진속의 모습들은.. 모두들 웃고 있다. 지금의 나 혼자만 웃지않고 있다.




   67년생은 올해에 한국 나이로 서른살이 된다. 무엇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선을 그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양쪽으로 서로 구분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제 30 이라는 선을 넘어섰다.



   글의 첫머리에 옮겨적은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문장을 읽어 보면서.. 내가 예정

에도 없던 이 글을 쓰는 이유를 뚜드려 맞춘다면.. 나 역시 내 자신의 내면에서

불가사의한 능력을 발견했다는 것 이리라..



   기억을 해내는 능력을..



                나의 시작속에 나의 끝이..

                    Gentle.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