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god (부리^2박사) 날 짜 (Date): 1996년02월17일(토) 14시28분53초 KST 제 목(Title): 혼자만의 기차 여행 ( 2 ) 아까 춘천 올 땐 새벽차였기에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홀로이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감상하며 춘천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내려갈 때에는 저녁시간이니까, 아무래도 차를 탈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나는 그래도 꼭 창가에 앉아서 가고 싶었기에 아까 서울 가는 차표 끊을 때에 창쪽의 자리로 달라고 말을 했었다. "O량의 OO번...". 내 좌석의 번호를 되뇌면서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윽 고 자리를 찾았을 때에 나는 "윽..." 하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명이 마주보도록 배치된 그 쪽 좌석에는 3명의 앳되어 보이는 아가씨 일행이 진을 치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에궁... 이를 어쩌나... 요 기에 어떻게 끼여서 서울까지 갈꼬..." 그때만 해도 나는 지금보다 훨씬 숫 기가 없었고, 그래서 그 어색함 때문에 마음속으로 덜덜 떨었던 것이다... 크크... :) 분명히 내가 창쪽 자리인데, 내 자리에 앉아있는 아가씨는 나한테 자리를 넘겨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에구... :( " 그리고, 잘 생각 해보니 사실 나도 내 자리 달란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진짜 내 자리를 찾아 앉으면 난 완전히 3명한테 포위되는 게 아닌가? "윽... 그럼 어떡해... 안되지... " 결국 이래서 난 복도쪽 자리에 앉아서 그 3명과 함께 서울까지 오게됐던 것이었다... 여대생인줄 알았는데 그녀들은 아마 전문대학을 졸업한 사회인인 듯 싶었 다. 응용미술 쪽을 전공하고 어느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던 것 같다. 그들도 나처럼 오랜만에 바람을 쏘이러 춘천에 다녀온 듯했고, 그들이 말 하는 소리를 엿들으니 우연찮게 오늘 내가 다녔던 곳과 비슷한 코스로 그 들도 다녀온 듯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나는 그들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 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대화에 끼여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차츰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웃어야 할 곳에선 같이 웃고, 심각해야 할 곳에선 같이 심 각해지는 동료가 되어 갔다... 그들도 같이 자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귀 기 울여 듣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고, 자신들의 말을 듣고 이해해주는 사 람이 있다는 것이 기분 좋은 듯 더욱 신나게 얘기를 이어나가는 것 같았 다. 처음엔 사실 괜히 멋쩍어서 마침 갖고 있던 신문을 그저 열심히 읽을 수밖 에 없었다. 속으로 신문을 사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그 아가씨들은 시종일관 정말 열심히 떠들어댔다. 1분도 쉬지 않고 계속 입을 움직이는 그들이 신기했다. 그렇게 열심히 신문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신문 기사를 한 줄도 내 머리에 집어넣을 수 없었다. 대개 자기들이 일하는 곳의 사람 사는 얘기들이었다. 학원 원장이 어떻다 는 둥... 학생중의 누구는 정말 열심이고, 누구는 싫고... 그러다가는 가족들 얘기가 나온다. 마침 그 자리에 없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도마 위에 올려 놓여지기도 했다. "드실래요?" 하고 그 중에 누군가가 오징어를 내밀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저 놀라서 " 아니 괜찮습니다. " 하고는 못 받아먹었던 것 같다... 킥킥거리며 웃는 귀엽고 천진한 얼굴과 얼굴들... 잠시도 쉬지 않는 그들의 담백함이 부러웠다. 우리 뒤에는 한 아주머니가 타고 있었는데, 시끄러웠는 지 이쪽을 눈을 부릅뜨고 치어다 보곤 했고, 때로는 " 요즘 애들은 ... " 하 면서 중얼중얼 대기도 했다. 아줌마의 그런 중얼거림이 톤을 높이는 듯 해지면 이 아가씨들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러다가 아줌마가 잠이 든 듯하면, " 야! 귀남이 엄마 주무신다... " 하고는 또다시 이야기가 이어지곤 했다... 이미 팔이 아파서 신문은 더 이상 들고 있기 힘들었고 차츰 피로가 몰려와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을 청했던 것 같다. 그녀들의 이야기 소리도 점점 아 득해지면서 나는 차츰 잠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간혹 기차가 심하게 덜컹거리면 잠깐씩 잠이 깨곤 했지만, 흐릿한 의식 속에서 주위에서 같이 잠들어있는 그녀들을 잠깐 느끼고는 곧 이내 또 잠이 들곤했다. 그러기를 수 차례... 어느덧 기차는 성북역쯤에 도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와 그녀들은 이미 모두 잠에서 깨어났고, 하루동안의 휴식의 시간을 마 치고 다시 자동차 배기가스가 느껴지는 이 도회 속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쳤는지, 이젠 아무도 별로 말이 없었다. 귀소본능이 랄까? 이 도시에 돌아오면서 한편으로 어떤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그런 나 자신이 마음 한구석으로 서글펐다. 청량리역에서 이내 기차는 멈췄고, 아쉽기는 했지만, 그녀들이 어디로 가는 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는 먼저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생각 해보면 그녀들에게 그저 잘 가라는 인사라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런 말조차 하지 않은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 지금 그 때의 마음으로 그곳 춘천을 다시 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언 젠가 먼 훗날 그 때의 마음을 다시 느낄 수가 있을까? 바로 2년 전의 어떤 날의 일이었는데... 지금 왜 그 때의 느낌이 이렇듯 내 마음을 저미는지 모르 겠다. 아마 이제 나의 인생에서 한 시기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 서일 것이다. 그 한 때의 너무도 절실했던 고독을 이제는 사무치게 그리워 하고 있다니... 너무도 모순된 인간의 본성인 듯 싶다. 그 춘천의 넓은 푸른 호수와 그 잇닿은 높은 하늘은 지금 내 마음속에 바로 어제의 그곳처럼 반짝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