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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sunbi ( # Luka #)
날 짜 (Date): 1996년01월12일(금) 06시51분20초 KST
제 목(Title): 더블린에서 ..



도시전체가 초록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연한 잿빛의 배경색에서 아래위로 굵직한 

선의 초록이 교차하고 있었다. 오래전 런던에서 받았던 빨간색 느낌이 초록으로 

바뀌어 버린 것만 같았다. 초록색 버스, 초록색 표지판, 초록색 우체함... 

무엇인가 칠할 것만 있으면 모두 초록색 페인트를 부어버렸다.



더블린은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한때 런던에 뒤지지 않는 번영을 누렸던 곳, 

James Joyce가 살았던 곳, 그의 유명한 작품 Dubliners의 배경이 되었던 곳, 

그리고 작년 여름 어느날 내게 잊지 못할 기억을 준 곳이다.



더블린에서...



University College Dublin은 몇안되는 아일랜드 대학 중 Trinity College와 함께 

널리 알려진 곳이다. Joyce역시 그곳에서 수학하였다. 이 대학은 여러곳에 

켐퍼스가 퍼져 있는데 Blacklock이라고 불리우는 곳에 있는 켐퍼스 근처에 실제로 

Joyce가 살았던 집이 있다. Conference가 열린 그곳 켐퍼스는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전철을 타야 한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전철이 가는 선로의 왼편으로 

아일랜드의 해안선이 따라온다. 수많은 물새와 함께 그리고 바다내음도...



오전 오후로 나뉘어진 일정을 마친후면 대개는 시내관광을 나가곤 했다. 동료들을 

따라나선 관광도 시들해졌을 때는 이미 돌아올 날자만 손꼽아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그러니까 지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갈 녁에 

왠지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Dubliners에 나오는 한 장면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둑해진 거리를 지나 푸근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들을 스치는 귀가길.. 어렸을 때 해질 무렵까지 뛰놀던 놀이터를 뒤로 하고 

귀가하던 느낌.. 아마 그런 것들이 그리웠었는지도 모른다.



켐퍼스를 나서면 왼편으로 구불어진 바닷가까지 연한 중간정도의 찻길이 나온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Joyce의 집이었다고 씌어진 팻말이 붙여진 집을 지나 

왁자지껄한 술집(Pub)을 지나 그 푸근한 불빛이 새어나올 창들을 스치며 걸었다.

바다... 그것은 잿빛 바다였다. 멀리 정박해 있는 큰 배들로 부터 나온 불빛이 

기묘하게 반사되는 잿빛 바다. 지니고 있던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해안으로 가는 

길은 전철 선로를 건너는 육교와 맞닿아 있었다. 그 육교를 건너자 길게 바다쪽으로 

뻗어있는 나무로 만든 다리가 보였다. 그 다리의 끝에는 등대와 닮은 조그만 역시 

나무로 만든 집이 있었고 그곳은 앉아 쉴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백열전구에서 흘러나오는 주황색 불빛은 이미 까맣게 변해버린 바다의 빛에 

빨려들고 있었다.



"이곳은 위험한 곳이니 바다와 접한 쪽으로는 접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라고 손으로 씌여진 나무판과 그주위에 새겨진 이름들... 그곳은 세상에서의 

피곤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곳이기도 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 살아갈 희망을 잃은 사람들... 그들중 

몇몇은 그 나무판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으리라... 주머니칼을 꺼내어 귀퉁이 작은 

구석에 이니셜을 새기고 있었다. H... 그때 가깝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서둘러 주머니칼을 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제법 깊게 새겨진 나의 

이니셜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는 다리의 끝 난간에 기대어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간정도의 키에 잠바를 걸친 중년의 그 남자는 몇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나의 존재따위는 무시하는 듯 했다. 나역시 그가 

바라보는 먼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어 먼곳 항구의 전경을 

향해 촛점을 맞추었다. 그가 내게 말을 던진것은 그때였다.

"사진은 나중에 찍으실 수 없나요?"

아일랜드 엑센트가 섞인 그러나 부드러운 음성, 교양있는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예 그러지요.."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곳 Blacklock에 사세요? 아름다운 곳이군요.."

그는 시선을 돌려 나를 보고 말했다.

"전에 살았었지요. 지금은 뉴욕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

"나의 이름은 H..라고 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지요?

"사람들은 나를 Graham이라고 부르지요 단한사람만 빼고는..."

"네.. 그럼 다른 이름이 있으시군요.."

""그 사람은 나를 James라고 불렀지요.."

그의 멀어져 가는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그 팻말을 내려다 보았다. 으슬한 

추위가 느껴졌다. 

'아 비가 오는구나...'

안개비처럼 내리는 작은 선들... 불빛에 반사되는 수많은 은빛 선들...



켐퍼스로 돌아가는 길은 군데 군데 세워진 가로등에서 나오는 빛과 그 빛이 

반사하는 빗물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참.. 사진을 찍지 못했네...'

가던 길을 되돌아 갔다. 그리고 그 바다위의 다리에 있는 작은 집 그 앞에 놓여진 

팻말에 이르고 사진기를 꺼냈다. 먼 곳 항구를 향해 한장 그리고 그 작은 집을 

향해 한장.. 불현듯 새기다 만 나의 이니셜을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름.. 

-James & Maria Dec 1962

나의 이니셜은 공교롭게도 1962의 2를 스치고 지나갔다. 얼핏보기엔 8자로 보일 

정도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몇일전부터 저녁시간마다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던 수위 

할아버지를 마주치게 되었다. 물어보고 싶었다. 그 팻말에 대해..

"혹시 James나 Maria에 대해서 아십니까?"

할어버지는 놀란 눈으로 말했다.

"혹시 팻말에서 본것 아니오?"

"네 맞습니다만.. 그리고 그 전에 James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그곳에서 

보았지요"

...



사흘 후 더블린 공항에서 그동안 같이 참가했던 타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일일이 

작별인사를 한후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들은 분주히 

활주로를 향하고 있었다. 면세점에 들러 작은 목거리를 하나 샀다. 초록색의 

크로바 문양이 예쁜 은으로 만든 목거리...



비행기는 항로를 틀어 영국본토를 향하고 있었다. 동체가 기울어 지면서 더블린 

해안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다시 더블린을 찾을 기회는 없으리라..

내게 더블린이란 곳을 알게 해준 James Joyce와 또다른 Maria의 James...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난후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뒤따라 가버린 James...

그들 모두 저곳 Dublin에 머물겠지... 그때 내게 떠오른 것은 수위 할아버지가 

James와 Maria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후 던진 말...



"누구나 더블린에 오면 하나씩 기억에 남을 일을 지니고 떠나게 된다고 하지요.. 

그것은 그 사람들이 더블린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오고 가는 사람들... 

더블린에 머물렀던 사람은 모두 Dubliner라고 할 수 있지요... 당신도.."



내게는 더블린을 기억하게 할만한 사진이 한장도 없다. 이상하게 현상이 되지 

않더라는 현상소 점원의 말...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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